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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달, 부메랑 성운,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

‘윈터 이즈 커밍(Winter is Coming)’.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문자 그대로 쓸 시기다. 겨울이 오고 있다. 올해 겨울도 한파가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고, 이왕 온 겨울, 더 격렬하게 추위를 느껴보며 보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준비했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들을.

 

 

 

 

 

● 지상 최저 영하 98도 남극

 

사람이 거주하며 마을을 이루고 있는 지역 가운데 가장 추운 곳은 러시아에 있는 사하공화국의 ‘오이먀콘’이다. 영구동토층에 자리한 이곳에는 인구 8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오이먀콘의 12~2월 평균 기온은 영하 50도를 밑돈다. 1933년 2월 6일 영하 67.7도를 기록해 남극을 제외하고 인간이 사는 곳 중 가장 낮은 기온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된 역대 최저 기온은 1981년 1월 5일 양평의 영하 32.6도였다.  

 

오이먀콘이 이렇게 추운 이유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이다. 우선 위도가 북위 63도 정도로, 겨울에는 약 3시간밖에 햇빛을 받지 못한다. 시베리아 내륙에 자리 잡고 있어 바다의 따뜻한 공기를 얻지 못하는 것도 이유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거대한 산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 북극에서 내려온 차가운 공기가 땅에 계속 머무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상주하지 않는 지역까지 포함하면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은 남극이다. 1983년 7월 남극에 세워진 러시아의 보스토크기지는 지금껏 전 세계 기상관측소가 측정한 기록 중 가장 낮은 영하 89도를 기록했다. 

 

남극은 대륙으로 이뤄져 있는데다 얼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태양열을 대부분 반사시킨다. 평균 해발고도도 29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아 땅에서 반사된 태양에너지가 도달하지 못한다. 반면 바다가 많은 북극은 상대적으로 태양열을 오래 저장할 수 있다. 그래서 남극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55도 정도이지만, 북극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35~40도로 10도 이상 높다. 

 

남극의 최저기온은 최근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올해 6월 테드 스캠보스 미국 국립설빙자료센터(NSIDC) 연구원팀은 남극에서 보스토크기지보다 온도가 더 낮은 곳을 찾아 국제학술지 ‘지구물리학연구회보(Geophy 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했다.doi:10.1029/2018 GL078133

 

연구팀은 2013년 예비 연구를 통해 남극의 여러 지점에서 영하 93도를 기록한 지역들을 발견해 발표한 적이 있었다. 최종 연구 결과, 남극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곳은 이보다 온도가 더 낮은 영하 98도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관측소가 남극 전역에 설치된 것은 아닌 만큼 여기서 기록된 온도는 남극의 극히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남극 전역의 기온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미국해양대기청(NOAA)이 운용하는 인공위성 자료를 분석했다. 

 

2004~2016년 겨울철 남극 관측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해발고도 3500m 이상의 고원 지대의 온도는 영하 90도 이하로 떨어졌다. 그 중에서도 남극 빙상의 작은 구멍이나 얕은 틈이 있는 100개 지역에서는 영하 98도까지 곤두박질 쳤다. 

 

스캠보스 연구원은 “영하 98도는 아마 지구 표면에서 기록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렇게 낮은 온도가 기록되기 위해서는 날씨가 지속적으로 맑아야 하고, 공기가 극도로 건조해야 한다. 대기 중에 수분이 있으면 눈 표면의 열 손실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차가운 공기가 며칠간 머무를 수 있다. 연구팀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을 계속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장비를 개발해 2년 내에 배치할 계획이다. 

 

 

 

우주 최저 영하 272.15도 부메랑 성운

 

이제 지구 밖으로 눈을 돌려 보자. 태양계에서 가장 추운 곳은 어디일까. 당연히 태양과 거리가 멀수록 춥다. 행성 중에서는 평균 온도가 영하 216도인 천왕성과 영하 214도인 해왕성이 가장 추운 행성이다. 

 

 

이들은 태양과 각각 약 28억km, 45억km 떨어져 있다. 해왕성보다 천왕성이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두 행성의 온도가 비슷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해왕성 내부에서 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태양계에서 가장 추운 곳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바로 달이다. 2009년 NASA 과학자들은 ‘달궤도탐사선(LRO)’이 보내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달의 남극에 있는 분화구 안쪽에서 태양계에서 온도가 가장 낮은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의 온도는 영하 238도를 기록했다. 지형의 특성상 햇빛을 영원히 받을 수 없어 수십억 년 동안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가장 추운 곳은 지구에서 5000광년 떨어져 있는 부메랑 성운이다. 1995년 이 성운을 관측하던 과학자들은 빅뱅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가 흡수되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우주배경복사는 2.725K(절대온도), 섭씨온도로 바꾸면 영하 약 272도다. 부메랑 성운이 우주배경복사를 흡수한다는 것은 이보다 더 낮은 온도라는 뜻이다. 실제로 후속 관측을 통해 밝혀진 부메랑 성운의 온도는 영하 272.15도로, 절대영도인 영하 273.15도 보다 겨우 1도 높은 온도다.

 

부메랑 성운이 어떻게 이처럼 낮은 온도를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20년간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지난해 미국과 스웨덴, 칠레 국제공동연구팀이 세계 최대의 전파망원경인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관측망(ALMA)’을 이용해 부메랑 성운을 상세히 관측하고 그 이유를 밝혀냈다. doi:10.3847/1538-4357/aa6d86

 

 

연구팀에 따르면, 부메랑 성운은 태양과 같은 적색거성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외피층이 팽창해 가스가 방출되고 있는 ‘원시 행성상 성운’이다. 

 

연구를 이끈 라그벤드라 사하이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연구원은 “성운의 범위, 나이, 질량 및 운동에너지 등을 계산해 분석한 결과, 방출되고 있는 외피층은 적색거성 혼자서 내뿜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며 “초속 150km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우주 공간에 외피층을 방출할 수 있는 이유는 동반자별의 중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적색거성에게 작은 동반자별이 있고, 이 별과 상호작용하는 에너지로 가스의 팽창속도가 빨라져 그만큼 온도가 낮아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가스 방출이 모래시계처럼 뻗어나가며 그 길이가 12만AU(1AU는 태양과 지구의 평균거리로 약 1억4960만km)에 이른다는 사실도 계산했다. 

 

연구에 참여한 라스 아크 나이만 ALMA 천문대 연구원은 “중심에 있는 적색거성은 점점 작아지고 더 뜨거워져서 주위의 성운을 데우고 더 밝게 만드는 행성상 성운으로 진화한다”며 “부메랑 성운의 극한 저온은 조만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최저 절대영도? ‘저온 원자 실험실’

 

부메랑 성운보다 더 추운 곳이 있을까. 놀랍게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달보다도 가까이에 있다. 바로 올해 5월 21일 안타레스 로켓에 실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한, NASA가 만든 ‘저온 원자 실험실(CALCold Atom Laboratory)’이다. 

 

아이스박스 크기만 한 CAL은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공간이다. 과학자들은 이 박스 안에서 절대영도와 불과 10억분의 1밖에 차이나지 않는 극저온의 상태를 만들었다. 신용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물리학에서 절대영도는 분자의 운동이 완전히 정지해 에너지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며 “입자가 가진 운동에너지를 뺏어 바닥상태로 만들면 절대영도까지 냉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CAL 안에는 루비듐과 같은 기체 원자가 있다. 이 원자에 모든 방향에서 레이저를 쏘면, 원자는 빛을 흡수한 뒤 방출하면서 그 에너지 차이로 운동에너지가 줄어든다. 마치 날아가는 공에 수만 개의 공을 반대 방향으로 충돌시켜 공을 느려지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원자가 초저온으로 냉각되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입자들이 모두 동일한 양자역학적 상태가 돼 마치 하나의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192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사티엔드라 보스가 예측했고, 1995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항공물리공동연구소(JILA)의 에릭 코넬과 칼 와이먼이 최초로 만들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상태는 기체, 액체, 고체, 플라스마에 이어 물체의 다섯 번째 상태로 부르기도 한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상태에서 원자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원자의 파동성은 미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지만,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상태가 되면 거시적인 현상으로 관측할 수 있어 연구하기가 훨씬 쉽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는 지구에서도 만들 수 있지만, 중력 때문에 수 초 이내로 매우 짧은 시간만 관찰할 수 있다. 조금 더 길게 관측하려면 로켓을 발사해 자유낙하시켜 무중력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라이프니츠대, 독일항공우주센터(DLR) 등 독일 연구기관 11개로 이뤄진 연구팀은 2017년 1월 스위스에서 마이우스(MAIUS) 1 로켓을 발사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실험에 성공했다. 자유낙하 하는 6분 동안 만들어진 미세중력 환경에서 과학자들은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현상과 관련된 100여 개의 실험을 수행했다. 이 결과는 올해 10월 1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doi:10.1038/s41586-018-0605-1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를 좀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 한 번에 최대 10초 동안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를 관측할 수 있으며, 하루에 6시간 동안 실험을 지속할 수 있다. 현재 CAL은 ISS에서 시운전 단계에 있다. 

 

신 교수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는 마찰 없이 흐르는 초유체와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의 성질을 갖는다”며 “이 물질은 그 자체의 특성을 연구하는 것도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양자컴퓨터에 응용하거나 자기장과 중력을 측정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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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오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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