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말입니다. 이 우려가 이제는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대학 지원자 수가 입학생보다 적어지면서 일부 지역 대학에서는 정원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와 시대에 맞춘 변화로 경쟁력을 높여도 모자랄 판에, 일부 사립대는 불투명한 운영과 소극적인 투자로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런 와중에 취업률이 떨어지며 대학 내 비인기학과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대학과 학문의 다양성이 모두 위기를 맞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대학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대학이 맞은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살펴봤습니다.
●진단: 대학갈 학생이 없다
올해 정시모집에서 비수도권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2.7대 1이었습니다. 전년도 경쟁률이었던 3.9대 1보다 크게 떨어졌죠. 정시 지원자 1명이 3곳에 지원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률 3대 1 아래는 사실상 정원 미달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의 전망도 암울합니다. 지난해 8월 6일 교육부는 현행 입학정원(약 49만 7000명)을 계속 유지할 경우 2024학년도에는 약 12만 4000명의 입학생이 부족할 거라 예측했습니다.
사실 이런 예측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로 학령인구(만 18세)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2014년 정부도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에 감축 정책을 폈죠. 당시 56만 명이었던 대학입학 정원을 단계별로 감축한다는 대학구조개혁평가 계획이었습니다. 대학을 A~E 등급으로 나누고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A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등급 대학은 정원감축을 권고했습니다. 이 정책은 대학 통폐합, 서열화, 지역 대학 소멸 등의 우려를 낳으며 다수 대학의 반발을 샀고 2018년부터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이라는 정책으로 바뀌어 감축 권고 규모가 줄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2019년 8월 발표에서 올해부터 강제 감축 방식을 없애고 자율적인 기조로 운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전 정부는 강제로 입학 정원을 4만명 넘게 줄였지만 득보다 실이 많았다”라며 “12만 4000명은 정부가 나서서 줄일 수 있는 규모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은 강제 감축을 면했지만, 숨 돌릴 틈이 없습니다. 자구책이 시급합니다. 김효은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연구소의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지역 대학 3곳 중 1곳은 신입생 정원의 70%를 못 채울 것”이라며 “사립대는 대부분의 수입을 등록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낮은 충원율은 곧 대학의 생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말했습니다.
●해법 :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위기 의식을 느낀 대학은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학생을 ‘모셔오기 위해’ 소위 ‘영업’을 하는 학교도 있죠. 등록금 지원, 노트북, 태블릿PC, 생활비 지급 등 신입생을 모시기 위한 나름의 수를 내고 있습니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은 “이런 식의 재정지원, 물품 보급 전략은 매년 학령인구가 몇만 명씩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코 장기적인 전략이 될 수 없다”며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경북 포항의 사립대인 한동대가 좋은 사례입니다. 한동대의 신입생 충원율은 100%입니다. 지역 거점 국립대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입니다. 한동대는 1학년 전원 자유전공제, 조건없는 과 선택, 영어 중심 교육, 복수전공 의무화 등 학생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 집중하고 있어 학생과 학부모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학의 물적, 인적, 지적 자원을 지역사회에 활용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2023년까지 3000명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대구·경북의 휴스타(HuStar) 프로젝트도 그 시도 중 하나입니다. 휴스타 프로젝트는 로봇, 미래형 자동차, 의료, 정보통신기술(ICT), 물 등 대구의 8대 신성장 산업분야에 대한 기업 수요 맞춤형 인재를 대학과 협력해 양성하는 계획입니다.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금오공대 등이 참여했습니다.
KAIST는 파격적인 새 학제 ‘융합인재학부’를 신설해 미래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전 과목을 학점 없이 통과/탈락(SU)제로 수강하며, 졸업요건은 책 100권 읽고 서평쓰기와 발명품이나 아이디어 프로토타입 제출입니다. 학부장을 맡은 정재승 KAIST 교수는 “10년 후, 20년 후 우리 사회에 대체 불가능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시도”라며 “올해 진입한 학생들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신약개발’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암호학 연구’ ‘뇌-기계 인터페이스’ 등 흥미로운 주제를 연구하고 싶어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큰 혁신을 거두지 못한 온라인 공개수업(MOOC)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저서 ‘대학의 과거와 미래’에서 “2013년과 2014년 국내외 주요대학들이 MOOC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며 “한 학자는 MOOC로 인해 대학의 25% 정도는 문을 닫을 거라 예측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온라인 수업에는 ‘효율성 저하’라는 꼬리표가 항상 달렸습니다. 코로나19로 누구나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진 지금, 대학은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 소장은 “온라인 수업으로 평생 교육과의 연계점을 찾을 수도 있고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해 대학이 드넓은 교육의 장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