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암컷은 훌륭한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자질을 갖춘 수컷을 골라서 짝짓기한다. 암컷이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은 종에 따라 다르다.
긴 꼬리를 선호
청개구리 암컷은 가장 큰 소리로 가장 자주 노래하는 수컷에게 더 끌린다. 미국 서부에 사는 뇌조 암컷은 렉크(lek)에 모인 수컷 중에서 짝을 고른다. 렉크는 '놀이'를 의미하는 스웨덴말인데, 동물행 동학에서는 멧닭 따위의 새, 사슴, 박쥐, 나비 등의 곤충들이 모여 구애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짝짓기 시기가 되면 수컷들은 렉크에 모여서 각자의 세력권을 정해 놓고 암컷들에게 자신의 소질을 과시한다. 암컷은 백화점에서 좋은 물건을 고르는 여인네처럼 며칠동안 렉크를 배회하면서 수컷을 찬찬히 살펴본 뒤에 한마리의 수컷을 선택하여 짝짓기한다. 뇌조 암컷이 자발적으로 수컷 앞에서 땅에 엎드린 후에야 수컷은 암컷을 올라탈 수 있다. 교미가 끝나면 암컷은 렉크를 떠나 길고 외로운 새끼 돌보기를 시작한다.
새들의 암컷은 가장 화려하고 길다란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공작의 경우, 수컷은 지나가는 암컷 모두와 짝짓기 행동을 보여주지만, 암컷은 단 한마리의 수컷과 짝을 짓게 되는데 대개 가장 현란한 깃털을 지닌 수컷과 교미한다.
아프리카의 초원을 날아다니는 천인조 암컷 역시 긴 꼬리의 수컷을 짝으로 선호한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수컷은 몸의 길이보다 몇배 더 긴 검정 꼬리를 지니고 있는 반면에 암컷은 몸의 길이보다 짧은 꼬리를 갖고 있다. 몸의 길이는 15cm인데, 꼬리는 수컷이 50cm, 암컷이 7cm 정도 된다. 1982년 스웨덴의 말테 앤더슨은 천인조 수컷의 꼬리를 잘라서 어떤 것은 꼬리를 길게 해 주고 어떤 것은 짧게 했다. 꼬리가 길어진 수컷들은 꼬리가 짧아진 수컷이나 원래의 꼬리를 지닌 수컷에 비해서 더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였다.
제비 또한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이 암컷에게 인기가 높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1992년 덴마크의 앤더스 묄러는 사람이 만들어 붙인 긴 꼬리를 달고 있는 숫제비가 보통의 정상적인 꼬리를 지닌 수컷에 비해 짝짓기 상대를 손쉽게 구하고 더 많은 암컷과 교미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뮐러는 제비가 짝짓기 상대를 고를 때 꼬리의 크기 못지 않게 모양을 중시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수컷의 꼬리가 좌우대칭일수록 경쟁자들보다 신속하게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더 많이 낳았다. 요컨대 길면서 동시에 대칭적인 꼬리를 가진 숫제비가 짝짓기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서인도제도의 트리니다드에 서식하는 관상용 열대어인 거피(guppy) 암컷은 몸 색깔을 보고 수컷을 선택한다. 거피는 시냇물에 따라 몸의 빛깔이 변하는데, 암컷은 밝은 오렌지 색깔을 지닌 수컷을 가장 좋아한다. 몸 색깔이 밝은 수컷일수록 암컷을 보호하는 능력이 뛰어나므로 선호되고 있음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거피를 잡아먹는 물고기가 접근할 때 암컷이 주변에 없으면 어떤 수컷도 포식자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암컷이 보는 앞에서는 수컷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경쟁적으로 포식자에게 다가갔다. 포식자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한 수컷의 몸 색깔이 가장 밝았으며 암컷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다.
생식을 위한 초파리의 춤솜씨
동물의 암컷이 노랫소리, 꼬리의 길이, 몸 색깔과 같은 수컷의 특이한 형질에 따라 짝짓기 상대를 고르는 것을 암컷선택(female choice)이라 한다. 암컷선택 개념은 대부분의 진화론처럼 찰스 다윈 에 의하여 처음으로 제창되었다.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으로는 수컷과 암컷 사이의 신체적 특징의 차이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가령 고환이나 난소와 같은 1차 성징은 생식에 필요한 기관이므로 그러한 차이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수염이나 뿔처럼 사춘기에 한쪽 성에만 나타나는 2차 성징은 자연선택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윈은 다른 형태의 선택인 성적 선택을 제안했다. 성적 선택은 동물이 자손을 얻기 위해 짝을 찾으려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선택이다. 2차 성징은 성적 선택 에 의하여 진화된 형질이라는 의미이다.
1871년 다윈은 두종류의 성적 선택을 제시했다. 하나는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서 일어나는 성적 선택이다. 사슴의 뿔이나 사자의 갈기과 같은 수컷의 형질은 암컷을 얻기 위해 다른 수컷과 싸울 때 도움이 되므로 진화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컷이 암컷의 주의를 끌어 다른 수컷보다 먼저 선택되길 기다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적 선택이다. 다름아닌 암컷선택이다. 다윈은 성적 선택에서 암컷보다 수컷의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에 암컷선택이 수컷 사이의 경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암컷의 역할을 하찮게 여긴 까닭은 수컷이 정열적이므로 암컷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지만 암컷은 짝짓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열정이 넘 치는 수컷은 경쟁적인 반면에 수줍어하는 암컷은 상대를 고르게 된다.
다윈의 성적 선택 이론에 대해 당시 학자들은 사슴의 뿔과 같은 수컷의 무기가 암컷을 놓고 다투는 수컷들에게 도움이 되므로 진화되었다는 이론은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공작 꼬리와 같은 수컷의 몸치장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암컷선택 이론은 설득력이 없다고 보았다. 어쨌거나 암컷선택 이론은 60여년 가까이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윈 이후 처음으로 암컷선택을 성적 진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한 학자는 영국의 로날드 피셔이다. 1930년 피셔는 암컷이 과장된 몸치장을 한 수컷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암컷들도 그러한 수컷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작의 경우 한때 암컷들은 꼬리가 긴 수컷들을 골라 짝짓기를 했다. 긴 꼬리의 수컷을 선택하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꼬리가 짧은 수컷과 짝짓기하려는 암컷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꼬리가 짧은 아들을 낳아서 노총각으로 만들고 싶은 어미가 있을 턱이 없으므로 암컷들은 꼬리가 긴 수컷을 선호하는 경향으로부터 감히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수컷들은 꼬리가 길수록 짝짓기에 유리했으므로 더 긴 꼬리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긴 꼬리에 대한 암컷의 선호와 긴 꼬리를 발달시키려는 수컷의 욕구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숫공작의 장식꼬리는 고삐 풀린 말이 내달리듯이 폭주적 진화(runaway evolution)를 하기에 이르렀다.
암컷선택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1930년 피셔에 의해 시도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70년대이다. 따라서 1955년 영국의 존 메이나드 스미스가 암컷선택에 대해 발표한 연구논문은 참신한 것이었다. 초파리의 교미 과정을 연구하던 메이나드 스미스는 암컷이 수컷들의 춤 솜씨를 비교하여 생식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당시 성적 선택에서 수컷 사이의 경쟁이 강조되고 암컷은 수동적으로 수컷을 선택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암컷선택을 강조한 메이나드 스미스의 연구 결과는 획기적인 것이었으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양이냐 질이냐
수컷은 무수히 많은 정자를 만들어내고, 자손을 돌보는데 거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므로 가능한 한 많은 짝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한편 암컷은 극소수의 난자를 만들고, 오랫동안 뱃속에 태아를 담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출산 후에 새끼를 돌보아야 하므로 가능한 한 신중하게 짝을 고르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하자면, 수컷은 자식 양육에 덜 투자하므로 짝의 양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암컷은 자식 양육에 더 투자하므로 짝의 질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짝의 양을 추구하는 수컷들은 암컷을 되도록 많이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며, 짝의 질을 추구하는 암컷들은 자식을 제대로 돌볼 수컷을 만나기 위해 상대를 가리게 된다. 요컨대 암수의 생식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성적 선택이 발생한다.
트라이버스의 이론은 성적 선택이 암수 사이의 열정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 다윈의 이론을 뒤엎은 독창적이고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암컷을 성적으로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했던 관점은 1세기만에 암컷의 성적 적극성을 강조하는 견해로 교체되었다. 암컷은 훌륭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질 좋은 수컷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는 생식적 욕구를 가진 존재이다.
가장 훌륭한 수컷을 선택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암컷은 수컷으로부터 유혹받는 능력을 지니도록 진화되었다. 그러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수컷은 긴 꼬리, 큰 노랫소리 또는 밝은 몸 색깔을 활용한다. 수컷들의 그런 특이한 형질은 순전히 암컷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영장류 암컷은 선호하는 상대 없어
그러나 영장류에서는 암컷선택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 도리어 1992년 미국의 메레 디스 스몰은 암컷선택 이론이 영장류에서는 유효하지 않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페미니스트인 스몰은 바바리 마카크의 짝짓기를 연구했다. 마카크(짧은 꼬리 원숭이)에 속하는 원숭이들은 주로 아시아에 살고 있는데, 바바리 마카크는 북아프리카에 떨어져 산다.
스몰은 암컷이 친밀하거나 지위가 높은 수컷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하며 발정기에 있는 21마리의 암컷을 대상으로 3백시간 동안 무려 5백6회의 교미를 지켜보았다. 암컷은 암내나는 생식기를 수컷의 얼굴 앞에 흔들어대면서 닥치는대로 수컷을 유혹하여 무리 중에 있는 모든 수컷과 적어도 한번 이상 교미를 하였다. 평균 17분마다 한번씩 교미했는데, 어떤 암컷은 6분 간격으로 세마리와 붙었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함에 있어 아무런 기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스몰은 다른 영장류의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예컨대 버빗 원숭이 암컷은 때로는 지위가 높은 수컷을 고르고 때로는 지위가 낮은 수컷을 좋아했다. 어떤 종은 때로는 친밀한 수컷을 좋아하고 때로는 전혀 모르는 수컷을 선호했다. 침팬지 암컷은 짝짓기 상대에 대한 선호가 전혀 없어 보였다. 스몰은 암컷선택 개념이 새들이나 일부 동물과는 달리 영장류의 짝짓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본능과 모방의 상호작용
거피 암컷은 몸의 오렌지 색깔이 밝은 수컷을 좋아하는데, 다른 암컷이 덜 밝은 오렌지 색깔의 수컷을 선택하는 광경을 보고 덩달아서 그러한 수컷을 짝으로 고르는 모습이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어린 거피 암컷들이 늙고 경험많은 암컷을 흉내내서 짝을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암컷선택에서 모방은 이득이 많다. 다른 암컷의 판단과 경험을 활용하면 적합한 상대를 신속하게 고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절약된 시간으로 먹이를 구하는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요컨대 암컷선택은 유전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 즉 본능과 모방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의 경우 여자가 멧닭이나 거피의 암컷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짝을 선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짝을 고를 때 여자가 남자보다 신중하다. 생식을 위한 여성의 투자가 남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매시간 1천2백만개의 정자를 만들어내지만 여성은 평생 4백개 정도의 난자를 생산한다. 임신하면 10개월 가까이 에너지를 소모한다. 출산후 3-4년은 아기 양육에 매달려 야 한다. 이와 같이 여성은 성교의 결과로서 엄청난 투자를 해야 되므로 짝을 고르는 기준이 다른 어떤 종보다 복잡다단한 것이다.
또한 여자들은 다른 여자가 선호하는 남성에게 끌리는 성향이 없지 않다. 모방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없으면 학습을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다른 여자가 매력을 느낀 남성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거피와 같은 미물도 짝을 고를 때 동료의 행동을 참작하는 지혜를 갖고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러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남의 남자를 유혹하고 싶은 여자들의 심리는 생식전략의 관점에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듯하다.
여자들은 결혼 상대를 고를 때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건강, 야망, 부지런함, 학력, 신장 따위에 관하여 면밀히 검토한다. 더욱이 이러한 조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 때문에 결혼상대의 미래와 숨은 능력까지 계산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완벽한 짝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