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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내 이름은 ‘쥐D’, 인간 질병 대신 앓쥐, 그렇게 인류를 구하쥐

2020년 쥐의 해

2019년 11월 28일 중국 네이멍구에서 네 번째 흑사병 확진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흑사병은 1347년 유럽에서 창궐해 14세기 유럽 인구의 30%를 앗아간 무서운 병입니다. 당시 최소 7500만 명이 사망하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기록됐죠. 이에 네이멍구 보건당국은 대대적인 쥐 퇴치작업을 펼쳤습니다. 133km2 넓이의 땅에 헬리콥터 17대를 동원해 총 14만t(톤)이 넘는 쥐약을 살포했습니다. 그런데 흑사병을 옮긴 주범이 쥐가 아니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는 2020년 경자년의 주인공인 흰색 쥐인데요. 

‘쥐D(GD 아닙니다)’ 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수정란부터 성체까지 ‘병원체 프리’ 환경

 

여러분 “쥐-하(쥐D 하이라는 뜻. 펭-하 따라 한 거 맞음)”. 저는 전 세계 쥐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나온 쥐D입니다. 소속은 충북 오창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그곳에서도 실험동물자원센터 출신입니다. 오늘은 흑사병에 대해 해명도 할 겸 인간 여러분들이 쥐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우리가 누군지 제대로 알리려고 나왔습니다. 


먼저 흑사병인데 말이죠.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연구팀이 1348~1813년 발생한 총 9건의 흑사병 사례를 분석했더니 이 중 7건이 쥐에 의한 감염보다 인간 여러분의 옷에 기생하는 벼룩이나 이에 의한 감염일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18년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도 실렸죠. 우리 쥐들이 그간 흑사병의 주범으로 억울하게 몰린 게 아니면 뭡니까. doi: 10.1073/pnas.1715640115  


연구팀은 이런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만약 쥐가 흑사병을 퍼뜨린 매개체였다면 그렇게까지 빨리 퍼지지 못했을 것이라고요. 물론, 우리 몸에 살던 벼룩이 흑사병을 옮겼다면… 네,네, 그럴 가능성이 있는 건 인정합니다만,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만은 아닌 게 확실합니다. 


사실 인간 여러분은 우리가 더럽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흑사병에 대한 오해도 그래서 생긴 것 같고요. 하지만 노노노~. 영화에서 하수구에 사는 쥐만 봐서 생긴 편견입니다. 실험동물의 삶을 사는 쥐들은 얼마나 깨끗한지 얘기해 드릴게요. 


우리 집안은 사실 엄청난 대가족인데, 실험동물자원센터에만 2만 마리쯤 될 겁니다. 이렇게 대가족이어도 우리끼리는 서로 누가 누군지 알아요. 다들 다르게 생겼거든요. 뚱뚱한 애가 있는가 하면 털이 갈색인 애도 있고, 심지어 ‘누드’로 돌아다니는 친구들도 있어요. 하하. 저는 쳐다보기도 민망한데, 인간은 ‘누드마우스’라며 애지중지해요. 


우리가 다들 다르게 생긴건 유전자가 조금씩 달라서 그렇대요. 약 3000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나 뭐라나. 이런 저희에게 인간은 유전자변형 쥐(GEM·Genetically Engineered Mouse)라는 이름을 붙여 놨더군요.      


실험동물자원센터에는 미래에 저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날 수정란도 3000여 종이 더 있습니다. 수정란들은 영하 196도 질소탱크 속에 꽁꽁 얼어 있어요. 그러다가 인간이 필요할 때 꺼내서 해동을 시키죠. 그 다음은 가임신 상태(임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호르몬의 변화를 유도한 상태)의 대리모에 착상시켜 키웁니다. 그리고 3주 뒤면 짜잔, 어린 친구가 태어나죠. 그럴 때마다 제 새끼가 태어난 것처럼 기쁘답니다. 


저 같은 어른 쥐들은 10층 아파트에 사는데, 네다섯 명이 방 하나를 같이 써요. 곡물로 만든 큐브형 사료와 깨끗하게 정제된 물이 항상 제공되는 호텔형 아파트랍니다. 실내 온도는 18~23도, 습도는 60~80%로 유지돼 아주 쾌적하고요. 인간 연구자가 우리 집에 놀러 오려면 강한 바람으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에어샤워로 온몸을 소독해야만 들어올 수 있답니다. 


사실 우리는 냉동 수정란 상태부터 유전자변형 쥐로 태어날 때까지 병원체 감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SPF(Specific Pathogen Free) 상태로 유지돼요. 바이러스가 아예 없으니 감기 걸릴 일도 없죠. 가끔 건강검진도 받아요. 혈청을 이용한 항체 검사에서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 곰팡이 등 30여 가지 병원체에 감염되지는 않았는지 확인받아요. 우리 쥐 친구들이 얼마나 청결한지 이제 충분히 이해됐죠?  

 

 

번식력 뛰어난데 작고 가볍기까지

 

우리(족보상 이름은 Mus musculus입니다) 옆집에는 친척인 래트(Rattus norvegicus)가 살고 있습니다. 얘네들은 우리와 같은 설치류인데, 덩치가 훨씬 커서 같이 살 수가 없어요. 너무 많이 먹거든요. 래트 옆집에는 토끼, 개, 원숭이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는 저 같은 흰쥐가 ‘핵인싸’에요. 인간들이 우리를 가장 많이 찾거든요. 


자료도 있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8년 동물실험 및 실험동물 사용 실태 보고’를 보면 2018년 한 해 국내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은 372만7163마리로 조사됐습니다. 그중 저를 포함한 설치류가 무려 84.1%(313만3927마리)를 차지했죠. 설치류 안에서도 우리 같은 쥐가 73.5%(273만9198마리)로 가장 많고, 래트, 기니피그, 햄스터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핵인싸 비결이 하나 있기는 해요. 우리가 번식력이 좋거든요. 임신 기간이 3주 정도여서 포유류 중에서도 정말 짧은 편입니다. 게다가 새끼는 한 번에 10~14마리 낳죠. 태어난 새끼들은 6~8주가 지나면 어른이 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출산을 할 수 있습니다. 포유류 세계에서 이런 역대급 번식력을 보유한 건 아마 우리 같은 설치류가 유일할 겁니다. 


작고 가벼운 것도 인기 요인이라고들 해요. 제 몸무게요? 25g이랍니다. 옆집 개는 10kg이나 나간대요. 제 몸무게의 400배죠. 그래서 저는 200~300명과 같이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데, 개는 10마리가 같이 살기도 어렵대요. 


당연히 식비도 우리가 훨씬 덜 들죠. 종종 특식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지금까지 먹은 특식 중 가장 비싼 밥은 1g에 1억 원이었어요. 우리가 이 밥을 먼저 먹어보고 이 밥을 인간이 먹어도 안전한지 확인하거든요. 


우리는 1g만 먹으면 되는데, 몸무게가 2.5kg인 토끼는 100g을 먹어야 한대요. 게다가 한 명만 먹으면 안 되고 여러 명이 먹어야 하니 경제적인 면에서도 우리만 한 동물이 없죠. 참고로 2018년 한 해 동물실험에 참가한 친구들 중 38%(141만5631마리)가 약물 안전성 평가에 참여했어요.


저는 지구 시간으로 1년 살았어요. 평균수명이 2~3년이니까 인간으로 따지면 40대쯤 됐겠네요. 지난번에 1g당 1억 원짜리 비싼 밥을 먹은 뒤로 건강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인간 과학자들이 와서 제 건강 상태를 계속 체크해요. 제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별 이상이 없으면 인간도 이 밥을 먹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이 밥이 인간의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던데요. 아, 옆집 개는 이 비싼 특식을 못 먹었대요. 쯧쯧. 개가 10년쯤 사니까 저희보다 수명이 긴데, 오히려 이게 인간 과학자에게는 별로인가 봐요.   


굳이 왜 우리한테 이런 비싼 특식을 먹이냐고요? 새로운 약을 개발할 때는 사람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하기 전에 우리와 같은 동물에게 투입하는 전임상시험을 꼭 거쳐야 해요.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도 우리를 통해 안전성이 확인된 제품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인간의 건강한 삶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이제 아시겠죠?

 

 

신약 연구용 유전자변형 쥐 1891종 개발지

 

저는 요즘 오디션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이 괜히 쥐D겠어요. 이 오디션은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Korea Mouse Phenotyping Center)이 개최하는데요. ‘힙’하게 줄여서 KMPC라고 합시다. 


KMPC는 2013년부터 이 오디션을 개최하고 있어요. 오디션을 통과하기만 하면 스타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들 해요. 그런데 오디션 통과가 만만치 않습니다. 1년에 한 번, 20위 안에 들어야 비로소 인간 여러분과 만날 수 있죠. 


그러려면 200여 가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일단 제 동생은 유전자 가위로 ‘Slc24a3’이라는 유전자를 없앴어요. 이렇게 유전자를 변형해서 유전자변형 쥐가 돼야 오디션 참가 자격이 주어져요. Slc24a3는 칼슘, 포타슘 이온과 소듐 이온을 교환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인데, 2번 염색체에 들어있습니다. 이 유전자를 없앴더니 제 동생의 팔다리 힘이 엄청 세졌답니다.


지난번에는 눈코입과 손가락, 발가락 등 신체검사도 했습니다. 혈액을 뽑아서 혈압과 당뇨 여부도 확인했고요. 장기에 이상이 없는지도 체크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테스트를 통과하고 있어요. 


‘마우스 종합서비스 포털(mouseinfo.kr)’에 가면 그간 오디션을 통과한 스타 쥐의 프로필을 볼 수 있는데요. 현재 380마리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 있습니다. 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스타 쥐 선배님은 전사 촉진제 중 하나인 ‘Fryl’ 유전자를 제거했죠. 그런데 오디션 과정에서 콩팥이 커지는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스타가 되려고 하니 일이 술술 잘 풀리더라구요. 인간 과학자들이 꾸준히 연구해서 콩팥이 커지는 이유를 밝혀냈거든요. 2018년 3월에는 논문에 이 선배님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콩팥이 커진 이유는 콩팥 속에 미세한 관구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대요. doi: 10.1177/1535370218758249

 

 

실험쥐 대체할 미니 인공장기 ‘오가노이드’

 

최근에는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대신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불리는 애를 키운대요. 오가노이드는 보통 줄기세포를 이용해 배양접시에서 키운 미니 인공장기라고 하더라고요. 세포와 달리 3차원 구조여서 진짜 장기와 더 닮은 게 장점이라고 해요. 


그런데 지난번에 인간 과학자들이 고민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를 책임지고 돌보는 김형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자원센터장이 “아직 오가노이드로 실험동물을 완벽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며 한숨을 쉬던데요.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는 간(liver)만 해도 간줄기세포를 배양해 간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될 것 같지만, 간이 간세포로만 이뤄진 건 아니래요. 간세포끼리 연결하는 세포도 필요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세포, 신경세포 등이 다 있어야 진정한 오가노이드의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오가노이드 기술이 여기까지 다다른 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가노이드를 화학물질 스크리닝 같은 예비실험에만 활용한다고 합니다. 신약 개발 초기에는 후보물질만 수십 종이거든요. 우리 대신 오가노이드로 이런 후보물질의 효과를 테스트하는 거죠. 


2019년 12월 3일에는 큰 행사가 열렸어요. 저보다 먼저 떠난 우리 가족을 추모하는 위령제였죠. 마침 비도 쏟아지고 궂은 날씨였지만 과학자들이 정말 많이 참석했더라고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사료도 함께 올려줬어요. 우리에게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됐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 설명이면 우리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건 충분히 알겠죠? 2020년은 우리의 해라고 하니 제가 더 열심히 발로 뛰며 우리와 인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자원센터 김형진 센터장, 남기환 책임연구원

202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오창=이영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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