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즈미의 두루미'는 1만여 마리가 매년 10월 중순경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를 거쳐 이즈미에 도래, 이듬해 3월까지 월동한다. 마을 근처에서 이처럼 많은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은 세계에서 이곳뿐이다.
제16회 전국과학교사 자연생태계 학습탐사가 지난 1월11일부터 15일까지 일본 규슈의 이마쓰 개펄, 후쿠오카 오호리 공원, 소네 해안, 이즈미의 두루미 도래지, 마에하라 연못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번 탐사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던 겨울 철새들의 이동경로와 일본인들의 철새보호관리 실태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겨울철새들의 동태를 비교 연구하는 데 주안점이 맞춰졌다.
일본 규슈는 두루미류 및 수조류 등 약 70종 1만5천여 개체가 월동하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규슈에서도 가고시마현(鹿兒島縣) 이즈미시 아라사키(荒崎)에 있는 두루미 도래지는 1만여 두루미의 월동천국으로 불리는 곳.
일기가 불순한 이곳을 좋은 날씨에서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던 것 하나만으로 이번 탐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위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만큼 두루미 보호를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이곳에 두루미가 월동하기 시작한 것은 3백년 전인 1694년부터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 조류전문가들은 두루미가 시베리아 기류를 따라 남하하다가 그 기류가 주춤하는 이곳에 도래하게 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처음 도래할 때는 기류에 의해서였지만 마침 먹이도 충분했기 때문으로도 풀이한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막대한 예산을 아끼지 않는 일본인들의 적극적인 보호관리. 지금은 아예 울타리 없이 사육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욱 적당한 표현으로 간주될 정도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연6천만엔(4억8천만원) 정도인데, 주로 사료대와 개인 농토(2백45㏊)의 임차료로 지불된다. 이 돈은 정부와 현(縣) 시(市)에서 각기 7:2:1로 나누어 낸다.
일본인들은 두루미를 보호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관찰센터와 숙박시설을 관광지로 개발했다. 그 결과 연간 40만-50만명이 찾아와 관광수입만으로도 이미 흑자를 내고 있다.
관찰센터에서는 관찰자가 일정수만 모이면 계속 브리핑을 하며 안내했다. 또 비디오를 통해 두루미의 생활상을 소개했다.
책과 도표를 통해서는 두루미의 이동경로와 도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놓았다.
또 두루미의 알을 진열하고 벽에는 유명 작가들이 촬영한 두루미의 사진들을 걸어 놓아 생태관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상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완벽할 정도로 꾸며 놓은 두루미 관찰센터. 탐사단은 자연과 공존공영하며 지내는 일본인들의 의식을 지켜보고 우리도 이제 새롭게 자연을 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번 탐사에서 일행은 모두 45종 1만5천여 마리의 철새를 관찰했는데, 이 가운데 1만여 마리는 두루미가 차지한다. 이 두루미를 관찰하기 위해 왕복 이틀을 장거리 여행했기 때문에 더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이즈미의 두루미 관찰센터가 워낙 압권이어서 탐사진은 더 이상의 미련은 가지지 않아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의 자연환경과 그들의 자연보호노력을 직접 목격하고 깨달은 것은 2세들의 교육 현장에서 두고두고 가르칠 수 있는 내용들이어서 이번 탐사는 예년보다 많은 효과가 있었다는 게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첫째날
첫날부터 강행군하기 시작했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 후 음식점으로 가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이마쓰로 향했다. 호텔에 가 여장을 풀 겨를도 없었다. 후쿠오카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50분 달려 이마쓰에 도착했다.
논 가운데의 농로를 따라 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하차, 앞에 있는 제방에 올랐다. 도심에서 빠져나온 하천이 바다와 만나며 넓은 개펄을 이루고 있었다. 개펄 가운데에 한강의 밤섬과 비슷한 갈대밭이 있었는데, 사방에 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다.
원교수가 필드스코프를 통해 보기 드문 새부터 발견해 알려주면 모두 쌍안경을 꺼내 확인하고 촬영하기 시작했다. 비오리 4마리가 촬영하려면 자꾸 물속에 숨어버려 애를 태웠다. 많은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촬영하고 떠들어도 새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약 1.5㎞의 제방을 따라 새들을 관찰하고 촬영했다. 하늘에 잔뜩 구름이 끼면서 땅거미가 일찍 지기 시작했다. 원교수가 예의 솜씨로 개체수를 파악하자 받아 적기에도 바빴다.
이날 관찰한 새는 민물가마우지(27) 쇠백로(1) 종달새(3) 쇠오리(63) 왜가리(51) 갈매기(21) 붉은부리 갈매기(199) 바다비오리(2) 솔개(11) 고방오리(35) 홍머리오리(142) 청둥오리(1685) 민물도요새(110) 가마우지(8) 대백로(1) 흰물떼새(112) 개똥쥐빠귀(2) 물총새(1) 흰뺨검둥오리(277) 알락할미새(2) 비오리(4) 중대백로(3) 귀뿔논병아리(3) 등으로 모두 23종2천7백83마리였다.
둘째날
아침에 후코오카에서 일본야조회 이사로 활동하는 쓰치야(土谷 光憲) 선생이 당일 하루 안내를 해주기 위해 찾아왔다. 당초 계획은 소네로 가서 탐사할 예정이었으나 쓰치야 선생은 어제 이마쓰에서 못본 저어새를 먼저 보고 소네로 가자고 했다. 저어새는 희귀조여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마쓰에 도착한 후 어제 본 새는 무시하기로 하고 오직 저어새만 찾았다. 일행 모두가 필드스코프와 쌍안경을 들이대고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저어새를 찾았다. 어디에 꼭꼭 숨었는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이때 승용차편으로 출발한 쓰치야 선생이 뒤늦게 도착했다.
그는 이내 자신의 필드스코프를 꺼내 갈대섬을 주시했다. 저어새는 곧 발견됐다. 모두 환호성을 터뜨렸다. 두마리가 마침 갈대숲에서 개펄로 빠져나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
이어서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붉은가슴흰죽지가 1마리 있다고 쓰치야 선생이 알려 주었기 때문.
오호리 공원은 소나무 공원으로 불릴 정도로 소나무가 많았다. 그 가운데 있는 호수에는 흰죽지가 1천5백20마리나 있었다. 이밖에 붉은부리갈매기(152) 댕기흰죽지(100) 민물가마우지(10) 알락오리(6) 해오라기(1) 큰부리갈매기(2) 등도 보였다.
그러나 문제의 붉은가슴흰죽지는 보이지 않았다. 쓰치야 선생이 공원 너머 다른 호수에 가보자고 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앞쪽으로 좀더 이동, 마침내 발견했다. 역시 쓰치야 선생이 먼저 발견했다.
홍머리오리와 함께 바람결에 몸을 맡긴 채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다 반대방향으로 다시 이동했다. 빵 부스러기가 있으면 좀더 가까이서 촬영할 수 있으나 인근에서 빵을 구할 수 없었다. 원교수는 50년대 우연히 한번 발견한 뒤 하도 오랜만에 본 탓인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에는 버스를 2시간 달려 간몬해협(關門海峽)의 소네에서 탐사했다. 개펄 위에는 바다를 향해 약 2㎞ 정도되는 시멘트길이 있었다. 그 길 끝까지 걸어가며 새를 관찰했다. 바람이 몹시 차 손끝이 얼어붙을 정도였다.
여기서는 청둥오리(8) 검은머리갈매기(6) 붉은부리갈매기(40) 큰재갈매기(14) 까마귀(22) 재갈매기(60) 비오리(6) 흰꼬리좀도요(3) 민물도요(88) 마도요(70) 등을 관찰했다. 이밖에 홍머리오리 혹부리오리도 봤는데, 원교수는 여기서 검은머리갈매기를 본 것이 성과라고 밝혔다.
셋째날
아침밥을 일찍 먹고 가고시마현에 있는 이즈미로 향했다. 도중에 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으며 강행군, 후카오카를 출발한 지 4시간45분만에 이즈미의 '두루미의 도래지'에 도착했다.
'이즈미시 두루미관찰센터'. 2층 건물로 1층은 기념품가게와 식당, 2층은 매표소와 관람장이 들어서 있었다. 원교수가 안면이 있는 관리원 마타노(又野 末春)씨를 만나 입장료도 내지 않고 들어갔다. 마타노씨는 철원 철새도래지에 온 적이 있고 원교수는 과거 이곳에 두번이나 온 적이 있어 서로 구면이었다.
여기서는 개체수를 파악할 필요가 없었다. 흑두루미 7천9백49마리, 재두루미 1천9백27마리, 기타 15마리, 모두 9천8백91마리의 두루미가 지내고 있음을 당일의 기록계가 밝혀주고 있었다. 기타 가운데는 시베리아흰두루미와 캐나다두루미가 각각 1마리씩 포함돼 있다.
옥상에 올라갔을 때 비가 오락가락했으나 간혹 햇빛이 나와 촬영조건은 충분했다. 원교수는 과거 두번 모두 비가 와 촬영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여한을 풀었다며 연신 흥분한 모습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옥상에는 우리 말고도 단체 관람객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마추어임에도 불구하고 필드스코프와 쌍안경 카메라 도감 등을 지니고 있었다.
원교수는 이 두루미 도래지를 좋은 날씨 속에 관찰한 것만으로도 이번 탐사는 성공적이라며 연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충분한 관찰을 끝낸 일행은 그제서야 이즈미 시내의 호텔에 돌아와 여장을 풀었다.
넷째날
전날 탐사를 결산했음에도 새벽부터 서둘렀다. 두루미 도래지에서 일출사진을 찍고 오전 7시30분에 모이를 주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원교수가 어느새 '두루미와 자연을 수호하는 모임'의 회장인 요시오(吉尾 直善)씨를 데리고 왔다. 그는 여기에 오는 두루미를 한국이 어느 정도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새들은 먹이를 주면 자연히 오게 돼 있다며 한국에서도 새들에게 먹이를 주라고 권했다.
7시30분 정각 8백㎏의 밀을 심은 소형 트럭이 두루미가 기거하는 논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원들이 여기저기 밀을 뿌려 주었다. 양이 많아 우리도 먹이를 주며 두루미 가까이 접근했다. 먹이는 매일 아침 한 차례씩 주는데, 1마리당 먹는 양은 2홉반 정도라고 한다.
일출사진을 찍고 두루미에게 먹이를 주고 나니 눈발이 희끗희끗 날렸다. 그러고 보니 북위 32° 선상에서 맞이하는 눈이었다. 누군가 서설이라고 말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요시오씨는 자연을 사랑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즈미 두루미 도래지는 연간 40만-50만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와 흑자를 내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호텔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후쿠오카로 향했다.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버스를 달렸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버스는 쉬지 않고 곧장 마에하라시로 향했다. 붉은머리흰죽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원래 예정에 없었으나 갑자기 스케줄에 끼어들었다. 이틀 전 사진기자 전민조씨가 후쿠오카 호텔에서 아사히 신문을 보던 중 1면에 컬러로 보도된 사진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희귀조를 발견해 1면에 컬러사진으로 보도할 정도면 우리도 마땅히 봐야 한다는 게 원교수의 의견이었다. 이 새는 원래 유럽오리다.
마에하라 시내에 있는 저수지(伏龍池)를 어렵게 발견, 막 새를 찾기 시작했을 때 어느 젊은 일본인이 나타나 원교수를 찾았다. 그는 지나가다 버스에 붙은 표지판을 보고 왔노라며 "혹시 원교수님은 안오셨습니까? 그리고 여기에는 붉은머리흰죽지를 보시러 온게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모두들 원교수의 국제적 명성을 확인하며 탄성을 질렀다. 아키(安喜 勝次)라고 밝힌 일본인은 NHK를 통해 원교수를 본 적이 있다며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전11시에도 이 새를 봤다며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자전거를 탄 채 우리가 탄 버스를 안내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붉은머리흰죽지를 쉽게 발견, 사진을 무사히 찍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어두워서 사진찍기가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의 손에는 원교수도 필자로 참여한 '아시아 물새도감'이 들려져 있었는데, 원교수의 이름 옆에 사인을 받으며 대단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매사에 성실히 임하는 일본인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