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살짝 굽히는 것 같더니 그 반동으로 사뿐히 뛰어올라 앞에 놓인 상자 위에 두 발로 착지한다. 제자리멀리뛰기를 할 때처럼 두 팔도 살짝 위로 올라갔다가 착지와 동시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쉬지도 않고 그 다음 상자 위로 바로 점프. 이보다 높은 상자 위에도 실수 없이 뛰어 오른다. 뒤돌며 뛰어내리기까지 완벽하다. 키의 절반쯤 되는 높은 상자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훌쩍 뛰어 오르더니, 두 다리를 머리 위로 넘겨 한 바퀴 공중돌기로 멋지게 바닥에 착지한다. 체조 기술 중 하나인 백플립(backflip)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어느 새 안정되고, 두 팔을 위로 쭉 뻗는다.
완벽한 성공이다.
다이내믹스가 2004년 개발한 개 로봇 ‘빅독(Big Dog)’은 당시만 해도 오르막길에서는 걷다가 넘어질 만큼 자세가 불안정했다. 이후 관절에 운동센서와 자이로스코프를 달아 업그레이드한 뒤, 2006년 날렵하면서도 균형감 있게 잘 달리는 빅독이 등장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연구팀은 2009년 로봇이 두 발로 직립보행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빅독을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 네발로 보행하는 알고리즘을 수정한 ‘두발 보행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연구팀은 여기에 사람 모양의 상체를 붙인 ‘펫맨(Petman)’을 개발해 방호복 테스트에 사용했다.
이후 여러 가지 업그레이드를 거쳐 2013년도 일본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로봇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최근 유튜브에 올린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의 체조 기술이 화제다. 2017년 11월 16일 올라온 이 동영상은 한 달 만에 조회수 1200만을 넘겼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와이어드는 “아직 손동작이나 배터리 수명 등 해결할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틀라스의 백플립은 정말 대단한 발전”이라며 “언젠가는 인간의 능력치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틀라스의 발전에 압도당한 이들은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이 정도(아틀라스의 백플립)는 아무 것도 아니다. 몇 년 뒤에는 로봇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져서 스트로보라이트(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에서 광량이 부족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조명)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썼다. 머스크는 통제되지 않는 로봇 기술에 대해 꾸준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조정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유압로봇팀 선임연구원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살짝 든다거나 뒷걸음질 하면서 무게중심을 잡는 동작이 사람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며 “아틀라스는 사람의 동작을 모방한 기술에서는 ‘끝판왕’”이라고 평가했다.
백플립 비결은 유압식 구동
아틀라스가 처음부터 사람을 따라한 것은 아니다. 아틀라스의 모태는 개였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디어 휴머노이드인 아틀라스로 다시 태어났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험지에서 조난자를 수색하거나 구조할 용도로 사용하려던 것이었다. 연구팀은 아틀라스가 눈이 쌓인 산길에서도 안정적으로 걷고, 긴 막대기로 밀어도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실상 두 발 보행 알고리즘을 완성한 셈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최근 아틀라스는 백플립까지 선보이며 진정한 휴머노이드로 진화했다. 현재 아틀라스의 키는 약 1.5m, 몸무게는 75kg으로 28개 관절로 이뤄졌다. 짐은 최대 11kg까지 들 수 있다.
무거운 유리문을 스르르 밀고 밖으로 나간다. 흰 눈이 쌓인 언덕을 걸어간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조심조심 지나가지만 지형이 울퉁불퉁한 탓에 비틀댄다. 하지만 제법 아장아장 잘 걷는다. 무거운 짐을 번쩍 들어 옮기기도 하고, 누군가가 몸을 세게 밀쳐도 넘어지지 않고 버티더니….
으악! 미처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엎어졌다. 하지만 문제 없다.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반동을 얻어 벌떡 일어났다!
디어 휴머노이드인 아틀라스로 다시 태어났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험지에서 조난자를 수색하거나 구조할 용도로 사용하려던 것이었다. 연구팀은 아틀라스가 눈이 쌓인 산길에서도 안정적으로 걷고, 긴 막대기로 밀어도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실상 두 발 보행 알고리즘을 완성한 셈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최근 아틀라스는 백플립까지 선보이며 진정한 휴머노이드로 진화했다. 현재 아틀라스의 키는 약 1.5m, 몸무게는 75kg으로 28개 관절로 이뤄졌다. 짐은 최대 11kg까지 들 수 있다.
흔히 인간형 로봇의 팔다리는 전기모터 방식으로 움직인다. 오준호 KAIST 석좌교수팀이 만든 ‘휴보’나, 일본 혼다의 ‘아시모’를 비롯한 대부분의 휴머노이드가 전기모터 방식을 쓰고 있다. 팔다리 관절에 전기모터가 장착돼 있어서 힘을 주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데, 사람만큼 동작이 정교하다는 장점이 있다.
조 선임연구원은 “전기모터 방식은 정교한 작업에는 유리하지만 역동적인 동작을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강한 힘을 내려면 전기모터도 덩달아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틀라스의 다리가 전기모터 방식이었다면 백플립을 위해 ‘코끼리 다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전기모터 방식의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로봇과학자들은 동물의 다리 구조를 모방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상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바이오미메틱로보틱스랩 교수팀이 만든 ‘치타로봇’이 대표적이다. 치타로봇은 실제 치타처럼 왼쪽 앞발과 뒤쪽 오른발, 왼쪽 오른발과 뒤쪽 왼발이 짝을 이뤄 번갈아 땅을 딛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걷는다.
아틀라스의 다리는 휴보나 아시모와 비교해 가는 편이다. 조 선임연구원은 “높은 상자에 올라갈 만큼 강한 힘을 내는 이유는 유체의 압력을 이용한 ‘유압 구동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며 “사슴이나 고라니를 상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몸을 허공에 띄울 만큼 점프력이 좋은데다, 착지했을 때 사람처럼 빠르게 무게중심을 잡거나, 힘이 필요한 관절에 동력을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유압식 로봇의 장점이다.
유압식은 두개의 주사기를 호스로 연결한 뒤 한쪽을 누르면 공기의 힘에 의해 다른 쪽이 밀려나는 것처럼 펌프로 기름을 압축한 힘으로 피스톤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굴착기, 크레인 등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내는 장비에 주로 사용된다. 아틀라스처럼 다이내믹한 동작이 가능한 로봇에도 유압식이 유리하다.
전기모터식 손에 유압식 다리 결합
한국생산기술연구원도 유압식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조 선임연구원은 2013년 다리 4개를 가진 로봇 ‘진풍’을 선보인 뒤 현재 업그레이드된 ‘진풍 II’를 만들고 있다. 진돗개와 풍산개의 앞글자를 따서 ‘진풍(眞風)’이라고 이름 지었다. 현재 진풍 II의 네 다리와 옆구리, 엉덩이에는 유압식 액추에이터가 달려 있다. 진풍 II에는 이런 유압식 관절이 12개 달려 있다.
진풍 II도 아틀라스나 빅독처럼 가느다란 다리로 사뿐사뿐 걷는다. 옆에서 세게 밀거나 심지어 발로 차도 무게중심을 유지해 넘어지지 않는다. 자갈이나 벽돌이 쌓인 험지나 경사면도 쉽게 오른다.
하지만 유압식만으로는 사람과 꼭 닮은 휴머노이드를 구현하기엔 아직 이르다. 유압식은 힘은 세지만, 전기모터식에 비해 정교함이 떨어진다. 조 선임연구원은 “강한 힘이 필요한 어깨 관절과 다리는 유압식, 정교한 동작이 필요한 손과 손목은 전기모터 방식으로 만들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압식 로봇의 경우 관절이 많을수록 정교한 동작이 가능하다. 사람처럼 정교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관절이 최소 14개는 돼야 한다. 일본 로봇업체 히타치가 재난 현장에 사람 대신 투입할 목적으로 만든 굴삭기 로봇 ‘아스타코(ASTACO)’는 관절이 6개인 팔이 두 개나 달렸다. 기존 굴삭기가 관절이 4개뿐이며 팔도 하나인데 비해 정교한 작업에 유리한 셈이다. 하지만 아스타코의 경우 사람이 조종해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관절 12개를 모두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작업 속도가 느려져 현장에서 효율은 떨어진다.
조 선임연구원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리오네트(줄로 조종하는 나무인형)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로봇팔을 개발했다. 마리오네트는 인형 관절이 막대기에 실로 묶여 있어 막대기 두 개만 움직여도 걷거나 춤추는 동작을 소화한다.
조 선임연구원은 “관절이 7개인 로봇팔을 개발했다”며 “마리오네트처럼 간단한 조종만으로 로봇팔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로봇팔은 무게 40kg인 바벨을 거뜬히 들어올리고, 20kg이 넘는 포탄을 안전함까지 운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연구팀은 2018년 4월 이 로봇팔이 달린 ‘굴삭기 로봇’을 내놓을 예정이다.
조 선임연구원은 정교한 로봇손도 개발 중이다. 기존의 유압식 로봇팔에서 손목 부위는 180도로 움직이는 사람 손목과 달리 45~70도로 움직이는 데 그쳤다. 움직일 때마다 손목 부위가 덜렁거려 제어도 어렵다.
연구팀은 사람이 팔을 움직일 때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서로 번갈아 당겨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모방해 두 개의 유압 실린더를 단 액추에이터를 개발했다. 이 액추에이터를 로봇 팔에 부착해 로봇 손목이 최대 210도까지 움직이도록 했다. 로봇손에 액추에이터와 전기모터를 둘 다 적용하자 최대 30kg까지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졌고, 종이컵을 찌그러트리지 않고 쥘 정도로 섬세해졌다.
조 선임연구원은 “야외에서 유압식 휴머노이드가 스스로 움직이려면 시스템을 설계하는 기술도 중요하다”며 “로봇공학자들이 유압로봇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최적의 알고리즘을 찾는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