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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하는 기계를 좇아서

풀어쓰는 컴퓨터 역사 ②

손가락계산법의 뒤를이어 수천년동안 셈법을 지배했던 주판. 그러나 주판기술을 중시했던 동양과는 달리 서구에서는 기계식 계산기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졌는데···

'계산중인 사람에게 악수를 청하지 마라.' 이집트의 파라오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가 에티켓의 기본이 아니었을까. B.C.15세기경 이집트의 손가락 계산법은 피라미드의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인간이 가진 천부의 계산기인 손으로 하는 계산은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계산도중 코를 후빈다든지 바지를 추스린다든지 하면 계산과정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져버리는 단점이 있다. 계산도중 반가운 친구가 와서 악수하고 서로 뺨이라고 한번 만져본다면 손가락에 끼여있던 숫자는 모두 날아가버린다.

그렇다고 손가락을 진흙구덩이에 담가 그 형태를 기억해두고 다른 일을 한다면 그것도 불편한 일이다. 따라서 제법 복잡한 계산을 하려면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인적이 드문 지하방이나 뒷간에서 열심히 손자락을 꼼지락거리며 계산을 해야 했다.

손으로 하는 계산의 다른 단점은 큰 숫자를 표시하기에 불편하다는 것이다. 손가락 마디 모두를 활용하면 1억까지 셀 수 있지만 그런 계산을 두어번 연속해서 한다면 아마도 관절염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가락만을 이용한다면 기껏해야 만단위 정도의 계산에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손가락계산법의 장점도 있다. 첫째 휴대하기가 편리하다는 것이다. 둘째 모두 표준화가 되어있다(특별히 육손이가 아닌 다음에는).

주머니에 넣고 다닌 주판

자연을 어느 정도 지배함에 따라 인간은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통합적인 관리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국가가 형성되면서 본격적인 숫자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노예가 1천3백75명이 있다. 그중 성인 남자는 3백27명 이다. 4백20명은 성인여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인과 어린이들이다. 성인남자는 하루에 밀가루 2 항아리와 5개의 마늘을 먹는다. 여자성인은 1항아리의 밀가루를 필요로 한다. 노인과 어린이는 하루에 0.7항아리씩 지급한다. 이런 경우 한달에 확보되어야 할 밀가루는 모두 몇항아리인가. 그리고 마늘은 모두 몇개나 필요한가.

이런 계산은 당시 이집트 관리들의 머리를 꽤나 복잡하게 했을 것이다. 그들이 위와 같은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슈퍼계산가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요구는 고대 로마시대에 이르러 휴대용계산기의 발명으로 나타났다.

로마의 휴대용 계산기는 이전의 계산패나 부목 등과는 달리 제법 형식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휴대용 계산기는 계산판과 계산말로 나누어져 있다. 계산판은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0개 안팎의 홈이 세로로 곧게 파져있다. 그 홈위로 계산알들이 굴러다니며 숫자를 나타내었다.

각 홈은 십진수의 각 자리수를 나타낸다. 중국식 주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행할 때 계산판과 계산알은 다른 주머니에 넣어 보관 한다는 것이다. 눈을 조금 감고 지그시 내려보면서 계산판으로 천천히 계산하는 전문회계원은 지금의 공인회계사만큼이나 인기있는 직종이었다.

중국식 주판이 발명된 것은 이보다 2세기 가량이 지난 A.D.3세기 경이었다. 주판은 컴퓨터에게 그 자리를 빼앗길 때까지 십수 세기동안 계산기계의 왕자자리를 지켜왔다. 우리가 흔히 보는(요새는 다소 힘들지만)주판은 사실 2차대전후 일본에서 개량된 것이다. 중국식 주판은 가로막대의 아래에 5개의 주판알이 있고, 위로는 2개의 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는 꼬챙이로 꿰어져 있었기 때문에 로마식 계산패와는 달리 어지간히 흔들고 다녀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

20년전만 하더라도 주판은 모든 회계의 기본도구였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정해진 공인기술의 급수가 부여되었다. 지금은 국민학생들 사이에서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총명함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지만,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주판셈이 그 기준이 되었다. 국민학교 4,5학년생이 주판셈 1,2단 정도라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컴퓨터학원만큼이나 주판학원이 성행하였고 더러는 개인 교습까지 받기도 하였다.

각 선생님마다 교습법도 조금씩 달랐다. 필자도 국민학교시절 한 선생님밑에서 1급정도까지 주판셈을 배웠다. 그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나눗셈은 꽤 이상한 공식에 기초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항상 줄줄 외우고 다녀야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고 별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중학교 실업시간에 주판셈이 소개 되었는데 필자가 배운 방식과는 운지법이 판이하게 달랐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때 배운 방식은 아마도 일본식 나눗셈이 아니었던가 한다.

주판셈은 주판이 가지는 기계적인 특징보다도 인간 손가락의 운지법에 의해서 크게 그 기능을 넓혀갔다. 운지법은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정말로 피아노 교습이상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AT급 컴퓨터 중에도 제법 값비싼 것과 다소 그 질이 떨어지는 것이 있듯이 주판도 그 질에 따라서 여러가지 였다. 대부분의 유단자들은 알이 매끄럽고 주판알이 상당히 안정되게 움직이는 일본산을 가지고 있었다. 더러는 그런 고급수입주판을 가져보려고 부모님께 떼를 쓰기도 했다. 요즘은 더 빠른 컴퓨터로 바뀌달라고 부모님 속을 썩이겠지만.

주판통에서 주판을 꺼내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주인의 실력을 가늠한다. 새까만 손때로 반짝거리는 주판의 모습은 그 사람이 상당히 고수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 하면서 한눈에 척보고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컴퓨터를 오락기구로 쓰듯이 주판 역시 철없는 어린이들에게 더 없이 훌륭한 오락기구였다. 때로는 탬버린 대신 찰찰거리는 소리로 리듬을 잡아주기도 하고, 또는 롤러스케이트판이 되기도 했다. 물론 롤러스케이트판으로 사용하다 선생님께 들키면 주판은 도리어 자신의 머리위를 난폭히 오가는 흉기로 변한다.

지금도 컴퓨터나 탁상용계산기가 완벽히 보급되지 못한 중국이나 동남아지역에서는 주판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스초티'라고 불리는 러시아식 주판 역시 금융기관 구석구석에서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은 컴퓨터로 모든 계산이 끝나도 다시 한번 주판으로 검산을 해봐야만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일종의 옛것에 대한 향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도구가 다른 도구로 완벽히 대치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심리까지 완전히 대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이념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믿어온 관념이나 지식체계가 상당한 현실적 불편이 있더라도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고수하려고 하거나 그안에서 나름대로 극복하고자한다.

주판과 컴퓨터의 대결

새로운 탁상용 계산기의 공격에 대한 주판옹호자들의 심리적저항은 대단하였다. 특히 가끔씩 보여주는 주판셈에 의한 암산시범은 그러한 저항에 더욱 자신감을 주곤 하였다. 몇백억단위의 숫자가 빽빽히 적힌 차트를 보여주면 몇초사이에 그 모든 수의 합이 나오는 암산시범은 우리를 경탄케 한다. 그 계산이 끝날 시간에 탁상용계산기를 사용한 사람은 아직 입력도 채마치지 못한다.

2차세계대전후 일본 당대 최고의 주판셈고수인 기요시 마쓰자키와 비던 우드라는 점령군 최고의 컴퓨터 전문가가 계산시합을 하게 되었다. 맥아더는 미국 현대 문명의 위력을 보이고자 이 시합을 마련했다. 1945년 11월의 어느날, 수백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마침내 5라운드의 시합을 했다. 놀랍게도 이긴 쪽은 주판셈의 달인인 마쓰자키였다. 승부는 4:1, 주판의 압승이었다. 한판은 마쓰자키가 점령군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서 일부러 져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 결과가 주판이 컴퓨터 보다 더 나은 기계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만일 컴퓨터내에 모든 자료가 입력되어 있었다면, 계산시간상으로 볼때 그 어떤 계산의 달인보다도 컴퓨터가 빠를 것이다. 특히 사칙연산보다 복잡한 연산에서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그 시합은 사람들에 의한 컴퓨터 입력시간까지 고려한 것이므로 그렇게 공평한 시합은 아니였지만, 하여간 맥아더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주역에 영향받아

서양의 과학이 대부분 그렇지만 계산기계 역시 인간 기술의 숙달 보다는 기계자체의 개량에 중점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이러한 차이는 동서양의 철학관 차이에 있다고 보여진다. 자연을 개조하여 인간의 심성에 맞추는 성서적인 세계관이 서양적이라면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보면서 그것에 동화하려는 노력은 동양적사고의 근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판이 발명된 동양에서는 주판셈의 운지법과 그의 숙달에만 전념해왔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계산 기구자체의 개량이 거듭되어 왔다. 그 종착역은 물론 컴퓨터다.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존 네이피어는 복잡한 수의 간편한 계산을 위해서 대수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은 오트레드의 도움으로 계산자(slide rule)로 발전했다. 그 기구는 15년전만 하더라도 흔히 볼수 있었던 공업용 계산자의 효시였다. 또 네이피어는 사망하기 1년 전인 1617년 곱셈용 계산도구를 발명했다. 네이피어의 계산봉(Napier's Bones)으로 불리는 이 계산봉은 1652년 파스칼이 만든 수동식 계산기의 등장으로 인기를 잃고 퇴장하였다.

지방세리인 아버지가 복잡한 세금계산문제로 밤새 고생하는 것을 본 19세의 파스칼은 단순히 그의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 계산기구를 만들었다. 파스칼린(Pascaline)이라고 불리는 그의 계산기는 주로 덧셈만을 수행했다. 그는 톱니와 바퀴장치를 이용해서 숫자를 표시했다. 파스칼은 이 기계를 10년동안 50대나 만들었지만 히트상품대열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그러나 톱니바퀴로써 숫자의 단위를 표시하고, 톱니의 회전속도비율에 의해 자릿수를 이동하는 방식은 이후 모든 기계식 계산기의 기본원리가 되었다.

파스칼린의 결점은 덧셈이외의 연산을 하기에 너무나도 절차가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이후 라이프니츠라는 독일의 천재가 나타날 때까지 4칙연산을 위한 편리한 기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는 1672년 파리에 머물고 있을 동안 호이겐스라는 네덜란드 수학자와 같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 공동연구과정에서 라이프니츠는 엄청난 양의 천문학적 계산을 하기 위한 기계를 발명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1년만에 라이프니츠는 계산기를 완성했다. 본질적으로는 파스칼린과 같은 톱니바퀴식이었지만 이동식부품을 채택하여 곱셈과 나눗셈이 훨씬 쉽게 해결되었다. 이후 라이프니츠의 계산기는 여러사람에게 소개되었고 나아가서 러시아의 표트르대제에게 바쳐졌다. 표트르대제는 그것을 중국의 황제에게 선사했다. 큼지막한 주판만을 알고 있던 황제에게 라이프니츠의 기계는 어떻게 비쳤을까. 아마도 '서양인들은 무척이나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종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구상은 천공카드 시스템을 발명한 홀러리스를 거쳐 현대 전자식 컴퓨터의 기초를 마련했다.

사람들은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2진법적 체계가 현대적 계산기의 기본원리라고 말한다. 또한 그 원리를 라이프니츠에게 귀띔한 것은 중국의 주역(周易)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컴퓨터의 기원은 뉴기니(?)

현대 컴퓨터의 기본원리와 완전히 일치하는 기계식 계산기가 뉴기니의 북서부 해안에서 출토 되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의 추정으로 그 계산기는 A.D.850년경의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보면 노끈과 도르레로만 구성된 훌륭한 멀티플렉스(multiplex)가 있다. 현대인인 우리가 보아도 감탄할 만큼 절묘한 장치다. 모든 입력자료는 끈이 당겨지는 정도에 따라서 0과 1로 표시된다. 그리고 기억장치도 따로 구성돼 있다. 컴퓨터의 기본장치로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결국 이 기본 게이트(gate)들을 엮어서 현대의 전자식 컴퓨터와 같게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수의 아날로그적 합도 구할 수 있다.

방출된 상태로 보아서 그 복잡함이 어떤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기 힘들다. 만일 이러한 게이트들이 수천개라면 그 입력줄을 당기기 위한 동력원은 어디에서 얻었을까. 그 해답은 근처에서 발견된 코끼리 화석이 말해준다. 그러니까 코끼리에게 끈을 적당히 당기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시인들에게 이런 고도의 장치가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그 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축제때에 사용하는 놀이기구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하길 '간결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원시인들의 단순한 생각이 도리어 이렇게 아름다운 기계를 만들어 내었는지도 모른다.

총을 처음 본 사무라이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총의 등장은 스승에게 대나무 작대기로 얻어맞으며 배워온 검법을 무용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또한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무너뜨려버렸다. 총잡이 앞에서 고수와 하수를 따지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같은 원리로 기계식 계산기의 보편적인 보급은 특별한 밀교형식으로 전해져온 계산법으로 으스대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 이제는 재빠른 주판셈이 아무런 기술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도구의 등장은 항상 기존의 사회를 허물고 새로운 사회와 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기계식 계산기의 발달을 살펴볼때 우리가 겪을 변화속도는 이전보다 몇배나 빠르게 될 것이다. 무너지는 사회에 깔리기 보다는 다가올 사회의 변화와 그 변화를 일으킨 도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칼잡이의 고집을 버리고 총잡이의 이야기에 한번 귀기울여 보자.
 

(그림) 뉴기인들의 멀티플렉스^멀티플렉스의 원리:밧줄c의 상태에 따라서 d에 a,b신호중 하나가 전달된다. 즉 c로서 d에 어떤 신호를 연결시켜 줄것인가를 결정해준다.
 

199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환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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