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현상의 대부분은 카오스다. 지금까지 알아온 물리법칙이 잘못된 것일까. 또 카오스는 규칙적인 운동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연계에는 규칙운동의 예가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진동운동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줄에 매달린 추를 당겼다가 놓으면 주기적으로 왔다갔다 한다. 또 스프링에 매달린 물체 역시 당겼다가 놓으면 주기적으로 진동한다. 반면 자연계에서는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 운동들도 눈에 띈다. 기상변화와 지진활동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자연현상들이 규칙운동에 비해 예측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기상변화를 일으키는 대기운동이나 지진을 일으키는 지각운동의 경우, 언뜻보기에 운동의 원인인 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운동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대가나 지각의 규모가 너무 크고 여러가지 대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분석이 어렵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라면 충분한 자료가 축적될 경우 현대과학의 발전속도로 보아 언젠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낙관적인 견해는 20세기 후반 카오스의 발견으로 여지없이 깨졌다. 왜냐하면 카오스라고 부르는 대단히 불규칙적인 운동이 대기나 지각운동과 달리 매우 단순하면서 운동의 원인인 힘이 분명하게 알려져 있는 자연계에서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카오스가 가진 불규칙한 운동에 대한 예측은 단순히 대상에 대한 자료를 더 모으면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카오스에 숨겨진 질서들은 불규칙한 여러 현상들로부터 우리가 몰랐던 자연의 중요한 특성을 알게 해 주었다.
도처에 숨어있는 카오스
카오스를 관찰할 수 있는 간단한 자연계로는 진자를 들수 있다. 진자란 (그림1)과 같이 줄에 매달린 추를 말한다. 진자를 당겼다가 놓으면 잘 알다시피 주기운동을한다. 진자는 주기만큼 시간이 지나면 항상 동일한 위치를 동일한 속도로 지난다. 이 주기운동은 진자에 작용하는 지구중력에 의해 생기며, 주기는 오직 줄의 길이에 의해 결정된다. 줄이 길어지면 주기 역시 길어진다.
물리학에서는 이 주기를 진자운동의 고유주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진자운동에는 중력 이외에도 작지만 공기저항력이 작용한다. 이 때문에 진자의 진폭은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다가 마침내 정지하게 된다.
진자운동은 간단하기 때문에 뉴턴의 운동법칙을 사용해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진자운동과 유사한 운동으로 그네에 탄 사람의 운동을 생각할 수 있다. 그네를 밀었다가 놓으면 몇번 왕복하다가 이내 정지하고 만다. 그네가 계속 왕복주기 운동을 하려면 그네를 계속해서 밀어줘야 한다.
그네의 고유주기와 비슷한 주기로 힘을 가하면 그네가 가장 높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만약 그네의 고유주기와 다른 주기로 일정한 힘을 가한다면 그네는 어떤 운동을 할까. 힘의 크기를 증가시킬 때 그네는 여전히 주기운동을 할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진자를 사용한 실험을 다시 생각해 보자.
진자에 주기적인 힘을 가하기 위해 (그림 1)에서 줄이 매달린 천장을 일정한 주기로 수평으로 진동시킨다고 하자. 진동폭을 크게 할수록 진자에 가해지는 주기적인 힘의 크기가 커진다. 또 가하는 힘의 주기를 진자의 고유주기와는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 진자에 작용하는 힘은 중력, 공기저항력, 그리고 외부에서 가한 주기적인 힘뿐으로 이러한 운동은 뉴턴운동법칙을 사용하면 쉽게 분석할 수 있다. 요즘은 컴퓨터를 이용해 진자운동을 스크린에 (그림2)와 같이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힘의 크기를 변화시키면서 관찰해보면 진자운동의 다양함과 복잡함에 놀라게 된다. 주기적인 힘이 없을때는 당연히 정지한다. 힘이 아주 크지 않으면 주기운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힘이 커지면 불규칙한 카오스운동이 나타난다. 또 힘을 증가시키면 오히려 주기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카오스운동의 특징은 주기적인 패턴이 관측되지 않고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며 복잡성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진자운동으로부터 우리는 카오스가 주기적인 힘을 받는 단순한 자연계에서 생길 수 있다는 것과, 힘의 크기에 따라 카오스와 주기운동이 다양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카오스는 주기운동과 동일한 운동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카오스는 결정론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
진자는 주기운동이든 카오스운동이든 주어진 운동법칙에 따라 다음 시간의 속도와 위치가 결정된다. 카오스도 뉴턴의 운동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카오스 속에서 카오스를 일으키는 질서나 법칙을 찾을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질서로부터 카오스적인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카오스를 일으키는 운동법칙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로렌츠의 기상모델에서 발견된 나비효과(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때문에 카오스의 장기적인 예측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카오스 상태에서는 초기조건의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나게 증폭돼 나중에는 거대한 차이를 만들어내게 된다. 대신 카오스연구에서 얻은 질서나 운동법칙은 단기적인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이용된다.
처음엔 주기운동 나중엔 카오스
진자와는 달리 복잡한 자연계에서도 진자와 유사한 운동변화와 카오스를 관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물과 같은 유체를 들 수 있다. 물은 수없이 많은 물분자들로 이뤄진 복잡하나 자연계다. 이 물을 그릇에 넣고 아래에서 가열하면 처음에는 대류현상이 일어난다.
대류현상이란 아래의 더운물이 위로 이동하고 대신 위의 찬물이 아래로 이동하는 물리적인 현상이다. 대류현상은 진자운동처럼 주기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물분자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이동한다. 시간이 지나 물이 더 가열되면 대류운동이 격렬해지고 마침내 물의 흐름이 제멋대로인 난류가 생겨난다. 난류는 유체에서의 카오스운동을 말한다.
(그림3)과 같이 물을 두 원통사이에 채우고 안쪽의 원통을 고속으로 회전시키면 또 다른 형태의 난류가 생겨난다. 회전속도가 작을때는 유체가 주기운동을 하므로 규칙적인 패턴이 나타나지만 속도가 커지면 난류가 생겨 공간적인 패턴이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담배연기 실험에서도 볼수 있다(그림4). 담배연기는 위로 올라가면서 주기운동의 나선형 패턴이 깨어지고 난류인 카오스에 이르는 것을 보여준다. 뜨거운 물에 커피와 크림을 탈 때 일어나는 격력한 섞임도 주위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카오스 현상이다.
이상의 유체운동을 살펴보면 동일한 원인에 의해 주기운동과 카오스가 생김을 알 수 있다. 또 운동의 격렬함에 따라 주기운동으로부터 카오스운동으로 진전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모든 자연계가 카오스를 보이지는 않는다. 카오스가 생기려면 자연계는 비선형성을 가져야 한다. 진자의 비선형성은 중력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유체의 비선형성은 압력차와 점성 때문에 생겨난다.
이러한 자연게의 카오스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간단하고 결정론을 따르는 법칙들이, 반드시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하고 예측이 가능한 현상만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카오스가 있음으로해서 자연현상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