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세포 안에서만 활성을 갖는 특별한 유전자군이 냄새를 구별해주는 역할을 한다.
코와 후각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나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소속 리처드 악셀과 린다 벅박사가 화제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두 주역.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과학교과서의 후각 편은 이제 완전히 새롭게 작성돼야 하는데 사실 그동안 후각은 인간의 5감중 가장 알려진 것이 적은 감각이었다.
잘 알려진대로 인간의 코는 호흡을 하고 냄새를 맡는데 필수적인 장기다. 실제로 우리는 이 코로 자그마치 1만여가지의 냄새를 식별해 내고 있다. 그러나 자연계의 다른 동물과 비교해 보면 그리 대단한 능력은 아니다. 예컨대 나방과 같은 보잘것 없는 곤충도 1㎞ 떨어진 곳에서 흘러나오는 일종의 의사전달물질인 페로몬을 간단히 감지해 낸다.
냄새가 뇌로 전달되는 과정
악셀과 린다박사는 '셀'(cell)이라는 세포학전문지 최근호에 그들의 연구결과를 자세히 소개했는데 그 골자는 이른바 냄새수용체를 세계최초로 분리해낸 것이다. 그들은 이 생소한 수용체가 오직 코에만 존재하고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냄새수용체와 관련된 수백개의 유전자를 이미 확인했다"고 악셀박사는 얘기한다. 이 유전자들은 냄새 유전자군(群)에 속해 있는데 어쩌면 이 냄새유전자군이 포유류 DNA중 가장 긴 사슬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게 연구진 진단.
우리의 눈은 오직 세가지 유형의 수용체로 만물의 색을 구별한다. 즉 적색수용체 녹색수용체 청색수용체를 적절히 활용해 수천가지의 색을 식별해내는 것이다. 물론 색을 인식하는 최종적인 장기는 뇌이지만.
그러나 냄새를 구별하는 수용체는 그 종류가 훨씬 많다는 것이 악셀 교수의 주장이다.
냄새가 나는 분자는 우리 콧속에 있는 수백만개의 털숲을 헤엄치다가 어떤 냄새수용체를 만나면 마치 열쇠가 자물쇠 속으로 들어가듯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곧이어 냄새나는 분자와 단단히 결합한 냄새수용체는 뇌의 냄새식별전담기구로 알려진 후구(嗅球)로 이동하는데 후구진입절차가 꽤 까다롭다. 냄새수용체는 통과시키지 않고 냄새나는 분자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에 연구팀이 밝힌 냄새가 뇌로 전달되는 대략적인 과정.
인간은 대개 5감중 시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몸이 1천냥이면 눈은 9백냥'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고 실제로 모든 정보의 80% 이상을 눈을 통해 받아 들인다. 그러나 원시적인 동물들은 시각보다 후각의 도움을 더 많이 받고 산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뇌로 다량의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냄새를 식별하는 특수한 세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예로 부패한 음식을 가려 먹거나 생식을 할 때 그들은 후각세포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뇌가 할 일을 후각세포가 대신하기 때문에 뇌와 코의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하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실제로 코는 발생초기의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연구대상이 된다. 린다교수도 미발달상태의 뇌의 신비를 푸는데 자신이 발견한 냄새수용체를 실험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연구를 통해 오감중 가장 초기에 나타나는 후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은 평가할만한 성과다. 또 1만가지의 냄새를 식별해내는 이 수용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몇가지 부산물은 실생활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예컨대 살충제 제조업자들은 해충들이 왜 어떤 사람에게는 득달같이 모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접근하지 않는가를 밝힘으로써 보다 우수한 구충제를 설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향수제조업자들은 고객이 원하는 향수를 주문받아 공급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향수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효력을 발휘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향기를 나눠주지 않는 아주 '인색한'향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