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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 관계의 해빙으로 우리 과의 활동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그동안 익힌 전공지식을 활용해…

내가 최초로 학교라는 곳에 발을 디딘 1976년은 나에게는 기념할만 해다. 그로부터 15년째 학창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새삼스럽게 감개가 무량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공부의 목적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고3 때에는 그런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그 고비를 넘겼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다른 친구들이 입시원서 때문에 고민하며 여기저기 정보를 얻으려고 바쁘던 때에 나는 그다지 큰 고민없이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슨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해서 남들 하는대로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장래가 밝다고 해서 이과를 선택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꼭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나마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직업을 갖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달리 남존여비사상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계속 직업을 갖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연구직이나 교수직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설립된지 얼마 안되는 우리 과에서 내 꿈을 이루기가 좀 더 용이하리라 생각돼 마침내 지원을 하게 되었다.


서울대 임산가공과 이수영
 

●- 가구디자인까지

우리 과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여학생이 적다는 점이다. 공대에는 설립 이래 여학생이 한 명도 없는 과도 있는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몰라도 우리 과는 1970년데 설립된 이후 84년도에 졸업한 선배언니가 최초의 여학생이었다. 지금은 한 학년에 2~3명 정도 여학생이 있으나, 남녀공학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정도다.

우리 과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이름만으로 쉽게 추리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산에서 나는 모든 산물을 가공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선 1학년 때는 문과·이과만 구별해 공통적으로 교양을 배우고 2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전공을 다루게 된다. 4학년 때까지 우리가 다루는 모든 분야에 관해 폭넓게 공부하지만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는 힘들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고 쓰는 책 공책 지폐 증권 달력 벽보 등 종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전부 우리의 전공과 관련이 된다. 공부하는 책상 침대 식탁 장롱 등의 가구와 피아노 바이올린 등 나무를 원료로 만든 악기, 가구의 원료가 되는 합판 등도 우리 학과에서 다루는 것들이다.

따라서 목재 자체의 기본적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목재화학 목재이학 목재해부학 등 기초이론을 공부하게 된다. 또 목재를 가공하는 펄프·제지 목가구 접착등의 과목을 배움으로써 원료로서의 목재와 가공품으로서의 목재에 대해 다양하게 접하게 된다. 외국에서는 가구디자인까지도 임산가공학과의 한 분야에 속해 있어 설계나 디자인 분야와도 연결되어진다.

우리 과는 특성상 원료를 이용하므로 응용과학의 한 분야이지만 응용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순수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4학년 때까지 물리와 화학 등 순수과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가공의 기술만 배우면 될 것 같지만, 토대가 약한 집이 빨리 무너지듯이 순수과학의 기본이 없으면 응용의 발전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순수과학에 쏟는 정열이 더 커야만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졸업반 선배들에게는 이미 커다란 고민거리가 돼 있다. 실제로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두면 진로문제로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남자는 군대문제가 있어 더 괴롭다. 우리 과를 졸업한 뒤 진출할 수 있는 회사는 대개 펄프·제지회사와 그에 따른 연구기관, 가구·악기제조회사 합판제조회사 해외임지개발 및 각 기업의 임산물 무역분야 등이다. 또 정부행정기관이나 연구기관의 공무원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

●- 물리 화학이 강조되고

최근 한소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소련과의 관계가 급격히 밀착되고 있는데 우리 과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반가운 일이다. 시베리아의 풍부한 임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리 과 출신의 역군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동토의 땅 시베리아에서 손을 호호 불며 개척의 구슬땀을 흘리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우리 과에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물리와 화학 등 기초과학에 흥미를 가져야 함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나 자신도 우리 과에 대해 잘 모르고 선택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리둥절해 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수험생이라면 자기가 가고 싶은 과에 대한 예비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 과는 물리와 화학을 둘다 두루 다루기 때문에 한쪽에만 흥미를 가진 사람은 공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앞으로도 순수과학의 중요성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자기의 적성과는 관계없이 점수만을 맞춰 학과를 선택한다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실제로 느껴보면 알겠지만 부모님이나 주변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지원을 했을 경우에는 비록 합격되었다 하더라도 본인에게 커다란 장애가 된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 휴학을 하고 재수를 하거나 편입시험을 보거나 전과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대강 졸업장만 따는 것을 목표로 삼고 만다.

또한 전자의 경우에는 성공해도 시간과 노력이 허비되고 실패하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튼 학과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성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냉정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가 원하는 이상형에 현실의 자기가 부합되는지 확인해 본 다음에 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아직 실감나지 않겠지만 학과의 선택이야말로 자기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커다란 열쇠가 아닐까. 외부의 시선이나 시대의 흐름에 표류하지 말고 소신껏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대학'이란 말만 들어도 낭만이 있는 것 같고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이 바뀌어도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현실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미래의 현실도 자기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이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면이라 생각된다. 부족함을 느끼면서 그것을 메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더 나아진 자신에게 다시 실망해 한층 더 나아진 자기가 되려고 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자질이리라. 지금 나는 부족한 자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전진에 박차를 가한다. 언젠가는 잡힐지도 모르는 무지개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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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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