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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이론이 이제 실생활에도 응용되기 시작했다. 무질서한 맥박을 재서 건강상태를 알리는가 하면…

일본사람들의 상품화 솜씨는 정말 귀신같다. 외국의 이론을 받아들여 응용하는데 놀랄만큼 재빠르다는 얘기다. 그들은 현재 복잡 무질서 불규칙으로 대표되는 '주기성없는 진동상태', 즉 혼돈이론도 잽싸게 도입해 상품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잘 써먹은 퍼지이론의 다음 타자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실례로 일본의 정보처리 전문회사인 CC사(Computer Convenience)는 최근 혼돈 이론을 이용, 불규칙적인 맥박을 분석함으로써 건강여부를 알려주는 CAP라는 건강관련전자장치를 선보였다. 이 장치는 손가락에서 감지되는 맥박을 측정해 정밀분석한 뒤 모니터상에 나타나게 한 것이다.

또 일본 히다치연구소는 혼돈이론을 주가 예측에 활용해 보았는데 그 결과는 상상외로 정확했다고 한다. 지난 1주의 주가동향을 입력함으로써 그 주의 주가를 미리 예측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71%의 높은 정확도를 얻은 것이다.

이밖에도 일기예보 생체공학 화상인식 음성인식 정치 및 경제예측 등 난해하고 변수가 많은 분야에 혼돈이론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제3의 물리학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혼돈이론의 범위는 무척 넓다. 일반에게 비교적 널리 소개된 만델브로트박사(IBM왓슨연구소)의 프랙탈이론도 따지고 보면 혼돈이론의 한 분야다. 지금부터 혼돈이론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잡아당김가 접음으로 발생하는 변화. 현대 혼돈과학의 아버지인 앙리 푸앵카레의 사진을 컴퓨터 모자이크로 보여주고 있다.
 

비선형현상을 설명한다

혼돈이란 영어 'chaos'에 대한 우리말 번역으로 일반적으로 불규칙적이고 매우 복잡해 예측이 불가능한 운동을 뜻한다. 이렇듯 외관상 무작위한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계(係)의 운동을 결정하는 운동방정식에 무작위성이 내재하지 않으므로 종종 '결정론적 무작위성' 혹은 '결정론적 혼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점에서 브라운운동과 같은 무작위적 운동(random motion)과 구별된다. 혼돈운동은 최근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여러 비선형현상(非線形現像)중 비선형동역학의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혼돈운동은 단지 수학적 의미만 갖는 매우 근사적인 물리학적 모형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자연현상들에서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다. 몇가지 예를 들면 행성의 운동, 해류와 대기의 운동, 레이저(laser)의 안정성, 유체(流體)의 복잡한 흐름, 심장의 박동, 전자재료의 물성, 전염병의 확산, 인구의 증감 및 분포, 주가의 변동 등 자연과학과 공학 뿐만 아니라 과학이 다루는 수많은 문제들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

물리학의 목적은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가급적 적은 수의 기본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법칙들을 사용해 우리는 어떤 계의 초기상태를 알고 있을 때 그 계의 나중상태를 예측하려 한다. 기본법칙들이 어떤 수학적 방정식으로 표현돼 있을 때, 예측이란 그 방정식의 해(解)를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까지 물리학자들은 방정식을 풀기 위해 주로 해석적인 방법에 의존했다. 그러나 방정식이 비선형항(項)을 포함하고 있을 때 그것을 해석적 방법으로 처리하기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대개 비선형항을 무시하고 선형방정식으로 바꿔 그 해를 구했다. 다시 말해 비선형항이 포함돼 있을지라도 기껏해야 그 근사치를 얻을 수 있는 선형방정식만 다뤘다. 시간과 공간의 범위가 작은 경우 대개의 자연현상들은 선형현상들이기 때문에 선형근사는 자연현상들을 이해하는데 실질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오래 경과됐거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계의 부분간 상호작용이 매우 강한 자연현상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비선형항들을 무시하면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들은 이해될 수 없다.

로렌츠의 「나비효과」

19세기 말 비선형동역학에 대한 주된 연구는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 1854~1912년)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비선형현상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 절단면 방법 등 비선형동역학의 연구에 필요한 도구들을 고안해냈다. 또 여러가지 수학적 정리를 증명하고 많은 추론들을 제시했다. 그의 연구결과는 최근까지도 매우 중요하게 사용될 뿐 더러 점점 더 깊고 넓게 연구되고 있는데 불행히도 당시에는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던 것같다. 대신 그의 연구는 수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실제로 많은 수학자들을 매료시켰다. 바로 이 수학자들에 의해 이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됐다. 이는 이후 현대수학의 여러 분야를 만들고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자극받아 다시 관심을 갖게 된 물리학자들의 연구에도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20세기 들어 컴퓨터의 발명으로 매우 복잡한 수치계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과학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연구방법에 있어서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했다.

예를 들어 1964년 로렌츠(Lorenz)는 대기의 대류를 기술하는 매우 간단한 근사적 모형인 세개의 비선형방정식에서 혼돈스런 운동을 하는 해를 찾아냈다. 그의 발견은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의 기상변화에 대한 예측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미국 MIT의 기상학교수였던 로렌츠는 온도 기압 풍향 등 세가지 변수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를 알기 위해 이 변수들을 컴퓨터에 입력시켰다. 그는 이 변수의 소수점 이하 세자리까지를 입력해 본 뒤 다시 소수점 이하 여섯자리까지를 입력해 두 결과를 비교해 보았는데 그 결과는 완전히 판이했다.

로렌츠교수의 이 발견을 기상학에서는 '나비효과'라고 부른다. 어느 한 지점을 날아다니는 나비로 인해 그 다음 달에 전혀 엉뚱한 지역에서 폭풍우가 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의 연구는 수학자들 뿐만 아니라 물리학자들에게 비선형현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의실험)방법이 비선형현상을 연구하는데 유용하고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되게 했다.

아무튼 혼돈이론은 일기예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예로 일본 기상청 예보과에서는 일기예보의 정확성을 높이는데 혼돈이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상은 곧 혼돈이라는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일본 교토대 오다 마사오교수팀도 현재 일기예보의 오차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멀지 않아 10일 후의 일기예보와 그 오차가능성을 함께 발표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이와 같이 비선형현상은 과학전반에 걸쳐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그 연구접근 방법으로는 컴퓨터시뮬레이션, 수학적 및 해석이론학적 방법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려진 정교한 실험에 의한 관찰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혼돈운동을 보이는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가장 간단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연구돼 왔고 또한 자주 거론되는 혼돈이론의 대표적인 본보기는 아마도 병참본뜨기(logistic map)일 것이다. 그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X}_{n+1}$ = A Xn(1-Xn)

예를 들어 세포분열을 통해 숫자가 증가하는 세포들을 배양한다고 하더라도 세포의 숫자가 그 전단계에서의 숫자에 비례해 계속 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양분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지나치게 늘지 않도록 그 증식의 억제도 받게 된다. 따라서 방금 방정식으로 나타낸 본뜨기는 그러한 억제가 고려된 증식계의 간단한 모형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Xn을 정수값을 취하는 시간 n에서의 세포의 숫자, 혹은 밀도라고 하면 본뜨기는 시간에 따른 X값의 변화, 즉 변수 X의 운동을 결정한다. 가령 A=2일 때 X의 초기값을 ${X}_{0}$=0.7로 주면 본뜨기를 반복함으로써 ${X}_{1}$=0.42, X₂=0.4872,…와 같이 일련의 X값을 얻을 수 있다.

이를 X의 궤도 X라고 부르자. 그러면 X={0.7, 0.42, 0.4872, …}으로 표현될 것이다. 아마도 이 궤도는 시간이 무한히 길어질 때, 즉 본뜨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면 하나의 고정된 값 X=0.5에 가까워질 것이다. 수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0.5에 수렴함을 관찰할 수 있다. 이와같이 궤도가 수렴해가는 점을 끌개(attractor)라고 한다.

초기값 ${X}_{0}$가 0과 1 사이에 있는 어떤 값을 취하더라도 모든 궤도는 같은 끌개로 수렴하게 되는 것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A의 값이 약간 변하더라도 0과 1 사이의 모든 초기값에 대해 궤도는 마찬가지로 같은 끌개로 수렴한다. 다만 끌개의 위치가 X=0.5가 아닌 그 근처로 조금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A의 값이 어느 수치 이상 커지면 상당히 다른 궤도의 운동을 볼 수 있다. 가령 A=3.2로 주고 어떤 초기값에 대해 본뜨기를 반복시키면 초기값에 관계없이 궤도는 어떤 일정한 값들을 갖는 운동을 한다.

그러나 A=2의 경우와 달리 A=3.2의 궤도는 한 값이 아닌 두개의 값을, 즉 X=0.7795와 X=0.5130 사이를 계속 진동하는 운동을 한다. 이 경우 궤도는 주기 2인 진동을 하며 이때 끌개의 주기를 2라고 한다.

A의 값이 더욱 커져, 가령 A=3.5일 때는 궤도가 네개의 값 사이를 진동하며 주기 4인 끌개로 수렴한다. 이와같은 현상을 주기배가(period-doubling)라고 하는데 A의 값이 점점 커지면 주기배가는 계속된다. 주기배가의 종말에는 주기가 무한대인, 즉 비주기적인 끌개에서의 운동이 된다. 이때 궤도의 X값은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같은 운동이 반복되지 않는 불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이것이 바로 혼돈운동이다.

준주기 경로를 발견해

혼돈운동을 하는 어떤 A값에서 초기값이 매우 인접한 두개의 혼돈궤도를 비교해 보자. 초기값이 인접해 있을수록 두 궤도는 상당한 시간동안 거의 같은 X값을 취하면서 비슷하게 변화한다. 그러나 어떤 유한한, 충분히 오랜 시간 이후 두 궤도는 급격히 다른 유형의 운동을 보이게 된다. 즉 계가 혼돈운동을 하는 영역에서는 두 궤도의 초기조건이 비슷하다고 해서 나중까지 비슷한 운동을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비선형현상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선형현상과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성질이다. 두 궤도의 초기조건이 인접한 정도를 어느한 궤도의 초기조건에 대한 오차라고 생각하면 위와 같은 인접궤도의 발산(發散)은 어떤 계가 혼돈스런 운동을 할 때 설령 초기조건이 알려졌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기란 불가능하므로 오랜 시간 후 계의 운동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예측성은 혼돈운동의 중요한 특징이다.

혼돈연구의 성공적이고 매력적인 또 하나의 면은 실효성을 암시하는, 이론의 보편성에 있다. 예로 든 병참본뜨기에서 혼돈으로의 전이는 어떤 유한값 A=3.5699…에서 일어난다.

놀라운 것은, 이와같은 계속적인 주기배가에 의한 혼동으로의 전이현상은 방금 예로든 간단한 병참본뜨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체의 흐름, 수면의 진동, 전기회로의 신호(signal), 그네의 운동, 유체의 대류 등 전혀 관계없이 보이는 계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1978년 미국의 물리학자 파이겐바움(Feigenbaum)에 의해 전이점에서의 임계현상을 양적으로 특성화하는 보편적 상수들의 존재가 알려진 것과 같이 혼돈에 이르는 경로의 보편성은 질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양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 파이겐바움은 75년 어느 순간 규칙적 행동, 즉 주기성 사라지고 불규칙적인 행동(혼돈)이 나타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설명해냈다.

주기배가 경로에 의한 혼돈으로의 전이 외에도 두가지의 경로가 더 알려져 있다. 어떤 계의 운동이 갖고 있는 자유도(自由度)는 흔히 계의 운동과 관련된 기본진동수의 숫자로 표현된다. 따라서 개입하는 계의 진동수가 많을수록 계의 운동은 자유도가 큰 복잡한 것이 된다.

준주기(quasiperiodic)경로에서는, 그러한 진동수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서 종국에는 복잡한 운동, 즉 혼돈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진동수가 둘인 운동 다음에 곧 혼돈운동으로의 전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때 두 진동수가 서로 유리수 관계에 있지 않아서 계가 전이하기 전에 준(準)주기적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준주기경로는 오랜 숙제였던 유체난류의 발생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뤼엘(Ruelle)과 네덜란드의 수학자 타켄스(Takens)에 의해 1971년에 처음으로 제안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간헐(intermittency)경로인데 역시 두 선구자(Pomeau와 Malnneville)에 의해 1979년 제안됐다. 이것은 혼돈으로의 전이가 일어나기 전에 규칙적인 운동이, 불규칙적이고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혼돈운동과 섞여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방금 얘기한 세가지의 경로는 이론적으로도 이미 잘 정립된 상태이고 여러가지 실험관측으로도 그 정당성이 확인됐다.
 

바다의 산호. 그 성장모습이 비선형적이다. 또 인간의 허파꽈리와도 비슷한 모양을 보여준다.
 

아직 태동단계

혼돈은 비선형현상의 독특성을 대변하는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다. 비선형현상의 연구는 최근 20여년에 걸쳐 실험적 관찰, 컴퓨터를 이용한 고속 계산, 수학적 이론 등을 도구로 하여 과학 전분야에서 가히 폭발적인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현재 각 연구분야와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이 주어진 문제의 숫자만큼이나 다양, 비선형과학을 총체적으로 정의하거나 한정짓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다. 다양한 비선형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체계가 아직도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분야는 여전히 태동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선형과학은 현대과학의 새로운 모색방향으로 인식되고 있음에 틀림없으며 범과학적인 관심과 협조하에서 예측이상의 무궁한 발전과 중요한 결과들이 기대되는 분야다.
 

혼돈이론으로 재구성한 수소원자. 오렌지색 부분에는 강한 자기장이 형성돼 있다.
 

199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국형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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