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분열이 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라면 핵융합은 비탈을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늘 숨을 쉬면서도 공기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불로 대표되는 각종 에너지의 고마움을 느끼며 사는 경우란 흔치 않다.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려는 노력없이 50년 쯤 보낸 후 맞게 될 미래의 암담한 생활상을 한번 상상해 보라.
지금의 두배 정도로 불어난 인구 풍요한 삶에 대한 끝없는 욕구 반면 바닥이 드러난 자원들 피폐해진 환경 등이 지역간의 갈등과 전쟁을 야기하고 인류문명을 파국으로 몰고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20세기 중반에 원자력이 실용화되지 않았더라면 이같은 예상이 틀림없는 현실로 좀더 빠르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질량은 에너지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면서 "질량은 에너지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의 몸은 양분의 흡수와 소모가 균형을 이루면서 유지 된다. 관절을 움직이고 사고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이 필요하고 따라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무게를 갖고 있는 유형의 음식물이 따뜻함 또는 힘과 같은 무형의 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체험하고 있다.
물질은 1차적으로 많은 원자들로 이뤄져 있고 원자는 핵과 전자로, 다시 핵은 양자 중성자 등 핵자들로 구성돼 있다. 원자의 전자층 구조는 원자로 하여금 화학적으로 독특한 특성을 나타내게 하고 핵의 구조는 방사성 붕괴, 핵변환 등 핵적 성질을 좌우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경험하는 에너지변환의 대부분은 연소라는 용어로 설명될 수 있다.
연소과정을 통해 연료에 들어있는 원소들이 화학적으로 산소와 반응, 산화물들을 만들고 그 부산물로 열을 발생시키는데 이 열은 결국 반응물질보다 생성물의 질량이 약간 줄어드는 것에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보일러가 가동되고 자동차가 달리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생존 그 자체도 넓은 의미의 원자력의 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소라는 화학반응을 통해 발생하는 질량변화는 전자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그 크기가 매우 작다.
탄소와 산소가 반응해 이산화탄소(${CO}_{2}$) 가 만들어질 때 반응물질 1g당 약 2천㎈(물 1백㏄를 20℃ 데울 수 있는 열량)의 반응열이 생성된다. 이 반응에 수반된 질량감소(탄소 및 산소의 질량-이산화탄소의 질량)는 원래 질량의 10억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상당한 열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핵이「군중심리」를 보인다
만일 이와같은 개념이 핵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핵자의 질량은 전자에 비해 2천배 가량 큰 만큼 그에 따른 질량변화의 폭도 아주 커지고(관련되는 입자질량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방출에너지도 엄청나게 증가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때 양자와 중성자가 어떻게 조합돼 있는가에 따라 핵의 결집력의 크기가 정해진다. 여기서 결집력이 큰 핵은 질량감소가 많이 일어난 비교적 안정된 핵이다.
전동차 한칸에 남자들 또는 여자들만 탈 때보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서 탈 때 승차인원이 더 많아진다는 조금은 장난기섞인 실험결과를 본 기억이 있다. 어쩌면 핵에도 이같은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을까.
또 핵도 군중심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핵자의 숫자가 어느 정도 이상 되지 않으면 안정감이 떨어져 버린다.
가장 안정된 핵을 갖고 있는 원소는 철 니켈 등이다. 따라서 이보다 가벼운 핵들은 기회만 생기면 여러 개가 모여서 보다 큰 핵을 이루려고 한다(핵융합). 반면 이보다 무거운 핵들은 쪼개져서라도 안정된 핵을 만들려는(핵분열)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가다. 말하는 것처럼 쉽게 핵융합과 핵분열이 일어나 버린다면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은 모두 쇠로 변해버릴 테니 이 역시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핵분열은 1930년대 중반부터 그 가능성이 널리 알려졌고, 1940년대 초에 이미 실용화에 성공했다. 핵분열의 실용화는 토륨(Th) 우라늄(U)의 일부 핵에 낮은 운동에너지를 갖는 중성자를 쏘여주면 핵분열을 잘 일으킨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라늄235(양자 92개, 중성자 1백43개)의 핵에 중성자가 들어가면 일단 우라늄236의 핵이 형성되는데 이 핵은 비슷한 질량을 지닌 두 핵으로 갈라지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때 핵분열 전후의 질량감소는 원래 질량의 약 1천분의 1에 달하고 방출에너지는 1g당 2백억 ㎈에 이른다.
한번 핵분열이 일어나면 두세개의 중성자가 함께 생성된다. 따라서 이 중성자들을 다른 핵들에 흡수시켜 또다시 핵분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반복하면 지속적인 핵반응이 유지 된다. 만일 이런 연쇄반응의 속도를 특별히 제어하지 않으면 원자폭탄이 될 것이고 이를 적절한 방법으로 조절해 핵반응이 근근히 이어져 나가도록 하면 원자력발전소가 되는 것이다.
핵분열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핵자들 끼리 서로 잡아다니는 핵력과 서로 밀어내려는 전기력의 두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에 중성자가 뛰어들어 분란이 일어나도록 부추기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중성자를 흡수한 거대핵 내부의 잠재에너지가 커져서 두개 또는 세개의 작은 핵들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이들은 이때까지의 친화력을 너끈히 뛰어 넘는 큰 반발력을 내 서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너무 세지 않게 살며시 중성자와 '손'을 잡는 순간 지금까지의 균형이 무너지고 사분오열되고 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오늘날 우리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면서 핵분열에너지의 혜택을 입고 있지만 꿈의 에너지원이라고 불리는 핵융합의 사정은 과연 어떠한가.
핵융합반응은 핵분열에 비해 단위질량당 질량감소가 크다. 중수소(D)핵과 삼중수소(T)핵이 융합되는 경우, 질량감소는 원래 질량의 3백분의 1 정도까지 커진다. 이때의 방출에너지는 1g당 8백억㎈로 핵분열의 네배에 이른다.
핵분열보다 네배 큰 에너지를 낸다
만일 핵융합에너지가 실용화된다면 아마 10억년 정도는 에너지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들 한다. 핵융합의 기본연료인 중수소가 해수(海水)중에 다량(약 4X${10}^{16}$㎏)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료자원들은 특정한 지층과 지형적 조건에서만 존재, 지역간 분쟁의 주요원인이 돼 왔으나 핵융합연료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국제적 갈등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따라서 핵융합 에너지의 실용화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람에게는 노벨평화상을 수여해도 좋을 것이다. 핵융합은 핵분열에 비해 방사능물질의 발생이 매우 적어서 주변환경에 대한 오염대책 수립이 훨씬 수월하다는 점도 또하나의 장점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아무리 경제적이고 환상적이어도 안전하지 못하다면 상용화를 기대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런데 핵융합로는 뛰어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갖는 막연한 불안감과 의구심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어떤 장비나 설비에 의한 안전성이 아니라 핵융합로가 지니게 될 본질적인 안전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핵융합반응을 지속시키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두 핵을 합쳐서 한개의 핵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두 핵은 차라리 떨어져있는 것을 편하게 여기지 전기적 척력(斥力, 두 물체가 서로 물리치려는 힘)을 극복하고 억지로 융합하려는 무리한 행동을 꺼려 한다. 그런데 만일 두 핵이 매우 큰 운동에너지를 갖고 충돌 해 반발력을 이기고 아주 가까운 (${10}^{-15}$m)까지 접근하게 되면 마침내 핵력에 의해 서로 강하게 이끌려 명실상부한 핵융합이 가능해진다.
핵분열이 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라면 핵융합은 비탈을 올라가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그만큼 핵융합을 인위적으로 일으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핵융합을 가능하게 하려면 수십만전자볼트(eV, electronic volt·1eV는 전자가 1V의 전위차를 지나면서 얻는 에너지)로 핵을 가속시켜 주면 된다. 이것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방법이다. 즉 소형가속기를 가동시켜 주로 학술적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규모가 작아서 경제적인 에너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고독을 즐기는 핵을 유혹해
우리의 목표는 많은 핵들이 충분한 속도를 지닌 채 서로 충돌, 보다 규모가 큰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방출 된 에너지가 더 많은 핵들을 가속시켜 핵융합반응이 연쇄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고 더 나아가서 반응속도가 임의로 조절되는 소위 제어열핵융합을 실현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많은 핵들을 만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 핵들을 매우 뜨겁게 가열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두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수억℃ 내지 수십억℃(1eV는 약 1만℃에 해당한다)까지 핵들을 집단적으로 가열하는 방법이 막연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설령 그것을 만들었다고 해도 담아둘 수 있는 용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이제 태양 수소폭탄 극광(aurora) 등을 예로 들면서 몇가지 해결 방안들을 같이 연구해 보기로 하자.
지구는 생명력을 거의 전적으로 태양에 의존하고 있다. 지열 석탄 석유 나무 등도 따지고 보면 태양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태양은 어떻게 태고이래로 그 긴 세월동안 끊임없이 엄청난 빛을 쏟아낼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바로 핵융합반응에 있다. 태양은 거의 수소로 구성돼 있는데 태양자체의 막대한 중력때문에 고밀도로 압축되고 고온으로 가열된다. 중심부의 온도는 약 2천 만℃, 밀도는 약 1백50g으로 추정되고 있는 데 수소핵 네개가 합쳐져서 한개의 헬륨핵을 만드는 핵융합반응이 아주 서서히(태양에서 수소핵융합반응이 모두 끝나려면 수백억년이 걸릴 것이다) 일어나면서 4X${10}^{20}$MW(메가와트, 참고로 우리나라 전력생산량은 약 ${10}^{4}$KW다. 여기서 M, 즉 메가는 1백만을 뜻한다)라는 엄청난 열을 방출하고 있다.
요컨대 태양이라는 핵융합로의 연료는 수소이고, 가열과 밀폐는 중력으로 동시에 해결하며 진공의 우주공간 자체가 극렬한 불꽃을 담아놓는 용기의 구실을 하고 있다. 참으로 엄청나고 멋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구상에서 이와같은 조건을 창조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양은 거대한 핵융합로
다음으로 우리가 잘 아는 수소폭탄이 있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섞어놓고 원자폭탄을 터뜨려 강력한 충격을 가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이렇게 순간적으로 압축하고 가열해주면 연료물질들이 미처 흩어질 여유가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안에 핵융합반응이 완료된다. 그 방출에너지가 막대한 폭발력으로 나타는 것이 바로 수소폭탄이다.
연료물질의 양을 최소화하고 원자폭탄 대신 강력한 레이저나 입자선으로 압축가열해 준다면 인공적인 제어핵융합의 실현이 가능 해질 것이다. 이런 관성밀폐 (inertial confinement) 핵융합연구가 현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반복가동률을 높이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아서 전도는 그리 밝지 않다. 궁극적으로 경제성이 있는 핵융합로로 발전하리라고 보는 견해는 많지 않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고위도 지방으로 가면 극광현상이라는 것이 일어 난다. 이것은 태양 등으로부터 발사된 우주 선(cosmic ray) 중 전기를 띤 입자(하전입자)들이 북극과 남극을 잇는 자력선에 붙잡혀 이동하면서 대기중의 중성입자들과 충돌, 빛을 빌하게 되는 현상이다.
지구표면에서 1백㎞ 또는 1만㎞ 상공에는 소위 전리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곳에는 지구자력선을 벗어나지 못한 하전입자들이 모여 있다. 따라서 전파를 반사시키기 때문에 마이크로파 통신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모든 물질을 가열하면(수만℃ 이상) 결국 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스마(plasma)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 플라스마는 매우 민감하고 불안정하다. 틈만 나면 흩어지거나 소멸하려고 한다. 이런 성질을 가진 플라스마를 자력선의 그물안에 가둬 둘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장밀폐(magnetic confinement) 핵융합연구가 출발하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강력한 자장만 있다면 플라스마에 계속적으로 전류를 흘리면서 가열해 핵융합온도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토카막 스텔러레이터 미러 핀치 등으로 이름 붙여진 많은 장치들이 만들어졌지만 뛰어난 밀폐성능으로 인해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고 있는 것이 토카막이다. 토카막(Tokamak)이란 도넛형 자장용기라는 뜻을 줄인 러시아 단어다.
1960년대에 소련에서 처음 개발된 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연구되고 있는데 오랫동안 핵융합로의 모델로 각광을 받아 왔다. 세계 3대 토카막으로 불리는 미국의 TFTR, 유럽공동체의 JET, 일본의 JT-60 등은 핵융합로 조건에 근접하는 좋은 실험결과들을 산출하고 있어서 적어도 과학적 실증단계는 넘어선 것으로 보여진다.
상온핵융합은 가능한가 ?
여기서 잠깐 상온핵융합(cold fusion)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1989년 봄 일단의 미국 과학자들이 중수(${D}_{2}$O)를 사용한 일종의 전기분해공정중에서 핵융합반응을 포착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신문지상에 일제히 보도됐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됐을 것이다. 핵융합로가 '산 너머 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책상위에 놓여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국내외의 연구기관중에서 재현실험을 해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이후 전기분해, 전기방전, 직접 기체반응, 이온충돌 및 주입 등 크게 네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이 네 아이디어는 팔라듐(Pd) 또는 티탄(Ti)에 중수소를 흡착 또는 흡수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과연 핵융합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판단 할 수 있는 지표로는 열발생, 중성자, 삼중수소, 기타 방사선이 있지만 많은 연구그룹에서 이것들을 아예 발견하지도 못했다. 발견한 경우라 할지라도 예상값과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아직까지도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상온핵융합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왜 금속격자(lattice)안에서 중수소핵융합이 그렇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지금 알고 있는 이론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핵융합연구가 시작된 지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핵융합로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아직도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핵융합연구가 슈퍼컴퓨터 초고진공 초전도 고주파 대전력제어 고에너지빔(baem) 등 다양한 기술이 복합적으로 요구되는 첨단 거대과제인 만큼 지금까지 주변 과학기술 발전에 미친 파급효과는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