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게임기를 숨기고 금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집안에서 못하게 하면 아이들은 이보다 환경이 열악한 오락실로 찾아간다.
최근 국내외에서 어린이들이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잇따라 간질 등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에 사는 로라 모셀리양(20)의 아버지 조셉은 딸이 5년전 일본 닌텐도사의 전자오락 프로그램 '키드 이퀄스'를 갖고 놀다가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켰다며 닌텐도사와 완구점 그리고 소프트웨어판매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에서는 14세 소년이 1시간 가량 비디오게임에 몰두하다 극도로 흥분해 숨진 것을 비롯, 영국과 프랑스에서 10여명의 어린이가 발작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지난 1월말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사는 강모씨의 집에서 강씨의 외아들(6)이 '스트리트파이터'란 비디오게임을 하다 갑자기 온몸에 경련을 일으켜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에 따라 집집마다 아이들이 게임기를 갖고놀지 못하도록 감추는 소동이 일어나고 그동안 불티나게 팔리던 국내 게임기시장에도 찬바람이 엄습했다.
이제까지 문제가 된 비디오게임은 대부분 일본 닌텐도(任天堂)사의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용 게임기는 현재 세계적으로 1억5천만대 가량 보급됐는데 일본의 닌텐도 세가 일본전기(NEC) 등 3대 메이커가 시장의 90% 정도를 점하고 있다. 닌텐도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는 80년대말부터 게임기 수요가 급격히 늘어 현재 게임기 2백만대, 롬팩(게임기용 소프트웨어) 6백 50만개 가량이 보급된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업체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대만에서 게임기 및 롬팩을 수입해 제품이름만 달리해 판매하는데 현대전자가 닌텐도의 패미콤을 '컴보이' '슈퍼컴보이'라는 상품명으로, 삼성전자가 세가의 완제품을 '슈퍼알라딘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닌텐도 프로그램이 화면점멸 심해
어린이들이 즐기는 컴퓨터게임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전자오락실에서 흔히 보는 게임기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게임기 속에 소프트웨어를 심어 한가지 게임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두번째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좁은 의미의 컴퓨터게임은 이것을 가리킨다. 세번째는 텔레비전 수상기에 게임기를 연결해 TV 화면을 보면서 게임기를 조작하는 비디오게임. 이때 게임의 종류는 어떤 롬팩을 끼우느냐에 달라진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의 소프트웨어로 게임을 즐긴 아이들이 발작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 비디오게임과 광과민성 발작과의 관계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의사들은 "평소에 간질증세가 있는 아이들이 비디오게임에 몰두해 흥분할 경우 이따끔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닌텐도의 게임기가 특히 문제가 된 이유는 닌텐도에서 보급한 소프트웨어가 화면의 점멸이 심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국내에서 발생한 광과민성 환자 강모군을 진단한 고창준박사(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는 후에 "비디오게임으로 인한 간질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방재공학자 이규학씨는 "비디오게임의 화면은 0.5~22Hz의 파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뇌의 알파파(8~12Hz)와 공명현상을 일으켜 발작반응을 유발한다. 일반 게임소프트웨어는 보통 20~22Hz를 채용하는데 닌텐도사의 프로그램은 구성기법상 8Hz를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제가 된 닌텐도사는 "광과민성 발작은 특이체질자의 경우 일반 TV를 시청하는 중에도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비디오게임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 잇따라 발작사례가 보고되자 '과도한 비디오게임은 간질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게임기에 부착하기로 했다.
컴퓨터게임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없는가. 무조건 게임기를 숨기고 못하게 하는 것이 능사가 될 수 없다. 집안에서 금지된 오락을 즐기기 위해 아이들은 오락실을 찾기 일쑤다. 따라서 아이들이 게임을 건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이 현명한 방법이다.
먼저 너무 오래 게임에 몰두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하루 1시간 이내가 적당하고 더이상 하려면 잠깐 쉬었다 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또 TV 화면에서 2~3m 떨어져 게임을 하도록 권장한다. 텔레비전은 멀리서 떨어져 보라고 하면서 이보다 화면전개가 훨씬 빠른 비디오게임은 가까이서 해도 야단치지 않는 부모들을 흔히 본다. 그리고 컴퓨터게임을 할 때는 반드시 모니터에 보안경을 끼우도록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흥미를 끌면서도 교육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게임소프트웨어를 골라 주는 일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닌텐도사의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도 폭력적인 내용과 함께 빠른 화면전개기법을 사용해, 이 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마치 디스코장의 현란한 조명을 오랫동안 보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고 한다. 게임의 종류도 자극적이고 손놀림에 의존하는 아케이드게임보다 퍼즐이나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등 창의력을 개발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컴퓨터의 이용 가운데 게임은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딱딱한 컴퓨터와 친해지려면 게임을 통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용 소프트웨어는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갈수록 게임적인 요소를 확대해가는 추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더구나 스스로 자제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게임을 할 때는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