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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가스 '사린'의 정체

일본 지하철 테러 파문

출근길의 지하철을 강타, 순식간에 4천7백여 피해자를 낸 죽음의 가스는 화학무기로도 쓰이는 유기인계 맹독성 신경제 사린으로 밝혀졌다. 사린이란 무엇인가. 사린 이외에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학무기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지난 3월 19일 도쿄의 출근길 아침을 강타한 독가스 테러사건. 순식간에 4천7백여명의 지하철 승객들을 중독 시키고 8명을 사망으로 몰고간 이 독가스의 정체는 화학무기로도 쓰이는 유기인계 맹독성 신경가스 사린으로 밝혀졌다.

사린은 본래 2차대전 중 나치 독일이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개발한 화학무기다. 이 가스에 노출되면 신경자극에 대해 근육이 대응능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호흡기와 근육이 마비 돼 종국에는 질식사에 이른다.
공기중에 약간만 함유돼 있어도 시계가 어두워지는 등 시야에 이상이 생기고 농도가 올라갈수록 호흡곤란, 구토, 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결국 전신에 격렬한 경련이 일어나 허탈 상태에 빠져 사망한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간 '밀리터리 밸런스'에 소개된 사린의 화학식은 ${CH}_{3}$(${C}_{3}$${H}_{7}$O) FPO. 한방울(약2㎎)만 인체에 튀겨도 죽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1㎥의 대기중에 1백㎎의 사린이 함유돼 있으면 30초만 지나도 95%가 15분내에 사망할 정도의 독성이다.

나치독일이 개발은 했으나 국제적 비난이 두려워 정작 2차대전 중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사린은 이란-이라크 전쟁과 이라크의 쿠르드족 진압 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학작용제의 특성


합성 쉬운 맹독성 신경가스

사린은 자연발생하는 경우는 없고 유기인 화합물과 나트륨 및 알코올계 물질을 반응시켜 제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바는 사린이 화학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진 사람이면 합성이 가능하다는 점과 그러나 장비와 시설에 비용이 많이 들고 합성하는 사람도 맹독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외신보도에서도 사린가스가 아마추어 화학자들도 쉽게 제조할 수 있는 간단한 합성물이라는 설명을 전하고 있다. 영국의 화학무기 전문가인 리즈대학 아리스테어 헤이 교수는 BBC-TV와의 회견에서 "사린가스는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화학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조 할 수 있고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제조자 자신도 상당한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린의 운반방법에 대해 여러 추측과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린에 중독된 시민들은 순식간에 얼굴이 따갑고 숨이 막히며 눈과 코에서 출혈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증세를 보였다. 사망자와 의식불명자가 남은 반면 상당수는 경증으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구명돼도 신장 간 이상 합병증
 

사린에 중독돼 쓰러진 승객. 이번 사고로 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린에 노출되면 어떤 치료가 필요할까. 베트남에서의 고엽제 후유증, 화학무기의 후유증 등을 상기할 때 다행히 살아났다 해도 그 후유증이 어떨지도 관심거리다.

마침 일본에는 지난해 6월 유사한 사건이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일어나 7명의 사망자를 낸 바 있다. 마쓰모토의 피해자들은 후유증이 완전히 없어지기 까지 약 4개월이 소요됐으며 피해 직후 구명에 성공한 피해자들은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초 발견자는 아직까지 의식불명 상태라고.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가장 많이 이송된 일본 세이로카(聖路加) 국제병원의 의료진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사린에 의한 중독 현상의 고비는 피해를 입은 지 6시간 정도 지났을 때. 이 시간을 넘긴 가벼운 피해자들은 원상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동공축소 등 사린 특유의 증상은 독소가 몸 밖으로 배출되면서 치료되나 중증인 경우는 콜린에스테라제가 급격히 떨어져 콩팥 또는 간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합병증을 얻게 된다는 게 의료진의 말이다.

신경제로 인한 증세로는 79년에서 81년 사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했을 때의 보고가 남아 있다. 희생자들은 몽롱한 의식과 현기증을 느끼고서야 화학공격에 노출되었음을 알았다. 이어 구토가 시작되고 눈과 코와 목에서 출혈이 있었다. 이는 도쿄 지하철 테러 피해자들이 겪은 증상과 비슷하다.

사린을 비롯,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입히는 화학제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죽고 죽이는 문제이므로 전쟁과 관련돼 있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독가스가 군사적으로 이용된 것은 BC428년 스파르타군이 아테네 군에 대해 황 비소 등 원시적인 형태의 가연성 물질을 사용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넓은 의미에서 화학무기라 하면 독가스와 같은 유독성 화학작용제뿐 아니라 무능화작용제 폭동진압작용제 교육훈련작용제 연막작용제 소이(燒夷)작용제 등이 있다. 반면 좁은 의미에서 화학무기라 하면 독가스와 같은 유독성 화학작용제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센터 김환청 박사는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화학전은 1915년 4월 유럽의 보리모프 전선에서 발생했다고 소개한다.

이 전투에서 독일은 압축된 염소가스를 실린더에서 동시에 발사하는 방법을 썼는데, 모두 1백71t의 염소가스가 사용됐다. 그 결과 연합군측은 30분만에 5천명이 사망하고 1만여명이 부상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반면 독일은 침체돼 있던 전선을 타개했다. 그뒤 1차대전에서는 많은 화학전이 있었는데, 이로 인한 총 사상자는 1백10만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화학작용제의 성능


농약에서 대량실인무기로

최초의 신경작용제는 독일의 과학자 슈레더(Schäder)가 개발했다. 그는 유기불소화합물이 살충능력을 갖고 있나를 연구한 끝에 1936년 이를 확인했다. 슈레더는 유기불소화합물 중에서 타분(Tabun)이 포유동물에도 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노벨의 다이너마이트의 예에서 보듯 발명은 선의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실제 활용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의 연구결과는 곧 독일군에 알려지게 됐고 1942년부터 군사용으로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농약이 대량살상무기로 변한 것이다. 이후 사린(sarin)이 개발됐고 1944년 쿤(Kuhn)이 독성이 더 강한 소만(Soman)을 합성했다. 이들을 G가스라고도 부른다. 이들 신경가스는 2차대전 중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2차대전 후 신경작용제의 독성은 더욱 강화됐다. 특히 미국의 VX, 소련의 VR-55 등 V계열 작용제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인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의 기능을 저해함으로써 기존 독일의 G가스보다 탁월한 독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더욱이 무색무취무미로 탐지가 어렵다.

김환청 박사는 유독성 화학작용제는 신경작용제 말고도 생리적 효과에 따라 수포작용제 혈액작용제 질식작용제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이들 화학무기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각기 다르다.

2차대전 때 독일이 개발한 타분 사린 소만 등과 2차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 이들을 개량한 VX작용제 등의 신경작용제는 액체와 기체상태로 퍼지며 가공할 독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신경작용제가 인체에 침입하면 신경계통인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 사이에 균형이 없어진다.

질식작용제는 대개 1차대전시에 개발된 것으로 호스겐이 대표적인 것이다. 무색기체로 3-24시간 안에 반응하는데, 점막이 붓고 수분이 쌓여 호흡기에 장애를 준다. 그 결과 기침이 나고 숨이 차는 증세를 보이며 질식하거나 호흡이 약해져 폐손상을 일으킨다.

생리적 효과 다른 각종 화학제들

수포작용제로는 겨자작용제 질소겨자작용제 비소계작용제 등이 있다.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사용한 화학무기가 겨자작용제라고 알려져 있다. 무색에서 연한 황색의 액체로 발포되어 조직파괴와 혈관손상을 일으킨다.

기체와 액체 상태의 수포작용제도 모두 피부에 침투하여 발진과 염증을 일으키고 골수에도 해를 미친다. 수포작용제중 기체상태인 발포고(發泡膏, 물집을 일으키는 고약)는 눈을 공격하여 염증을 일으키고 일시적 또는 영구적 실명을 가져오기도 한다.

혈액작용제는 신체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혈액속의 치토크롬 옥시다제(Chitochrome Oxidase)라는 효소의 기능을 방해함으로써 순환기와 호흡기에 장애를 준다. 두통과 혼수상태로 몇분내에 사망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혈액작용제는 지속성과 누적성이 없다. 혈액작용제로는 시안화수소가 대표적이다.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정신작용제는 몸에는 아무 해가 없고 단지 일시적으로 무능력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1950년대 이후 화학무기가 갖고 있는 제조 수송 저장 중의 안전사고 위험성을 줄일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이원화 화학무기다.

포탄 속에 두가지 무독성 화합물을 따로 격리하여 놓았다가 실제 사용 직전이나 사용과정에서 두 화합물이 반응 하도록 한 것이다. 즉 평소에는 독성이 없지만 발사하면 목표물에 도착하기 전에 독성화합물로 변하게 된다.
이 원리는 범인들이 사용한 운반방법 중 한 가지로 추측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

일반적으로 제조가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한 화학무기는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 불린다. 핵무기 등 강대국의 전략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비용이 적으면서도 가공할 효과를 가진다는 이점 때문이다.

이러한 화학무기의 문제점은 그 피해가 혹독하고 무차별적이며 대량이라는 데 있다. 그 후유증 또한 심각하다. 이런 비인도성 때문에 1925년 6월 '질식성, 유독성 물질 및 동류의 가스와 세균학적 방법을 전쟁에서 사용금지 하자'는 제네바 협정이 조인되었다. 이 협정에는 우리나라와 북한도 가입돼 있다.

93년 1월 파리에서는 제네바협정을 보완, 보다 철저히 규제하기 위한 화학무기금지협정(CWT)에 1백37개국이 서명했다. 그러나 국제 조약으로서의 효력은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협정이 맺어졌다 해도 위반사례가 적지 않다. 게다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테러 집단에 의한 사용에는 속수무책이다.
도쿄 독가스테러 사건이 일어난 며칠 뒤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모방범죄를 대비한 경계가 강화됐다. 만일 다중이용시설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은 조기 탐지가 중요하다는 게 김환청 박사의 말이다. 그러나 만일 그 화학제가 사린이라면 일반인이 이 가스에 방호하기란 실상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사린은 호흡기뿐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도 인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방독마스크는 물론이고 특수 보호복도 착용해야 한다. 이렇다할 해독제도 개발돼 있지 않다. 결국 현장에서 피하는 것만이 최상책인 셈이다.

한편 이 사건이 지난 91년 영국 추리소설 작가인 고든 토머스가 쓴 '살인향수'라는 책의 내용과 흡사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간을 경악케 한 친부살인사건이 수법이 추리소설을 모방했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모방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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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서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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