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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았다

Part2.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았다

거짓말의 기원은 어딜까. 진화생물학자인 미국 럿거스대 로버트 트리버스 교수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생명체 깊숙이 박혀있는 특성”으로 정의했다. 유전자가 스스로를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명해낸 능력이 거짓말이란 말이다. 그의 생각은 영국 옥스퍼드대 리처드 도킨스 교수에게 건너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명작으로 탄생했다.

모든 생물체는 본능적으로 속임수를 쓴다. 난초는 암컷 벌이 뿜는 페로몬과 비슷한 냄새로 수컷 벌을 유혹해 가루받이를 한다. 베도라치라는 열대어는 청소부 물고기를 흉내내 다른 물고기의 살점을 뜯어먹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조차 숙주의 면역체계를 속이는 기만작전을 펼칠 수 있다.

물론 속임수라고 다 같은 속임수는 아니다. 급이 다른 속임수가 여럿 있다. 미국 클라크대 심리학과 로버트 미첼 교수는 자연에 존재하는 속임수를 네 단계로 나눴다. 가장 단순한 첫 번째 단계는 생긴 걸로 속이는 기만행위다. 등에가 꿀벌 무늬를 흉내 내는 게 여기 해당한다. 두 번째는 다른 생물이 가까이 다가올 때 거짓 행위를 하는 경우. 건드리면 죽은 척 하는 곤충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까진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저장돼 있는 속임수다.

세 번째부턴 조금 복잡하다.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 습득하는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개는 주인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게끔 다리를 저는 척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속임수가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 저지르는 기만이다. 네 번째 가장 높은 단계는 단순한 조작이 아니라 의도적인 속임수다. 내가 저지르는 속임수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할 수 있을 때만 이런 고차원 속임수가 가능하다. 영장류와 같은 일부 동물만 할 수 있다.


고차원 속임수, 거짓말 탄생의 비밀

네 번째 단계의 속임수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 인간 거짓말의 기원을 알려면 이 비밀을 풀어야 한다. 여기에 도전장을 낸 진화심리학자 두 명이 1980년대 영국에 있었다. 세인트앤드루스대 리처드 번과 앤드루 화이튼이다. 이들은 유명한 영장류학자인 제인 구달과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연구를 유심히 지켜봤다. 침팬지는 거짓 행동을 잘했다. 땅에 묻은 먹이를 꺼내려고 열심히 땅을 파다가도, 다른 침팬지가 다가오면 아무 일도 없던 듯이 행동한다.

번과 화이튼은 다른 영장류도 이런 식으로 거짓 행동을 하는지 연구에 나섰다. 오래지 않아 남아프리카의 드라켄즈버그 산맥에서 비비(개코원숭이)의 거짓 행동을 찾을 수 있었다. 어른 비비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어린 비비는 특이한 행동을 한다. 뒷다리로 서서 멀리 계곡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다. 포식자가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다. 어린 비비의 행동을 보고 놀란 어른 비비들은 주의가 흐트러져 싸움을 멈춘다. 사실 포식자는 없었지만.

이렇게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거짓 행동은 모든 영장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괴롭히기, 가장하기, 숨기기 전략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암컷 마운틴고릴라는 종종 대장수컷 고릴라의 시야 밖으로 벗어나 젊은 수컷 고릴라와 바람을 피우는데, 이때 입을 앙다물어 신음소리를 숨긴다. 대장에게 걸리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전략적인 기만행동이다. 두 연구자는 영장류에서 발견한 네 가지 거짓 행동 사례를 모아 1988년 ‘교활한 지능’이란 책으로 펴냈다. 이들은 지능과 속이는 능력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영장류가 고차원 거짓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사회가 커질수록 거짓말도 늘었다

영국의 한 인류학자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바로 복잡한 사회관계망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빈 던바 교수는 1993년 ‘현대인류학’에 “영장류의 무리 크기와 신피질 크기가 비례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신피질은 대뇌 피질 중 가장 최근에 진화한 부분으로, 고도의 정신작용과 학습능력이 여기서 이뤄진다. 무리의 크기가 크고, 사회적 관계망이 복잡할수록 뇌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누가 누구보다 힘이 센지, 서로 관계는 어떤지 파악하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5마리로 구성된 무리에서 챙겨야 할 관계는 10가지밖에 안 되지만, 20마리로 이뤄진 무리에서는 190가지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무리가 커질 때 지적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실제로 동물을 관찰해보면, 단순히 무리가 큰 동물보다는 돌고래나 늑대처럼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일수록 뇌가 컸다.

번은 이 실마리를 놓치지 않았다. 신피질 크기와 거짓 행동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지 파고들었다. 번은 조수인 나디아 코프와 함께 18종의 영장류(하등영장류 3종, 신세계원숭이 4종, 구세계원숭이 7종, 유인원 4종)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신피질 크기가 클수록 거짓 행동도 많았다. 신피질이 비교적 작은 갈라고원숭이와 여우원숭이는 가장 덜 속였고, 유인원은 가장 많이 속였다. 번은 이 같은 연구결과를 2004년 영국왕립학회보에 발표했다.

영장류가 고차원 거짓 행동을 하게 된 비결은 결국 ‘사회생활’에 있었다. 크고 복잡한 무리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와중에 진화한 것이다. 기억능력과 학습능력이 늘어나면서 거짓 행동도 함께 발달했다. 진화의 압력도 있다. 속임수를 쓰는 개체는 먹이를 쉽게 얻고 번식도 잘 하지만, 들통 날 경우 무리에서 쫓겨나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결국 더 감쪽같이 속임수를 쓰는 쪽으로 진화하게 된다.
 
힘이 약하고 느린 인간이 위험한 선사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속임수를 궁리해야 했다.
 
인류의 성공비결은 거짓말

현생인류는 그 정점에 있다. 다른 영장류보다 월등히 속임수를 잘 쓴다. 사회학자 아르놀트 겔렌은 “다른 동물보다 힘이 약하고 느린 인간이 위험한 선사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덫과 함정을 궁리해내야 했다”고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속이는 능력이 늘었다는 말이다.

인간은 무리 규모도 유난히 컸다. 로빈 던바 교수는 “신피질 크기로 봤을 때 현생인류의 무리 규모는 150명”이라고 주장한다. 복잡한 사회관계망을 유지하기 위해 언어가 탄생했고, 거짓 행동도 거짓말로 진화했다. 물론 거짓말이 발각될 경우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했기에 모두가 극단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진 않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매일 무의식 중에 의도적인 혹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인간의 속임수는 동물과 차원이 다르다.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도 속일 수 있다. 심리학 용어로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할 때는 티가 난다. 말은 어떻게 짜맞춰보더라도, 호흡이나 땀, 시선, 표정, 목소리까지 완벽히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다면, 비언어적인 표현조차 거짓으로 바꿀 수 있다. 로버트 트리버스 교수는 ‘우리는 왜 스스로를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라는 책에서 “자기기만 능력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보다 잘 속일 수 있어 자연선택됐다”고 주장한다.

자기기만 능력 덕분에 인간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미국 철학자 데이비드 니버그는 2003년 독일 과학잡지 ‘빌트데어비센샤프트’와의 인터뷰에서 “자기기만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현재 삶이 비참할지라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니버그는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기기만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복잡한 사회생활은 거짓말을 낳았고, 거짓말은 다시 인류의 눈부신 발전을 낳았다. 거짓말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요소다. “호모 팔락스(Homo Fallax, 속이는 인간)”. 뉴잉글랜드대 진화심리학연구소장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우리는 왜 거짓말하는가’라는 책에서 현생인류에게 붙인 별명이다. 은근히 잘 어울리는 별명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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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거짓말 하는 인간, 호모 팔락스
Part1. 거짓말 잘하는 비결
Part2.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았다

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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