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하마터면 멸종될 뻔한 우리의 토종 삽살개의 혈통보존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하지홍교수. 그는 마침내 삽살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받도록 하고 이 개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개로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
지난 해 가을 북한의 풍산개가 한 농수산물 수입업자에 의해 한꺼번에 수십 마리나 반입돼 화제가 됐었다. '호랑이 잡는 개'로 유명한 풍산개는 북한이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는 개.
그러나 남한에도 이에 못지 않은 개가 있다. 진돗개와 삽살개가 그것. 진돗개는 일찍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한국을 대표하는 개로서 뭇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하지만 진돗개에 비해 삽살개는 그동안 덜 알려져 왔다. 더구나 삽살개는 이 땅에서 하마터면 멸종될 뻔했다. 일제 때 일본 토종개와 전혀 다르다는 이유로 대량 도륙의 시련을 맞았기 때문.
이러한 삽살개를 토종으로 되살리고 마침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받도록 밤낮으로 뛴 하지홍 교수(41·경북대 유전공학과). 그는 삽살개(일명 삽사리)야 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개라고 주장한다.
부자 2대에 걸친 삽살개보존작업
"삽사리 하면 털이 긴 개, 자그마하며 곱상하게 생긴 외국 개들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테리어 푸들 등의 외국 개 밖에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삽사리가 털이 긴 외국 개들에 대한 총칭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자 가운데 삽사리 방(尨)자가 지금도 쓰이고 있고 조선조 중종 때의 '훈몽자회'에는 견(犬)자를 '가히(개) 견, 속칭 삽살개'라고 풀이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삽살개는 우리의 토종이며 오래 전부터 많이 살아 왔으니까 한국을 대표하는 개라고 해야 합니다."
그는 이러한 삽살개가 일제시대에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끔찍한 수난을 당했다고 말한다.
"만주주둔 일본군의 방한복과 털신 등의 재료로 쓰기 위해 이 땅의 개들을 무차별 징발, 도살했습니다. 대동아전쟁 중에는 연간 30만-50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는데, 당시 천연기념물로 지정 등록된 진돗개를 제외하고는 삽살개를 포함한 이 땅의 개들이 모두 엄청난 수난을 겪었습니다."
하교수가 삽살개의 혈통보전에 온힘을 기울이는 것은 부친 하성진 옹의 영향을 맏은 데 기인한다. 하옹은 국민학교 1학년 때 집에서 기르던 삽살개를 데리고 산보를 나갔다가 개를 일본순사에게 빼앗겼다. 느닷없이 나타난 일본순사가 개를 빼앗아 몽둥이로 마구 때린 뒤 자루에 담아 사라진 것.
하옹의 '잃어버린' 삽살개를 찾는 운명적인 인생역정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경북중을 졸업한 그는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주일 단식 끝에 축산을 공부할 결심을 관철, 북경대 농대에 진학했다. 대학졸업 후 대구농전(경북대농대 전신)에서 강의하면서 민속자료와 옛문헌 등을 통해 삽살개가 신라시대부터 우리 선조의 사랑을 받아온 토종개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강의시간에 일제의 우리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사라져버린 삽살개를 되찾아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자이자 대학에 함께 재직하던 탁연빈 교수 등과 함께 60년대 중반 수년 동안 전국각지를 돌며 탐문한 끝에 삽살개 30여 마리를 찾아냈다.
그는 이 삽살개들을 농장에서 키우면서 한동안 삽살개 보존에 힘썼다. 그러나 학교일과 자금난 등으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이 즈음 장남 하지홍 교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경북대 유전공학과에 부임하면서 삽살개 보존작업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오랫만에 목장에 돌아와 삽살개를 찾아보니 숫자가 줄어든 데다 관리소홀로 꼴이 말이 아니더군요. 이대로 방치한다면 삽살개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때 유전공학을 전공한 내 지식을 삽살개의 보존과 연구에 활용하기로 결심했지요."
만고 끝에 천연기념물 지정받아
하교수는 당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토로한다. 다행히 아버지와 동생이 경영하는 목장이 있어서 사육공간은 쉽게 마련할 수 있었으나 새끼가 늘어날수록 개집을 짓고 먹이를 대고 예방접종 등을 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돈이 많이 들어 혈통보존작업은 고사하고 사육 및 관리하기조차 너무 버거웠다.
축협 등에서 여러 차례 융자를 받았지만 재정적 어려움이 많아 가족들끼리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종축장이나 동물원 등에 맡길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삽살개는 이 땅에서 끝내 멸종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게다가 삽살개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지면서 삽살개를 팔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특히 유명 애견센터 주인들이 많은 돈을 주겠다며 몇 마리 팔 것을 요구하더군요. 그러나 혈통보존작업을 끝내고 원형 그대로의 삽살개를 복원할 때까지는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현재 삽살개는 하교수의 목장 외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 개상인들이 삽살개의 이러한 희소성을 상업적으로 이용, 유사 삽살개를 번식시켜 마리당 수백만원의 높은 가격으로 암거래하기도 한다. 삽살개처럼 털이 긴 외국개들의 교잡종이 진짜 삽살개 행세를 하고 있는 것.
그밖에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공무원 등이 개를 달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으나 일거에 거절했다. 이 때문에 "하교수 부자가 개값을 올리기 위해 농간을 부린다"는 헛소문이 퍼져 정신적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애견가가 무려 3년간이나 하교수를 쫓아다니며 삽살개를 팔라고 졸라댔다. 그래도 안되니까 하교수의 동생에게 매달렸다. 동생은 할 수 없이 형 모르게 숫강아지 한 마리를 내줬다. 이를 뒤늦게 안 하교수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사람 집을 찾아가 강아지를 다시 빼앗아 왔다.
"며칠동안 실랑이가 벌어졌지요. 나중에 당신이 그토록 개를 가지고 싶다면 정관수술을 해서 주겠다고 했더니 물러서더군요."
하교수의 이러한 끈질긴 집념과 노력은 마침내 관계기관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지난 90년 '고유견 삽사리 보호육성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과학기술처의 특정 연구과제로 선정돼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그는 삽살개가 국견(國犬)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문화재관리국에 천연기념물 지정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일 때문에 대구에서 40-50여 차례나 상경했습니다. 때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때로는 실무책임자와 입씨름을 벌이는 등 애환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2년 3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제3백 68호) 받고 나서 그동안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지요."
삽살개연구소 설립계획
그는 삽살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자 사단법인 한국삽살개보존회(회장 하성진)를 설립했다. 자신은 부회장을 맡으며 농장에 사무실을 낸 뒤 경북대 유전공학과 졸업생 2명 등 직원 4명을 채용, 본격적인 삽살개 육종 및 연구작업을 추진했다.
"지난 해 3월에는 수컷중 5마리를 무작위로 추출해 공군부대 헌병대에 훈련을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2주간 기초훈련을 시킨 결과 최고의 군견으로 꼽히는 셰퍼드만큼 우수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군견훈련 관계자들은 지난 80년대 중반 진돗개 3마리를 훈련시켰으나 '일어서' 등 기초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경비견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1백여년에 걸친 혈통보존작업 끝에 제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된 셰퍼드에 비해 이제 겨우 혈통보존작업 기초단계인 삽살개가 능력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기뻐했다.
천연기념물 지정 후 주위의 몰이해와 조소는 따뜻한 배려와 관심으로 바뀌었고 국고지원으로 경제적 어려움도 다소 덜게 됐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은 사료비와 사역비 정도에만 충당될 뿐 아직도 인건비 등으로 연간 3천만-4천만의 사재를 털어넣어야 하는 재정난은 여전하다.
이제 그의 농장에는 삽살개가 2백여 마리로 불어나 있다. 그 개들을 관리하는 일이 어려우나 그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지낸다. 천연기념물을 보존 관리하는 민간인은 자신뿐이며 전통문화자원을 계승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이미 국회에 상정된 삽살개보호법이 통과되는 것과 삽살개연구소를 설립하는 일이다. 연구소는 혈통보존작업을 빨리 끝낸 다음 삽살개를 일반인에게 분양하는 한편 외국에도 수출하기 위해서다.
최근 '한국의 토종개'라는 저서를 선보였다고 귀띔해주는 그는 삽살개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 놓았다.
"그동안 혈통보존이란 미명하에 갓 태어난 생명을 도태·단종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올해는 갑술년(甲戌年), 바로 개띠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