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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깃든 구조의 신비

거미줄의 원리를 모방한 현수교

벌집 구조로 만든 종이다리 위로 트럭이 지나가려 한다.흔히 종이다리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약간의 찌그러짐이 있었을 뿐 트럭은 보통 다리를 건너듯 쉽게 지나갔다.어떻게 종이가 트럭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해협에 있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그 경관이 너무 빼어나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대표적인 구조물이다. 하지만 금문교의 멋진 모습은 빠른 물살, 잦은 폭풍과 안개, 그리고 지진 등 많은 외부 힘을 효과적으로 견뎌낼 수 있게 선택한 건축방식에 있다. 즉 지형적 특성에 맞게 구조공학을 최대한 활용해서 현수교 형태로 건설한 것이지 멋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금문해협은 지형적으로 흔들림이 많고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다양한 외부 힘에도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 다리가 필요했다. 이것을 가능케 해주는 방식이 현수교이며 핵심은 주탑과 케이블에 있다. 주탑은 케이블로 연결된 다리가 어떤 외력에도 버틸 수 있게 땅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설치돼 있다. 다리 양끝에서 연결된 중심 케이블은 주탑 2개 사이에 빨랫줄처럼 곡선을 그리면서 매달려 다리 전체를 지지한다. 여기에서 수직으로 내려진 케이블이 다리 상판을 연결하고 있다.

케이블은 강철 여러개를 겹쳐서 만든 외가닥 또는 나선형 로프로 만들어져 있으며 중심 케이블의 지름이 0.92m에 달한다. 늘어나거나 당겨지는 힘(인장력)에 매우 강해서 38만t이 넘는 상판을 지탱할 수 있으며, 다리의 흔들림에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가느다란 철사 묶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케이블.


자연에서 배운다

인공적으로 만든 구조물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그 형태와 원리를 얻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하게 지나치기 쉬운 나뭇가지와 잎사귀, 그리고 거미줄 같은 자연물은 제나름대로 가장 효율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는 힘과 물, 그리고 영양분을 분배하는 효율적인 원리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거미줄은 1차원의 줄에서 2차원의 망으로 발전해 3차원적인 공간을 형성하는 마술적인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일생동안 경외와 찬사를 가지고 이들에 대해서 연구하는 이유다. 이런 자연의 효율성은 아무도 제대로 흉내를 낼 수 없다. 매우 복잡한 원리가 혼재돼 있어서 정확한 원리를 규명하기 어렵다. 다만 인간은 이들의 형태를 단순하게 모방할 따름이다.

지름이 10cm인 통나무, 그리고 지름이 1cm인 나무를 묶어서 지름 10cm가 되도록 한 나무묶음에 힘을 가했을 때 어떤 것이 더 잘 부러질까? 같은 재질일 경우 통나무가 더 쉽게 부러진다. 통나무의 한부분이 약해져 금이 가기 시작하면 힘이 계속 그 부분에 집중돼 한덩어리인 통나무는 쉽게 부러지게 된다. 이에 반해 나무묶음은 나무 하나가 부러지더라도 나머지 나무들은 각각 외부 힘에 저항하기 때문에 통나무처럼 힘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전체에 분산된다. 또한 통나무처럼 한덩어리가 아니라서 부러진 나무 위치와 동일한 부분이 연이어 부러질 가능성도 적다. 그래서 통으로 된 구조보다 여러개가 모여서 이룬 구조가 외부에 힘에 대해 더 잘 견디는 특성을 가진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을 이겨낼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힘이 구조물 전체에 골고루 분산돼 어느 한쪽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물은 개체가 만들어내는 재료의 특성이 가장 효율적이고 절제된 상태로 잘 발휘돼 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은 크게 압축력(밀기)과 인장력(당기기)으로 구분된다. 자연구조는 이런 외력 중에서 한가지 형태에 잘 버틸 수 있게끔 발전한다. 예를 들어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배열을 살펴보면 인장력에 잘 견딜 수 있게 섬유질의 결 방향으로 계속 발달된다. 줄다리기 시합에서 사람이 일직선의 방향으로 힘을 집중해야 가장 효율적인 것처럼 한쪽으로 능력을 발전시킨다. 그래서 인공 구조물도 이를 모방해 압축력과 인장력 중 어느 한쪽 힘에 강한 자연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스티로폼에 물체가 떨어지면 탄력을 이용해 충격을 완화시킨다. 이처럼 인장구조도 재질의 탄력성을 이용해 외부힘을 흡수한다. 이런 탄력성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빨랫줄처럼 아래로 볼록하거나 축 처진 형태를 갖춰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나뭇가지와 거미줄이 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효율적이고 치밀한 구조인 나뭇잎과 거미줄.


방탄조끼 재질보다 강한 거미줄

가을에 감나무나 사과나무 같은 유실수를 보면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 때문에 땅까지 축처진 나뭇가지를 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열매가 커져 나뭇가지에 많은 힘이 가해진다. 하지만 나뭇가지는 굵기에 비해 훨씬 무거운 과일을 버틸 수 있는 인장구조를 지니고 있어 부러지지 않고 축 처진 형태로 열매의 무게를 버틴다. 이때 나뭇가지가 버틸 수 있는 인장력보다 더 큰 힘이 가해지면 부러진다. 그래서 과수원에서는 여름에 적당히 열매를 따서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한다. 거미줄도 비슷한 특성을 지니지만 약간 다르다. 우선 거미줄 자체가 인장력에 강한 재질로 돼 있다. 방탄조끼에 사용되는 케블러섬유가 4% 늘어나는데 반해 거미줄은 15%나 늘어나 외부 힘을 흡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더욱이 거미는 이런 거미줄을 효과적으로 엮어서 인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든다.

거미줄 같은 인장구조는 중심이 적절하게 고정돼 있어야 외부 힘에 잘 견딜 수 있다. 이를 배의 닻과 같다고 해서 앵커라고 부른다. 거미줄이 주변에 얼마나 잘 앵커돼 있는지 살펴보면 인장구조가 보여주는 자연의 경이를 맛볼 수 있다. 현수교도 자연의 인장구조 특성을 활용한 것으로 인장력에 강한 케이블이 있고, 다리 무게를 지탱하게 도와주는 케이블 앵커가 있다.

한편 압축력에 강한 효율적인 구조는 조개껍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개는 아치형으로 이뤄진 껍질이 힘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는 구조로 수압과 갯벌의 압력을 견뎌낸다. 얇은 껍질로도 수압을 이겨낼 수 있도록 최적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서양건축에서 이런 구조를 가리켜 조개라는 뜻으로 쉘(shell) 구조라고 부른다.

중세의 교회건물처럼 벽돌과 석재를 3차원 형태로 둥글게 만든 모습이 돔구조이다. 이런 돔형의 구조와 쉘 구조를 아치구조라고 한다. 아치는 어느 한쪽에 작용하는 압축력을 계속 이어지는 곡선 구조에 분산시킨다. 또한 중력방향으로 가해지는 힘을 지반으로까지 끌고가 최소화하는 원리로 구조를 유지한다.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과 각종 터널도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아치가 연속적으로 만들어진 형태다.

가장 효과적인 압축구조인 위로 볼록한 상태의 아치를 뒤집어 놓으면 오목한 모양의 인장구조가 된다. 인장구조가 케이블처럼 아래로 늘어진 상태로 외부 힘에 대해 가장 효율적으로 힘을 분산시키듯이 아치구조는 곡선형으로 힘을 분산시킨다.

이와 같은 생각을 확장하면 모든 방향으로 작용하는 외부와 내부 힘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는 다름 아닌 둥근 구가 된다. 위로는 아치구조를 아래로는 인장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육각형의 벌집도 구처럼 인장구조와 아치구조가 혼합된 구조다. 특히 두께가 0.1mm정도로 매우 얇으면서도 자체 중량의 30배 가까이 저장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튼튼한 모습이다.

벌집구조의 튼튼함을 알아보기 위해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벌집구조로 만든 종이다리 위로 트럭을 지나가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나무다리는 트럭이 지나가다가 부서졌지만 벌집구조로 만든 종이다리는 트럭이 지나간 뒤에도 끄떡없었다. 벌집구조는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육각형이 나뭇가지 여러개를 묶어놓은 경우처럼 외부 힘을 전체에 고르게 분산시키며, 빈 공간을 활용하는 탄력성으로 외부 압력을 견뎌낸다.


인장구조의 다양한 모습.(위)멋진 아치구조 조형물.(아래)


독수리가 힘차게 나는 이유

새는 자기 몸무게와 공기부력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날게 된다. 이때 비행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새의 몸무게와 날개의 크기이다. 몸무게를 최소화하면서도 비행에 필요한 긴 깃털을 효과적으로 지탱하기 위한 새의 날개 뼈는 안쪽이 빈 튜브 구조를 이룬다. 안쪽이 비면 같은 무게로 꽉찬 경우보다 인장력과 압축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휘는 힘(휨 모멘트)에 대해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

튜브 구조를 더욱 강하게 변형한 형태가 트러스 구조인데, 독수리의 날개 뼈가 그렇다. 트러스 구조는 여러개의 삼각형을 형성해 어떠한 외력의 방향에 대해서도 안정적으로 힘을 분배한다. 즉 압축력에 대한 저항도가 더 강해진다. 독수리 날개뼈 안을 들여다보면 내부적으로 뼈가 삼각형으로 구조화된 것을 볼 수 있다. 독수리 날개 뼈 형태의 트러스를 소위 와렌 트러스라고 하며 실제로 비행기 날개구조에 유사하게 이용되고 있다.

주위에 흔한 나무에서도 튜브 구조를 볼 수 있다. 나무는 커질수록 둘레가 주로 강한 섬유질로 만들어지고 안쪽은 부드러운 조직으로 이뤄진다. 바깥쪽의 섬유질은 나무의 무게(압축력)와 비바람 같은 외부 힘(인장력)에 잘 견디는 역할을 하고, 안쪽의 부드러운 조직은 영양분을 실어 나른다. 수십층이 넘는 고층 건물이 안전할 수 있는 것은 건물 외곽이 외부 힘과 건물 무게를 충분히 감당하면서도 안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배치한 튜브 구조이기 때문이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바람으로 인해 건물이 휘게 되는 힘이 커지므로 인장력에 강해야 되고, 층수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건물무게에 따른 압축력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튜브 구조는 구조물의 무게를 최소화하면서도 공간 활용을 최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형태다.

근육이 튼튼해야 뼈도 튼튼

사실 인장력과 압축력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예가 인체다. 우리 몸에서 뼈는 단단해서 압축력에 잘 견디고, 근육은 인장력에 잘 견디도록 구성돼 있다. 대표적인 예로 발을 살펴보면 발목에서 발바닥에 이르는 뼈가 몸무게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하중과 압축력에 견딜 수 있게 한다. 압축력에 저항하는 뼈대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주기 위해 인장력을 견디게 하는 부분이 필요한데, 발바닥 근육이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노인들이 몸에 통증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이유가 흔히 뼈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뼈가 튼튼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조공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장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들면서 느끼게 되는 허리 통증의 주요원인은 등뼈보다 등균육과 배근육이 약하기 때문이다. 즉 등뼈를 형성하는 아치구조 자체의 문제보다 이를 지지해주는 인장구조인 등근육과 배근육이 약해지면서 등뼈에 힘이 전가되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가고, 그 결과 쉽게 피곤함과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운동으로 근육 건강과 탄력을 유지하면 노년의 허리 건강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구조공학적으로 상기시켜준다.

운동을 통해 근육의 탄력성을 유지시키지 못하면 근육이 축 처져 인장력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한다. 뼈와 근육이 조화를 이뤄 적절하게 힘을 분배하지 못하면 결국 건강을 잃게 된다. 금문교의 수명이 유지되기 위해 성능개선과 함께 신기술, 신재료를 지속적으로 투입하는 것처럼 인체도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체격의 사람들이 있다. 구조공학적으로 보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그에 맞게 뼈와 근육이 발달돼야 하고, 반면에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무난할 수 있다. 하지만 좀더 세밀하게 보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근육보다는 지방이 발달해 뼈가 버티기 힘들다. 또한 마른 사람은 체격이 왜소해지면서 근육까지도 약해진다. 이들은 압축력에 강한 뼈가 있기는 하지만 인장력에 견딜 수 있는 근육이 약해 몸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외모를 위해 마른 체격인데도 더 체중을 줄이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다.신체 구조를 무시하며 추구하는 허상적인 골격,자연의 조화를 무시하는 외모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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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홍성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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