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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화재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린다

컴퓨터가 마모되고 소실되기 쉬운 문화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기법이 동원된 이 작업은 문화재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라진 문화재의 원형을 찾아내기도 한다.

컴퓨터그래픽이 펼치는 '환상의 세계'는 더이상 등장 초기처럼 '놀랍고 신기한 일'로 여겨지지는 않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컴퓨터가 사회 전 영역에서 인간을 대신해 발휘하고 있는 능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요즘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의미가 없거나 그 비중이 작다는 말은 아니다. 이미 영화나 광고 등에 녹아든 컴퓨터는 이들 장르에 새로운 장을 열어 이전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으며, 오히려 앞으로는 이같은 현상이 더욱 가속화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여는 새 지평 중 최근 들어 주목을 끌고 있는 분야는 문화재 복원에 관한 것이다. '전통 문화 유산과 하이테크 기술의 만남'이라 할 이 기술은 단순히 컴퓨터 영상으로 문화재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라진 문화재를 추정, 복원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의 풍화로 손상된 문화재를 컴퓨터를 이용해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정확히 과학적으로 보존함으로써 더 이상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는 점과, 이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실오라기 같은 단서만으로도 최초의 원형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성을 띤다.

또한 이들 작업은 수작업에 비해 다양한 형태와 재료, 색채의 대안을 신속하게 제시해, 보다 합리적인 복원안(案)의 선택을 가능케 함으로써 고도의 정밀성을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화재의 컴퓨터 복원이 계속 이어지면 이들 데이터에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 '가상박물관'을 건립해 굳이 현장에 가지 않고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 이상의 체험이 가능하다.
 

국보 55호로 지정된 법주사 팔상전 실물과 컴퓨터그래픽. 법주사 팔상전은 현존 최고의 목탑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한 기술 확보하면 활용 무한대

원래 컴퓨터를 통해 문화재를 3차원 영상으로 복원하는 기술은 일본이 원조 격이다. 일본에서는 80년대 화재로 소실됐다 다시 세운 나라(奈良)의 주작문이 이음새 길이 등 잘못된 복원 도면을 기초로 세워졌다는 것을 오사카 대학의 환경 설계 공학 연구소가 컴퓨터로 입증하면서 문화재 복원에 컴퓨터 그래픽 이용이 본격화됐다.

이후 교토의 나생문, 법륭사 5층 목탑 및 금당 벽화를 비롯한 일본 내 문화재 복원과 보존으로 이어진 이 작업은 돈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문화재로 범위가 커지면서 이집트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이탈리아의 시스틴 성당 등을 복원 설계하기에 이른다.

한편 국내에서는 KIST 시스템공학연구소의 김동현 박사를 중심으로 이 분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김 박사팀은 지난 91년부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의 의뢰로 지금까지 낙석만 남아 있던 미륵사지 석탑을 복원한 바 있고, 구멍만 남아 있던 선사주거지를 추정해내기도 하는 등 3차원 문화재 복원에 괄목 할 성과를 거두어 왔다. 또한 최근에는 가장 오래된 목탑이자 국보 55호인 법주사 팔상전을 새로 측정,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보존시키는 개가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김 박사팀 외에도 같은 시스템 공학연구소의 오원근 박사팀이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을 통해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를 원래의 모습으로 재생한 바 있다. 건축물이 각 부재(部材)를 실측해 그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각 부분을 하나하나 짜맞추는 작업을 반복함으로써 원형을 찾는다면 벽화와 같이 2차원 평면으로 이루어진 문화재는 사진 촬영한 영상을 컴퓨터로 처리해 점차 선명한 윤곽선을 추출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컴퓨터에 의한 평면 재생은 카메라에 의한 촬영뿐만 아니라 적외선이나 X레이 촬영 등을 통해 벽화의 영상을 입력받아 처리하기 때문에 맨 눈으로 구분할 수 없게 지워진 부분에 대한 판정과 그림 속에 숨겨진 밑그림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밑그림이 만들어지면 각각의 영역에 대해 16만7천여가지의 색상중 원래와 가장 가까운 색을 선택해 복원도를 만드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컴퓨터 문화재 복원은 일단 목조건축물이나 석조건축물, 벽화에 걸쳐 한가지 기술이 확보되면 같은 형식의 문화재에 동일한 기법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그래픽 기술은 시간면에서나 비용면에서 각 분야에 응용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드웨어 기술과 함께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퍼스널 컴퓨터 정도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영상을 표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면 가장 최근에 완성된 법주사 팔상전의 재현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문화재가 새로이 탄생하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팔상전은 중심에서부터 탑이 세워졌다는 설과 층별로 아래에서 위로 탑이 세워졌다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연구팀은 이중 두번째 가설을 채택해 시뮬레이션을 제작했다.


목수가 목재깎듯 모델링

고건축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법주사 팔상전은 지난 67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해체 수리된 적이 있다. 공사 당시 문화재연구소는 팔상전을 앞에서 보고 그린 평면도, 밑에서 보고 그린 앙시도, 그리고 건물의 반쪽을 나누어 그린 단면도와 함께 해체 과정을 기록한 사진첩과 각 부재의 모양이 그려진 스케치집 등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 자료만으로는 건립 당시의 구조와 복원 과정을 정확히 재현할 수 없었다. 척(尺)단위로 쓰여진 기록자체가 워낙 부실했기 때문.

이에 따라 의뢰를 받은 김동현 박사팀은 아예 처음부터 모든 작업을 새로 시작하기로 하고 현지답사에 들어갔다. 첫번 답사에 나선 연구팀은 VTR 촬영으로 팔상전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기록하고 팔상전 각 부분, 즉 기단 부분과 공포부분의 문양, 기둥과 기둥사이의 연결부, 기와 모양새 등을 근접 기록함으로써 컴퓨터 모델링에 직접 쓰일 자료를 준비했다.

이어 이종호 연구원을 팀장으로 구성된 6명은 구(舊)도면과 고건축물 용어를 익히며 2차원 도면작업, 부재별 코드화 작업, 3차원 모델링 작업, 조립작업, 색상 입히기 작업, 복원을 위한 애니메이션 과정으로 작업을 세분화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크게 물체의 형상을 컴퓨터 내부에 정의하는 모델링, 정의된 물체를 컴퓨터 화면에 표현하는 렌더링(rendering), 시점을 시간축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시키면서 형상을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나뉘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팔상전의 외형을 컴퓨터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팔상전의 조립과정과 복원과정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각 부재를 3차원 모델로 컴퓨터에 입력해 관리해야 했다.

팔상전을 구성하는 부재의 수는 수천 개가 넘었고 이 부재들을 컴퓨터에 입력해 보관하고 관리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연구팀은 외형을 기준으로 층별로 이름을 붙이고 같은 충에 있는 부재는 안쪽 부재에서부터 바깥쪽 부재의 순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특히 공포부와 기와 서까래 추녀 도리 등의 부재는 별도의 이름을 붙였다.

팔상전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원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공포부분의 모델링. 이 부분은 3차원 솔리드 모델링 기법이 사용됐는데, 이 기법은 마치 목수가 목재를 깎거나 이음새를 파내는 작업을 한 것처럼 3차원 물체를 정의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3차원 물체의 형상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대상물의 기하학적 형상이 가진 각 정점의 3차원 좌표를 일일이 계산해 입력해야 했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면 모양이 같고 크기만 다른 물체의 경우 변수만 수정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물체를 정의할 수 있다.

연구팀은 "6층 건물 높이의 팔상전은 못을 이용하지 않고 목재에 홈을 파서 목재와 목재를 연결해 그 구조를 지탱하기 때문에 이 기법이 아니면 해결하지 못할 부분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문화재는 형태를 불문하고 건립 시점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과학의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 고미술이나 고건축을 연구해온 전문학자들의 고증이 필수적이다. 이 작업에도 문화재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의 고증이 따랐음은 물론이다.

한편 기와와 서까래 등의 모델링은 작성된 모델을 X Y축, 또는 그 반대 축으로 휘어주는 기법인 디포메이션(deformation)이 이용됐다. 기와 부분의 모델링은 팔상전의 전체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다. 끝이 바짝 올라간 기와의 선은 일본의 건축물을 연상케 하고 지나치게 휘어진 기와선은 중국의 건축물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디포메이션 기법은 바로 기와의 휘는 정도를 조절해 한국의 선을 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팔상전 재현작업의 실무를 담당한 이종호연구원이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원내 사진은 시스템공학연구소 김동현 박사.


선조들의 과학성 정당히 평가돼야

3차원 부재들의 컴퓨터 입력이 끝난 후 각 부재의 위치가 컴퓨터 내에서 그래픽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첫 시도에서 각 부재는 잘 맞지 않았다. 1층과 2층의 간격이 시각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탑이 높아 보였던 것. 부실한 도면이 오류를 가져온 것으로 판단한 연구팀은 실제 사진과 그래픽을 비교 해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잘못 배치된 부재들의 3차원 위치를 수정하는 작업은 우선 기둥부에서 시작해 팔상전의 기본 골격을 구성한 후 도리 공포 서까래 기와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 작업은, 예를 들어 기둥부분에서 아무 문제가 없던 부재도 기와를 배치하면서부터는 다시 위치를 조정해 주어야 할 만큼 많은 수정을 필요로 했다.

힘겹게 완성된 모델을 시각화 할 수 있는 파일로 변환한 다음의 일은 각 부재의 색상 입히기와 애니메이션 작업. 색상 입히기 작업은 단순히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재를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 팔상전의 자료 사진, 또는 비디오 영상을 입력 받아 각 부재의 질감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특히 기둥부는 오래된 나무 느낌, 기단부는 오래된 돌의 느낌이 나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입력받은 영상자료에 2차원 페인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정을 가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건축물의 복원은 일반적으로 시람의 시점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내부의 형상 등을 원하는 시점에서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과 부재의 조립과정을 연속적으로 묘사해 시공과정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의 건립에는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서부터 바깥쪽으로 탑이 세워졌다는 설과, 층별로 아래층에서부터 윗 층으로 탑이 세워졌다는 두 가지의 가설이 있다. 연구팀은 이중 층별로 탑이 세워졌다는 가설을 채택해 시뮬레이션을 제작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모델을 일단 컴퓨터에 입력시킨 후 부재의 조립과정을 순차적으로 기록하고 시점을 변화시키면서 영상을 제작해 VTR에 녹화하는 과정이다.

연구팀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바가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이들이 가장 먼저 꼽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에 대한 감탄과 자긍심. 1624년에 중건된 것으로 기록된 목조건축물(최초 건축 시점은 대략 6백년 전경)이 지금까지도 큰 손상 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은 다리가 2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과 비교할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 화려한 이탈리아 건축물에 감동하기 전에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과학성과 예술성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199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 이종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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