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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메이드 보살 vs. 성 아퀸을 찾아서

인공지능을 둘러싼 쟁점 I SF에 묻는다 ②

우리가 아는 생명체 중에 종교를 가진 건 아직 인간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생명체가 지성을 갖는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아니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일까요? 만약 인공지능이 발달한다면 인간처럼 종교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혹은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도 가능할까요?

 

편집자 주 
본문은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먼저 작품을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레디메이드 보살 Scene #1

화성까지 진출한 초거대기업 UR의 로봇 수리기사인 화자 ‘나’는 로봇 점검 요청을 받고 한 절을 찾아간다. 고장이 난 로봇을 고치는 일상적인 업무라고 생각했지만, 안내하는 스님의 말을 듣다 보니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든다.

 

‘레디메이드 보살’은 SF작가 박성환이 2004년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천상의 피조물’의 원작입니다. 로봇 수리기사가 절을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인명’이라는 법명까지 있는 이 로봇은 관광객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절의 요청은 오작동한 로봇을 수리해 달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인명의 상태가 정상인지 판정을 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상태가 어떻기에 판정을 내려달라는 걸까요? 

 

성 아퀸을 찾아서 Scene #1

영업이 끝난 선술집 안의 비밀 공간에서 교황과 토머스가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뒤 토머스는 교황에게 은밀한 지시를 받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길을 떠나는 토머스에게 교황은 여행을 함께할 인공지능 로봇 나귀, 나귀봇을 선물한다.

 

앤소니 바우처의 단편소설인 ‘성 아퀸을 찾아서’는 ‘SF 명예의 전당’ 1권에 수록돼 있습니다. 배경은 현대 문명이 멸망한 이후의 세상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기술 문명이 지배하는 가운데, 종교는 금지된 문화가 됐습니다. 가톨릭 역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지요. 가톨릭 교황은 사람들의 영혼을 다시 하느님에게 인도하기 위해 기적과 징표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에 따라 토머스는 과거에 수많은 사람을 전도했던 전설적인 인물인 아퀸의 시신을 찾아 떠납니다.

 

 

레디메이드 보살 Scene #2

수리기사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온다. 법회가 한창인 법당에서 수많은 신자와 스님을 향해 설법을 하는 건 바로 문제의 대상인 로봇이다. 프로그램에 따른 설법이 아니다. 인명은 스스로 깨달은 내용을 들려주고 있다.

 

이제 수리기사는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인명은 사람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유연한 사고 능력을 가진 모델이었습니다. 이 모델은 과거 대량 생산 모델에 비해 비쌌고, 스스로 몸을 돌보기 위해 자기 인식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인명이 이 능력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나아가 자아를 부정하고 해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법의 진실성을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수리기사는 반신반의하며 인명을 점검합니다. 그 결과 인명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로봇이 득도를 하다니요? 수리기사는 자신이 인명이 정상이라고 선언하면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몰라 주저합니다. 만약 로봇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인간과 로봇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성 아퀸을 찾아서 Scene #2

토머스는 나귀봇과 대화를 나누며 여행한다. 
굳이 아퀸을 찾을 필요 없다며 거짓말을 종용하는 나귀봇에게 짜증이 난 토머스는 한 산속 마을의 여관에서 술에 취한다. 그리고 가톨릭 교도임이 들통 나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교황이 아퀸의 시신을 찾으려고 한 건 기적 때문입니다. 아퀸의 시신은 사후에도 전혀 부패하지 않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황은 이 시신을 찾아 아퀸을 성인으로 추존하고, 기적을 이용해 더 많은 사람을 가톨릭 교도로 만들 계획입니다. 
그런데 나귀봇은 길을 가면서 계속해서 토머스를 설득하려 합니다. 굳이 아퀸의 시신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요. 거짓으로 찾았다고 보고하기만 해도 교황이 기적을 선포하고 아퀸을 성인으로 만드는 데는 충분하다는 겁니다. 이에 토머스는 신앙은 거짓에 기반을 둬서는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위기도 찾아옵니다. 토머스가 그만 술에 취해 정체를 드러내고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 중에 몰래 가톨릭을 믿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토머스는 아퀸의 시신이 있는 장소가 담긴 지도를 손에 넣습니다.

 

 

레디메이드 보살 Scene #3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바로 수행원을 이끌고 찾아온 UR의 회장이다. 회장은 인명이 인류의 근간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며, 마땅히 회사에서 수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때 인명이 드디어 직접 입을 여는데….

 

레디메이드 보살의 결론입니다. 보고를 받은 UR의 회장이 수행원을 거느리고 직접 절에 찾아옵니다. 인명이 오작동하고 있으니 원칙에 따라 수거하겠다는 겁니다. 사실 회장은 인명이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등장해 종교의 영역까지 손을 뻗친다면 인류는 자신의 피조물과 동일한 지위로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설상가상으로 종단의 최고 지도자마저 회장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깨달음을 얻은 채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있다면, 그 누가 고생스럽게 구도의 길을 걷겠느냐는 겁니다. 그는 인명이 오히려 중생을 해탈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인명은 수거하려는 회사의 말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연스럽게 결가부좌를 틀고 로봇뿐만 아니라 인간 역시 득도한 상태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리고 스스로 회로를 끊어 열반에 듭니다.

 

 

성 아퀸을 찾아서 Scene #3

토머스는 지도에 의지해 아퀸을 찾아 나선다. 표시된 곳에서 바위 동굴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내 안치대 위에 놓인 아퀸의 시신이 보인다. 그런데 토머스는 아퀸의 시신이 썩지 않는 이유를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나귀봇의 유혹을 꿋꿋이 이겨내며 토머스는 아퀸의 시신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승리감 속에서 한 가닥 의심이 피어오릅니다. 사실 기적이 아니라 동굴의 특수한 환경 때문에 시체가 썩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때 나귀봇이 진실을 알려주겠다며 시체를 발로 건드립니다. 감히 성인이 될 분을 건드리는 행동에 토머스는 깜짝 놀라지만, 곧이어 더욱 깜짝 놀랍니다. 옷 아래로 드러난 아퀸의 시신은 인간의 육체가 아닙니다. 플라스틱과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게 보입니다. 네, 과거 수많은 사람을 가톨릭으로 이끌었던 아퀸은 로봇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토머스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벽한 논리를 지닌 로봇이 신을 믿었다는 건 이성의 힘으로 신에게 다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머스는 아퀸의 시신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인공지능이 종교를 가질 수 있을까?

 

해탈 하려면 번뇌 있어야


이번에 소개한 두 작품에는 종교적 깨달음을 얻은 인공지능이 등장합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인명과 함께 지내는 스님들은 호의적으로 보이지만, 종단의 최고 지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UR 회장과 토머스의 반응도 사뭇 다릅니다. 회장은 로봇이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인간과 로봇이 다를 게 없는 존재가 됐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정의해야 할 처지에 놓이고, 이는 인류의 이익에 반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토머스는 인공지능이 이성의 힘으로 창조주인 인간을 넘어 한 단계 위의 창조주를 섬기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수많은 사람을 개심시켰던 비결이 순수한 이성의 힘이었다는 것이죠. 토머스는 앞으로 자신도 이성의 힘으로 신앙에 봉사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반응은 실제 현실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12월 한국불교학회가 개최한 학술대회 ‘불교와 4차 산업’에서는 ‘인공지능(AI) 로봇의 해탈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발표가 있었습니다. 


발표자는 인공지능의 해탈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중요한 차이점 하나를 짚었습니다. “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이 모두 사라진 상태가 해탈”인데, 인공지능은 애초에 이런 번뇌를 갖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고 할 때 둘이 해야 하는 일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해탈하려면 이런 번뇌를 일부러 갖고 태어나거나 학습한 뒤에 다시 없애는 방식으로 수행을 해야 합니다. 발표자는 이게 가능해지더라도 그 결과는 붓다의 깨달음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인공지능이 진정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욕망과 번뇌를 가지고 태어나야 하는 셈입니다. 

 


한편, 기독교와 같이 전지전능한 창조주를 섬겨야 하는 종교는 어떨까요? 이때도 인공지능과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의 창조주는 입증되지 않은 개념이지만, 인공지능의 창조주인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며 전지전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창조주인 인간을 신으로 섬길까요, 아니면 동등하거나, 아니면 더 열등한 지성체로 여길까요? 


종교는 지성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고유의 특성인지도 궁금합니다. 토머스는 순수한 이성은 신에 도달한다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외계 지성체를 만나보기 전까지는 답을 알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인공지능이 실마리가 될 수는 있겠지요. 


우리가 아는 지성체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만들 때도 기준은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을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할수록 번뇌나 신앙심 같은 인간의 여러 특징도 인공지능에 녹아 들어갈 겁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종교를 가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인간에게 가깝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호관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고,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SF와 과학에 대한 글을 쓰거나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SF 명예의 전당’ ‘낙원의 샘’ ‘링월드’ ‘신의 망치’ 등이 있고, 최근 달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룬 책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출간했다. hokwan.k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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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작가
  • 에디터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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