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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Z입자의 실체를 찾아서

1백만분의 1의 확률 뿐

맥스웰의 전자기이론과 비견되는 GSW 이론은 W와 Z, 두 입자의 발견으로 검증되었다.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힉스입자만 찾아내면…

“카를로, 이리 와 봐요."
루돌프 프뤼비르트가 전화에 대고 카를로 루비아(Carlo Rubbia)를 황급히 불렀다.

"무슨 일이야. 루디"
"우리가 지금까지 찾던 이벤트(event)가 드디어 발견된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루비아도 목소리가 급해졌다.
"내가 곧 갈께."

프뤼비르트가 있는 컴퓨터분석실로 가면서 루비아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며칠 후면 1982년도 저무는 크리스마스인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비가 잦아 그의 기분을 가라앉게 한 적이 많았다.

카를로 루비아. 그는 이탈리아계 미국의 물리학자로 10년전부터 스위스 제네바 근처에 있는 유럽핵연구기구(CERN)에서 UA란 실험그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다. 이 그룹에는 데이비드 클라인, 피터 매킨타이어와 같은 쟁쟁한 물리학자가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은 1976년에 CERN에 이미 설치돼 있던 가속기를 개조, 거대양성자 싱크로트론(SPS, Super Proton Synchrotron)이라는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장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SPS는 가속기전문가인 로이 빌린지와 사이먼 반 더 메어의 도움으로 완성됐다. 그후 UA의 과학자들은 벡터매개입자(intermediate vector)를 찾는 실험을 시작했다.

루비아가 이끄는 UA1 그룹은 유럽의 10개 연구기관, 미국의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대학 그리고 CERN에서 참여하는 거대한 실험집단이다. 여기에는 메어같은 SPS책임자를 포함, 1백40명 가까운 사람들이 소속돼 있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해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 조직은 보다 전문적으로 세분된다. 예컨대 SPS를 가동하는 곳도 없고, 양성자와 반양성자가 충돌할 때 그 충돌현상을 알아내는 검출기를 담당하는 곳도 있다. 그런가 하면 데이터가 모이면 그 데이터를 분석, 찾고자 하는 것을 골라내는 컴퓨터분석실도 설치돼 있다. 프뤼비르트는 비엔나대학에서 온 포스트닥터, 즉 박사후 연수생이었다.

비엔나대학 말고도 이 계획에 참여한 연구소나 대학은 많이 있었다. 아네시입자물리연구소 버밍검대학 퀸메리대학 파리대학 로마대학 러더퍼드연구소 사클레이핵연구센터 그리고 아아헨공과대학 등이 동참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어디 좀 보자구."

루비아가 프뤼비르트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 다가갔다. 벌써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이벤트(event) 넘버(number) 2958. 1279 였다. 그것은 2천9백58번째 가동에서 생긴 이벤트 중 1천2백79번째 결과였다.

"이 이벤트는 전에 고(高)에너지 전자를 찾을 때 체크되었던 이벤트인데 중성미자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자와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합치니까 질량이 약 80GeV 되는 입자에서부터 붕괴되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바로 이 이벤트군."

프뤼비르트의 설명에 루비아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틀림없어."

루비아가 다시 한번 말하자 컴퓨터분석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와아'하고 함성을 질렀다.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던 지난 한달 내내, 그러니까 11월부터 지금까지 24시간 휴일없이 실험하면서 쌓였던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올해 크리마스의 최대 최고의 선물이야."

실제로는 크리스마스 선물 정도가 아니었다. 이들이 찾아낸 벡터매개입자는 그해의 가장 중요한 물리학적 발견이었고 많은 물리학자들이 10년 넘게 기다리고 있던 입자였던 것이다.

이 입자에 대한 최초의 이론 전개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셀던 글래쇼(Sheldon Glashow)에 의해 이뤄졌다. 이때가 1961년이었다. 그후 66년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와 영국 임페리얼공대의 압두스 살람(Abdus Salam, 파키스탄 출신 물리학자)이 각각 새로운 이론을 펼쳤다. 그래서 현재 물리학계에서는 이들 세사람의 첫 글자만 따서 GSW이론 또는 표준이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GSW이론은 20세기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인 발견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중요성 또한 매우 심대한 이론이다. 실제로 GSW이론은 19세기에 등장했던 전자기이론과 어깨를 겨루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남철의 자기현상과 명주에 유리막대를 마찰시킬 때 일어나는 정전현상을 통합한 이론이 바로 유명한 전자기이론이다. 이 이론은 맥스웰(J.C. Maxwell)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자기 현상과 전기현상을 한데 묶어 설명하는 19세기의 대표적인 발견이다. 그런데 GSW이론도 획기적인 통합이론이라는 점에 있어서 전자기이론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벤트 2958.1279의 컴퓨터 그림^그림의 좌우에서 양성자와 반양성자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 무수한 입자들이 생겨났다.오른쪽 아래 화살표가 있는 곳에 매우 큰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생긴 흔적이 보인다.그것은 W입자의 붕괴 때문이다.
 

세개의 매개입자

그렇다면 GSW이론은 무엇과 무엇을 통합한 이론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전자기이론과 약(弱)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을 통합한 이론이다. 여기서 전자기이론이란 전기를 띠고 있는(즉 전하를 가진) 모든 입자와 물질이 겪어야 하는 작용과 운동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한편 약상호작용의 이론이란 물질의 변화에 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물질의 변화는 가령 물이 수증기가 되는 변화를 뜻하지 않는다.

또 소금이 나트륨 원자와 염소원자로 바뀌는 따위의 변화도 아니다. 이를테면 중수소 원자핵 두개가 합쳐져서 알파(α)입자가 되는 변화보다도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베타(β)붕괴를 들 수 있다. 베타붕괴란 중성자가 붕괴, 양성자와 전자와 반중성미자로 변화하는 것이다. 요컨대 약상호작용은 분자→원자→원자핵과 전자→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더 미세한 내부구조, 즉 원자핵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이런 약상호작용에 대한 이론과 전자기이론을 통합한 것이 바로 GSW이론이다.

그런데 이 이론 안에는 통합 못지 않게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약상호작용의 매개입자가 존재한다고 예언한 것이다. GSW이론에 따르면 이 매개입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베타 붕괴가 일어날 때 W입자라고 하는 벡터매개입자가 중간에 끼어 들어 붕괴가 일어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약상호작용을 매개하는 벡터 매개입자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플러스 전기를 띤 W입자, 마이너스 전기를 띤 W입자, 그리고 Z입자가 그것이다. 이들 세개의 벡터매개입자들은 모든 약상호작용에 끼어 들어 변화를 일으킨다.

글래쇼와 와인버그 그리고 살람은 그들의 GSW이론의 덕으로 79년에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세사람 중에서 가장 젊었던 스티븐 와인버그의 그때 나이는 46세, 그가 33세때 만들었던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GSW이론이 수많은 실험적 검증을 거쳐 확실히 맞는 이론이라는 점이 입증되었지만, 더구나 노벨물리학상까지 수여된 이론이었지만, 벡터매개입자는 그때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GSW이론이 맞다는 것을 웅변으로 말해줄 단 하나의 실험적 증거가 바로 벡터매개입자인 W나 Z입자의 발견인데 말이다.

CERN의 성공비결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든 입자물리학자들의 관심은 언제 누가 W나 Z입자를 발견할 것인가에 쏠리게 되었다. 어느 실험기관의 누구일까.

그러나 벡터매개입자를 찾는 실험은 결코 쉽지 않았다. 또 쉬운 실험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다. 약상호작용이 원자핵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관측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W나 Z입자가 매우 무거운 입자라는 점이 걸렸다. 사실 양성자나 중성자는 전자보다 약 2천배 무거운 입자지만 W나 Z입자는 그 양성자나 중성자보다는 1백배 가까이 무겁다.

따라서 W나 Z입자를 찾아내려면 우선 거대한 실험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W나 Z입자를 만드는 장치와 만들어진 W나 Z입자를 검출하는 장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75년경 미국의 페르미국립연구소와 유럽의 CERN은 W나 Z입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강력한 가속장치를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런데 CERN이 먼저 SPS를 만드는 바람에 페르미국립연구소는 경쟁에서 처지고 말았다.

가속장치란 한마디로 입자를 거의 빛의 속도에 이르게 가속시키는 장치다. 상대론에 의하면 물체는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무거워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가령 양성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게 되면 W나 Z입자보다도 더 무거워지게 된다. 따라서 가속으로 그들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CERN의 SPS는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각각 자기 무게의 3백배가 되도록 가속시킨 후 충돌시키는 장치였다. 이 SPS가 가동을 시작할 때 페르미국립연구소의 가속장치는 여전히 계획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니 경쟁의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한편 CERN이 W나 Z입자의 검출을 위해 도입한 장치는 당시 가격이 1백40억원에 이른 고가의 장치였다. 무게가 2천t, 가로 5m, 세로 5m, 높이 10m인 당시로서 가장 큰 검출장치였다.

SPS를 시험가동해서 성공하고, UA검출장치를 지하 25m의 제1지하구역(underground area 1)에 정확히 안치시킨 후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82년 11월이었다. 한달여 동안 모인 데이터는 자그마치 수백만 이벤트. 이 가운데서 W나 Z입자가 변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고(高)에너지 전자나 고에너지 중성미자 등을 찾아내야 했다. 물론 그 작업은 모두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다.

이벤트 넘버 2958.1279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친 이벤트였다. 양성자와 반양성자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수없이 많은 입자들중에 W입자가 섞여 있었다. 이 W입자의 질량은 약 80GeV 지량이 0.9GeV인 양성자보다 90배 무거운 W입자가 원 상태 그대로 검출된 것은 아니다. 전자와 반중성미자로 변화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무거운 W입자에서 변화된 전자와 반중성미자는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매우 컸다.

W입자에서 유래된 전자는 검출기에 비교적 쉽게 모습을 드러냈다. 전자는 전하를 갖고 있으므로 검출이 용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성미자나 반중성미자는 검출되지 않는 입자이므로 검출에 애를 먹는다. 이들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실종된 에너지'가 얼마인가를 조사해 간접적으로 확인해야 된다. 마치 돈을 잃어 버렸는 데 얼마만큼 잃어버렸는지 모를 때, 갖고 있던 돈에서 그동안 써버린 금액과 남아 있는 돈을 빼는 그런 식이다.

이 기법을 써서 조사했더니 반중성미자도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그러므로 이벤트 넘버 2958.1279는 바로 W입자가 실제로 있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실험적 증거인 셈이었다.
 

베타 붕괴^베타 붕괴는 중성자가 양성자 전자 반중성미자로 변화하는 현상이지만 그림처럼 중성자 속에 양성자 전자 반중성미자가 담겨 있다가 터져나오는 것은 아니다. GSW 이론에 의하면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면서 W입자가 생겨난다.이 W입자는 다시 전자와 반중성미자로 바뀐다.
 

내친 김에 Z입자까지

"자, 계속해서 찾아보자구."

루비아가 말했다. 그때부터 83년 1월20일까지 UA1그룹은 정말로 바빠졌다. 무척 분주했지만 모두 신이 나서 일했다. 계속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했으며 한편에서는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1백38명의 연구원 전원의 이름이 첫 페이지를 꽉 채웠다. 간단한 이론과 실험장치의 소개를 끝낸 뒤 그들이 모은 1백만 단위의 이벤트 중에서 넘버 2958.1279 같은 이벤트를 어떤 기준과 이론적 근거에서 골라내게 됐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소문은 금새 전세계로 퍼졌다. 그러나 W입자의 발견 뉴스는 83년 1월 21일에야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33페이지에 달하는 이 논문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홀란드출판사의 '물리 레터스'라는 잡지에 게재된 것이다.

약 10억개의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97만5천 이벤트였다.

그중에서 넘버 2958.1279 같은 이벤트는 모두 5개에 불과했다.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지만 W입자의 이벤트인 것만은 확실했다.

UA1그룹은 83년 들어서도 실험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그해 봄 Z입자의 이벤트를 찾아 냈다.

Z입자는 W입자와는 달리 전자와 양전자 또는 뮤입자와 반뮤입자 등으로 변화한다. UA1그룹은 83년 4월부터 5월까지 4주간 수집한 1백만에 가까운 이벤트 중에서 전자-양전자 쌍의 이벤트 4개와 뮤입자-반뮤입자 쌍의 이벤트 1개를 찾아냈다. 발견한 입자쌍의 에너지로부터 거슬러 계산해 보니 Z입자의 질량은 약 95GeV로, GSW이론에서 예측한 그대로였다.

6월 3일, 그들은 34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다시 '물리 레터스'에 보냈다. 원래 '물리 레터스'라는 학술지에는 편지 형식의 짧은 논문들, 길어야 6쪽이나 7쪽 정도의 논문이 실린다. 그러나 이 세계적인 학술지도 예외를 둘 수 밖에 없었다. W와 Z입자를 발견한 UA1그룹의 논문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두명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루비아는 W와 Z입자를 발견한 공로로 84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것은 물론 같이 실험한 1백40명 연구진 전원을 대신해 받은 상이었다.

공동 수상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누구였을까. 루비아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람은 사이먼 반 더 메어였다. SPS를 만든 사람이다. 메어가 없었다면 SPS가 없었을 것이고, W와 Z입자는 몇년 뒤에 미국의 페르미국립연구소에서 발견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래쇼와 와인버그, 살람은 자신들이 만든 이론에서 예언한 벡터매개입자가 정말로 존재함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15년이 지난 뒤에 실제 실험을 통해 확인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이 예언한 입자중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입자가 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힉스입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W나 Z입자 보다도 훨씬 더 무거운 입자로 예측되므로 실험하기가 더욱 어렵다. 힉스입자만 발견된다면 GSW이론은 완벽하게 실험에 의한 검증이 끝나게 된다. 언제 누가 힉스입자를 발견하게 될 것인가. 미국인가 소련인가 아니면 다시 유럽의 CERN인가. 세계의 과학선진국들은 현재 이 입자의 최초 발견을 놓고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다.

W와 Z입자가 발견된 당시의 CERN의 이야기는 필자가 82년부터 83년까지 독일 아아헨공과대학 제3물리연구소에 있는 동안 들었던 것이다.

당시 제3물리연구소의 소장은 헬무트 파이스너였다. 그 역시 UA1그룹에 속했는데 파이스너 외에도 10명의 이 연구소 소속 과학자들이 UA1그룹 연구에 참여했다. W입자를 발견했다는 소문이 퍼졌던 83년 2월 중순 그들 중의 한명인 카슬러 에거트가 아아헨에 돌아와서 발표회를 가졌다. 이때 제3물리연구소의 사람들이 전부 모여서 그의 '무용담'을 경청했던 기억이 새롭다.

W와 Z입자는 그후에 같은 CERN의 또 하나의 실험 그룹인 UA2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그 존재가 재확인됐다. 오늘날에는 미국의 페르미국립연구소의 테바트론(Tevatron) 이라는 양성자 충돌장치와 스탠퍼드 선형가속기 센터(SLAC)의 SLC라는 전자-양전자 충돌장치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페르미국립연구소의 테바트론은 CERN의 SPS와의 경쟁에서 뒤졌던 가속장치다. 비록 SPS보다 양성자를 세배이상 가속시켜서 1천GeV까지 에너지를 갖게 할 수있지만 이제 와서 W나 Z입자를 발견한다는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이들 연구기관에서 W와 Z입자에 관한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이 벡터 매개입자의 성질을 보다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물리적으로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벡터 매개입자의 무게, 다시 말해 질량은 정확히 얼마인가, 그리고 가속장치에서 만들어지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다른 입자들로 변화하는가. 즉 수명은 얼마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대답을 하고 싶은 것이다.

벡터 매개입자의 성질에 관해 확실한 대답을 해 주는 것은 실험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론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특히 GSW이론이 옳다고 가정하는 사람들이 벡터 매개입자의 성격규명에 적극적이다. GSW이론을 근거로 해서 여러가지 이론적 계산이나 응용을 하려면 W나 Z입자의 질량이나 수명을 꼭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전자와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는 새로운 경입자의 존재 가능성을 연구할 때 그런 경입자가 존재할 것인지, 존재한다면 얼마나 무거울 것인지를 따지자면 Z입자의 수명을 알아야 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Z입자의 수명이 짧으면 새로운 경입자는 가벼울 것이며 Z입자의 수명이 길면 경입자는 무거울 것이다. 새로운 경입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만일 있다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발견될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이런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Z입자의 성질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천체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벡터 매개입자의 성질을 정확하게 알고자 한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 났으며, 역사는 얼마이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되었는지, 또 앞으로 우주는 어떻게 변천해 갈 것인지 정확한 관측과 실험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의 몇몇 이론은 입자물리학 분야의 GSW이론과 연계돼 전개·발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대표적인 예다.

어떻든 이런 우주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중성미자의 종류가 몇 가지인가에 심각하게 매달려 있다. 중성미자의 종류를 직접적으로, 즉 여러 중성미자들을 헤아려서 조사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Z입자의 붕괴성질을 이용,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GSW이론이 옳지 않다고 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GSW이론이 완전히 틀린 이론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GSW이론을 확장해 더 큰 테두리의 이론을 만들어 놓고 실험적 검증을 기다리는 물리학자들은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지난 20여년간 입자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는 GSW이론에서 탈피, 새로운 물리학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다.

여기에는 통일장 이론이라고 해서 GSW이론에 핵의 결합에 관한 이론인 강상호작용이론을 합한 이론도 존재한다. 이 이론들은 70년대와 80년대에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서 꽤 유행했다. 하지만 이 이론들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장치, 곧 가속장치가 아직 없기 때문에 이론적 가설로만 남아있다.

이 분야의 사람들은 W나 Z입자의 실험을 정확하게 함으로써, GSW이론을 확장해야 한다는 힌트를 얻고 싶은 것이다.

사실상 90년대 초의 입자물리학계는 GSW이론 이후 약간 정체돼 있다고 말할수 있다. 그 핵심적 이유는 실험적인 발견과 새로운 현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면에서는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실험으로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는 이론은 때로는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수학에 치우쳐서 물리학과 유리되기 쉬운 것이다.

W와 Z입자를 발견한 것이 입자물리학계에서의 최후의 발견은 물론 아니다. 또 그럴수도 없는 일이다.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그와 같이 중대한 발견이 또 있을지 모르지만 발견을 고대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GSW이론처럼 실험에 의해 검증되기를 원하는 이론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벤트 7433.1001^83년  4월에 Z입자의 이벤트이다.이 이벤트에서는 매우 에너지가 큰 전자-양전자 쌍이 나타났다.이는 Z입자가 전자와 양전자로 변했다는 증거가 된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오선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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