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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개골 비슷, 첫 발견때부터 파충류 분류

공룡 냉혈 동물설

공룡이 파충류의 일종이라는 사고는 1백년 이상 인류의 머리를 지배해 온 '고전'이었다. 대부분 해부학적 증거에 바탕을 둔 이 학설은 최근 대두하는 공룡온혈동물설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남미 대륙에서 약 1천㎞ 떨어진 태평양의 고도 갈라파고스 군도(Galapagos Islands)는 아마도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파충류의 천국일 것이다. 4세기 전 인간이 닿기 훨씬 전에 이곳을 점령한 파충류들은 마치 2억년 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들처럼 이 섬을 지배해왔다.

19세기 초에 공룡의 화석이 발견될 때까지 인류는 공룡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후 공룡에 매료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골격 화석이 발굴되어, 현재는 세계 각국 자연사 박물관에 골격모형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공룡 화석이 발견된 당시 과학자들이 공룡은 틀림없이 파충류라는 심증을 가지게 된 이유는 대부분 해부학적인 증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발굴된 공룡화석의 두개골에서 파충류와 똑같은 함몰공이 확인되고 이빨도 영락없는 파충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엉치뼈, 등뼈 또는 다 리뼈의 구조가 파충류와 판이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공룡 연구를 주도하던 오웬도 공룡이 파충류라는 중론을 무시하지 않았다.

첫 화석 발견 당시 파충류로 여겨
 

중국에서 발굴 중인 사우로포드


파충류 식별에 가장 좋은 기준은 두개골 구조다. 특히 주둥이뼈와 치아 구조는 파충류를 양서류와 포유류로부터 구분하는데 가장 유용한 기준이다. 공룡은 측두공(側頭孔)이 2개인 조룡아강(祖龍亞綱)에 속하며 이 중 용반목(用盤目)과 조반목(鳥盤目)이 대표적인 그룹이다.

이들은 엉치뼈, 즉 골반의 차이로 구분된 것이다. 오늘날 새의 엉치뼈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것이 조반목이고, 도마뱀 엉치뼈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것이 용반목이다.

공룡은 다른 파충류와는 달리 사지(四肢)가 몸 밑으로 뻗어 있었다. 따라서 몸을 땅 위에 직접 대지 않고도 소나 돼지처럼 움직일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 어떤 종류는 앞발을 보행에 사용치 않고 뒷다리와 꼬리로 운동과 보행을 하였다.

공룡류는 중생대 트리아스기 후기에 조치목에 속하는 작고 가는 체구의 육식 파충류에서 유래하였다. 가장 오래된 선조형 공룡이라고 여겨지는 화석이 1991년에 아르헨티나 북서지방에서 발견되었다.

이 공룡은 2억 2천 8백만년 전 지층에 묻혀 있었는데 머리는 10㎝이며 몸의 전체 길이는 40-50㎝로 관측되었고 에오랩터(Eoraptor:아침의 여신(Eos)과 도둑놈(Raptor)이 합쳐진 이름)라 명명되었다. 비록 체구는 작지만 행동이 재빨라서 다른 동물이 죽여 놓은 먹이를 훔쳐 먹으면서 살았던 것으로 해석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생대 지층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공룡의 종수는 약 3백50종 가량인데, 그중 절반이 지난 20년 동안에 발견된 것이다. 알려진 대로 공룡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급속하게 세력을 확장하였다. 악어를 포함한 다른 파충류는 빠르게 감소한 반면 공룡은 지구상에 출현한 후 1천만년 만에 지구의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을 압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공룡류가 적응방산(適應放散)에 성공한 것은 아마도 고생대말에 많은 초식동물이 없어진 뒤 먹이와 생활수단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반면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한 포유동물은 주로 곤충을 먹었고 체격이 작아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새의 조상이 공룡이라는 학설을 익히 알고 있다. 공룡 연구자들 중에는 새와 공룡을 함께 묶어 공룡강(恐龍綱)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1861년에 처음으로 시조새 화석이 발견되어 깃털을 지닌 파충류가 유명한 화석으로 등장했다. 1970년대에 와서 오스트롬에 의해 시조새의 골격 특성으로 보아 소형 육식공룡인 코엘로사우루스류의 직계 자손이라는 믿음이 커졌다.

오늘날에는 공룡이 파충류가 아니라는 주장이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공룡이 냉혈동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공룡이 파충류처럼 냉혈동물이 아니고, 포유류나 조류처럼 스스로 열을 만들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온혈동물이라는 설이 1970년대 베커의 주장 이래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공룡이 냉혈동물이라는 생각은 공룡이 해부학적으로 파충류와 비슷하다는 데서 비롯된 생각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공룡은 파충류와 포유동물 골격의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따라서 최근 고생물학자들은 공룡을 분류학적으로 파충강도 아니고 포유강도 아닌 공룡강으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공룡의 일부는 온혈동물이었다고 추정한다.

이들은 공룡의 여러 골격 부분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들이 악어나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와는 구별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요한 차이점들을 찾아냈다. 이와 같이 공룡은 분류학적으로도 파충류로부터 독립하는 추세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심을 끄는 냉혈동물이냐, 혹은 온혈동물이냐 하는 논의도 점차 가열되고 있다.
 

(그림5) 골반구조에 따른 공룡분류


1970년대부터 온혈동물론 제기
 

1988년 아르헨티나에서 발굴된 티라노사우르스렉스의 머리뼈


공룡 발굴이 활발해짐에 따라 공룡의 생태와 진화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캐나다 앨버타에서는 무려 1만 마리의 공룡이 거대한 화산폭발로 한꺼번에 매몰되어 버린 지층이 최근에 발견되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은 공룡이 살던 당시에는 수풀이 우거진 따뜻한 호숫가여서 많은 종류의 공룡이 서식한 듯하다. 또 1990년 미국 몬타나주에서는 영화 '쥬라기 공원'에 등장했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완전한 모습이 발견되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6.5t의 거구로서 늪지나 평원이 아닌 숲에서 살면서 어릴 때는 온혈이었다가 크면서 냉혈동물로 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이들은 영화에서처럼 다른 동물을 공격해 잡아먹는 맹수성 육식동물이 아니라 공룡무리를 따라다니다가 찌꺼기 먹이를 얻어먹는 공룡이었다고 하는 새로운 이야기도 들린다.

1993년 여름에는 중국의 하남성에서 1만 개가 넘는공룡알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것은 아직 공룡연구에서 풀어야 할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에야 처음으로 중생대 백악기에 한반도에도 공룡이 서식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우리나라 공룡연구의 역사는 약 20여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 경북대학교 양승영 교수가 경상남도 하동군 일대 해안에서 공룡의 알껍데기를 발견한 것이 처음이다.

1970년대 이후 경상남북도가 주요 분포지역인 경상분지의 여러 곳에서 공룡뼈 화석이 상당량 잇따라 발견되었으나 대부분이 골격의 일부분에 불과한 불충분한 것들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경상남도 고성군 일대 해안을 따라 발달되어 있는 백악기 지층 층리면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3천개 이상 발견됨으로써 공룡족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두발로 걸은 것이 9종, 네 발로 걸은 것이 4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은 폭이 60㎝나 되고 뚜렷이 4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에서는 약 25마리 정도의 초식공룡의 무리가 만든 3백여개의 공룡족흔이 발견되었으며 이 화석은 199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이밖에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도 공룡족흔이 보고된 바 있다.

최근에는 경상남도 진양군에서 공룡 배설물 화석이 발견되어 나중에 이 부근에서 살던 공룡의 섭식과 소화과정 등의 비밀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화석과 공룡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아지면 한반도에 살던 공룡화석과 공룡의 생태가 많이 알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추운 날씨 견디기 위해 큰 체구로 진화

최초의 공룡이 나타나기 직전의 지구는 상당히 온난하고 습윤했다. 그러다가 2억 2천 5백만년전 무렵부터 지구는 점차 건조하고 더워져서 습지가 말라붙을 정도였다. 그후 수천 만년이 지나고 다시 지구는 습윤해지면서 식물들이 번성하게 되었다.

약 1억 4천 7백만년전, 즉 백악기가 시작될 무렵, 지구는 습윤하지만 추워졌고 저지대는 바다로 덮이게 되었다. 백악기 중기에 지구에는 계절이 생겨나고 지구상에 서식하는 공룡을 비롯한 생물들은 처음으로 겨울을 겪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기후변화와 함께 중생대 초까지 한 덩이로 묶여 있던 범대륙이 약 2억년 전부터 천천히 분열되기 시작함으로써 범대륙 전체에 퍼져 살던 공룡들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격리되어 살게 되었다.

약 1억 7천만년 동안 계속된 중생대에 일어난 기후와 지리적인 환경의 변화는 백악기 공룡의 왕국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오랜 기간 비교적 온난한 환경이 유지되면서 호시절을 맞은 공룡들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던 것 같다. 학자들은 당시 적어도 5백종 이상의 공룡들이 번성했다고 주장한다.

공룡들은 형태와 체구가 매우 다양했으나, 대체로 체구가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유명한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는 보통 코끼리의 2배에 달하는 체구를 가졌다. 가장 큰 그룹은 초식동물인 용각룡들로서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코끼리의 15배에 달하였다. 그러면 공룡들은 왜 이처럼 거대해졌을까?

시조새와 같이 작은 동물들은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하여 절연물의 역할을 하는 깃털이 필요했다. 깃털과 같은 절연물이 없는 공룡은 대신 큰 체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작은 그릇 속의 뜨거운 물은 금방 식지만, 욕조의 더운 물은 쉽게 식지 않는 원리와 같이 일반적으로 큰 체구를 가진 동물은 작은 동물에 비해서 훨씬 쉽게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공룡은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체구를 택한 것이다.

반면 공룡시대에 함께 살던 작은 온혈동물들은 모두 어떤 형태의 절연물을 가지고 있었다. 포유류는 털이 있었고 작은 체구의 공룡들이나 시조새는 깃털을 지니고 있었다.

악어나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는 기온에 따라 체온이 변하므로, 햇빛을 받아 겨우 체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파충류들은 밤에는 냉혈성, 낮에는 온혈성의 성질을 가지는 변온성동물이다. 거대한 공룡의 경우 대체로 몸무게가 2백㎏을 넘으면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체온이 높고 일정하여 항온성이자 온혈성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스스로 열을 생산하고 체온을 조절할 수 없었던 공룡은 활동력을 높이고 대사 효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체구를 거대하게 발전시킨 것이 아닐까?

또 한가지 대형공룡이 당면하는 어려움은 체내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는 문제다.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대형공룡은 오늘날의 악어와 같은 방식으로 호흡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으리라 추정된다. 악어는 다른 파충류와는 달리 골반에서 간에 이르는 가로막근을 수축하여 폐를 넓힘으로써 많은 양의 공기를 호흡하는데, 대형공룡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충분한 산소를 섭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공룡을 파충류의 일종으로 보아 냉혈동물이었을 것이라 추측하는 종래의 견해에 대해, 최근에는 해부학 기능 형태 및 생태학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공룡의 온혈동물설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활발한 공룡화석의 탐사로 알래스카 최북단에서도 백악기에 공룡이 서식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의 기온이 오늘날보다 따뜻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알래스카는 공룡이 살기에는 부적합했을 것이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서 발굴된 공룡의 경우도 그 지역이 백악기에는 오늘날보다 위도가 최소 35-40도 남쪽에 위치하여 상당히 추웠을 것이므로 공룡의 생활습성에 관한 여러가지 추측을 낳고 있다. 극지에 생존했던 공룡은 동면을 했거나 따뜻한 곳으로 주기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생활했다는 가정 외에도 공룡이 온혈동물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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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백광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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