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토의 겉모습은 물론 땅속의 각종 매설물까지 수치로 된 정보로 기록되고 여기에 국가 통계가 합쳐진다. 국가 정보화사업의 하나인 이 컴퓨터지도가 완성되면 사회 각 분야에 소리없는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올봄 서울 동대문구 혜화전화국 관내 한국통신의 지하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이후 지하에 매설된 각종 시설에 대한 지하지도 등 지리정보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화재 이후 몇시간동안 원인은 물론 발화지점 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이어졌던 당시의 통신대란으로 서울 동대문구 일대는 삽시간에 암흑천지로 돌변했다. 지하철 1호선과 인접한 지역에서 발생된 이 사건으로 서울시 한전 한국통신 등 지하시설물 관리책임기관들은 화재에 대해 몇시간동안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지하매설물에 대한 종합적 관리체계의 부재가 빚어낸 대참사라고 지적했다. 지하에 매설돼 있는 각종 시설물은 국가기간망인 통신선로를 비롯 상하수도, 전기, 가스관로 등이 인접한 위치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같은 지하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은 제각각이다. 종합관리를 할 수 있는 기관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통신망을 비록 전력선도 한 곳만 이상이 발생하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모든 지역에 통신, 전기불통사태를 야기시킬수 있다. 각종 지하매설물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감독기관이 없다면 정보화사회의 새로운 인재(人災)가 언제 또다시 발생할지 모른다. 따라서 이 사고는 지하와 지상의 지형지물을 효율적으로 감시, 감독할 수 있는 디지털맵(전자지도)의 제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국가차원의 재해대책 수단의 확보를 제시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당시의 화재는 한국통신이 관장하는 지하 통신구내에서 발생해 피해는 통신두절이란 문제로 국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상하수도관, 전기 선로, 가스관 등이 함께 묻혀있는 지하공동구에서 발생했다면 피해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지하지도의 등장
도시의 매머드화와 함께 전력 통신 상하수도 등 국가기간시설은 최근 지하로 스며들고 있다. 또 한정된 토지를 최대로 활용해야 하는 대도시의 특성으로 지하공간은 새로운 주거형태로 건축관계자나 국토계획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최근 들어 서울 부산 대전 등 대도시에서는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한 방편으로 지하교통체계인 지하철을 건립하는데 이어 각종 기간시설을 지하에 매설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지하에 매설된 각종 국토관련정보는 기관별로 분산돼 있으며, 또 종이지도나 문서 및 통계표의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책적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선택하고 종합해 정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더구나 사회발전에 따른 정보량 급증과 기관간의 중복된 정보수집 및 작성으로 인한 낭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방자치제 움직임과 기간시설 관련 책임기관에서 이들 지하공간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책이 부분적으로 시행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지하통신구 화재로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던 한국통신은 지난 90년대초부터 시작된 지하 통신선로 종합정보망을 구축해오고 있다. 한국통신은 몇년 전부터 지하에 묻혀있는 각종 광케이블 등 통신관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지리정보시스템을 구축, 사용형태를 다양화시키고 있다. 지상의 대형건물을 중심으로 제작된 통신망관리정보시스템은 지상과 지하를 연계시켜 특정지역의 통신선로 상태와 각종 시설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제작된 지리정보시스템인 것이다.
일례로 광화문 일대에서 지하철 공사를 실시할 경우, 한국통신측은 지하철공사의 의뢰에 따라 통신관로 매설지점을 지하 명m, 어느 지점에 통신관이 묻혀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줘 굴착공사로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성남시는 올초 지난 92년부터 추진해온 상수도관리를 위한 정보시스템을 갖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성남시가 도입한 상수도관리시스템은 지하에 매설된 상수도 배관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 관로 공사내역, 노후된 배관의 교체현황 등 관로공사가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 누수발생시 차단해야 할 시설물 조회 및 교체 작업지시서 발행 등 생산된 수도물의 손실사고에 즉각적인 대처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이 시스템은 관로 관리기능 외에도 상수도 관련 조례위반정보, 월별 동별 업종별 사용가별 사용현황의 산출기능을 갖춰 수돗물의 생산, 공급이 사용처별 수요에 따라 체계화시킬 수 있게 구성돼 있다.
공사용 골재분포를 한 눈에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 92년 지하 골재자원의 효율적인 개발과 활용을 도모하기 위해 원격탐사와 인공위성측지시스템(GIS)으로 골재 부존지역의 위치와 개발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리정보시스템을 개발했다.
이태식 박사팀이 건설부의 의뢰로 개발한 'GIS를 이용한 골재수급관리시스템'은 골재수급에 관한 각종 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인공위성영상자료를 통한 골재부존 예상지역 등 지상정보를 추출, 경제적인 골재운송 유통로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주공간의 인공위성에서 촬영된 지표면의 영상을 이용한 이 시스템은 각종 자연 및 사회 경제적 정보를 지리적 공간위치에 일치시킨 것으로 국토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한 눈에 식별할 수 있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이 시스템은 또 골재가 묻혀있는 위치에서 공급지까지의 거리를 분석, 가장 경제적인 유통경로를 산출할 수 있게 해 지리정보시스템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컴퓨터시스템을 이용한 지리정보시스템은 정보화사회의 필수도구다. 즉 정보화사회화 경향에 따른 다양하고 세분화된 정보욕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첨단 자원관리기법이다. 더욱이 전국토의 70%이상이 산악으로 형성돼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같은 지리정보시스템의 활용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이같은 전산시스템으로 정부는 과다한 토지의 소유나 남용을 억제하고 토지이용의 효율화를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국토자료의 수집과 관리체계는 정부 및 민간부문에서 독자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중복투자나 공통적인 분류체계 부족으로 자료공유조차 힘들게 돼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수치지도(디지털 맵)의 우선제작이 선결과제다.
이같은 환경변화에 따라 국립지리원은 컴퓨터국토지도를 이른바 '국토지리정보시스템(GIS)구축사업'이란 이름으로 오는 2001년까지 완성한다는 목표로 최근 본격 작업에 돌입했다. 땅위 땅아래의 지형지물 등 온갖 국토정보를 입체적인 화상으로 표현하는 컴퓨터지도 제작이 우리나라에서 국가사업으로 본격화된 것이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우리 국토의 생생한 자연과 인공물의 겉모습과 속살을 송두리째 컴퓨터 자료화할 수 있게 된다.
대규모공사 기초계획도 단번에 해결
컴퓨터지도에는 지형 지질 표고 등 자연요소들은 물론 주요 건축물과 교통망, 심지어 전기 통신 가스 상하수도 등 지하매설물까지 들어가고, 여기에 더해 각종 국가통계가 곁들여진다. 이 모든 정보가 수치부호로 입력, 컴퓨터그래픽에 의해 입체화상으로 연출돼 각종 국토정보를 생생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면적 길이 부피까지도 수치데이터로 제공된다. 원하는 특정분야만을 꺼내볼 수도 있어 국가기간시설지도 관광지도 운전지도 하천지도 산림지도 인구지도 농업지도 등으로 국한해 다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국가정보화사업의 일환인 이 컴퓨터지도가 완성되면 사회 각분야에 소리없는 혁신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컴퓨터지도는 각종 정보를 계량적으로 분석하고 짧은 시간에 필요한 정보만을 통합 분리할 수 있어 기존의 종이지도와는 비할 바 없이 다양한 형태로 쓰여질 전망이다. 국가정책은 물론 일반의 생활패턴 및 기업경영에도 생산성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게 된다.
지금은 고속도로 노선을 결정하기 위해 하천지도 도시계획도면 지형지도 등 별개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종이지도들을 몇 종류씩 갖다놓고 이리저리 짜맞춰봐야 한다. 또 관련통계자료까지 대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초계획을 수립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이를 간단한 컴퓨터조작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GIS는 국민생활의 편리성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자동차로 경기도내 역사유적지를 둘러보려 할 경우 컴퓨터지도를 이용하면 도내 유적지와 도로노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여행목적지까지의 최단거리 노선정보도 얻을 수 있다. 자동차에 부착, 교통안내를 받을 수 있는 GPS를 이용한 자동차 항법장치(Car Navigation System)의 등장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투자용으로 활용하면 구입하려는 토지와 인근지역의 공시지가와 토지특성 및 주변환경 등을 화상과 수치데이터로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GIS의 역사
이처럼 다양한 목적에 따라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GIS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에서 처음 태어난 GIS는 60년대 들어 농촌지역에서 도시로 인구이동이 극심해짐에 따라 농촌지역의 토지이용이나 도시지역의 토지관리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전국적으로 토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야겠다는 발상에서 캐나다정부는 '농촌 및 도시지역 개발법(Agricultural & Urban Development Act)'을 제정했다.
그러나 전국의 토지이용도를 제작하는데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소요되는 지도의 도엽수가 소축척의 경우 수백장, 대축척의 경우 수천장이나 필요했던 것. 또 이러한 지도를 제작하는데 몇년의 시간이 요구되며 제작에 따르는 기술인력의 확보도 어려웠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컴퓨터를 이용한 지리정보시스템이다.
컴퓨터 기술이 크게 발전했던 70년대 들어 GIS는 다양하게 발전해 나갔다. 이같은 추세는 크게 두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천연자원 및 환경분야를 관리하는데 사용되는 것과 또다른 하나는 토지나 공공시설의 관리차원에 활용되는 것이었다. 90년대 접어들어 PC의 성능향상으로 GIS는 걸림돌로 작용해온 자료입력부분을 크게 개선할 수 있게 돼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또 미 국방부에서 발사한 냅스타(NABSTAR)위성을 이용한 자동위치측지시스템(GPS)는 정확한 전자지도 지도제작에 크게 기여했다. 우주궤도에 발사된 24개의 위성중 3개 이상을 이용해 위치측정을 할 수 있는 GPS는 이같은 GIS 대중화를 크게 자극시킬 수 있게 됐다.
선진외국은 이같은 국토지리정보시스템 구축작업을 이미 오래 전에 착수해 미국은 축척 5백분의1 컴퓨터지도를 실용화하는 단계에 와 있고 일본은 1만분의1 컴퓨터지도를 10년간의 작업 끝에 지난 86년 완료했다. 미국 일본 유럽 대만 홍콩 등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햄버거 가게 등에서 주문자의 위치와 교통로 등을 고려, 컴퓨터로 최단배달경로를 알아낼 만큼 일반화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지리원은 90년초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지도제작으로 GIS의 틀을 닦게 됐다. 국립지리원은 5천분의1 지도의 전산화를 지난 92년부턴 시작해 이제 겨우 1백50도엽(장)을 시험적으로 컴퓨터에 입력한 상태다. 이는 전국을 컴퓨터에 집어넣기 위해 필요한 총1만7천도엽의 1.5%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전국토를 전산화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2백억-3백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국토개발연구원 김재영연구위원은 "GIS 시스템 구축여부는 이제 한 나라의 사회간접자본시설 성숙도를 가름하는 최첨단 잣대로 여겨지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국가경쟁력 강화차원에서도 하루 빨리 완성해야 할 중대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필요성에 따라 정부는 최근 전산화된 5천분의1 이하의 지형도에 토지 자원 시설물 환경 사회 경제통계 등 관련정보를 담는 GIS 구축사업을 범정부차원으로 벌이고 있다.
최근 경제기획원이 수립한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전력 통신 댐건설 등 각 분야에 필요한 GIS사업을 국가전산망사업에 포함시키는 국책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여기에는 과기처 체신부 상공부 총무처 내무부 한국전력 한국통신 국립지리원 한국전산원 등 관련 10개기관이 참여한다. 현재 경제기획원은 국가적인 GIS가 구축될 경우 향후 5년 이내에 50여종 이상의 GIS 적용 업무가 개발될 것으로 예상, 수조원의 비용절감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 이에 따른 작은 정부의 구현과 함께 증대하는 교통 환경문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등 각종 행정업무의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기본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관리에 일대 혁신을 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GIS는 앞으로 수문관련 재해방지시스템, 지진관측시스템, 교통계호기 및 도로관리시스템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포장 관리시스템, 위험물 수송 및 비상교통대책수립 응용시스템과 교통영향평가, 도로 유지관리시스템 등은 물론 통계시스템으로도 활용돼 한정된 국토공간의 균형을 추구하고 국민생활의 쾌적성을 유지하는데 GIS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