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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맞바꾸는 치명적인 맛 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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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봄이 늦다. 꽃소식도 덩달아 늦어진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은 막을 수 없다. 산수유와 개나리꽃이 피고 목련과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챙겨들고 야외로 나선다. 그런데 꽃 중에서도 유독 복사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입맛까지 쩝쩝 다셔가며 말이다. 소동파의 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대나무밭 가장자리 복숭아꽃 서너 가지 피었고
봄 강물 따스해진 것을 오리가 먼저 아네
쑥잎이 땅을 덮고 갈대 띠풀의 새순은 아직 짧은데
바로 이때가 황복이 강을 거슬러 올라올 무렵이라네

봄은 역시 황복의 계절이다. 소동파도 봄기운보다 곧 식탁에 올라올 황복의 맛에 더 정신이 팔렸다. 황복의 맛을 ‘일사(一死)를 불응할 맛’이라며 찬탄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황복 요리의 대표주자는 역시 회다. 종잇장처럼 엷게 떠 투명한 살점이 혀에 감겨들면 그 청신하고 그윽한 맛은 단숨에 사람들을 복어회 예찬론자로 매료시킨다. 미나리와 간장, 기름을 넣고 끓여낸 복싱건탕(일본말인 지리의 우리말)도 일품이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깊고 은은하게 우러나는 맛에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밖에 황복은 매운탕과 튀김, 불고기, 껍질무침 등 다양한 요리에서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황복은 복어목 참복과에 속하는 물고기다. 서해안과 동중국해에 분포하며, 성숙하면 강으로 올라와 산란을 하는 습성이 있다. 황복의 별명인 강복, 하돈(河豚)은 이러한 습성과 관계가 있다. 등은 회갈색, 배는 은백색이며 등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 양 옆에는 검은 반점이 한 쌍씩 있다. 몸 옆면에 폭이 넓은 노란 줄무늬를 두르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노란색을 띠고 있는 듯이 보인다. 황복이란 이름이나 누렁태라는 별명의 유래를 알 만하다.

황복의 겉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뚱뚱한 몸체와 크게 부푼 양 볼은 귀엽기도 하고 불만이 가득해 보이기도 한다. ‘꾹꾹’대며 이를 갈거나 끔벅끔벅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뜨는 모습, 비대한 몸집으로 작은 지느러미를 부채질하듯 움직이며 느릿느릿 헤엄치는 모습 하나하나가 희극적이다. 황복을 돼지에 비유한 것도 뚱뚱한데다 ‘꾹꾹’하고 돼지소리를 내며 우는 습성 때문이다. 행여 놀라거나 적의 공격을 받기라도 하면 물을 위장으로 빨아들여 큰 몸을 더욱 크게 부풀린다. 기포어(氣泡魚)나 폐어(肺魚), 구어(毬魚) 같은 이름도 이런 습성에서 비롯됐다.

 
복어회가 얇은 이유

“신문지에 올려놓았을 때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접시 무늬가 비칠 정도로 얇게 썰어야 한다.”
복어횟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복어회를 얇게 뜨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복어회는 다른 회와 달리 왜 얇게 뜨는 것일까. 생선의 육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단백질인 콜라겐의 함량과 배열 방식이다. 콜라겐 함량이 높고 배열이 치밀할수록 씹을 때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복어의 콜라겐 함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다. 게다가 콜라겐이 칡넝쿨이 엉키듯 빽빽하고 복잡하게 배열돼 있어 생선 횟감 중 가장 단단한 육질을 자랑한다. 복어회를 얇게 뜨는 이유는 육질이 지나치게 단단한 재료로부터 부드럽게 씹히는 맛을 이끌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끓여도 사라지지 않는 독

황복의 뛰어난 맛과 우스꽝스런 모습 이면에는 무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황복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강한 독을 가졌기 때문이다. 복 요리의 천국인 일본에서는 복을 먹고 중독된 사람이 한 해에 200명이 넘는다. 복어의 독은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물질인데, 청산가리의 1000배에 가까운 치명적인 독성을 띤다. 색깔이나 냄새, 맛이 없는 데다 끓여도 파괴되지 않으므로 더욱 위험하다.

복어 독은 신경계에 작용한다. 중독되면 식후 20분 내지 수 시간 만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먼저 얼굴색이 창백해지고 입술과 혀끝이 가볍게 마비되거나 구토를 한다. 그리고 손가락과 팔, 다리 순으로 전신이 마비돼 말을 못하게 되고, 뒤이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전신에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린다. 혈압이 점점 떨어지고 호흡이 멈추면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복어 독에 중독되면 동치미나 김치 국물을 마시면 된다는 속설이 떠돌기도 하지만 사실상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독된 사람은 최대한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체내로 들어간 독소를 배출시키기 위해 먹은 내용물을 토해내게 하거나 위를 세척한 뒤 설사약이나 이뇨제를 투여한다. 호흡이 멈추는 경우에는 인공호흡을 시키고 강심제, 아드레날린 같은 흥분제를 사용한다.

예전에도 황복을 먹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가 쓴 ‘하돈탄’이라는 시의 서문을 보면 황복의 뛰어난 맛이 불러온 비극을 볼 수 있다.

음력 2~3월이면 고깃배가 강에 머물다 종종
황복을 잡을 때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를 잡아먹고 죽는 일이 많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찌 그리 어리석단 말인가.
이 시를 지어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어를 즐겨 먹는 자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미식가들 중에는 위험하게도 복어의 섬세한 맛을 느끼기 위해 독성이 있는 알을 몇 개 곁들여 먹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맛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뿐인 목숨과 바꾸는 일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복어 맛을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요리사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복어 독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치명적이기 때문에 알과 간, 내장은 물론 살코기의 멍든 부분 같이 미심쩍은 것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독성 부위를 제거할 때는 살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고 제거한 뒤 남아 있는 혈관과 피, 끈적이는 점액질까지 모두 잘 닦아낸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다시 몇 시간 물에 담가뒀다가 요리한다. 요리를 할 때도 해독 능력이 크다는 미나리를 꼭 함께 넣는다.

복어는 독 때문에 먹기 힘든 물고기이지만, 독 때문에 뛰어난 맛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독성을 제거한 복어를 양식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복어 독은 유독성 먹이로부터 유래하므로 무독성 사료만으로 키우면 독성이 없는 복어를 양식할 수 있다.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가 아니라면 맛도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하니 기대해 볼 만하다.


복사꽃 피어도 황복은 오지 않는다?

황복은 서남해로 흐르는 강에 분포하며, 예로부터 영산강이나 금강, 한강, 임진강, 대동강, 압록강에서 황복 잡이가 성행했다. 그런데 우리와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던 황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황복은 자갈이 깔려 있고 조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서 알을 낳는다. 이 때문에 산란기가 되면 좋은 환경을 찾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지금의 강바닥은 부유물로 뒤덮이고 물에서는 악취가 풍긴다. 무분별한 골재채취로 인해 자갈밭을 찾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황복이 올라갈 강줄기를 막고 있는 보와 댐이다. 대규모의 간척사업과 강 하구에 설치되는 방조제는 황복의 출입 자체를 막아버렸다. 치어를 방류하고, 무분별한 조업을 제한하며 황복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황복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않는다면 이제 복사꽃이 피어도 황복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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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태원 서울세화고 생물 교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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