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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4인의 프리즘으로 본 포항공대

공부벌레가 아닙니다

①신입생이 본 포항공대 -
4가지 약점보다 5가지 장점 선택


“왜 포항공대에 갔니?”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좋은 시설이 있고 훌륭한 교수님들이 계시잖아요”라고 한마디로 대답해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포항공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단순히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대학서열이 정해져 있는 현실에서 굳이 포항공대를 선택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학년이 3백명밖에 되지 않은 작은 공과대학이라는 점, 포항이라는 지역적 고립, 짧은 전통을 가져 선후배간의 연결이 약하다는 점, 그리고 신생대학인 포항공대가 과연 흔들림 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포항공대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포항공대의 힘차고 새로운 이미지가 너무 좋았고 꿈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확신이 가슴 속에 있었다.

하루 일과가 보충수업으로 시작해서 자율학습으로 끝나던 고등학교 시절은 너무나 단조롭고 틀에 박혀 있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지쳐 있는 필자에게 포항공대는 예쁜 소녀를 대할 때 느끼는 설레임을 주었다. ‘포항의 기적’이라는 포항제철이 낳은 포항공대는 신화처럼 느껴졌다. 영웅을 동경하는 젊은이처럼 그 신화를 동경했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신선함을 느꼈다.

또 재료공학에 관심이 컸던 터라 이 분야에서 다른 학교에 비해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는 포항공대는 특별했다. 국내 최고라는 포항공대의 도서관이나 학부 재학 중에 외국의 명문대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교육제도 등은 세계적인 재료공학자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졌던 필자에게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이런 설레임은 지금 ‘배회와 탕진’으로 그냥 허비해 버리기 쉬운 대학생활에서 언제나 꿈을 생각하게 하고 무엇이나 도전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했다. 어느 교수의 말처럼 유력한 우승후보로 지명된 말보다 무서운 속도로 기록이 향상되고 있는 말에 내기를 걸기로 한 것이다. 비록 지갑의 두께가 계속 얇아진다고 해도 엄청난 ‘배당’을 받을 그날을 기다리는 대학생활은 항상 즐겁고 힘이 넘친다.

②이대생이 바라본 포항공대
숲속에 자리잡은 요새


여고, 여대를 다니다가 다른 특성을 가진 학교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호기심 반 기대 반’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포항공대는 숲 속에 자리잡은 요새였다. 대학생을 겨냥한 상가들이 즐비한 대부분의 대학 주위와 대조적이었다. 마치 계획된 주택단지와 같이 건물과 어울어진 나무들이 전부였다. 포항공대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며칠 지낸 후 그들만의 문화를 알게 됐다. 학교가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인지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나 스쿠터다. 서울에서 오토바이를 타면 웬지 인식이 좋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누구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으며 밤에는 자칭 ‘폭주족’이라고 하는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돌도 씹어먹는다는 20대에 학생식당이 7시30분에 문을 닫아서 10시만 되면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특히 여학생보다 남학생에게 그 고통은 클 것이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포항공대에는 야식이 발달됐다. 새벽 3시까지 야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했다.

포항공대는 낮보다 밤이 더 활기차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편의시설이다. 기숙사 안의 휴게실, PC실, 세탁기, 샤워실 등이 갖춰져 불편함이 없었다. 또 체육관 시설도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포항공대의 계절학기는 우리 학교와 많이 달랐다. 우리는 계절학기를 학점을 따지 못한 사람이나 듣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포항공대의 방학은 거의 반이 넘는 학생이 남아서 수업을 듣고 서클활동을 하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방학 동안에 그렇게 많이 남아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78계단이다. ‘7전8기’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이 계단은 정말 78개의 계단으로 돼 있고 그늘 하나 없었다. 처음 수업을 받던 날 아침 7시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78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가 강의실에 들어서자 대학생활 중 그렇게 많은 남학생을 본 것도 신기한데 에어콘까지 설치돼 있었다. 왜 일찍부터 학생들이 78계단을 걸어서 강의실로 가는지, 왜 기숙사에서 에어콘을 켜지 않는지 이해가 갔다.

포항공대에서 보낸 시간은 짧다. 그러나 다시는 배우지 못할 귀중한 것을 배우고 왔다. 기회가 닿으면 다시 포항에 가서 포항공대의 가을 캠퍼스를 보고 싶다.
 

'7전8기' 에서 이름을 따온 78계단. 기숙사에서 강의실로 가는 길목에 있다.


③졸업생이 본 포항공대
학생회관에는 밤이 없다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밤 공기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새 계절은 가을 깊숙이 닫고 퇴근 길 싸늘한 밤 기운은 여름 내 팔뚝 높이에 있었던 작업복 소매를 한껏 말아내리게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통근하는 작업자 중엔 벌써 동복을 입은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계절은 여성들의 옷차림에서 알 수 있다던데, 남자들 소굴(?)인 이 곳 거제는 예외일 수밖에 없나 보다.

대학시절을 보낸 포항과 이곳 거제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바다와 접하고 있는 터에 늘 짭짤한 바닷바람과 갯내음, 그리고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바닷가 사람들 특유의 억센 기질, 그러면서도 털털한 막걸리를 연상시키는 구수한 인간미의 소유자들이 모여산다.

저녁 때면 물때를 맞춰 갯바위에 나가 낚시를 드리우고 금빛으로 일렁이는 달빛에 취해 삼매경에 젖을 수 있다는 것도 두곳이 모두 가진 장점이다. 차이가 있다면 거제의 하늘과 물, 공기가 포항보다 더 푸르고 맑다는 것 정도다. 어쨌든 포항과 거제를 모두 사랑한다.

지난 주 금요일. 입사하고 처음으로 월차라는 것을 내고 포항엘 갔다. 내가 몸 담았던 ‘다솜’(장애인 봉사 동아리)에서 하는 ‘사랑의 수화제’를 보기 위해서다. 담당부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졸사원 중 동창회로 월차를 내는 사람은 더러 있지만 동아리 때문에 월차를 낸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동아리 활동은 대학생활 동안 잊을 수 없는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다.
 

곤충학에도 없는 '공부벌레' 로 매도 되는 것을 포항공대생들은 싫어한다. 그리고 자신들이야말로 삶을 즐길줄 아는 젊은이라고 말한다.


도화지 구기는 소리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가끔 포항공대를 무슨 ‘벌레’들의 집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곤충학에도 없는 ‘공부벌레’로 동문들을 매도할 때면 기분이 몹시 상한다. 정말 포항공대생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의견이 다를 것이다.

포항공대는 현재 전교생을 통틀어봐야 2천명 정도인 조그만 학교다. 그러나 89년 당시 공식등록된 동아리수가 이미 마흔개를 넘어섰고, 새내기가 아니더라도 두세개의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더구나 그때는 전교생수가 7백명이 채 못돼 마흔개라는 동아리수는 결코 적지 않은 것이었다.

동아리 숫자보다 더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은 동아리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물론 전원이 기숙사생활을 한다는 특수성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하루 평균(통계를 내 본 것은 아니지만) 두세시간 이상을 동아리방에서 머무는 학생들이 상당수였다. 그 중에는 동아리방에서 아예 숙식을 하는 열성파들도 있었다. 자투리 시간에 동아리 방에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누거나 머리를 맞대고 숙제를 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고, 새벽 두시 도서관이 소등되고 난 뒤에도 학생회관은 잠들 줄 몰랐다. 한마디로 말해 포항공대 학생회관에는 밤이 없었다.

봄, 가을 두번 열리는 축제시즌이 다가오면 학생회관은 더욱 분주해진다. 한울림 방에서 울려 나오는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 한아패들이 부르는 민중가요 소리, 애드림 방에서 들리는 연극대본 외는 소리, 삶터 방에서 샘솟는 장구와 꽹과리 소리, 그리고 소리는 작지만 음악가락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을 그려내는 게르브와(미술동아리)들의 도화지 구기는 소리, 가끔씩 학생회관을 엄숙한 분위기로 몰아넣는 기독교학생회원들의 성경 읽는 소리.

어디 그뿐이랴. 운동장과 체육관으로 가보면 축구, 야구, 농구, 탁구, 배드민턴, 검도, 18기 등 ‘운동권’ 동아리들의 힘찬 기합소리 또한 포항공대를 더욱 활기있게 만들었다. 기숙사 옆에 자리잡은 통나무집은 포항시내에서 가장 매상을 많이 올리는 술집이 됐다. 밤 늦게 실험을 마치고 통나무집에 모여 앉아 맥주병을 마이크 삼아 목이 터져라 불러대던 남행열차 소리를 한번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포항공대생들을 더이상 공부벌레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봐도 대학생활은 조금도 후회가 없다. 학과성적도 중간 이상은 유지하면서 동아리(다솜) 하나를 만들고 졸업할 때까지 두개의 동아리활동을 했으며, 1, 2학년 때는 총학생회에서 활동했다. 그 생활 속에서 영원히 함께 생활한 친구들, 동생들, 그리고 사랑하는 약혼녀 은실을 만났다.

또한 대학공부를 하는 동안 싼 학비에 충분한 장학금과 일주일에 이틀밤을 내서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친 덕택에 거의 공짜로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은 삼성에 입사해 즐겁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이만하면 아직까지 잘 살아왔고 잘 살고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포항공대생은 누구보다 평범한 보통학생들이다. 포항시 효자동 산 31번지에는 공부벌레가 없다. 포항공대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포항공대에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젊은이들이 모여 산다”고.
 

포항 제일의매상을 올리는 통나무집. 대학 내에 술집이 있다해서 국정감사에도 올랐다고 한다.


④교수가 본 포항공대
두뇌게임인 수학의 진수 가르쳐


대부분의 세상 일들이 그렇겠지만 어떤 사실의 원인과 결과를 잘 알고나면 그것이 쉽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은 천하에 재미없고 어렵기만 하다.

수학은 직관력과 정확한 논리적 사고력 등을 바탕으로 혼자서 깊이 생각할 시간과 끈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생각하기가 싫은 사람들에게 수학은 결코 재미있는 공부가 아니다.

이것은 좀 어려운 수학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고민할 때의 괴로움과, 갑자기 힌트가 떠올라 문제가 풀리는 순간의 기쁨을 맛본 학생들은 곧 이해될 것이다. 한편 풀린 그 문제를 다시 돌이켜 보면 너무 쉬워 싱겁기 짝이 없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풀이가 굉장히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움과 재미를 함께 느끼게 한다.

그러면 왜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으면서 어렵고 재미없는 수학을 강조해 입시 등에서 많은 학생들을 골탕 먹일까. 또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여러 자연현상들을 보고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 원인을 알아보고 차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해 보고 싶다는 것은 아마도 두뇌를 가진 인간들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수학은 이러한 자연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로서 가장 좋은 수단과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는 많은 자연현상들이 있지만 상당한 것들이 서로 유사하다. 그래서 각각을 개별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유사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즉 추상화해) 설명한다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수학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지만, 대학에서는 더욱 깊은 추상화로 보다 어려운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러 현상들을 여러 방법으로 추상화하고 그들을 가지고 계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도박꾼이 게임을 좋아하듯이 두뇌를 가지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벌리는 게임을 좋아한다면 수학은 해볼만한 게임 중에서 아마도 제일 고상한 것이리라.

숙제와 시험이 없는 공부

대학교수로서의 할 일이란 배우고 닦아왔던 전공분야의 지식들을 더 연구해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설명에 힘을 기울일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전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강의할 것인가가 늘 염려스럽다. 많은 학생들이 제일 먼저 가지는 부담감은 두말할 것 없이 시험과 성적이다. 이로 인해서 강의내용에 흥미를 느끼기보다 어떻게 하면 쉽게 점수를 많이 얻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다. 학생들이 이러한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새로운 문제에 대해 도전할 수 있도록 창의성을 기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몇년 전 ‘기하학 개론’ 과목에서 시험 없는 수업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교과서도 없이 기하학의 기초와 타 분야와의 연관성 등을 필자 나름대로 엮어서 강의만 하고 약간의 숙제만 부과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힘이 들었다.

기존의 방법에 익숙하던 학생들은 “교과서도 없고 시험도 없어 공부하지 않게 된다”는 불평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많은 학생들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포항공대는 이런 것들이 가능한 곳이다.

흔히 포항공대가 제일 낫다고 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설립 당시부터 기존 한국 교육계의 진부하고 낡은 관습을 깨고 새롭고 효과적인 연구와 참다운 교육에 공헌코자 시도했다는데 있다. 훌륭한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 환경의 극대화와 제도적 불편의 극소화가 필수적이다. 또 참다운 교육은 융통성이 있는 교과과정과 의욕적이고 창의적인 교수들의 강의에서 나온다. 포항공대는 이러한 점에서 주저 없이 좋은 학교라고 할 수 있다.
 

199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이종승 기자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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