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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명을 주도할 컴퓨터에도 인간공학의 적용은 필수적이다. 컴퓨터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어느 부분이라도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표준화 문제와 함께 더 쉽고 편한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다.

인간공학은 영어로 human factors engineering, 또는 ergonomics라 불리는 공학의 한 분야다. 이름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이 이 학문은 인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 기계 시설물 등을 사용하기 편하고 안전하며 또 쉽게 만들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따라서 인간공학이 다루는 분야는 광범위할 수밖에 없어 연구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지만,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자체에 대한 연구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리적 현상을 연구해 그 특성에 적합한 물건을 설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의자를 설계하면서 앉게 될 사람의 키 체중 몸의 형태 뿐만 아니라 앉을 자세에서 허리부분의 등뼈 모양,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과되는 압력 분포 등을 고려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향을 도출할 수 있다. 기구학 역학 전자전기공학 컴퓨터공학 등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연구의 필수가 됨은 물론이다. 의자의 어떤 부분을 조절식으로 해야 하고, 이때 조절 기능은 어떤 형태로 설계돼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 관점에서의 고려사항이다.

셋째, 인간이 물건을 이용해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연구다. 어떤 형태의 작업을 수행하는지에 따라서 물건의 설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앉아서 독서를 해야 하는지, 물건을 조립해야 하는지 또는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는지에 따라 의자의 설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넷째, 인간이 어떤 환경 하에서 물건을 사용해 작업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연구다. 난방장치가 안된 추운 환경인지, 조명상태가 부실한 환경인지, 소음이 높은 환경인지 등에 따라 작업방법이나 작업도구의 설계가 달라진다.
이같은 관점에 따라 현대 문명의 총아로 불리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정보화 사회와 인간공학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빠르고, 쉬우며 편리한 물건
 

노트북에 장착된 트랙볼. 노트북에 마우스를 내장시킴으로써 마우스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지도록 했다.


컴퓨터를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컴퓨터의 설계에도 인간공학이 적용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컴퓨터 본체, 모니터, 그리고 입력장치인 키보드와 마우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본체에는 대개 디스켓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초창기의 컴퓨터에는 이 구멍에 디스켓을 넣고 빠져 나오지 않도록 돌려서 잠그는 장치가 있었다. 이 경우 사용자는 디스켓을 넣고 잠그는 두가지 동작을 해야 디스켓을 사용할 수 있었다.

두 동작은 한 동작에 비해 시간의 소모와 함께 불편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욱더 큰 문제는 손 사용이 부자연스러운 장애자들에겐 디스켓을 넣고 빼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요즈음의 컴퓨터는 한번의 동작으로 디스켓을 넣고 뺄 수 있도록 해 앞서 지적된 문제점을 해결했다. 인간공학적 연구의 결과다.

하드웨어의 설계에 인간공학이 적용된 또 하나의 예를 찾아보자. 우리가 흔히 보아온 키보드는 네모난 직사각형 틀 위에 여러개의 키들이 좌우로 배열된 형태를 갖고 있다. 앉아서 키를누를 때 손의 모양은 배열된 키에 맞추려고 손목을 중심으로 바깥쪽을 향하게 된다. 이런 손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손목 부위에 있는 근육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며 10-20분만 지나도 손목이 뻐근해짐을 쉽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물건을 인간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이다. 이 문제는 앉은 자세에서 두손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밀었을 때 손이 위치하는 모양대로 키보드를 설계함으로써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이외에도 컴퓨터 하드웨어의 설계에 인간공학적 연구가 필요한 예는 무수히 많다. 모니터의 크기와 형태는 어떤 것이 보기에 가장 적합할까? 모니터의 명암대비는 어느 정도로 해야 눈이 피로하지 않을까? 마우스의 움직임은 어떻게 설계해야 손동작을 최소화하면서 마음먹은 대로 모니터 위의 화살표를 움직일 수 있을까? 마우스 말고 다른 입력 장치를 사용해 좀더 쉽게 작업을 수행할 수는 없을까 등등.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간공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결과 요즈음은 다양한 종류의 입력장치들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키보드 대신 말로 컴퓨터와 대화를 주고 받는 음성인식 및 합성 시스템, 설계도면작성에 편리한 조이스틱이나 터치패드, 화면에 직접 손을 대서 동작시키는 터치패널 디스플레이 등은 모두 보다 빠르고 쉬우며 편리한 물건을 인간공학적으로 설계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망치 손잡이와 모니터 화면
 

터치 패드 디스플레이. '터치 스크린' 이라고도 불리는 이 장치는 마우스보다 더 사용이 편리한 입력 장치다.


그러면 소프트웨어의 설계에는 인간공학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이 분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 컴퓨터는 사람이 사용한다. '사용한다'는 의미는 크게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사람은 손 발 등의 신체부위를 도구와 접촉해 작업을 수행한다(육체적 사용). 이때 신체적으로 접촉이 일어나는 부위를 인간공학에서는 인터페이스(interface)라고 지칭한다(man-machine interface). 예를 들어 망치의 경우라면 손잡이가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다.

한편 사람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여 의사결정을 하는 등의 정신활동을 한다(정신적 사용). 이때의 인터페이스는 정보를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매체로 정의된다(software-user interface). 책이라면 글이 인쇄된 책장이, 컴퓨터라면 화면 내용이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주요 연구내용은 한마디로 "어떤 화면을 구성하면 사용자가 쉽고 빠르게 표시된 정보를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컴퓨터에 필요한 정보를 입력시킬 수 있을까"로 요약된다.

화면에 표시된 정보를 인간공학적으로 설계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컴퓨터 화면은 기본적으로 문자 도형 그림 등을 통해 사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화면에 표시된 글자의 크기가 작거나, 명암대비가 흐릿한 색을 사용하면 사용자는 글자를 읽기가 어려울 것이고, 반대로 글자가 커지면 읽기는 쉬워지지만 제한된 공간 내에 표시할 수 있는 글자의 수가 작아질 것이다. 이 때 가장 적절한 크기의 글자는 무엇이며, 더 나가 이들을 어떤 표현방식으로 표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인간공학이다.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나타내고자 하는 정보를 그림이나 도형 등 문자 이외의 다른 형태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 인간공학에서는 은유적 표현(metaphor)이라고 부른다. 컴퓨터 파일의 저장체계(directory)를 서류철 모양으로 표현하는 것이 은유적 표현의 좋은 예다.

이외에도 정보표시 방법에 대한 연구 영역은 무수히 많다. 가장 좋은 정보 표시방법은 당연히 사용자가 쉽고 빨리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다. 인간공학에서는 사람이 각종 감각 기관을 통해 입수할 수 있는 정보양을 산출하고, 또한 입수된 정보양을 처리할 수 있는 두뇌의 능력을 고려해 상황에 적합한 정보표시 방법을 설계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에 대한 인간공학 연구내용을 살펴보자. 컴퓨터는 어떤 형태로든 명령을 입력해야 사용할 수 있다. 컴퓨터에 명령을 입력하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도스의 경우처럼 키보드를 통해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명령어 입력은 수행하고 싶은 작업마다 일일이 명령어를 외어서 사용해야 하며 명령어 자체의 문법체계를 숙지해야만 한다. 따라서 명령어에 통달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명령어는 쉽게 잊어버리는 단점이 있다.

한가지 명령을 컴퓨터가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수십개의 명령어 단어를 타이핑해야 하는 경우도 혹 있을 것이다. 이때 한 글자라도 문법에 맞지 않으면 명령이 수행되지 않는다.

이같은 명령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입력방법들이 개발됐다. 앞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명령어를 메뉴에 보여주고 사용자가 선택하게 하는 방법, 마우스의 버튼을 조작하는 방법, 키보드에 명령어가 내장된 기능키를 배치하는 방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인간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자연어 입력방식, 말로 입력하는 음성인식방법, 여러가지 특수 입력장치(조이스틱 터치스크린 트랙볼) 등의 입력 방식이 있다.

'빠른 컴퓨터' 보다 중요한 '쉬운 컴퓨터'
 

장애인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의 개발은 필연이다.


컴퓨터가 처음 개발된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컴퓨터 자체의 성능 향상에 중점을 두어 왔다. 이같은 분위기는 요즘 등장하는 컴퓨터 광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이제는 컴퓨터 자체의 성능보다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빠르고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아무리 빠르고 용량이 큰 컴퓨터라도 사람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를 개발하는 회사들은 앞 다투어 사용하기 쉽고 편한 컴퓨터 설계에 매달리고 있다. 이 설계 과정에는 당연히 사용자들의 특성을 반영해야 하며, 이때 인간공학이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편한 것과 쉬운 것, 그리고 빠른 것을 측정할 수 있을까. 인간공학에서는 이것을 사용 편의성(usa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컴퓨터의 사용 편의성은 사용하기 쉬운 정도(ease of use)와 작업효율(task effectiveness)로 평가된다.
두 종류의 소프트웨어가 있다고 가정하자. 같은 작업을 하는데 소용되는 시간이 A 소프트웨어는 20초, B 소프트웨어는 40초로 평가됐다면 어떤 소프트웨어가 더 좋은 것일까? 또 숙련될 때까지의 시간이 A 소프트웨어는 5시간 B소프트웨어는 7시간이 소요됐다면 어떤 소프트웨어가 더 좋은 것일까. 답은 자명하다.

사용편의성을 측정하는데 사용되는 방법은 이밖에도 많이 있다. 작업수행중 발생하는 오류의 비율, 작업의 성공률, 오류를 수정하기까지 소요된 시간, 한 작업을 수행하기에 필요한 명령어 수, 작업을 수행할때 매뉴얼을 참조한 횟수 등은 정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바로 이 정량적인 측정치로써 컴퓨터간의 사용 편의성을 비교할 수 있으며, 또한 다음번에 개발할 신제품의 사용편의성 기준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사용 편의성에는 정량적 측정치 외에도 심리적 요인도 중요하다. 즉 아무리 쉽고 편하다고 해도 사용자가 좋아하지 않으면 사용편의성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쉽고 편한 컴퓨터를 사람들이 싫어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이제까지 사용한 컴퓨터가 비록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이미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싫어할 수도 있고, 또 정확한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여하간 싫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사용자의 주관적 견해는 컴퓨터의 사용 편의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다 좋은 컴퓨터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사용편의성의 정량적인 측면과 심리적 측면을 종합해야 하며 어떻게 이 두가지 기준을 효과적으로 종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21세기는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컴퓨터와 각종 전자기기들을 결합시킨 멀티미디어, 인간이 실제로 체험하는 것같은 느낌을 제공할 가상현실, 음성과 펜으로 컴퓨터와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TV와 컴퓨터 전화 등이 결합된 전자제품의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모든 전자제품이 컴퓨터의 기능을 이용하게 될 것이며 제품간의 통합화도 급속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들 통합 제품들이 많은 기능을 가지게 될 것은 당연하다. 컴퓨터 오디오 비디오 TV 전화의 기능이 한 제품에 합쳐진다는 것은 복잡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의미하는 것이며 복잡한 인터페이스는 사용편의성과 직결된 문제다.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 한계를 감안해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기 쉽게 설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에 대해 무수히 많은 인간공학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또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알려진 부분보다는 모르고 있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르는 미지의 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를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응용하는 것이 공학의 역할이라면 정보화시대의 인간공학의 역할은 무수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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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한성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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