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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법, 이땅에서도 가능한가?

증산과 공해의 갈림길

화학비료와 농약을 뿌리면 섭취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뿌리지 않으면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각종 농산물에 뿌려지고 있는 농약의 잔류문제가 심상찮게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하지만 일부 무공해식품 판매업자들이 사회여론을 조장하고 있는 면도 없지 않다. 자신들이 만든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소비자들을 혼돈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여론은 농산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국산 '88'담배에서 암을 유발하는 성분이 검출됐다는 양담배수입업체들의 여론 조작은 그 대표적인예다. 소비자들을 당황하게 해 양담배 판매를 늘리려는 고단수 상술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는 무공해 농산물 판매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74년 경남 거창군 농촌지도소에서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관내 1만5천평의 논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벼를 재배해 본 것이다. 그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단보당 수확량이 2백 26㎏ 밖에 안돼 농약을 사용했을 때의 평년작 4백㎏보다 1백74㎏이나 떨어지는 낮은 수확량을 기록 했던 것.

그러나 농약에 대한 공포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농약의 거의 대부분이 석유를 원료로 해 만들어진다. 실제로 농약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우리 농촌에서는 잠자리나 반딧불이 자취를 감추고 누에 벼메뚜기 물고기 등이 한꺼번에 죽거나 기형이 생기고 있다.

환경과 인간에게 주는 영향도 엄청나다. 이미 농민들중 일부가 농약에 중독돼 현기증 구토 시각장애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직접 농약을 뿌린 사람중 다수가 중독증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농민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작업도 다름아닌 농약살포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약은 이처럼 살포과정에서의 직접적인 피해와 농작물에 잔류한 후 최종 소비자에 게 옮기는 간접적인 피해를 준다. 뿐만 아니라 토양이나 물과 대기를 오염시키고 나아가 대기나 물을 통해 강이나 해양까지 더럽히고 있다. 그 결과 해산물이나 어류도 차츰 오염돼 가고 있다.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러나 농약이 무섭다고 무작정 떨 필요는 없다. 농약사용 안전수칙을 지키면 인체나 농산물에 큰 피해는 없다는 농약업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또 농업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농약의 유해성분 분석 등을 통해 인체에 무해한 농약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유기농업에 대해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다. 그래서 대신 83년 미국의 상·하 양원을 통과한 미국농업생산향상 법안을 그대로 옮긴다.

"유기농업이란 화학비료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 식물생장조절제 가축사료첨가제 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농산부산물이나 가축의 분뇨 자연광석분말 (제오라이트 인광석 맥반석 질석분말) 등을 사용,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유기농업은 기존의 과학영농에 있어서 '감초'격인 화학비료나 농약 등을 사용치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최근 유기농업이라는 말이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무분별한 남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유기농법에 의해 생산된 농산물과 비료나 농약을 사용해 생산한 농산물은 그 질과 안정성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관련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실제로 배추나 상추 등에는 농약을 거의 사용치 않고 있다. 하지만 사과 배 등 대부분의 과일과 벼농사에는 농약을 많이 쓰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무공해식품을 공급하고 있는 업체들 대부분이 자체농장조차 없는 상태다. 대개는 산간지역의 농가와 계약 재배하고 있다. 농촌구조상 한 마을 전체가 농약을 안쓰고 농산물을 생산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으나 혼자만 농약을 사용치 않고 농사를 짓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지역에서 병충해 방제를 위해 농약을 살포하면 병충해가 농약을 안쓰는 지역으로 옮겨 가게 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중에 나온 무공해 자연식품이 어떠한 법적규정도 없이 판매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오직 판매상들의 신용만을 믿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많은 식품전문가들과 농민들의 주장이다.

일부 악덕업자들은 무공해 농작물로 속이기 위해 일반 농산물을 '분장'시키기도 한다. 어린 학생들을 시켜 벌레를 잡아오게 한 뒤 성한 농산물에 벌레가 먹은 흔적을 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히려 비위생적인 농산물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예도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물론 성실하게 유기농법을 도입, 건전한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도 있다. 하지만 국내의 농업실정을 바로 이해한 뒤에도 대부분의 유기농업 농장이 무공해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역사는 80년대 들어서면서 닻을 올렸다. 전국농업기술자협회가 그 발원지였는데 그후 한국유기농업환경연구회가 발족되면서 점차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유기농법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인식도 극히 미약한 상태다. 또 무공해농산물에 대한 법률적 보장도 없고 학문적인 연구도 극히 미진한 실정이다.

이같은 유기농법의 미미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무공해농산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점차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민소득 수준향상으로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양보다는 질을 우선으로 하는 우리의 식습관 변화와도 흐름을 같이 한다. 현재 5백여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는 정농회는 "농업이 인류생활의 근본이며, 바른 농사만이 인류를 파멸에서 구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그 활동은 새로운 유기농법을 개발하고 연구발표회를 가끔 열고 있는 것이 전부다.

이밖에도 공해추방협회와 신협중앙회 등 민간단체에서 유기농법에 관심을 갖고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단체들의 활약도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다.
 

두마리의 토끼^지구의 보전이냐, 식량의 확보냐?


로데일 농장의 성공담

현재 우리나라 농업은 증산과 공해의 갈림길에 높여 있다. 일부에서는 식량자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농약사용을 계속해야 한다는 견해를 편다. 그런가 하면 더 이상 공해를 외면한 증산정책이 계속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튼 국내의 식량자급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있은 뒤에 유기농법을 도입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세계적으로 확산돼 왔다. 특히 지난 1976년에는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이 창립돼 2년마다 세계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82년 미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열린 제4차 IFOAM총회부터 참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대표는 한국유기자연농업연구회 부회장이었던 김동준박사였다. 이어 84년 서독의 카셀대학에서 열린 제5차 총회, 8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개최된 제6차 총회에 계속 참석, 40여개국에서 모인 6백여명의 유기농업연구가들과 분야별로 세미나를 가졌다. 이를 통해 유기농업 선진국과 기술·정보교류를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의 유기농업을 소개해 본다. 미국 최초의 유기농업이론은 1945년 유기농학자' '로데일'(J.I.Rodale)에 의해 주창되었다. 그의 이론은 토양중의 박테리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흙은 살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곧 화학영농에 밀려 그의 유기농법은 한동안 숨을 죽였다는 최근 자신의 로데일농장 안에 로데일출판사를 두고 유기농업에 관한 신문·잡지 등을 계속 발행하고 있다.

로데일 회원은 현재 4만여명으로 불어났다. 이제는 로데일회원이 생산한 무공해 농산물 유통체인이 전국적으로 조직되었으며 그들의 활동영향이 미국 의회에까지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농무부은 지난 80년 7월 화학농법의 공해문제와 관련, '미국의 유기농업 실태와 권고'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정부의 공식입장이 담겨 있다. 첫째 에너지나 화학비료의 가격이 높고 공급이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의존도는 점차 증대되고 있다. 둘째 살충제 제초제에 대한 곤충이나 잡초의 저항성이 커지고 있다.

셋째 과도한 토양침식 그리고 토양유기물 및 영양분의 손실에 따라 토양생산력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다. 넷째 농약이나 중금속에 의한, 자연수의 오염과 그에 따른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상태다. 다섯째 농약이나 첨가물 등의 남용으로 인해 인간과 동물의 건강에 심대한 위협을 주고 있다.

미 농무부의 보고서는 유기농업의 실시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무엇보다 토양의 생산력과 역경성(易耕性, 다져지지 않고 스폰지 상태를 보이는 토양의 성질)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돼 있다. 또 작물에 충분한 유기물을 공급하고, 곤충 잡초 기타 질병의 방제는 가능한한 자연에 의존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예컨대 윤작(돌려짓기), 농산부산물, 가축분료, 콩과식물, 녹비, 농장외의 유기성 폐기물, 무기영양분을 다량 함유한 인광석 맥반석 제오라이트 등 천연암석의 분말, 기타 다양한 생물학적 방제법을 적극 활용하라는 얘기다.

한편 서독의 유기자연농업 형태는 미국과는 다른 생물학적·동태적 농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연농업의 진정한 효시로 1924년부터 시작됐다. 이 농법은 독일 철학자 루돌프 스타이너가 같은 해 8차례에 걸쳐 행한 '농업강의록'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높은 기술 요구^유기농업을 위해서는 토양의 생산력과 역경성을 유지해야 하고 방제방법도 자연에서 찾아야 한다.


「데메터」대(對)「비오란트」

스타이너의 강의록에는 농가를 독립적 순환을 반복하는 하나의 유기체(폐쇄 순환적 유기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인 것처럼, 농민은 농작물 가축들과 함께 농가를 구성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농민이 농산물을 생산해서 얻을 수 있는 것중 일부는 농업생산을 계속하기 위한 종자로 남기고 나머지는 가축과 사람이 취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가축의 부산물중 일부도 다시 농작물 생산에 이용돼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다시 말해서 농작물→가축→농작물로 반복되는 농업생산의 순환 과정 안에서 인간은 각 단계에서 산출되는 잉여분만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물학적·동태적 농업은 1924년 발족 이후 독일농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 4년 후인 1928년에는 공동판매조합을 설립케 됐다.

이 조합은 독일 최초의 자생적 농산물공동판매조합이었다. 이 조합은 출범한지 2년 후인 1930년에 농업의 여신 '데메터'(Demeter)의 이름을 따 '데메터경제연합'으로 개칭했다. 동시에 농산물로서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데메터'라는 상표로 상품등록을 마쳤다.

이에 따라 회원농가의 농산물은 다른 일반농가의 그것과 구분해 판매됐다. 이 상표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서독 유기농업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있다. 유기생물학적 농업이다. 이는 1940년 후반 스위스의 '뮐러'(Müller)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는 데 그 뒤 의사인 '루시'(Rusch)가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유기생물학적 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화학비료나 농약중 물에 녹는 수용성 물질은 사용을 금하지 않았다. 질소질비료 중에서는 유일하게 유기질비료만을 허용 했다. 이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는 '데메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유기생물학적 농업 주창자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비오란트'라는 상표를 사용하고 있다. '비오란트'는 루시가 개발한 '비오테스트'라는 토양검사를 매년 받게 돼 있다.

이 검사는 회원농가의 영양실태를 파악하거나 감독하는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또 그 결과는 영농방법의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서독의 자연농업(ANOG)은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초반 사이에 독일 중부 파너도른 지방에서 시작됐다. '레오퓨르스트'라는 사람에 의해서였다.

이 농법은 농산물에는 유해잔류독성이 없어야 하며, 고가의 생물학적 영양이 함유 돼 있어야 한다고 내세운다. 그리고 토양을 살아있는 흙으로 가꾸고, 지력을 증진시키는 토양유기물의 이용을 매우 중요시한다.

따라서 화학비료는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철저히 제한한다. 반면 퇴비나 구비 등 유기질 비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농법이다.

또 병충해와 연작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농약살포 대신에 가능한한 기계적 물리적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따라서 병충해나 잡초 등에 의한 감수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서독의 유기자연농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관심은 매우 다양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찬반이론이나 인식과 해석이 지나치리만큼 각양각색이다.

게다가 자연유기농법과 관련된 많은 의문점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는 그 접근방법의 객관성을 널리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찰스황태자의 노력으로

다음으로 일본의 유기농업에 대해 점검해 보자. 일본의 유기농업은 1971년 10월에 6백여명의 회원이 모여 유기농업연구회를 설립함으로써 출범했다.

당시의 유기농업운동은 일본의 농업이 화학비료와 농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고로 출발했다. 한마디로 종전처럼 사람분뇨 가축분뇨 풀 농작물의 부산물 등으로 만든 퇴·구비로 농사를 짓자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유기농법도 정부나 학계의 무관심 속에 묻혀 한동안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7년 후에 가서야 비로소 유기농법의 활로를 찾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제휴로 활기를 얻은 것이다.

특히 지난 해는 일본의 유기농법이 크게 기지개를 켠 한 해였다. 집권당인 자민당 소속 중의원 62명, 참의원 35명 등 모두 97명이 유기농업연구의원연맹을 결성, 유기농업연구를 위한 정보와 기술교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연맹은 일본유기농업연구회와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었다. 따라서 멀지 않은 장래에 일본의회도 미국의 농업생산성향상법안과 같은, 유기농업 보급을 위한 입법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여기서 영국의 예를 잠시 들어 보자. 찰스 황태자는 6년전부터 영국 각지의 유기농업 실천농가와 연구회 등을 방문하였다. 그는 여기서 얻어진 기술정보를 종합, 영국 농업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즉 공해작물의 병충해 생산성 향상 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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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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