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맺는 식물, 즉 벼는 아열대성 식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오늘날 인도나 태국 등 남아시아에는 여기저기 야생벼가 자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벼의 재배는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야생벼가 발견되는 남아시아가 기원일 것이다. 실제로 인도의 콜디와와 인도네시아의 셀레베스 등지에서 사람이 수확한 것으로 보이는 탄화된 쌀이 발견됐고 6천년-8천5백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뒤 정밀한 연대측정을 통해 5천년 이상으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와중에 새로운 기원지로 중국 양쯔강 유역이 부상했다. 197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행해진 발굴 결과 최소한 8천년 전에 이 지역에서 벼농사가 행해졌음이 확인됐다. 그뒤 중국 후난성 동굴유적에서 1만1천년전의 볍씨가 발견됐다.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브루스 스미스도 1997년 미국고고학회 도서상을 수상한 그의 저서 ‘농업의 출현’(The Emergence of Agriculture)에서 양쯔강 기원설을 택하고 있다. 한동안 벼농사 종주국의 자리를 즐기고 있던 중국인들이 최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후난성의 볍씨보다 4천년이나 더 오래된 볍씨가 한반도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1997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의 후기구석기 유적을 발굴하던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융조 교수팀은 토탄층에 박혀있는 탄화된 볍씨 12개를 찾아냈다. 발굴이 끝나고 연대측정 전문기관인 미국의 지오크론랩에 측정을 의뢰했던 이 교수는 놀라운 결과를 받았다. 이들이 1만5천여년전에 묻힌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 결과를 발표했으나 뜻밖의 반응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국내외 학자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이 결과를 이 교수의 조작극으로 매도했기 때문이다. “정말 기억하기도 싫습니다. 발굴지에서 조선시대 백자조각이 나왔다거나 심지어 비닐이 섞여있었다고 수군거리더군요.” 좀더 구체적인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이 교수는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손을 내젓는다. 이 교수의 성과는 2000년 10월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열린 제4회 국제벼유전학술회의에서 공인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28개국 5백여명의 학자들 중 몇몇, 특히 중국과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여전히 의심의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수팀은 2001년 2차 발굴을 통해 47톨의 볍씨를 찾아내고 출토지를 확인했으며, 지오크론랩과 서울대에 보내 동일한 연대를 얻었다. 이 교수는 자료를 좀더 보강해 지난해 12월 소로리볍씨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올해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회 세계고고학대회에서 발표했다. 전세계 고고학자 2천여명이 모인 이 자리에 참석했던 영국 BBC 뉴스의 과학편집자인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박사는 지난 10월 21일 이 교수의 연구결과를 뉴스로 소개했다.
“한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르몽드를 비롯해 전세계 언론들이 취재를 요청하고 저희 연구결과를 소개하더군요.” 이 교수는 무엇보다도 이제 더이상 주위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느끼지 않아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벼농사는 한반도에서 시작됐을까? 이 교수는 “가장 오래된 볍씨가 나왔다고 해서 한반도가 벼농사의 기원지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며 “DNA분석 결과를 봐도 발굴된 볍씨는 현재의 재배벼와 유전적 유사성이 39.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다만 야생이 아닌 가장 오래된 볍씨인 것만은 확실하므로 벼의 기원이나 진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발굴이 이뤄져야 벼의 재배과정을 완전히 밝혀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벼농사의 기원에 대한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우리민족이 아주 오래 전부터 쌀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