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이달의 책] 사랑 없는 미래에서 상상한 인간의 조건

 

인간과 기계 혹은 인공 생명체 간의 사랑, 연애는 SF 장르에서 꽤 흔한 소재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작가의 구체적인 설정과 세계관의 색깔이 오히려 잘 드러날 수 있다. 이 작품 ‘오프’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직접 오가지 않게 된 미래를 보여준다. 현실보다 효율적으로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가상현실 연애 플랫폼 ‘러브온’이 등장하자 현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 사라진 것이다. 러브온은 미래 사람들이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나가도록 만든다. 

 

주인공 해준은 바로 이 가상현실 연애 플랫폼 러브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러브온 속 인공지능들이 행동하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다. 그는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감정 교류가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잘 보여준다. 현실에서 해준은 뇌에 나노칩이 들어간 트랜스 휴먼 나미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또한 그는 가상현실 러브온에서 인공지능 엘을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이 사랑들은 해준뿐만 아니라 나미와 엘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랑의 존재 자체를 처음 알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실감하기도 한다.

 

러브온처럼 현실과 거의 같은 가상연애 플랫폼이 개발된다고 해서 사랑이 현실에서 정말 사라질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오프는 이 질문에 개성 있게 응답한다. 먼저 이 신기술 러브온으로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더 이상 사랑과 같은 감정을 서로 주고받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구체적인 현실성에 집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 그렇게 모두가 잊은 감정을 결국은 스스로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필연적인 조건을 상기시킨다.

 

SF는 새로운 과학 기술이 인간 및 사회와 만나는 지점들을 다채롭게 상상하는 장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적 발전이 가져온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런 과학적 사건이 일어나도 변치 않는 인간의 속성도 확인할 수 있다. 가상연애 플랫폼이 생겨서 더 이상 현실에선 연애하지 않는 사회의 변화도, 오히려 그 플랫폼을 이용해서 사랑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는 인간의 변함없는 속성도 모두 SF의 상상력에 속한다.

 

이 작품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이해한 해준 등은 현실에서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소멸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가상 플랫폼 러브온과 대결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둘러싼 의문과 탐구 그리고 대결로 이어지면서, 미래에도 변함없을 인간의 조건, 하지만 더 넓어질 수 있는 인간의 범위를 상상하게 된다. 오직 서로를 이해해야만 인간이 될 수 있기에, 그 능력이 있다면 우리 아닌 다른 생명체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 단점이 큰 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참 쉽다. 하지만 인류의 가장 큰 과제, 이를테면 기후변화나 암 등의 난치병,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을 손쉽게 해결해주는 과학 기술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 기술의 한계보다도 성과에 더 집착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 ‘베이츠’는 먼저 전 인류가 극복해야하는 엄청난 시련을 던지며 그 상상력을 발휘한다. 바로 세계적인 식량 부족 사태다. 식량 부족은 세계의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가장 급한 문제이지만, 한국에선 그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 단순히 상상력의 규모를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기술에 대한 절박함부터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한 설정이다.

 

식량 전쟁이 전 세계를 휩쓸고 간 2048년, 다국적 기업 베이츠는 유전자 조작을 거듭해 슈퍼 옥수수, 알파콘을 개발했고 그 종자를 독점한다. 작품 속의 알파콘은 기아에서 인류를 구하고,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영양분을 제공하며, 생활 속의 직물로도 기능한다. 그야말로 현대 유전공학의 총아다.

 

엄청난 식량 위기를 극복한 알파콘의 경이로움을 보여준 다음, 이 작품은 인류의 가장 큰 위기를 가뿐히 해결한 이 슈퍼 옥수수에 내재된 엄청난 파괴력을 서서히 드러낸다. 주인공 태오는 알파콘이 가져온 축복에 도취되지 않고 계속 경계하며, 그 속에 숨겨진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을 추적해 들어간다. 모두를 구원해주는 과학 기술의 성공 앞에서도 그것이 감춘 파국의 가능성을 직시하며, 진상을 끝내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모두의 코앞에 닥친 가장 큰 시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너무도 큰 문제가 모두에게 잘게 나눠져서 누구도 이 위기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디타람브’는 마치 폭탄 돌리기 같은 책임 전가 끝에 기후 위기가 인류에게 가져올 파국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전 인류는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했고, 그런 세계에서 소설 속 인물들의 목표는 오직 생존 그 자체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이유와 목적으로 생존만을 추구해서 그것들이 서로 뒤엉키며 벌어지는 모순과 갈등은 기후 위기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세계는 이 위기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인류를 유지할 수단으로 제시된다. 바로 디타람브다.

 

가상세계는 위기의 시기를 버틸 수 있도록 준비된 방주와 같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불완전한 도구다. 무엇보다 방주 바깥의 위기에 방치된 사람들과 용케 방주에 올라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다. 바깥의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 같지만, 불완전한 수단에 의지해 현실 세계의 상황과 단절된 방주 속 사람들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피난처이자 감옥인 셈이다.

 

이 작품 속의 단절된 이분법적 세계는 더 이상 위기를 피할 수 없는 인류의 막다른 미래다. 그와 동시에 이런 미래로 향하는 현재 속에도 이미 이런 도피와 외면의 이분법이 작용하진 않는지 의문을 던진다.

 

 

20세기 전반기부터의 과학은 그 이전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19세기까지는 직선적, 입자적이어서 단절되고 메마른 느낌의 과학이었다. 반면 20세기는 곡선 파동의 우아함을 뽐내며 과학과 과학자들이 상호작용한 시대였다. 그중에서도 상대성이론은 휘어진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현대과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세 권의 책은 현대과학과 과학자들이 이룬 아름다운 곡선의 시작과 끝을 담았다.

 

이 책의 제목 ‘휘어진 시대’는 현대과학과 그 속에서 빛나는 과학자들의 삶이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그러진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1권에 등장하는 뢴트겐이나 퀴리 부부의 작업과 3권의 오펜하이머의 그것을 비교해보자. 작은 규모의 연구실에서 미지의 물리학 세계에 대한 발견을 하나하나 쌓아갔던 뢴트겐, 퀴리부부의 연구와 전 세계의 무수한 석학들과 그들의 연구를 한곳에 모아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핵무기를 개발해야했던 오펜하이머의 프로젝트는 과학이라는 이름을 제외하면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현대과학이 얼마나 큰 변화를 겪어왔는지 실감하게 된다.

 

게다가 오펜하이머의 시대에 이르면 과학 연구에서 군인이나 정치가의 역할을 무시하기란 불가능해진다. 정부와 군대의 예산 없이는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의 규모가 거대해졌다. 이것은 오펜하이머와 같은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과학자이자 행정가, 정치가의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하는 시대에 이른다. 그들의 경력과 인식도 이 시대 속에서 휘어진 셈이다.

 

이 책은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의 남영 교수가 2010년부터 진행 중인 인기 강의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를 토대로 했다. 오랫동안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한 저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과학 자체를 오해하고 있음을 절감했다고 한다. 단순화, 파편화된 과학자들의 이미지에 갇힌 독자들이 앞서간 과학자들을 온전히 본받고 존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저자의 친절함과 세심함을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라헌 에디터
  • 디자인

    이형룡

🎓️ 진로 추천

  • 문화콘텐츠학
  • 컴퓨터공학
  • 철학·윤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