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가진 엄마뱃속 아기는 자신만의 진화적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임신은 '진화를 향한 투쟁'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아이를 갖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임산부에게는 고혈압 매스꺼움 당뇨와 유사한 증세 등 부수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지난 2년간, 하버드 대학의 진화론적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헤이그 박사는 다윈주의 이론을 통해 임신 문제를 검토해 왔다. 다윈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 선택은 한 유기체의 후손수를 증가시키는 유전인자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아기의 경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인자는 절반뿐이고, 나머지 반은 아버지로부터 온다. 그 결과 어머니와 태아의 진화적 관심은 차이가 날 수 있게 된다. 태아는 될 수 있으면 많은 영양분을 어머니로부터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태아에 영향을 공급해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나중에 태어날 아기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몸의 조건을 유지해야하기 때문.
최근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헤이그 박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 여성의 후손은 후대에 남겨진 유산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임신이란 어머니와 아기 간의 협동을 통한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임신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진화를 위해 가장 최선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어머니의 유전인자와 아기의 유전인자 간의 갈등의 결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올해 계간 생물학평론지에 실릴 예정인 논문에서 헤이그 박사는 임신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이상한 현상의 대부분을 어머니와 태아 간의 진화론적 투쟁의 산물로 설명하고 있다. 전체 임신 건수의 10-30% 정도가 유산이나 조산이 된다. 이것을 진화론적으로 표현하자면 만일 태아가 유전자나 발생 과정에서서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어 생존하기가 어려울 것처럼 보이면 어머니는 그 태아를 유산시키고 다시 임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태아가 생존하기에 적합한 진화론적 강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자신을 유산하지 못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결국 태아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주장하고 유산의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성장한다. 임신 초기에 임산부는 화학적으로 루테인이라 불리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이 월경을 중지시키고 배의 발생을 도와준다. 그러나 임신 7주를 지나면 이전까지 어머니에 의해 모든 과정이 통제되던 것이 태아에 의해 통제되기 시작한다.
태아는 자가 임신 진단에 많이 쓰이는 코리오닉 고나도트로핀(난자생식)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그것이 루테인 호르몬의 효과를 모방함으로써 어머니의 루테인호르몬 생산이 줄더라도 임신이 지속되게 한다. 이 난자생식 호르몬을 분비하는 유전인자는 루테인호르몬을 분비하는 유전인자보다 훨씬 그 수가 많고 다양하다. 이것이 배로 하여금 모체의 호르몬 분비를 간섭케 함으로써 배의 이익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진화론적 생물학자들은 종종 어떤 유기체에서 발견한 특성을 전체에 적용하는 식의 설명을 한다고 비판 받아왔다. 그러나 임신의 경우는 생화학적 증거가 진화론적인 도식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유전자 간의 갈등은 한 작용이 다른 반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헤이그 박사는 주장한다. 여성의 혈당량을 둘러싼 임산부와 태아 간의 갈등은 이같은 주장의 전형적 사례에 속하는데, 양 측은 점점 더 갈등을 강화시켜 나간다. 인슐린을 분비하여 혈당량을 낮춤으로써 임산부는 태아에게 가는 영양분의 양을 제한한다. 그러나 인슐린을 분비하는 바로 그 순간 동시에 임산부의 인슐린에 대한 민감성이 저하된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인슐린이 생산되지만 그에 대한 민감성은 점점 더 저하되는 소모적인 과정이 일어난다.
한편 임산부가 인슐린 분비를 늘려 나가는 동안 태아는 플라센탈 락토겐이란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것이 임산부의 인슐린 효과를 감소시켜 나간다. 그 결과 임산부는 혈당량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인슐린의 분비를 더욱 늘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임신 말기에 이르면 플라센탈 락토겐의 분비량은 처음보다 2천배 정도 많아지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같은 강화는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분비 없이도 임신은 방해받지 않고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이그 박사는 호르몬 분비를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비유한다. "임산부와 태아 간에 신호를 주고받을 때, 만일 그 관계가 순전히 협동적이면 가장 손쉬운 신호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선택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가능한 한 가장 적은 양의 호르몬으로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가 갈등적이라면 태아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호르몬을 분비하여 모체의 민감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선택이 일어날 것이다. 속삭이기만 해도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면 구태여 고함까지 지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목소리가 높다는 것은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이 관점은 임신 중 당뇨가 일어나는 원인을 잘 설명해 주는데, 임신 기간 중 임산부가 자신의 혈당량을 제한할 수 없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이 임신 합병증은 후에 심각한 당뇨병이 발병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