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전 세계 과학계가 흥분했다. 한국 연구진이 상온 상압 초전도체 ‘LK-99’를 제작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아카이브’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무더웠던 여름, 그 더위보다 뜨거웠던 LK-99 논쟁을 한 눈에 정리했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 이슈가 다른 과학 이슈와 달랐던 것은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과학 전문가들도 함께 흥분했다는 점이다. 초전도체는 그 개념이 처음 제시된 지 112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한 원리를 알아내지 못한 미스터리 기술이기 때문이다.
초전도체에 열광하는 이유
LK-99가 화제가 되면서 몇몇 사람들은 LK-99를 개발한 과학자들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행복회로’를 돌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전도체는 노벨 물리학상 ‘맛집’이라고 할 정도로 노벨상과 관계가 깊다.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는 액체 헬륨을 사용해 고체 수은의 저항이 4.2K(켈빈)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관찰했다. 이후 그는 액체 수소, 액체 헬륨 제조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초전도체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차, 1957년 미국 일리노이대 소속 세 명의 물리학자 존 바딘, 리언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 세 사람은 초전도체를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따 ‘BCS 이론’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세 명의 물리학자들도 197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이때까지는 30K보다 낮은 온도에서만 초전도 현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던 1986년, 독일의 물리학자 요하네스 베드노르츠와 스위스 물리학자 카를 뮐러는 35K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고온 초전도체(30K 이상에서 초전도성을 보이는 물체)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고온 초전도체를 발견한 뮐러는 198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을 포함해 10명이 넘는 물리학자들이 초전도체와 관련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은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를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초전도체가 노벨상 ‘메달 밭’이 된 건 초전도 현상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게 되면, 미래 기술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최경달 한국공학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는 “상온 상압 초전도체를 발견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초전도체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을 보인다. 첫 번째로 전류를 흘렸을 때 저항이 0이다. 0에 아주 가까운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없어진다. 두 번째로는 마이스너 효과가 나타난다. 마이스너 효과는 물질 내부로 자기장이 투과하지 못하는 것으로, 마이스너 효과가 나타나면 초전도 물질이 반자성을 띠면서 자석을 밀어내는 힘이 생긴다. 초전도체에 100만큼의 자기장을 가하면 초전도체가 다시 100만큼 밀어내는 것이다.
전기 저항이 0인 점을 이용하면 전력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2020년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37%는 석탄으로, 28.5%는 원자력으로 생산한다. 생산한 전기는 대부분 구리선으로 옮기는데, 구리선의 저항 때문에 통상 7%의 전력이 손실된다. 김창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전력 손실이 준다는 것은 필요한 만큼만 전기를 생산해도 된다는 뜻”이라며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초전도체로 강력한 전자석을 만들어 자기부상열차도 개발할 수 있다. 자기부상열차는 열차 바닥과 선로가 강한 자기장으로 서로 밀어내 열차가 선로 위에 뜬 상태로 달린다. 개발된다면 시속 550km 이상의 속도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40분만에 갈 수 있다.
자기부상열차가 지금까지 상업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 극저온 환경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 또는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더 넓어진다. 한 예로 인공태양도 만들 수 있다. 태양과 같은 핵융합 반응을 구현하기 위해선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핵융합로 안에 자기장으로 가두고 유지해야 한다. 이 자기장을 상온 초전도체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KSTAR)를 이용해 연구하고 있는 오상준 책임연구원은 “초전도선으로 감은 코일을 사용하면 일반 구리선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흘릴 수 있어 더 강력한 자석을 만들 수 있다”며 “극저온이 아닌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가 개발되면 핵융합 상용화를 훨씬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원리는 모르지만, 만들고 싶어
오늘날 초전도 현상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맞춰야 한다. 임계 온도와 자기장의 세기, 전류밀도 크기, 이 세 가지 조건 중에도 임계 온도 조건이 특히 까다롭다. 상온 상압의 평범한 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킨다는 LK-99에 전 세계가 들썩인 이유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 그 이전에 초전도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체의 구조부터 파악해야 한다. 도체는 전기가 흐르는 물질로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과 음전하를 띠는 전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핵들은 전자보다 크고 무거워서 규칙적으로 배열된 자리에서 진동할 뿐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전자는 매우 자유분방해 원자핵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다닌다. 이런 전자가 이동하며 원자핵에 부딪히는데, 이때 저항이 발생한다.
그런데 도체의 온도가 낮아지면 원자핵과 전자의 움직임이 둔해져 서로 잘 부딪히지 않게 되고 저항이 낮아진다. 기존 초전도 기술은 바로 이런 원리로 극저온 환경에서 구현됐다. 앞서 노벨상을 받았다고 소개한 바딘, 쿠퍼, 슈리퍼 세 사람은 극저온 환경에서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BCS 이론’을 만들었다. BCS는 두 개의 전자가 쌍을 이루는 ‘쿠퍼쌍’이 생길 때 초전도 현상이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전자가 쌍을 이루는 현상은 기존 전자기학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서로 같은 전하를 띄는 두 전자는 서로 밀어내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BCS 이론을 만든 세 과학자는 쿠퍼쌍은 원자핵의 진동(포논)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했다. 음전하를 띠는 전자가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 사이를 지나가면 원자핵들은 전자 쪽으로 살짝 움직인다. 이 영역에 양전하가 강해진 일종의 ‘트랩’이 생긴다(위 그림 참조).
무거운 원자핵은 제 자리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뒤따라오던 전자는 양전하가 강해진 트랩에 빠르게 끌려들어온다. 먼저 지나간 전자가 닦아 놓은 길을 뒤에 있는 전자가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두 전자가 쌍을 이뤄 움직이는 것을 쿠퍼쌍이라 한다.
방윤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은 “지금까지 초전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BCS가 유일하다”며 “BCS 이론은 수학적 엄밀성과 실험적 검증으로 완전히 증명된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쿠퍼쌍을 만드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1986년 발견된 고온 초전도체는 포논으로 이해했던 쿠퍼쌍의 생성 원리에 결함을 만들었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전자는 무질서해지려고 하고,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두 전자가 쌍을 이루는 힘도 약해진다. 즉, 고온 초전도체에서 쿠퍼쌍이 생기려면 포논 외에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 힘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점이다. 오늘날 고온 초전도체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킬 쿠퍼쌍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이론은 매우 많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고온 초전도체 이론이 연구자 수만큼 많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방 교수는 “쿠퍼쌍이 생기면 초전도체가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쿠퍼쌍이 높은 온도에서 어떻게 생기는지 그 과정의 비밀을 풀진 못했다”고 말했다.
방 교수에 따르면 쿠퍼쌍 생성 원리에 관한 이론 중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는 이론은 ‘진동을 이용한 초전도 이론’과 ‘스핀 액체 이론’이다. 먼저, 진동을 이용한 초전도 이론은 포논 외에 스핀 진동, 전하 진동 등 다른 진동이 쿠퍼쌍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힘을 전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스핀 액체 이론은 전자의 양자역학적 특성인 ‘스핀’을 활용한다. 두 개의 전자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스핀이 상호작용한 결과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겨 스핀쌍을 이루고, 이후에 전자가 가지고 있는 전하가 결합해 쿠퍼쌍을 만든다는 이론이다.
LK-99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논란이 된 LK-99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LK-99를 제작한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올해 4월 한국결정성장 및 결정기술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 방법을 공개했다. doi: 10.6111/JKCGCT.2023.33.2.061 연구팀은 먼저 산화납(PbO)과 황산납(PbSO4) 분말을 그릇에 5대5로 잘 섞고 725℃ 가마에서 공기와 함께 24시간 가열해 라나카이트(Pb2(SO4)O)를 얻었다. 그리고 구리와 인 분말을 적절한 비율로 혼합해 진공 상태로 크리스탈 관에 넣어 밀봉하고 그 관을 다시 550℃ 가마에서 48시간 가열해 인화구리(Cu3P)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라나카이트와 인화구리를 잘게 부수고 혼합한 다음 진공 상태로 크리스탈 관에 넣어 밀봉해 925℃ 가마에서 5~20시간 가열해 LK-99를 만들었다.
논문에 따르면 이 과정을 퀀텀에너지연구소도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원리로 LK-99가 탄생했는지는 제작자들도 모른다는 뜻이다. 제작법이 공개됐음에도 샘플을 대량으로 만들지 못한 이유다. 단적인 예로 ‘적절한 비율’로 ‘5~20시간 가열한다’는 조건을 어떻게 맞출 수 있겠는가. 최 교수는 “우연히 비슷한 물질이 나왔다고 해도 경우의 수를 모두 다 제작해보지 않는 한, 그 샘플이 가장 완벽한 초전도체임을 확인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초전도체 아니다’로 기우는 검증
퀀텀에너지연구소는 LK-99가 400K 이하, 1기압 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400K은 약 127℃로 실제라면 정말 대단한 상온 상압 초전도체다. 아직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과학계의 의견은 ‘초전도체가 아니다’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 교수는 “퀀텀에너지연구소가 공개한 영상으로는 초전도체임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방 교수 역시 “논문 속 데이터만으로는 초전도체라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LK-99의 저항값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완벽히 0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실험에서 오차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방 교수는 “만약 노이즈라면 더 좋은 샘플을 제작하고 그것으로 더 정교하게 실험해서 저항값을 0으로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 교수가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보는 결정적 이유는 저항보다는 마이스너 효과(반자성 효과) 때문이었다. 초전도체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임계온도가 되면 갑자기 반자성 효과가 생긴다. 그런데 LK-99의 경우 임계 온도가 되기 전부터 반자성 효과가 나타난다. 방 교수는 “반자성 효과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봤을 때 초전도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생각을 밝혔다.
LK-99가 초전도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쿠퍼쌍 생성 이론도 반론에 부딪혔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전자의 흐름을 액체적인 파동 현상으로 파악할 때 저항이 0이 된다는 고(故) 최동식 교수의 ‘ISB 이론’을 바탕으로 LK-99 개발에 성공했다. 그들은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가 2021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BR-BCS의 이론으로 LK-99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BR-BCS는 전자들 사이의 척력이 강한 물질의 경우 전자의 이동 속도가 느려져 액체처럼 움직이는데, 이때 포논에 의해 받는 힘을 더 오래 받을 수 있어 쿠퍼쌍을 만드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는 이론이다. doi: 10.1038/s41598-021-88937-7
김 교수는 8월 3일 동아사이언스 유튜브 채널 ‘씨즈 더 퓨처’와의 인터뷰를 통해 LK-99는 1차원 초전도체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그 외 부분은 비금속이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방 교수는 “BR-BCS 이론은 주류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론”이라며 “1차원 초전도체라는 설명이 초전도성을 띠는 ‘1차원 라인’을 발견했다는 뜻이 아닐까” 추측했다. 이어 “LK-99 내부에서 초전도 현상을 띠는 일부 선 구간을 찾는 것도 어렵고, 찾더라도 그것이 초전도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해외 과학계 반응도 비관적인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8월 16일 ‘네이처’는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며, 지금까지 나온 검증 결과를 종합해 LK-99가 초전도체처럼 ‘보였던’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 막스 플랑크 고체연구소는 “LK-99가 보인 초전도성은 제조 과정에서 생긴 불순물인 황화구리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팀은 “저항이 급격히 낮아지는 것도 황화구리가 상전이 되는 온도가 104℃여서일 뿐 초전도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네이처는 기사 말미에 “퀀텀에너지연구소가 네이처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며 “상황을 끝낼 방법은 제작자에게 샘플을 받아 검증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더라도 실망은 No!
검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LK-99가 끝내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름의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LK-99는 온도에 따라 급격하게 저항이 변하는 부도체-도체 전이를 보인다. 또한, 이 상전이 온도 아래에서 물질의 반자성 효과가 보다 강화되는 특성을 보인다. 즉, 반자성 부도체가 도체로 전이되면 일반적으로 반자성 특성이 약화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물질은 그 반대의 특성을 보이는 것이다. 방 교수는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게 확정되면 이 성질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로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동안 수백 가지의 초전도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한 미국 물리학자 베른트 마티아스는 초전도체를 찾는 여섯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재밌게도 ‘이론 물리학자를 피할 것(stay away from theorists)’이다. 이번 LK-99 역시 그런 도전 정신의 산물일 것이다. 1999년부터 도전해 우연히 LK-99를 만들었고, LK-99를 설명하기 위해 틀을 깨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했다. 그리고 거기에 수많은 과학자가 달려들어 진위 공방을 펼쳤다. 2023년 상온 초전도체 논쟁은 한 동안 과학계에 긴장감을 준 의미있는 이슈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