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 떼를 지어 인간 세상에 내려오고 모기가 사람을 물어뜯는 계절, 여름이다. 2021년 7월엔 대벌레, 2022년 7월엔 러브버그(계피우단털파리)가 난리더니 올해는 5월부터 동양하루살이 떼가 수도권을 덮쳤다. 우리는 언제까지 곤충과 씨름을 해야 할까. 이 오래된 전쟁이 최근 맞이한 새로운 국면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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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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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곤충이 떼지어 몰려온다
5월 수도권에선 ‘팅커벨’과의 전투가 벌어졌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크기와 연둣빛 날개 덕에 귀여운 별명이 붙은 동양하루살이 이야기다. 5월 한 달간 서울 송파구, 성동구, 광진구나 경기도 남양주 등 도심에 동양하루살이가 수백 마리씩 유입되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각 지자체는 동양하루살이가 출몰하는 지역에 집중 방제를 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5월 24일 오후 2시, 동양하루살이 집중 방제를 진행 중인 성동구 성수동을 찾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의 모든 창문에 종이가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정상영업 중입니다. 벌레로 인해 부득이하게 빛을 차단 중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란 안내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 근무 중인 점원을 만났다. 이원상 씨는 “창문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앉아 있는데, 인근 가게 주인들도 동양하루살이를 치우느라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동양하루살이는 밤에 불빛을 보고 몰려드는 습성이 있다. 이 때문에 성수동 외에도 송파구의 잠실 야구경기장 등 조명이 밝은 장소에서 피해가 많았다. SNS에서 “야구 경기를 보다가 팅커벨 탓에 도망을 나왔다”라거나 “한강 변에서 음식을 먹는데 동양하루살이가 음식에 들어갔다”는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성수동을 비롯해 올해 5월 동양하루살이 떼가 덮친 지역은 모두 한강 근처라는 공통점이 있다. 성수동 방제 현장에서 만난 김진우 서울시 성동구보건소 질병예방과 감염병예방팀장은 “동양하루살이는 성충이 되기까지 한강과 같은 하천 또는 저수지에서 성장한다”면서 “성충이 된 이후엔 하천 근처 수풀에 서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낮에는 수풀에서 쉬다가, 밤에 도시의 불빛에 이끌려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성수동의 동양하루살이 집중 방제 현장은 강변북로를 사이에 두고 한강과 인접해 있는 주택가였다. 강변북로를 따라 설치된 방음벽 아래 수풀에 동양하루살이가 숨어 있었다. 집중 방제는 이 수풀에 물을 쏘는 식으로 이뤄졌다. 김 팀장은 “이렇게 하면 강한 수압에 날개가 상한 동양하루살이가 밤에 활개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때에 따라 물에 살충제를 소량 섞어 쏘는 경우도 있다.
‘물대포’는 남양주, 양평 등에서도 애용하는 무기다. 동양하루살이가 대량 발생(대발생)한 한강 유역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살충제를 살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낮에는 집중 방역을 시행하는 한편, 밤에는 퇴치기를 가동해 동양하루살이를 쫓는 식의 방제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물대포를 쏘면 수풀에서 동양하루살이가 우르르 날아오르리라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집중 방제 현장에서 본 동양하루살이는 열 마리도 되지 않았다. 김 팀장은 “성동구의 경우 5월 20일 이후로(동양하루살이 대발생) 기세가 푹 꺾였다”고 했다.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동양하루살이는 성충이 된 후 2~3일 내 교미를 하고 알을 낳은 다음 수명을 다하게 되므로 짧은 시간 안에 대량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동양하루살이 떼가 사라졌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2021년 7월엔 대벌레, 2022년 7월엔 러브버그(계피우단털파리)가 주택가에 떼로 나타났다. 동양하루살이도 한강 상류 지역에서는 매해 5~6월이면 대발생을 겪는다. 어떤 곤충이냐가 달라지는 것이지, 곤충 대발생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곤충 대발생 양상은 대체로 비슷하다. 도시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곤충이 특정 지역에 우르르 나타났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전쟁에 비유하자면 좁은 지역에서 짧은 기간 동안 이뤄지는 국지전인 셈이다. 신 교수는 “성충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종족 번식이기 때문에, 짝을 만나기 쉽도록 비슷한 시기 특정 환경에 모이는 것”이라면서 “이것이 사람에게 발견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최근 들어 더 자주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기후변화다. 남영우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임업연구사는 “1980년대부터 2020년까지 연도별 돌발해충 발생 종 수를 분석해 보니, 연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돌발해충 발생 종 수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을 확인했다”고 했다.
사람이 곤충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그 현상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을 뿐, 대발생은 원래 종종 벌어지던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신 교수는 “대벌레 및 러브버그 대발생이 일어난 지역을 수차례 방문해 봤는데, 대부분 주변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면서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이들 곤충이 살고 있었는데, 산지가 개발되면서 민가가 서식처와 가까워지다 보니 서로 접촉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간의 주요 전략은 언제, 어떤 적이 올지 예측하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5월 31일 돌발해충인 매미나방과 대벌레의 부화시기를 예측하는 모형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연구를 주도한 남 연구사는 “겨울철 온도 조건에 따라 돌발해충이 발육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 알아내는 모형”이라며 “갓 부화했을 때 방제 효과가 가장 좋기 때문에 부화시기를 추정해 대발생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대발생이 보고됐던 종, 그런 종과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종, 그리고 해외에서 대발생했지만 한국에 없는 종은 예의주시 대상이다. 외래해충의 경우 관련 정부 부처가 특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계한다. 한국에 있는 산림해충 중에서 피해를 많이 주는 것들은 대부분 외래해충에 속하기 때문이다. 남 연구사는 “한국에 들어와 정착해 살아가는 외래해충이 74종인데, 그중 10여 종이 대발생을 통해 피해를 주는 종”이라면서 “외래해충의 생태 특성을 한국 기후와 비교해 대발생할 확률이 높은 종을 미리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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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진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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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대신 유전자 편집?
동양하루살이나 러브버그와 벌이는 전쟁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들은 사람을 물거나 병을 옮기지 않는다. 단지 그 수가 많아 불편할 뿐이다. 더 치열하고, 더 치명적인 곤충과의 총력전은 사실 여러분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기와 바퀴벌레로 대표되는 ‘위생해충’과의 싸움이다. 위생해충은 피를 빨거나 질병을 옮기는 등 인체에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곤충을 말한다.
위생해충과의 총력전에 임하는 인간의 주 무기는 살충제다.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살충제의 작용기작을 알아보기 위해 6월 5일 김길하 충북대 식물의학과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는 집에서 찾아낸 스프레이형 살충제, 훈증(약을 가열해 기화시키는 방법) 살충제, 독먹이형 살충제 등 다양한 살충제 성분을 문의했다. 6종 중 3종이 피레스로이드계에 속했다. 데카메트린, 람다 싸이할로스린, dd-시스/트랜스 프랄레트린 등이 피레스로이드계 성분이다.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 성분은 신경세포의 나트륨(Na) 이온 통로를 차단해 신경신호 전달을 막는 식으로 곤충을 죽인다. 모기, 바퀴벌레뿐만 아니라 농업을 방해하는 해충에도 광범위하게 작용하면서 가격도 저렴해 가정용 살충제에 많이 쓰인다. 스프레이형 살충제에 맞은 모기가 날아다니다가 바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모습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이 살충제가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빠른 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살충제는 편리한 무기다. 뿌리면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편리함 뒤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전적 변이 덕에 살충제를 맞고도 죽지 않는 곤충이 등장했다. 김 교수는 “체내에서 살충제를 가수분해할 수 있거나, 살충제가 작용하는 부분에 변이가 생긴 곤충은 살아남는다. 그렇지 못한 곤충은 죽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살충제에 내성이 있는 곤충만 남아 저항성 곤충 집단이 형성된다”면서 “새로운 살충제를 개발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리는데, 진딧물이나 총채벌레, 응애 등 생애주기가 짧은 곤충은 2~3년 만에 살충제 저항성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적으로 적을 물리치는 ‘이이제이’
살충제를 개발하고, 여기에 내성을 갖춘 곤충이 등장하고, 이 내성을 갖춘 곤충을 위한 살충제를 다시 개발하고아무리 좋은 살충제가 나오더라도 이 굴레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살충제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기에 ‘불임 모기’란 답을 내놓은 단체가 있다.
비영리재단인 세계 모기 프로그램(WMP)은 지난 4월 1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모기로 인해 전파되는 뎅기열과 같은 감염병으로부터 7000만 명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 ‘볼바키아’란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방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매년 최대 50억 마리의 감염된 모기가 브라질에 방사된다.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는 생식능력을 잃고 불임이 된다. WMP는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기 개체수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해충의 개체수를 줄이겠다는 기업도 있다. 영국의 생명공학기업 옥시텍(Oxitec)은 유전자 조작 수컷 모기 ‘프렌들리(Friendly)’를 개발했다. 친근한 이름과 달리 이 수컷 모기의 딸은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다. 옥시텍이 수컷모기의 유전자에 ‘tTAV’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삽입했는데, 해당 유전자를 물려받은 암컷 모기는 모두 성충이 되기 전에 죽기 때문이다.
모기보다 바퀴벌레가 더 싫다면, 옥시텍의 전략이 바퀴벌레에 적용되기를 기다릴 수도 있겠다. 바퀴벌레의 유전자를 편집할 기술도 이미 마련돼 있다. 2022년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 메소드스’에는 바퀴벌레의 유전자를 손쉽게 편집할 수 있는 ‘DIPA-크리스퍼’라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개발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를 이끈 타카키 다이몬 일본 교토대 농대 교수는 “이 방법은 성충에 유전자 가위를 주사하는 방식으로 어떤 실험실에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doi: 10.1016/j.crmeth.2022.1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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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만은 않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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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가로막은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이 쓴 책 ‘침묵의 봄’의 한구절이다. 카슨은 이 책을 통해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생태계에, 나아가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새들이 모두 죽어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봄, 침묵의 봄이 발표된지 60여 년이 흘렀다. 김 교수는 “최근 살충제의 트렌드는 저독성, 식물 추출물”이라고 소개했다. 오늘날 우리는 ‘침묵의 봄’을 불러오지 않을 거라고 안심해도 될까.
김 교수는 니코틴을 예로 들었다. 담뱃잎에 들어있는 니코틴은 살충 효과가 있다. 그래서 농가에선 담뱃잎 추출물을 친환경 농약으로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니코틴은 햇빛에 쉽게 분해돼 독성을 잃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1985년, 햇빛에 쉽게 분해되지 않는 니코틴 유사체 ‘네오니코티노이드’가 개발됐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한번 살포하면 30일이 지나도 독성을 잃지 않아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위해 항공기로 대규모 살포하는 등 주류 살충제로 활용해 왔다.
그런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최근 들어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이 성분이 꿀벌 집단 떼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곤충과의 전쟁에서 예기치못한 피해자가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서울시는 2022년 7월부터 전국 최초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사용을 금지했고, 농촌진흥청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에 대한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18년부터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사용을 제한했고, 미국의 경우 2022년 로드아일랜드주와 뉴저지주가 관련 규제를 발표했다. 앞서 소개한 불임 모기도 아직 완벽한 무기는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 모기나 유전자 조작 모기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직 모른다.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곤충의 영역을 침범해 대발생을 야기한 것도 인간, 살충제를 뿌려 더 강한 해충을 만들어낸 것도 인간이다. 이 전쟁에서 인간은 헛발질을 거듭하고 있다. 동양하루살이 방제를 취재할 당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곤충이 대발생한 자리에 강도 높은 방역을 하는 건 오히려 다음 대발생을 불러오는 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사는 영역까지 내려온 곤충을 그냥 내버려 두자는 말이 아니다. 곤충이 모두 해충은 아니기에, 방제가 곤충의 영역에까지 이어질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 교수는 “방역을 통해 해충을 잡아먹던 포식성 곤충의 개체수가 줄어들 경우,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 해충이 더 많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곤충 대발생을 연구하는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기후환경생물연구과 연구관은 “천적을 이용하거나, 해당 곤충이 감염되기 쉬운 미생물을 활용하는 등 생태계에서 곤충이 맡은 역할을 고려하는 방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박 연구관은 이어 “육상곤충인 대벌레의 경우 곤충에게 작용하는 병원성 곰팡이인 녹강균을 뿌려주면 1주일 내에 사멸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수서곤충의 경우 물고기나 조류 등을 이용해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적으로 적을 물리친다. 고대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에 쓰여있는 유명한 전략들이다. 하지만 손자병법에서 가장 좋은 전략으로 꼽는 건 ‘가능한 싸우지 않는 것’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오래 걸리더라도 예기치 못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방법. 답답하고 뻔한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해마다 봄이면 꿀벌이 사라졌다고 걱정하다가 여름엔 벌레의 습격으로 고통받는 게 지겹다면, 한 번쯤 귀 기울여 봐야 할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