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국내외의 과학기술계는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만큼 과학기술도 눈부신 발달을 거듭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과학기술계 10대 뉴스는 어떤 것들인가.
국내
1. 우리별 1호 발사 성공
지난 8월11일 우리나라는 작지만 의미있는 과학실험위성 '우리별1호'를 우주상공에 쏘아올렸다. 한국과학기술원내의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속 학생 연구원들이 영국 서리 대학에서 위성학을 공부하면서 제작한 우리별1호는, 남미의 프랑스령 쿠루기지에서 아리안 로켓에 실려 우주 상공 1천3백㎞에 올려졌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2번째 인공위성 보유국가가 되었으며 앞으로 실용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작업을 마친 셈이다.
궤도에 진입한 우리별1호는 예정된 실험 네가지 중 세가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1백분에 한번씩 지구궤도를 돌고 있다. 우리별에 부여된 실험 네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성공을 지나면서 한반도 사진을 찍어 지상국에 전송했으며, 10월3일에는 개천절을 맞아 축시와 축하메시지를 우리말로 방송하는 우리말 방송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우주입자 검출시험도 성공적으로 수행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만 남극세종기지와 우리나라 대덕 지상국간의 통신시험은 내년 봄 세종기지의 장비가 완비되는대로 수행할 예정이다.
우리별1호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에 따라 1호보다 부분적으로 기능을 향상시킨 우리별2호를 국내에서 제작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발사할 예정이다. 제작은 인공위성연구센터와 항공우주연구소를 중심으로 학계와 업계가 공동으로 진행중이다.
우리별1호는 우리 국적의 인공위성이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홍보함으로써 그동안 불모지를 면치 못했던 우주개발 분야에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또 인공위성을 개발할 연구인력을 집단적으로 양성함으로써 국내 인공위성 연구 인력 양성에 초석을 깔았다는 점에서도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지나친 과대선전으로 진정한 의미의 실용 인공위성 개발계획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공위성연구센터는 대학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아마추어(실험)위성이 아닌 프로(실용)위성을 개발하는 데는 적합치 않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별1호의 홍보 성공으로 연구비가 연구센터에 집중되고 이곳으로 연구중심이 자리잡힌다면 우리나라 우주산업은 걸음마 단계에서부터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는 지적이다.
2. 뇌사자 장기이식 법률논쟁
뇌사와 장기이식은 동전의 양면이다. 뇌사가 인정되지 않으면 장기이식은 부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뇌사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하나쯤 없어도 생존에는 지장이 없는 장기(예 신장)나 인공장기(예 인공심장)의 이식만이 가능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내에서는 뇌사가 법률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심장사가 확인되지 않는 한 장기이식을 할 수 없도록 법이 규제하고 있는 것. 그동안 이 법적 규제에 묶여 장기이식이 극도로 제한된 범위에서만 예외적으로 실시돼 왔다. 최근 서울중앙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집도한 국내 첫 심장이식수술이 그 대표적인 예. 또 서울대 의대 김수태 교수는 뇌사자의 간을 말기 간암환자에게 이식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잇따랐다. 돼지의 간, 원숭이의 간 등이 인간의 병든 간을 대신하기 위해 이식된 것. 그러나 이식결과는 좋지 않았다. 환자들이 이식 거부반응을 일으켜 사망하게 된 것이다.
최근 서울대병원과 서울중앙병원 등 대학병원에서는 장기이식센터를 설립, 장기수여자와 공여자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부분적인 뇌사인정 추세에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장기이식시대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이식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자 국내에서도 사후에 장기를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그중에는 김수환추기경 박찬종 신정당 대표 등 사회저명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물론 뇌사를 '인정한다, 못한다'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뇌사인정을 주장해 왔고, 일부 종교인들과 법률가들은 그 반대편에 서 왔다. 절망적인 환자에게 새 삶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 뇌사인정론자들의 주장인 데 반해 반대론자들은 뇌사판정에 있어서의 오진가능성을 염려한다. 또 장기암거래가 성행할 수 있고 병원측의 졸속 판정도 우려된다고 얘기한다.
아무튼 금년에는 뇌사와 장기이식문제가 유난히도 신문지상에 많이 보도됐다. 이는 국내의 장기이식기술이 상당 수준까지 올라와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설령 뇌사가 법도로 인정돼 장기이식이 광범위하게 실시된다 할지라도 장기이식기술이 확립돼 있지 않고 이식거부반응을 막아줄 약제가 개발돼 있지 않다면 모두 허사가 될 것이다.
3. 반도체 64메가디램 시제품 개발
지난 9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잇따라 최첨단 반도체인 64메가디램 시제품을 개발했다고 발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64메가는 반도체강국 일본도 90년 히타치가 핵심기술을 공개한 이후 아직 발표된 적이 없는 최신 제품이다. 따라서 시제품 단계에 불과하지만, 성급한 사람들은 우리가 반도체분야에서 일본을 따라 잡았다고 감격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전자통신연구소 주관 아래 삼성 현대 금성 등 반도체 3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것으로, 삼성이 마치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처럼 발표해 현대 등 나머지 기업들이 반발하는 촌극을 빚었다. 괄목할 만한 첨단기술을 개발하고도 기업들끼리 서로 공을 다투어 그 성과가 오히려 퇴색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산업에 본격 뛰어든 지 10여년에 불과하지만 기억소자(메모리)분야에서는 일본과 더불어 세계 정상권에 올라섰다. 현재 주력제품인 4메가디램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시장에서 일본제품과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힘입어 반도체는 지난 해 단일 수출품목 1위에 오르는 등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비약적인 성장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견제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은 국산 반도체에 대해 80~90%의 높은 덤핑예비판정을 내렸다. 이 결과가 최종판정에도 그대로 이어질 경우 우리 기업들은 미국시장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내기업들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인텔 등 미국 반도체메이커들에 막대한 특허료를 빼앗기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우리 기업들이 첨단제품을 생산하면 그 품목의 가격을 크게 인하하는 방식으로 한국을 견제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장비의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 대일종속을 벗어나기 어려운 형편이다.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에서 세계정상권에 올라선 몇 안되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반도체산업이 선진국의 집중 견제를 받아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산업을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할 것인지 몇년 안에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4. 컴퓨터통신 경쟁시대에 돌입
개인용 컴퓨터(PC)가 2백만대를 넘어서면서 이를 이용한 컴퓨터통신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올 해는 국내 최대 PC통신망이던 '케텔'(KETEL)이 유료서비스로 전환, PC통신망들이 본격적인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 컴퓨터통신 분야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케텔이 '하이텔'(HITEL)로 바뀐 것. 지난 89년 한국경제신문사가 케텔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이 통신망은 PC보급의 폭발적 증가와 '무료'라는 이점에 힘입어 가입자가 20만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케텔에 한번 접속하려면 한나절씩 기다려야 하는 등 통신체증이 극심했다.
이에 한계를 느낀 한국경제신문은 프랑스식 비디오텍스 하이텔을 준비해오던 한국통신과 합작으로 한국PC통신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케텔을 인수해 '코텔'(KORTEL)이란 명칭으로 유료서비스를 시작한 후 7월부터 하이텔로 명칭을 바꾸었다. 하이텔은 유료화 이후 케텔 가입자의 30% 정도를 흡수해 '성공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통신회선을 크게 늘려 접속난이 해소됐을 뿐 아니라 통신바둑 컴퓨터연재소설 등 새로운 시도로 통신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PC서브(데이콤) 포스서브(포스데이타) IC네트(한국정보창조) 등 다른 통신망들도 하이텔의 성공에 자극받아 제각기 특성을 살려 회원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 케텔 유료화로 갈 곳이 없어진 학생층을 대상으로 한 사설BBS(전자게시판)들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수십 내지 수백명씩 회원을 모아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BBS는 전국적으로 5백여 개가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컬러컴퓨터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문자뿐 아니라 그림 등 화상정보를 전하는 비디오텍스 서비스도 활성화되고 있다. 하이텔이 7월 부터 그림정보서비스를 개시했고, 데이콤도 PC서브에서 천리안 비디오텍스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컬러통신망을 표방한 IC네트도 시범서비스를 실시중이다.
한편 지난 6월에는 컴퓨터통신을 즐기던 여학생이 자신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이 실린 것에 비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통신폭력'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5. 원점으로 돌아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6공 최대의 이권사업이라 불리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가 선경으로 최종확정됐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반대로 뒤집어지는 우여곡절 끝에 다음 정권으로 넘겨졌다. 사업자로 선정만 된다면 앞으로 수십년간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고 첨단산업의 주도권도 쥐는 만큼 이 사업을 둘러싼 재벌들의 경쟁은 사력을 다한 것이었다.
카폰 휴대폰(휴대용 전화기) 무선호출기(삐삐) 등으로 대표되는 이동통신은 80년대 후반 이후에 급속도로 성장한 첨단산업이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60%씩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국내에서도 84년 서비스를 개시한 이래 연평균 70% 이상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국통신의 자회사로 설립된 한국이동통신 하나만으로는 늘어나는 통신수요를 충당하기 벅차다고 판단, 6공 초기에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던 것. 이 사업에는 선경 포철 동부 쌍용 동양 코오롱 등 6개 재벌이 참여신청을 했다. 삼성 금성 대우 현대 등 4대 재벌은 단말기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배제됐다.
6개 재벌이라 하지만 각기 국내외 기업군으로 된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기 때문에 전체 참여기업은 4백40여개에 달했다. 컨소시엄마다 몇년 전부터 기획단을 구성하고 홍보비로만 수십억원씩 쓰는 등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체신부가 서류신청을 받는 날 기업들이 제출한 서류가 두 트럭분 22만페이지나 되기도 했다.
심사결과 7월말 1차심사에서 동부 동양 쌍용 등 3개 컨소시엄이 탈락했고, 8월 들어 최종심사에서 사업권이 선경으로 낙착됐다. 그러나 선경의 최종현 회장이 노대통령의 사돈이어서 '미리 사업자를 정해놓고 나머지 기업들은 들러리만 섰다'는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이에 못이긴 선경이 선정된 지 며칠만에 사업권을 반납,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해외
1. '세기적 회담' 유엔환경개발회의
지난 6월3일 지구환경보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UNCED)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 세계 1백여개국의 정상들이 참석, '지구환경정상회담'으로도 불린 이번 회의는 14일까지 12일간 계속 됐다. 이처럼 많은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환경문제를 논의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회의의 목적은 한마디로 '환경적으로 건전하며 환경이 지탱할 수 있는 개발'을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실천적 국제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회의를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 '지구의 운명이 걸린 모임' '세기적 회담' 등으로 부른 이유도 이번 회담의 목적이 그만큼 중차대하고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세계 1백여개국 지도자들이 참가한 6월13일의 원탁회의에서 "이번 회담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불균형을 좁히는 데는 기대한 만큼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지구를 향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한 후 14일 폐막됐다.
이상론자들은 이번 회의가 알맹이 없이 끝났다고 평가한다. 선언과 실천강령, 그리고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등의 내용 중 강제의무조항이 대부분 삭제되거나 약화되고 환경보존기금의 확실한 증액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회담의 규모면에서나 의제의 중요성, 그리고 선언적 의미로만 그치지 않을 합의사항들이 앞으로 세계질서에 미칠 영향 등에서 금세기 최대의 역사적 회의였다는 평기를 받고 있다. 비록 문제의 완벽한 해결에는 미흡했으나 적어도 지구환경 보전문제의 필요성에 세계가 인식을 같이하고 그를 위한 세계적 협력을 출발시키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2. 염색체 21 Q·Y 유전자지도 작성
인간의 완벽한 유전자지도를 제작하는 게놈프로젝트는 엄청난 연구비와 시간이 소요되는 대표적인 빅사이언스(Big Science)의 하나다. 앞으로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쏟아낼 성과물들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최근에는 이 성과물 하나하나를 특허화하는 문제가 전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가령 어떤 특정단백질과 관련된 유전자의 전모를 밝혀낸 다음 그 단백질을 독점적으로 생산하려는 선진국들의 '횡포'가 국제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
지난 10월 연달아 발표된 염색체 21q와 Y염색체 유전자지도 작성뉴스는 전세계를 흥분시켰다. 게놈프로젝트의 상징적인 성과물들이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염색체 21q의 유전자지도는 프랑스 유전자다형연구소 코헨박사와 유럽 11개국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해 제작됐다. 또 성염색체인 Y염색체의 유전자지도는 미국 MIT의 페이지교수팀이 그렸다.
잘 알다시피 인간의 염색체는 23쌍, 즉 46개다. 이중 22쌍은 상동염색체이고 23번째 쌍은 성염색체로 XX(여성) 또는 XY(남성)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염색체 21q는 염색체중 21번째 쌍을 가리킨다. 또 q는 그 염색체의 아래 부분에 위치해 있음을 나타낸다(만약 위 부분에 있다면 염색체 21p가 될 것이다). 이 염색체 21q 안에는 어린이에게 정신박약증세를 일으키는 유전병인 다운증후군(Down syndrome), 그리고 노인성 정신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자가 담겨 있다. 따라서 염색체 21q 유전자지도규명은 이 두 질환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어떤 극적인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Y염색체의 유전자지도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분자수준에서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 인류와 생물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자 할 때 중요한 도구가 돼 줄 것이다.
염색체 21q와 Y염색체의 유전자지도 작성은 일반인들에게 게놈프로젝트의 '맛'을 보여주는 성격이 짙다. 또한 앞으로 진행될 게놈프로젝트의 연구기준으로 활용될 것이다.
3. 코비위성 우주배경복사 온도차이 발견
지난 4월23일, 우주배경복사선을 탐색하기 위해 쏘아올려졌던 코비위성은 활동을 개시한 지 2년 6개월만에 지금의 은하나 별들의 생성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물질 섭동'(ripples of matter)을 발견했다. 천문학자들은 이 성과를 우주론사상 금세기 후반 최대의 발견으로 평가했다.
현대우주론의 표준이론으로 정착되고 있는 빅뱅이론에 따르면 태초의 우주가 고온 고압하의 한점에서 대폭발을 일으킬 때 방출한 월복사선이 현재 우주의 도처에서 발견돼야 한다. 이를 우주배경복사선이라 부른다. 1965년 미국 벨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은 이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주배경복사선의 온도가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은 절대온도 2.7도라는 데 있었다. 이를 우주배경복사의 등방성 문제라고 하는데, 배경복사선의 온도가 똑같다면 현재의 은하나 별들의 생성을 설명할 수 없다. 온도가 같다는 의미는 물질이 한곳에 뭉치고 이를 기반으로 중력수축 등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주배경복사선이 발견돼 빅뱅이론의 위상이 한껏 높아지기는 했지만 현재 우주의생성을 설명하는 데는 '물음표의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코비가 우주배경복사선의 등방성을 깨뜨리는 은하 형성의 원인을 찾아낸 것. 미국 버클리 대학의 조지 스무트 박사는 코비의 관측자료로부터 평균 온도에서 10만분의 6정도의 온도변화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아무튼 코비는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된 지 약 30년만에 그동안 난제로 알려졌던 등방성 문제를 관측으로부터 해결함으로써 우주의 나이 10여만년 때에 현재 은하나 별들의 모태가 될 수 있는 '물질섭동의 씨앗'이 존재했다는 것을 밝힌 셈이다. 물론 우주배경복사의 등방성이 깨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그 정도의 온도 차이가 오늘날의 은하나 별의 생성을 가능하게 할 정도냐는 것은 별도의 문제), 92년 4월의 대발견은 우주론에 또 하나의 노벨상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4. NASA, 17년만에 화성탐사 재개
인류는 달에 이어 화성이나 금성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 아폴로의 달착륙과 보이저 1, 2호의 태양계 탐사 이후 한동안 뜸했던 인류의 우주 진출이 92년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 9월 25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화성탐사선 마르스옵서버를 쏘아올리면서 "우리는 17년만에 화성으로 향한다"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17년만이라는 표현은 1975년 바이킹 1, 2호를 화성표면에 연착륙시켰음을 연상시키기 위한 것.
마르스옵서버는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가 21세기 인류가 화성에 진출하기 위한 상세한 지도를 작성할 예정. 지형지질에 관한 조사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극관의 성분을 파악하는 일도 하게 된다. 극관에 어느 정도의 수분이 들어 있느냐는 화성연구자들의 최대의 관심. 또 화성의 기상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도 마르스옵서버의 임무다.
과거부터 화성은 인류에게 묘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곳이다. 19세기 말에 발표된 H. G. 웰즈의 과학소설 '우주전쟁'에는 화성인이 점점 추워지는 화성을 피해 지구로 쳐들어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마 태양계 내에서 지구 외에 생명체가 존재했던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화성 밖에는 없다. 이 말을 의미있게 해석한다면 앞으로 지구 외에 인간이 진출해 거주할 수 있는 곳은 화성 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화성과는 조금 다르지만 지구와 가까운 행성인 금성에서도 계속 상세한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89년에 쏘아올려진 금성 탐사선 마젤란이 올해에도 통신원으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성 표면을 야구공의 전표면을 실로 싸감듯이 돌고 있는 마젤란호는 이미 상당 부분의 금성지도를 작성해 놓고 있는 상태. 금성이 인간이 진출하기에는 너무 뜨겁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긴 하지만 지구 이외의 행성에 대해 지식을 늘려나간다는 것은 인류의 존재의미를 더욱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5. 확산되는 제3세계의 핵문제
인류의 최대 공적(公敵)으로 간주돼온 핵무기가 사회주의권 몰락의 여파로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과거에는 핵무기개발의 주도권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이제는 정반대 양상을 띠고 있는 것. 특히 러시아의 경우에는 미국과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가며 핵무기 해체작업을 수행하고 있을 정도.
핵무기 해체문제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에서도 핫이슈로 떠올랐다. 결국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당선됐으므로 앞으로 핵무기 감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간주된다.
그러나 제3세계의 핵확산문제는 심심찮게 외신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특히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핵사찰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라크에서는 사찰단활동방해사건이 터져 제2의 걸프전쟁 직전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전과 맞물려 중동지역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게 했다.
북한에 대한 핵사찰도 이뤄졌는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곧 종합적인 사찰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의 핵사찰과 아울러 남북공동사찰에 대한 논란도 계속해서 제기됐다.
또 최근에는 일본의 플루토늄 도입이 많은 국가들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일본은 프랑스에서 2006년까지 80t의 플루토늄을 수입할 예정인데, 그중 1차분(1t)이 해상수송되고 있는 것. 일본은 가시와자키 - 가라와 계획을 수립, 2010년까지 총 2백억달러를 투입해 원자력발전소를 40개 더 증설할(현재 38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올해는 핵무기의 감축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논의가 줄기차게 진행돼 왔고, 또 가시적인 성과도 상당히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