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미국의 게임 개발사 나이언틱과 일본의 게임업체 닌텐도사가 공동 출시한 ‘포켓몬 고(Pokemon Go)’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정식 출시지역이 아니지만 속초, 양구 등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게임을할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포켓몬스터 ‘덕후’들이 강원도로 몰리고 있다.
포켓몬 고의 가장 큰 매력은 마치 포켓몬 모험가가 된 것처럼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직접 포켓몬을 포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앱을 실행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면 현실 세계에 가상의 포켓몬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게임의 인기를 단순히 증강현실 기술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국내에서도 5년 전 포켓몬 고와 비슷한 증강현실 게임 ‘캐치캐치’가 서비스된 적이 있으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원작이 가진 콘텐츠의 힘이 성공요인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 덕후야”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포켓몬을 주제로 한 닌텐도 게임이 인기였다. 매 시리즈마다 2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울 정도로 흥행했지만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숨어있던 덕후들의 마음에 포켓몬 고가 불을 질렀다. 그들이 과감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덕후에 대한 인식 변화 때문이다.
덕후는 음침하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최근 변하기 시작했다. 헤럴드경제와 SK플래닛 광고부문이 2014년 1월부터 10월까지 덕후와 관련된 키워드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덕후는 ‘행복’, ‘인생’, ‘사랑’ 같은 긍정적인 키워드와 연관이 있었다. 덕후의 본래 장점인 전문성에 대한 언급은 더 많아졌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외에도 영화, 음악 등의 단어들이 자주 함께 언급됐다.
덕후 :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단어. 원래는 집이라는 뜻이지만, 바깥으로 외출하지 않고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이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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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 지연보다 강한 ‘덕밍아웃’
게다가 속초로 떠난 덕후는 혼자가 아니었다. 주위에는 함께 ‘덕밍아웃’을 한 친구가 있었다. ‘덕밍아웃’은 스스로 정체성을 공개하는 ‘커밍아웃’과 덕후의 합성어다. 속초에서 함께 포켓몬을 잡은 친구가 원래 알던 사이일 필요는 없었다. 취향이 같다면 금세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취향과 같이 주관적인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를 ‘아이-쉐어링(I-sharing)’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출신 지역과 학교 등 객관적인 공통점을 갖는 상태를 ‘미-쉐어링(me-sharing)’이라고 한다. 둘 중 친구를 사귈 때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이-쉐어링이다.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출신이 비슷한 사람보다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와 비슷한 반응을 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이-쉐어링을 통한 접근은 특히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여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과 소통이 단절된 실험 참가자가 비슷한 취향의 타인에게는 마음을 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대 심리학과 톰 피진스키 교수팀은 실험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지루함, 자연스러움, 외로움을 떠올리게 했다. 이어서 참가자끼리 자유롭게 대화한 뒤 친밀도를 평가했다. 그 결과 외로움을 느꼈던 참가자는 취향이 비슷한 이를 더 친밀하게 평가했다. 반면 자연스러움과 지루함을 생각한 참가자는 객관적인 조건이 비슷한 이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 혼자서 외롭게 포켓몬을 즐기던 덕후 역시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 때문에 포켓몬 고에 더욱 빠져들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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