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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가시고기의 얌체 번식전략

요지경 동물세상

동물세계에도 사기와 속임수가 있다. 큰가시고기 수컷 중에는 다른 수컷의 영역에 암컷으로 가장해 침입, 자신의 씨를 뿌리는 놈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밑드리벌레 수컷중에는 암컷으로 가장해 혼인선물을 강탈하는 놈들도 있다.

사기란 높은 지능을 가진 인간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생물들에서도 사기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쉬운 예로 사나운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색과 위장도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속임수이며 사기이다.

자갈 속에 숨겨져 있는 메추리알이나 부러진 가지 위에 앉아 있는 나방, 나뭇잎처럼 보이는 사마귀 등 주변 환경과 어울려 자신을 숨기는 생물의 위장술은 경탄할 만하다.

이런 종류의 보호색이나 위장이 다른 종을 속이기 위한 방책이라면 이와는 달리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생물을 속이는 보다 고차원적인 속임수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중 하나가 자신의 성과는 다른 성을 흉내냄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경우다.

사람의 경우에도 동성 연애자들이 흔히 타성(他性) 전형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경우는 동성애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유전자를 보다 많이 퍼뜨리기 위한 일종의 교미 전략인 것이다. 다른 성으로 위장하는 것이 생식에 어떤 이점이 있을까.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암컷과 구분되지 않는 모습과 행동

생물마다 다양한 교미 전략이 존재한다. 공작새는 부채꼴 꼬리를 활짝 펼쳐서 아름다운 눈깔 무늬를 과시한다. 참새 만한 크기의 서아프리카산 천인조는 자기 몸길이의 몇배나 되는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긴 플랭카드를 달고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긴 꼬리로 암컷을 유혹한다.

바우어새는 집앞에 암컷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색깔의 물건을 쌓아 놓고서 암컷을 유혹한다. 또 아프리카산 열대어 몰리는 질투심 강한 암컷의 성향을 자극하기 위하며 심지어 다른 종의 암컷과 교제하기도 한다.

이런 전략은 모두 생식에 있어서 가장 성공적인 방책을 각 생물들이 나름대로 고안한 것이다. 큰가시고기(Gasterosteus aculeatus) 수컷 역시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암컷을 유혹하며 생식하는 방책을 가지고 있다. 이 큰가시고기는 우리나라에도 서해의 남부, 남해, 동해로 흐르는 각 하천에 분포하며 관상어로도 사랑을 받는 그런 물고기이다.

큰가시고기의 경우 수컷은 항상 세력권을 설정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우아한 교미춤을 추며 암컷이 알을 낳도록 자신이 미리 만들어 놓은 보금자리인 '사랑의 터널'로 유혹한다. 사랑의 터널 속에서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매정하게 그 암컷을 쫓아낸 뒤 방정하여 알을 수정시킨다. 포식자로부터 알을 지키고 신선한 공기를 포함하고 있는 물을 뿜어주면서 알을 보는 일도 수컷의 몫이다.

물론 이런 교미 과정에서 수컷의 생식에 있어서의 성공은 항상 생물의 보편적 진리인 암컷의 배우자 선택에 크게 의지한다. 암컷은 혼인색의 선명도나 몸의 크기, 적극성의 정도, 수컷이 이미 가지고 있는 알의 수 정도를 참작하여 수컷을 선택한다. 산란기의 수컷은 눈이 파랗고 등은 푸른색을 띠며 광택이 있고 목에서 배에 이르기까지는 선명한 홍색이라고 한다.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할 때 수컷이 이미 가지고 있는 알의 수를 헤아려 보고 그 알의 수가 많은 놈을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수컷이 보금자리에 이미 많은 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암컷들에게 선택된 훌륭한 수컷임을 입증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더 많은 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끼들을 잘 돌볼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많은 알을 가진 수컷일수록 암컷들이 매혹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런 사실 때문에 수컷은 다른 수컷의 알을 훔쳐오거나, 완력으로 세력권을 가진 다른 수컷을 쫓아내고 알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이렇게 암컷을 매혹시키려고 만반의 준비를 한 수컷에게는 더 많은 암컷들이 찾아들고 그렇지 않은 수컷은 암컷을 매혹시킬 확률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기있는 수컷이면 암컷 한마리가 수컷의 집에서 알을 낳는 동안 또 다른 암컷이 그의 영역 근처에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면 수컷에게는 한번의 방정으로 두배로 생식적 성공을 증가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어느 누가 그런 기회를 놓치 겠는가. 큰가시고기 수컷 역시 한번에 두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재빨리 새로운 암컷에게 접근하여 그 암컷 역시 사랑의 터널로 초대한다. 실제로 수컷은 두배의 성공을 거두게 될까?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두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다 놓쳐 버린다는 말이 있듯 두배의 성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망하는 경우가 가끔 일어난다. 즉 두번째 새로 나타난 암컷이 실제로는 암컷이 아니라 암컷처럼 위장한 수컷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가짜암컷'은 처음의 암컷이 알을 낳고 나가자마자 보금자리로 들어가서 한 무더기의 알을 낳는 대신 처음의 암컷이 낳은 알에 주인 수컷 몰래 방정하여 전부 수정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인 수컷은 보금자리를 꾸미느라, 도도한 암컷을 보금자리까지 유혹해 오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도 자신이 목적했던 2배의 생식이득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남의 수정란을 자기 수정란인 것처럼 새끼들이 알에서 완전히 발생하여 나올 때까지 돌보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

물론 당사자는 전혀 알 길이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될까! 반면 알을 몰래 수정시킨 수컷은 큰 이득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서식하는 큰가시고기


동물세계판 사기술

이런 사기가 어떻게 성공할까. 물고기 대부분에서 색깔은 각 생물에 의하여 조절된다. 가령 수컷의 밝은 혼인색은 위협에 대응하여 암컷들이 띠고 있는 비혼인색으로 빠르게 변할 수 있다. 이는 위장에 유리하다. 그러므로 사기꾼은 성숙한 암컷의 단조로운 색깔을 띠고 인기 있는 수컷의 세력권 주위를 멤돌다가 암컷이 도착하는 시간과 적당히 맞추어서 그 세력권 안에 들어간다.

물론 이때 행동은 암컷의 행동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심지어 알을 수정시키기 위해 방정할 때조차 암컷이 알을 낳는 포즈를 흉내내면서 교묘히 수정을 시킨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놈이 수컷이라는 사실을, 알을 낳는게 아니라 방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챌 수 없다고 한다.

처음 이런 행동이 발견된 곳은 수족관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처음에는 수족관이라는 밀집된 환경에서 비롯된 기묘한 행동으로 여겼고, 동성애로 잘못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자연 상태의 여러 물고기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행위를 '두더지방정'(Creeping, sneaking) 이라는 표현으로 부르고 있다.

이런 '알도둑' 수컷은 세력권을 설정하지 않으며 다른 수컷의 세력권 주위를 암컷으로 위장할 기회를 노리면서 살살 헤엄쳐 다닌다. 물론 이런 사기는 제한적이다. 사기를 치는 놈이 적으면 아주 성공적이지만 많으면 세력권을 가진 순진한 수컷을 만나기가 어려워 성공률이 떨어지게 된다.

사기꾼이 많은 세상에서는 다들 조심하기 때문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지만 대부분이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인 세상에서는 사기꾼이 물을 만난 고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수정에 성공한 수컷은 교미를 하기 위해 집을 짓거나 교미춤을 추며 암컷을 유혹할 필요가 없으며 알에서 새끼들이 깨어나올 때까지 돌보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이득이 있는데 다른 성으로 위장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족제비는 꼬리를 보고 잡는다'고 무슨 일이나 목적이 있고 노리는 바가 있다. 이들이 다른 성으로 위장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률은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얼마 전 한 논문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큰가시고기 새끼들의 약 3.5% 정도가 이런 사기꾼에 의해서 수정된 경우라고 한다.

철저히 보호하고 두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치라면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따라서 세력권을 형성하는 수컷도 이런 위장된 암컷을 식별하기 위한 방책을 나름대로 고안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식별하는지, 혹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아직 어려운 것 같다.

코스타리카산 반날개(Leistotropus versicolor)도 생식을 위해 다른 성으로 위장하는 좋은 예이다. 암놈이 파리를 먹기 위해 포유류의 똥이나 죽은 시체가 있는 장소로 이끌리기 때문에 반날개 수컷들은 좋은 교미장소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인다.

이때 덩치가 작은 수컷은 덩치가 큰 수컷과 싸워서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묘안을 짜내야 한다. 그런 묘안 중 하나가 힘센 수컷이 접근할 때 암컷처럼 돌아서서 배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힘센 수컷이 약한 수컷을 암컷으로 착각하며 교미를 시도한다. 그러면 사기치는 수컷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힘센 수컷이 올라타게 하는 대신 그 지역 둘레를 계속하여 서서히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렇게 힘센 수컷을 피하여 계속 움직여 다니다 보면 속임수를 쓰는 수컷도 우연히 암컷을 만나 구애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말 그대로 힘만 센 얼뜨기 수컷의 코앞에서 교미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먹이 얻기 위해 암컷 가장

자신의 성을 다른 성으로 위장하는 사기는 생식적 성공을 위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세상에도 혼인을 빙자하여 돈을 강탈하는 예가 있지만, 곤충 세계에도 이처럼 생식적 속임수를 행하는 예가 있다. 혼인선물을 강탈하는 밑드리벌레가 좋은 예이다.

밑드리벌레는 교미를 위해 수컷이 먹이를 암컷에게 제공하는데, 바로 이 먹이를 가로채기 위해 혼인선물을 과시하며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을 다른 수컷이 속여 그 먹이를 빼앗는 경우다. 보통 세번이면 두번 정도는 수컷이 속아넘어가 그 선물, 즉 먹이를 위장 '암컷'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그걸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교미할 때쯤 눈치를 챈 수컷이 곧바로 그 혼인선물을 되찾으려고 달려들므로 한바탕 난투극이 벌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기에 성공하여 민첩하고 교활한 수컷이 어수룩한 수컷에게 먹이를 빼앗는 확률은 약 22% 정도 된다고 한다. 그 22%는 위장한 수컷이 음식을 구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한 것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수지 맞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예술의 전당 내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독일 단편 영화중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슴'(Der Schonste Buson der Welt)이라는 시츄에이션 코미디물이 상연된 적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의 차이와 역할 분담을 다룬 영화다. 성공한 양조기술자 시몬과 풍만한 가슴 때문에 뭇 남성의 시선을 끄는 여비서 자네트가 우연히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부딪힌 순간 풍만한 가슴이 자네트를 떠나 시몬에게 온다.

풍만한 가슴이 없어진 자네트는 남성들에게 비로소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처음에는 불편을 느꼈던 시몬은 섹시한 남성으로서 인기를 끌게 되자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육체적 매력을 이용하여 출세하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시몬의 행동은 암컷처럼 위장하고 알을 몰래 수정시키는 알도둑 큰가시고기나 암컷으로 위장해 혼인선물을 강탈하는 밑드리벌레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헤엄쳐 다니는 그런 자연에는 속임수나 사기, 반목과 갈등 같은 인간세상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생물들의 세상일 뿐이다. 사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세상이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큰가시고기와 같은 물고기나 반날개, 밑드리벌레 같은 벌레들의 세상도 인간 세상 못지않게 온갖 술수가 난무하는 쉽지 않은 세상인 것으로 보이는 증거가 쌓여간다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도 하나의 생명으로 똑같은 진화적 시간 동안 같은 무대에서 함께 지내왔는데, 인간만이 뭔가 색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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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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