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보, 뭔가 이상하다. 재밌게도 오선지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 조지 크럼의 ‘나선 은하’라는 작품이다(일반적인 악보처럼 연주가 가능하다!). 이 악보처럼 은하계는 여러 나선팔이 아름답게 휘감긴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용돌이 모양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는 지름이 10만 광년이나 되는 아주 거대한 우리 은하에 파묻혀있다. 반세기 전에 보낸 인류의 우주탐사선은 아직도 태양계를 탈출하지 못했다. 즉 이렇게나 거대한 우리 은하의 전체 모습을 인류는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미스터리한 세계가 바로 우리 은하다.
보이지 않는 은하를 보는 방법
은하 안에 살면서 은하 전체의 지도를 그린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지구에서 모든 방향의 별과 가스 구름을 관측하면서 각각의 별과 가스 구름이 대략 얼마나 떨어졌는지 측정하면 가능하다. 그렇게 조금씩 방향을 틀면서 다양한 거리에 놓인 별과 가스 구름의 분포를 채우면, 결국 우리 은하의 전체 형태를 완성할 수 있다. 이는 도로에 갇힌 자율주행 자동차가 레이저를 쏴서 반사된 신호로 도로에 놓인 장애물들을 조망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1944년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헨드릭 헐스트는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고 있을 수소 원자에서 아주 독특한 전파가 방출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측을 했다. 수소는 양성자 하나로 구성된 원자핵 주변에 전자 하나가 맴도는 형태다. 이 전자에는 스핀이라는 물리량이 존재하는데, 스핀의 방향이 뒤집힐 때 아주 특정한 에너지의 전파가 방출될 수 있다. 이때 관측되는 전파는 파장이 21cm인 아주 긴 전파로, ‘21cm 중성 수소선’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빛은 성간 먼지의 방해를 받지만 파장이 긴 21cm 중성 수소선은 이런 방해를 거의 받지 않는다. 헐스트는 이 독특한 수소선을 관측하면 우리 은하의 수소 원자 분포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952년 천문학자 윌버 크리스티안센과 제임스 힌드먼은 헐스트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들은 우리 은하 전역에서 헐스트가 예측했던 21cm 중성 수소선(수소 분포)을 관측한 결과, 우리 은하에 중심에 막대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페르세우스자리 나선팔, 용골~궁수자리 나선팔, 방패~남십자~켄타우루스자리 나선팔, 직각자~백조자리 나선팔 등 거대한 나선팔이 네 개나 존재한다고 밝혔다.
2000년대 들어 천문학자 로버트 벤자민은 적외선 우주망원경인 스피처 우주망원경으로 먼지 구름 속에 숨은 별 자체의 분포도를 직접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우리 은하의 뚜렷한 나선팔은 총 세 개라고 발표했다.
관측 방법에 따라 나선팔 갯수 달라져
우리 은하의 나선팔은 네 개일까, 세 개일까. 사실 200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도 우리 은하의 나선팔이 대체 몇 개인지에 관한 논쟁은 치열했다. 전파 관측으로 가스 구름의 분포를 보면 나선팔이 총 네 개지만, 적외선 관측으로 별들을 확인한 더 최근의 연구에서는 나선팔이 세 개만 보였다.
흥미롭게도 우리 은하는 어떤 파장의 빛으로 지도를 그리는가에 따라 나선팔의 갯수가 달라진다. 가장 최근의 분석에 따르면 아주 고온인 별빛을 주로 추적할 수 있는 자외선으로 관측하면 두 개의 뚜렷한 나선팔이 보인다. 반면 나이 많은 미지근한 별빛 위주로 볼 수 있는 적외선으로 관측하면 나머지 두 개의 나선팔도 보인다. 관측하는 빛의 종류에 따라 보이는 나선팔이 달라지면서, 네 개가 다 보이거나, 그중 두세 개만 보였던 것이다(참고로 우리 은하 거대한 나선팔 사이사이에는 짧고 규모가 작은 나선팔도 굉장히 많다. 우리 태양계는 거대한 나선팔이 아니라, 짧은 나선팔 중 하나인 오리온자리 나선팔에 위치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네 개의 거대한 나선팔보다 더 거대한 나선팔이 추가되며 다섯 개가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전파망원경은 중국의 FAST(Five hundred meter Aperture Spherical Telescope)다. 직경이 500m나 되는 엄청난 규모에 걸맞게 매우 멀리 떨어진 희미한 전파 신호까지 포착한다. 2020년 천문학자들은 이 전파망원경으로 지금껏 몰랐던 거대한 구조를 우리 은하 바깥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우리 은하 중심에서 약 7만 2000광년 떨어진, 둥글고 길게 이어진 새로운 가스 구름을 새로 찾았다. 이 가스 구름은 기존의 네 나선팔 중 해당 방향으로 가장 먼 페르세우스자리 나선팔보다도 더 멀었다. 이 가스 구름의 길이는 약 3600광년, 두께는 약 700광년으로 확인됐다. 길이와 두께의 비율이 약 5대 1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형태가 고양이 꼬리를 닮았고, 또 갈대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들속 식물과도 유사하다고 해서 ‘캣테일(고양이 꼬리)’이란 이름을 붙였다(고양이를 키우는 천문학자로서 이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나선팔이 가리키는 곳에 이웃 은하가 있다?
새로 발견한 가스 구름이 진정 더 큰 나선팔의 일부라면, 이 거대한 나선팔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수억 년 전 우리 은하 주변을 지나갔던 이웃 은하와 충돌한 흔적일까? 실제로 중력 상호작용이 강하게 일어나는 다른 외부 은하들을 보면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긴 나선팔들이 있다. 나선팔이 이웃 은하의 중력 영향을 받아 외곽에서 풀어져버린 결과다.
이는 곧, 우리 은하의 새로운 큰 나선팔을 따라가면 여태 몰랐던 이웃 은하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새로 찾은 나선팔은 우리 은하가 아름다운 나선 모양을 이루기까지의, 그 역학적 진화 과정을 밝힐 핵심 단서가 될지 모른다.
수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다양한 은하의 모습은 모두 관측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우리 은하의 얼굴은 정작 볼 수 없다. 그 속에 갇힌 채 주변에 퍼진 별과 가스 구름의 분포로 더듬어갈 뿐이다. 우리 은하의 이웃인 안드로메다 은하에 누군가 살고 있다면 그들의 하늘에 비친 우리 은하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지웅배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은하들이 사랑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연구한다. 우주를 가이드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은하철도 999 차장을 꿈꾼다. galaxy.wb.z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