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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이비 과학과 음모론이 어울린 컬트 픽션

70년대와 80년대의 스타트렉에 열광한 '트렉키'를 가지고 있다면, 90년대는 'X파일'에 혼을 빼앗긴 '엑파요원'이 있다. 괴기스러운 소재와 유사과학이 결합된 이 프로그램에 대해 한쪽에서는 '세기말의 징조'를 말하고, 또 한쪽에서는 현대과학에 대한 조롱이라고 말한다. 시리즈가 만들어진지 5년 째, 여전히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연구대상감이다.

멀더와 스컬리라는 남녀 콤비가 엮어내는 1시간짜리 안방 영화 ‘X파일’이 전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미국 폭스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제작해 지난 93년 9월 처음 전파를 탄 이 프로그램은 현재 전세계 50개국 이상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숱한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이전까지 무명배우에 불과했던 다나 스컬리역의 질리언 앤더슨과 폭스 멀더역의 데이비드 듀코브니는 이 시리즈물 하나로 일약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관련 홈페이지가 만들어졌고, X파일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X파일과 발음이 비슷한 이름의 동호회(X-PHILE : X파일 사랑모임. 우리나라는 KBS에서 ‘FBI비망록 X파일’이란 이름으로 방영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 열광한 팬들의 PC통신 동호회에서는 스스로를 ‘엑파요원’이라 부른다)를 만들어 각종 정보를 주고 받고 있다. 폭스사는 TV에서의 인기 여세를 몰아 조만간 영화로 제작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폭스 멀더라는 한 FBI요원이 있다. 어린 시절 여동생 사만다가 외계인에게 납치되고 아버지마저 살해된 뒤, 그는 외계인을 비롯한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게 된다. 그를 불신하는 FBI는 철저한 객관주의자 다나 스컬리를 파트너로 보내 멀더를 견제하고 감시하도록 한다. 그러나 FBI는 멀더가 믿고 있는 것처럼 과학적으로 설명해낼 수 없는 초자연 존재나 인물 등의 해괴한 사건들을 모아놓은 비밀 기록 ‘X파일’을 숨겨놓고 있다. 그리고 초자연적 현상과 요상한 생물이 등장하는 무수한 사건이 벌어진다. 외계인, 복제인간, 유령, 흡혈귀, 반인반수, 연쇄살인범, 주술사, 투명인간….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4차에 걸쳐 1백여편이 제작·방송됐으며, 폭스사는 다시 5차 시리즈 제작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그램의 단순한 플롯을 염두에 둔다면 여기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낸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현란한 과학기술이 구석구석에서 힘을 발휘하는 대명천지 세상에 과연 불가사의한 현상이 이토록 많다는 말인가.
 

드라마는 객관적 이성을 신봉하는 스컬리가 점점 멀더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포영화, 컬트영화, SF영화

상당수 매체들은 이 프로그램의 내용과 인기 원인을 추적한 특집을 다루어 ‘X파일 신드롬’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시도했다. 대개 문명사적 접근 방법을 취한 이들 해석의 공통된 지적은, 이 프로그램의 성공이 이른바 ‘세기말적 현상’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천년주기가 끝나는 2000년을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세계 곳곳의 요동들, 이를 테면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촉발한 아노미 상태를 채 극복하지 못한 인류에게 극심한 환경 오염과 에이즈의 창궐이라는 공동 파멸의 문제가 코앞의 현안으로 닥쳐 있고, 또 지구 저쪽에서는 대량의 인종 학살과 집단 신들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지금의 상황이 19세기 말의 세기말 시대와 상당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기말의 한 특징은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가장 뚜렷하게 표현해주는 대중문화 장르에서 공포물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는 것. 결국 현재의 X파일은 19세기 말에 선보인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이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드라큘라’ 등과 같은 경우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다소 ‘고답적’ 해석과 별개로,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모습은 과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제 모습을 알 수 있다. X파일이 괴기스러움이 가득 찬 공포영화이자 열광자를 양산하는 컬트영화이며, 동시에 SF영화임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X파일의 각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상당한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에 깔고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음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같은 경향은 초반에 제작된 작품에 비해 나중 제작된 작품에서 뚜렷하게 보여진다. 제작자의 상상력에 의지해 만들어진 초반 작품과 달리, 이 프로그램이 예상치 못한 관심을 모으면서 좀더 정교한 전개를 위해 과학 자문 그룹의 도움을 받은 결과다.

특히 여주인공 스컬리가 각종 사건에 임하면서 보여주는 놀라운 분석력과 해박한 과학지식은 그가 물리학과 법의학을 전공한 것으로 설정됐음을 고려한다 해도 확실히 비범한 면이 있다. 그는 또 극중에서 초자연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과학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시리즈물이 비과학적 소재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은 태생적 한계로 지적된다. 이는 예를 들어 영화 ‘아폴로 13호’에서 달에 성조기가 펄럭이는 장면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SF영상물에서 흔히 발견되는 ‘옥의 티’, 즉 과학적 오류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물론 X파일은 전적으로 픽션이다. 제작자는 이 영화의 소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고 보고된 불가사의 현상에 기초한다고 밝히고 있다. 비록 나레이션을 통해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진짜 X파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FBI에는 X파일이란 자체가 없으며 이를 담당하는 부서도 없다고 하니, 제목부터 허구일 따름이다.

과학계가 지적하는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폭발적인 인기와 그에 따른 영향력에서 출발한다. 베스트셀러가 항상 양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각 에피소드마다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며 스스로를 SF물로 격상시킨 이 영상물의 대중적 성공은, 오히려 오도된 지식과 신념의 전파로 미처 예견하지 못한 해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방송사가 개최한 쇼에 출연한 자석처럼 쇠가 붙는 몸을 지닌 가족들. 대부분의 TV프로그램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기 보다는 현상만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성주의의 퇴보

과학자들은 텔레비전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미디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이즈음의 X파일 신드롬은 비판적 사고와 이성주의를 퇴보시키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X파일의 각 에피소드 소재로 등장하는 불가사이한 현상들을 믿을만한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며 그 확실성을 의심하는 ‘회의론자’(skeptics)들은 작년 6월 미국 버팔로 대학에서 제 1회 ‘세계 회의론자 대회’를 가졌다. 이 오찬 모임에서 학자들은 연사로 초대된 X파일 제작자 크리스 카터를 앞에 놓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회의론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크리스 카터는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미국을 움직이는 25인’에 선정될 만큼 대중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만드는 X파일이 초자연현상을 다룬 프로그램이 텔레비전 매체에서 붐을 이루는데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프로그램 이후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자주 방송됐다. 이들 중 일부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역시 폭스 텔레비전에서 제작해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로스웰 외계인 검시사건’ 프로그램이나, 인류가 공룡과 함께 공존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담은 ‘불가사의한 인류의 기원’이란 NBC의 다큐멘터리가 대표적인 경우. ABC에서는 외계인과 조우한 적이 있다는 사람들을 모아 이들이 디즈니월드를 찾아가 만남을 시도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는 속성상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치부되는 드라마와 달리, 영상으로 사실성을 뒷받침하기 때문에 훨씬 강한 인상을 남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드라마 ‘M’이나 ‘거미’가 황당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끈 것이나, 소설 ‘퇴마록’, 영화 ‘은행나무 침대’, 드라마 ‘8월의 신부’ 등 일련의 대중 문화 작품을 통해 환생 신드롬이 닥친 것도 X파일의 성공과 무관치 않다. 최근 2-3년간 여름철을 겨냥해 제작한 납량특집 드라마 거의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X파일을 비롯한 이들 프로그램들은 묘하게도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정부와 주류의 과학자들이 진실을 묵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그것이다.

미국 대통령 아무개가 외계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거나 베트남전이나 걸프전과 같은 군사작전에서 군인들에게 정체불명의 주사약이 투여됐다는 식의 출처가 의심스러운 그럴싸한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실은 저기 바깥에 있으니(The Truth is Out There :X파일 제작진 소개 화면 끝에 나오는 자막) 아무도 믿지말라(Trust No 1: 멀더의 컴퓨터 패스워드)는 X파일의 ‘격언’은 바로 이같은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X파일의 이야기 구성에서 긴장감을 제공하는 한 줄기도 다름 아닌 음모론이다. 멀더와 스컬리의 상관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두사람의 집요한 X파일 사건 추적을 계속 허용할 것인가의 여부에 따라 두갈래로 나뉘어 파워게임을 펼친다. FBI라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에서 일어나는 이런 류의 확인 불가능한 싸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진짜 과학’ 과의 차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평균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하루 4시간 이상이다. 우리나라도 2시간 이상이나 된다. 과학을 이해하는데 학교보다 텔레비전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정보와 오락의 경계가 불투명해진 요즘의 현실에서 X파일류의 이야기가 별다른 여과없이 전파를 타고 전달될 때의 폐해는 자못 심각하다.

영상 미디어들이 이렇듯 ‘사이비 과학’을 전달하는데 혈안이 돼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정통 과학과 비판적 사고에 대해서는 혼동된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실제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윌리엄 데반스가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을 조사한 결과 과학자들은 뭔가 위험스러운 인물이며, 특히 불가사의한 것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존재로 비쳐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런 류의 주제를 놓고 벌어지는 토크쇼를 살펴보면 ‘확신자’들이 주요 초청자로 등장해 자신의 주장을 장시간 늘어놓는데 비해, 이의를 제기하는 ‘회의론자’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곁다리로 치부된다.

더욱이 이러한 프로그램은 고학력자와 사회적으로 안정된 층에서 수상쩍은 초자연 현상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놓았다. 예전에는 미신으로 치부되는 현상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으로 하부를 차지하고 있는 계층에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요즘은 오히려 그와 반대의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천국의 문’ 사건의 경우, 헤일-밥 혜성 뒤에 도래하는 외계인의 구원을 믿고 집단 자살한 이 사교집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인터넷과 컴퓨터 전문가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심취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의 신빙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달리 다양하게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란 종합적 식견을 가진 그룹이라기 보다는 특정분야에 집착하는 편집광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프로그램이 계속 제작되는 이유는 신념자들이 양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제작에 간접적인, 그러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광고주들이 원하는 것은 구매력을 갖춘 시청자가 좋아하는 ‘상품’(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광고계에서는 최근 가장 큰 구매력을 지닌 집단인 신세대를 겨냥하라는 의미인 “X세대는 X파일을 좋아한다”는 말이 퍼져 있을 정도다.

이같은 흐름을 바로잡고자 작년 미국에서는 과학계를 비롯한 범 아카데미 영역이 참가해 ‘미디어 성실 위원회’가 조직됐다. 이 위원회는 미디어의 (광고주로부터의) 독립과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과학적 근거 없는 무책임한 이야기에 즉각 대응하는 한편, 당면의 과학이 정(+)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8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레온 레더먼은 과학드라마 시리즈를 만들도록 압력을 행사했고, 또 올봄 작고한 칼 세이건도 생전에 ‘진짜 과학’으로 초자연현상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의 실체를 폭로할 수 있는 논픽션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도저히 현대과학의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 현상이 실재하며, 이들을 규명해내려는 ‘의미 있는’ 노력도 적지 않다. ‘기존의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던 다양한 정신현상과 자연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창출’을 위해 결성된 우리나라의 ‘한국정신과학학회’는 그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단편적 과학지식 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같은 분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연구자들의 순수한 의도를 호도하며, 날조된 유사 현상을 양산해낼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근대과학의 대표적 산물인 사진기술이 탄생한 뒤 유령이나 영혼을 찍었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음은, 이같은 우려가 단지 공상 차원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 회의론자 회의에서 학자들이 크리스 카터를 공격했던 것처럼 텔레비전에 진짜 과학을 요구하는 것은 과연 ‘셰익스피어에게서 역사를 요구’하는 것처럼 ‘번지수’를 잘못찾은 것일까. 이 프로그램은 과학계에 또다른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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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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