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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증을 정복한다 : 우리 몸에는 '천연아편' 이 존재한다

마음을 육신에서 분리시키는 호르몬

 

엔케팔린이라는 물질은 뇌하수체와 부신에서 분비돼 육체의 고통을 스스로 진정시킨다.
 

사람이 통증을 느낄 때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뇌에 있는 호르몬성 물질이 통증을 조절한다는 가설이 대두돼 왔다. 뇌에 아편과 비슷한 효력을 갖는 진통 호르몬인 엔돌핀이 생산되며, 뇌세포막에는 이들 진통 호르몬을 받아들여 아픔을 모르게 하는 수용체가 있다는 점이 보고된 것이다. 참을 수 있을 만큼의 통증을 느끼는 것이나 참을 수 없는 심한 통증을 겪는 것, 그리고 진통제에 중독이 되는 일들은 모두 뇌에서 자체 생산되는 진통 호르몬이 있기 때문이며, 이를 수용체에서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가와 관련이 있다.

뇌가 아픔을 스스로 진정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아이러니하다. 통증은 인체에 아픈 부위가 있다는 점을 알려 주는 경고성 신호다. 그런데 몸 스스로 이를 모르게 만드는 격이다. 그래서 '호르몬이 인간의 마음을 육신에서 분리시킨다'는 가설도 제기됐다.

율동적인 수축에 감춰진 비밀

몸 안에 존재하는 물질의 작용을 새롭게 발견할 때 일반적인 순서는 먼저 그 물질이 발견된 후 이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특성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러나 몸 안의 아편성 물질의 경우는 반대였다. 날록손(naloxone)을 비록한 아편성 화합물을 생체에 반응시켜 체내에 수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 발견된 것이다.

이후 여러 가지 아편성 약물로 실험한 결과 뇌와 기타 조직 장기에는 여덟 가지의 수용체가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이 중 중추신경계에 확인된 것은 뮤, 카파, 델타, 그리고 시그마 수용체다.

수용체는 종류에 따라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진통 효과는 주로 뮤와 카파 수용체가 담당한다. 그리고 불쾌감이나 흥분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시그마 수용체가 맡는다. 델타 수용체는 주로 대뇌 변연계에 분포하는데, 자세한 기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편은 좋은 진통제이기는 하지만 중독성이 있어 일반적인 통증에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자 진통 작용을 지니면서 중독성이 없는 약물을 합성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아편과 흡사한 화학구조를 지닌 날록손이 발견됐다. 날록손을 동물에게 주사한 후 아편을 투입하면 아편의 진통 효과가 전혀 없어진다. 이 반응은 날록손 분자의 화학 구조가 아편 분자의 구조와 흡사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즉 날록손 분자가 뇌 부위 세포막에 있는 아편 수용체에 미리 결합해 나중에 투입된 아편 분자가 결합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수용체를 발견한 뒤 다음 단계는 왜 이들이 중추신경계에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수용체는 아편이나 강력한 마취제에 효과를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뇌에 어떤 물질이 이들수용기와 작용할 것을 짐작하고 그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1975년 휴즈와 카스테리츠는 돼지의 뇌를 반죽하고 이로부터 단백질을 분리한 뒤 생쥐 수컷의 수정관에 섞어 놓았다. 당시 수정관(정충을 고환에서 요도까지 수용하는관)에 뇌의 아편성물질에 대한 수용체가 있는 사실이 알려져있었다. 또 이 수용체에 아편을 결합시키면 수정관이 율동적으로 수축을 심하게 반복한다. 남성이 정액을 사출할 때도 성기의 수정관이 율동적으로 수축을 반복하므로, 혹시 남성이 사정할 때도 아편성 물질이 관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제기됐다.

만일 생쥐의 수정관이 심한 수축을 일으킨다면 돼지 뇌에 아편성 물질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험은 성공했다. 휴즈와 카스테리츠는 수정관이 아편과 결합할 때 리드미컬하게 수축하는 성질을 발견하고, 여기에서 엔케팔린을 찾을 수 있었다.

엔케팔린(희랍어로 '머리 속'이란 뜻)은 메테오닌을 포함해 5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메테오닌-엔케팔린과 루이신을 포함한 5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루이신-엔케팔린이 혼합된 호르몬이다.

처음에 호르몬이 발견된 장소는 뇌하수체다. 이후 엔케팔린이 여러번 반복돼 배열된 호르몬이 부신(副腎)에서도 발견됐다. 하지만 이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하는 곳은 역시 뇌다.

몸속에 아편성 물질이 점차 많이 밝혀지자 중추신경계에서 통증이 어떤 회로를 거쳐 전달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그결과 아편성 물질과 유사한 화합물을 만들어 중독성 등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인간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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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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