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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해외교류 어디까지 왔나?

「협력」과 「경쟁」의 두얼굴

북방외교의 결실로 동구권과 과학기술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를 '과학기술외교 원년'으로 천명한 우리나라의 해외교류 현황을 알아본다.
 

유럽순방중 영욱 임페리얼대학을 들러 첨단과학시설을 시찰하고 있는 노대통령


세계는 첨단기술을 둘러싸고 포성없는 전쟁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90년대 기술주권시대 도래를 암시하는 각종 기술보호주의의 징후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어느 시대든 물리적 전쟁이 있을 때마다 외교의 역할이 강조되고 바로 외교력의 강약이 그나마의 안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돼왔다. 이같은 경험칙이 이제는 과학기술외교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재발견되고 있다.

△날로 치열한 미·일의 기술경쟁 △EC (유럽공동체)의 시장통합에 따른 새로운 ETC(유럽기술공동체)로의 전환 △후발개도국들의 추격 △동구 및 공산권의 개방 등 급변하는 세계과학기술환경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기술선진국 진입이 한층 어려워지고 있는 국면이다.
열악한 연구환경과 기초과학의 약세로 인한 원천기술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선진국으로부터 필요기술을 얻어올 수밖에 없다.

「G7」에 진입하기 위해

정부가 90년대 중반까지 'G7'로 불리는 기술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국제협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지난해 말 대통령의 유럽순방 때도 그랬지만 오는 5월 북미와 일본순방시 이뤄질 정상외교를 과학기술외교로 등식화하려는 정부내 방침이 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같은 과학기술외교의 틀안에서 세부적으로 최근의 협력현황을 살펴본다.

■미국

지난 76년 체결된 한·미 과학기술협력협정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각료급회의 △한·미경제협의회 △과학기술실무회의 △한·미원자력 및 에너지공동위원회를 통해 협력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원 기계연구소 전자 통신연구소가 공동연구와 기술정보수집을 위해 올해 미국 우수대학들에 있는 공학연구센터(ERC)의 회원으로 가입하고 지난해 8월 과기처장관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 워싱턴주와의 과학기술협력협정체결을 추진하고 있으며 텍사스 A&M대학과는 상온핵융합에 관한 공동연구를 하기로 합의각서를 교환했다.

그러나 미국이 과학기술을 통상마찰에 연계시키는 분위기를 표면화하고 있고 한·미 과학기술협력협정은 지난 88년 10월말로 폐기된 상태여서 과기외교로 이를 푸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 미국은 이 협정의 재체결조건으로 조사특허비밀보호 협정체결 음식물특허보호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조만간 이루어질 대통령의 방미 전까지 매듭지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는 원자력협정의 불평등관계해소도 큰 현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

지난 85년 12월 체결된 과학기술협력협정을 토대로 한·일과학기술협력위원회가 설치돼 지난해까지 3회에 걸쳐 열렸다. 이 위원회는 양국장관회의와 실무회의를 통해 현재까지 용접기술개발 등 17개 과제를 국제공동연구과제로 추진, 완료했고 현재 양국간 기초과학연구공동위원회 설치와 신소재특성평가센터사업을 협의 중이다.

문제는 두나라 사이에 심화되고 있는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기술이전의 확대. 우리의 대일(對曰) 기술도입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고급기술이전은 일본측이 꺼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첨단기술분야의 기술이전은 민간외교에 기대하고 해양 환경 보건 등 공공복지기술협력과 기초과학 등 용이한 분야부터 정부차원의 협력이 필요할 것같다.

■유럽

지난해 말 대통령의 서독 영국 프랑스 헝가리 4개국방문을 계기로 미·일 편중의 기술협력에서 EC를 중심으로 한 유럽국가와의 기술협력선 다변화 기회가 마련됐다.

순방국과의 합의의정서를 바탕으로 이들과 국제연구공동체를 형성해 △기술장벽이 낮은 기초과학 공공기술중심의 공동연구사업 추진 △교수 연구원 학생 등 인력교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기본방향이다.

EC가 추진하고 있는 첨단거대공동연구, 즉 정보산업분야의 ESPRIT, 통신분야의 RACE, 기계산업기술분야의 BRITE 신소재 분야의 EURAM 등에 적극 참석하여 기술 보호주의장벽을 극복하고 우리가 고속전철 원자력 우주항공 해양 등 대형사업을 추진 할 때 기술이전을 약속받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다.

서독 영국 프랑스 등과는 올 상반기중 과학기술장관회담을 개최키로 합의된 상태.

■캐나다

실질적인 기술협력은 CANDU형 원자로인 월성 1호기의 도입과 함께 주로 원자력 분야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정부와 그쪽이 강한 정보산업 가속기 의료기술을 이전받기로하는 등 주정 부를 대상으로 한 과기협력도 추진되고 있다.

「받는」입장에서「주는」쪽으로

우리나라는 유엔 및 국제기구와 아시아지역 협력기구들의 활동에 적극 참여해오고 있다.

UNDP(유엔경제개발계획)사업으로는 지난 82~86년 3차계획기간중 고급인력의 양성과 출연연구기관 등을 통한 민간기업의 취약기술개발 등 49개 사업에 1천4백만달러를 지원받은데 이어 87년~91년 4차계획기간중에도 30여개 과제에 1천만달러 이상을 지원받게 된다.
또한 콜롬보계획 유네스코 ESCAP FAO 등의 주요 국제기구에서 개최하는 각종 세미나 훈련 워크숍 심포지움 등에도 우리측 인력을 대거 참여시키고 있다.

특히 ESCAP에는 우리가 협력기금을 내고 총회를 개최하는 등 아·태(亞太)지역 회원국가들의 인력개발 R&D분야에서 우리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의 '받는' 것 중심의 협력관계에서 '주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는 시점이다.
정부는 대외기술공여사업으로 올해 18억원을 투입 △개도국연수생초청 △전문가 파견 △개발조사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개도국공여사업은 현재 한국과학재단의 기술공여사업소가 맡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국제과학기술교류센터로 확대 개편해 개도국 과학기술외교의 전담창구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구상중이다.

한편 국내에 10군데 이상 건설된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원자력 선진국과의 쌍무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면서 IAEA(국제원자력기구)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기초과학에 중점을 두고

미·소 중·소관계 개선으로 국제적 화해분 위기가 조성되고 중국 소련 동구 등 공산권국가들의 개혁 및 개방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과 기술협력의 필요성은 점증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우리가 앞서있는 산업기술 이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한편, 우리는 이들의 기초·거대과학분야의 연구성과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이들과는 국가별 특성에 따라 가능하고 실리를 추구할 수 있는 상호관심분야 부터 우선적으로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중국과는 지난 88년 출연연구기관 인사 35명이 중국을 방문한데 이어 그쪽에서도 지속적으로 한국방문이 이뤄지고 있어 다른 공산권국가에 비해 인적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올 가을에 열리는 북경아시안게임관련 약물검사와 전산·기상기술 등 협력이 추진 중이고 방사광가속기협력협정이 최근 포항공대와 중국 고능물리연구소간에 체결됐다. 아직은 국교가 없어 정부간 협력사업은 추진이 어렵지만 비공식적인 교류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소련과는 지난 3월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 방소(訪蘇)시 양국과학장관회담개최에 합의가 있어서 의외로 기술교류가 빨리 진전될 전망이다.

1천5백만명의 연구인력과 5천개를 넘는 연구기관을 갖고 있는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기초과학분야에 강세를 보이고 있고 최근 산학연의 협동연구개발체제로 과감한 혁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방과학원 대학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을 통해 공동연구사업이 폭넓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소련과는 이미 국내 재벌그룹들이 중공업 석유화학 전자산업분야에서 기술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은 기회보다는 장애가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농축우라늄도입 등 현실적인 통상부터 문을 연 뒤 본격적인 기술교류를 트는 것이 과기외교의 원칙이 될 것 같다.

이와함께 현재 수교가 이뤄지고 있는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를 비롯 동독 유고 루마니아 등 동구권국가들은 재정부족으로 거대연구는 못하지만 기초연구에서 짭짤한 성과를 내고있는 만큼 이들의 단단한 기초과학실력을 교류대상으로 삼고 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공과대학에 한·헝기술협력센터를 세우기로 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동구권국가들과의 기술외교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EC진출벽을 뚫고 북방권의 넓은 시장을 개척하는 교두보확보 측면에서 중요성이 강조된다.

남북한과학기술교류에 있어선 올해가 가장 중요한 한해가 될 것 같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민간남북과학기술공동체(가칭) 구성을 북한측에 제시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과학기술정보(학술정보자료교환, 과학기술용어사전공동편찬,산업표준상호교환) △공동연구조사(동서해수산자원공동탐사, 한강하구의 자원공동조사, 기상예보분석기술 개발) △과학기술인적교류 등이 구상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4월17일 남북과학기술교류협의회의 현판식을 갖고 민간차원의 남북교류 창구로 출범했다.

남북과학기술교류는 당초 노대통령의 7·7선언과 9·11국회연설(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입각한 남북교환노력의 일환으로 지난해 초 처음 거론됐으나 여건미비로 지금까지 미뤄져 왔다.

중국 소련 동구권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북방외교가 실효를 거두고 있기 때문에 대(對) 북한 과학기술교류도 올해 기대해봄 직한 대목이다.

삼각 포위망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과학기술환경을 도식화해보면 크게 EC 미국 일본 등 선진국그룹, 소련 동유럽그룹, 중국 등 후발개도국그룹의 삼각포위망에 놓여 있고 선발개도국의 추격을 받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뚫을수 있는 과기외교채널로서는 이미 수년전부터 형성해 놓은 미국과의 K-A라인, 일본과의 경협 (經協)과 아울러 새로운 유럽 및 북방 파이프라인구축이 구상되고 있는 단계다.

자유진영과의 외교는 일차적으로는 정상 외교를 통해 쌍무관계를 맺고 과학장관 실무회담을 곁들여 과학기술협력 협정체결과 국제공동연구 참여기회확대를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학연이 전면에 나서는 순서가 될 것이고 공산권과는 이와 반대로 추진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한편 세부적인 기술분야에 있어서는 예를 들어 기술의 시급성 효용도를 기준으로 △원자력기술 △자기부상열차를 포함한 교통기술 △환경기술 △우주항공기술 등에 대해 실리외교를 펴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여겨진다.

이들 기술은 미래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통령의 유럽순방에 이어 북미순방이 추진되면서 과거의 통상문제 대신 과학기술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전면에 부상하고 있음을 볼 때 올해야말로 명실상부한 '과학기술외교 원년(元年)' 으로 잡아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이제는 정부내에서도 의전만을 중시하는 정통정치외교의 습성을 버리고 시대에 맞게 실리를 추구하는 과학기술외교전문가 집단을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

선진국의 경우 산업계 연구계 학계·인사들을 외교협상에 내세우고 있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특히 동서독의 통일이 눈앞에 있고 동서 화해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유독 우리만 통일논의가 공전되고 있는 사정이고 보면 비정치적인 과학기술외교를 통해 남북 교류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온 스티브 서독 막스플랑크연구소총재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남긴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동서독장벽은 결국 과학기술에 의한 경제격차때문에 무너졌고 물흐르듯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마침내 독일의 동질성을 회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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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곽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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