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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테크 장흥순

메가트로닉스로 「30년 숙원」 풀기 위해

1959년 생이니까 이제 서른을 간신히 넘긴 나이다. 충북 증평산인 그는 서강대 전자공학과 78학번으로 82년에 학사가 됐다. 전자공학과는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학과여서 그냥 지원했다고 한다. 대학 3학년 때부터 준비했던 KAIST에 낙방하자 모교의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곧 재도전의 칼을 간다. 마침내 그 다음 해에 뜻을 이룬 그는 박송배교수를 지도교수로 맞게 된다.

대체로 KAIST 출신들은 대학 연구소 등 비교적 위험부담이 적은 곳을 선호한다. 하지만 간혹 소수의 이단자들도 생긴다. 자신이 익힌 기술이나 학문을 다소 모험이 따르더라도 실제로 활용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 몇 안되는 모험그룹 안에 그도 당연히 낀다.

그는 터보테크라는 메카트로닉스관련회사를 차려 놓고 소위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장흥순(張興淳)사장이다. 동시에 장흥순 전자공학박사이다.

장사장은 KAIST 석사과정에 입학해서는 CAD(Computer Aided Design)분야와 초음파분야를 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초음파전문업체인 메디슨(주)의 사장 이민화박사가 그의 KAIST 선배가 된다. 실제로 이사장이 메디슨(주)을 시작하면서 당시 박사과정 1년차이던 그에게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장사장은 선배의 청을 따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또 한국에서 벤처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강하게 회의하고 있었다.

그 뒤 그는 컴퓨터전문회사 큐닉스의 성공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서 가능성을 엿보았고, 이선배가 가는 길을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박사과정 3년차이던 지난 87년, 그는 마침내 모험기업을 해 보기로 마음을 굳힌다. 모험기업은 젊고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한번 도전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위험이 크면 돌아오는 것도 크다는 이 짤막한 문구가 장사장의 행동을 지배해버린 것.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그것을 서비스할 사람은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잘 훈련된 과학자로 보다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겸비한 경영자가 돼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해서 그는 1988년 4월 5천만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터보테크의 문을 연다. KAIST의 전자·전산·기계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6인조가 모여 뭔가 일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다.

삐삐기도 만들어내고

개업을 하기 위한 준비작업도 일반기업과는 색다르다. 그는 우선 아이디어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자본금도 마련하고 한 기업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6개월간의 연구 끝에 여섯가지 아이디어 상품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산업용 타이머, 전원 개폐기능을 가진 군용(軍用)타이머, 자동차도난방지기, 소리가 울리면서 동시에 걸려온 전화번호가 표시되는 만년필모양의 삐삐기 등이 포함된다.

처음에는 KAIST에서 전공한 초음파시스템을 개발해볼까도 생각했다. 사업을 시작하자니 어떤 아이템을 어느 시장에 내다 팔것인가가 가장 신경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실로 우연한 기회에 '기계'와 만나게 된다. 도난방지키의 개발에 열을 올라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이 키를 가공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KAIST 공작기계실 천태호씨를 찾았다.

기능장인 천씨는 장사장의 아이디어를 듣더니 그 자리에서 설계도를 그려 내놓았다. 그 솜씨에 감탄한 장사장은 천씨와 친해졌는데, 그로부터 많은 얘기를 듣는다. 국내 기계시장의 현황과 문제점을 소상하게 전해 들은 것이다.

3개월간의 시장조사를 마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국내의 공장자동화 시장이 2조4천억원 규모, 그중 공작기계만도 6백80억원 시장은 충분했다. 그런데 공작기계중 핵심부품인 컴퓨터수치제어장치 CNC(Computerized Numeric Control)를 일본의 파낙(Fanuc)사가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파낙은 CNC 세계시장의 68%를 점하고 있을 정도로 큰 회사고 그 회사의 제품이 쓸만한 것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은 무척 위험해요. 파낙사의 회장이 한국에 CNC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다면 그 충격은 실로 엄청날 거예요. 한국의 기계공업이 하루 아침에 침몰할 수도 있는 위력이지요"

그와 같은 기술종속의 줄타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자립이 필요하다고 느낀 장박사는 CNC국산화가 일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공작기계의 수치제어가 대개 숙련공의 경험에 의해 이뤄졌다. 주로 수동식 수치제어기가 판을 쳤는데 이 장비의 대당가격은 1천만~1천2백50만원 선이었다. 여기다 컴퓨터를 연결하기만 하면 단가는 단위가 달라진다. 한대 가격이 8천만~1억원에 이를 정도로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커지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이득이 큰 사업에 그동안 국내의 재벌기업들이 외면하고 있었을까. "이 제품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 알맞습니다. 한 아이템당 몇10억원 시장이 고작이거든요. 그런데 70년대 말까지 국내의 대기업들은 소품종 다량생산체제를 선호했기 때문에 서로 연이 안 닿은 것이지요. 80년대 부터 일부 대기업에서 슬슬 손을 뻗치기 시작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이 분야는 전자 전산 모터 로봇 소프트웨어 기계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들이 한데 모여 추진해야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데, 대기업에서는 이렇게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할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두번째 원인은 톱매니저들의 잘못된 사고에 있다고 봅니다. 즉 기술개발보다는 기술도입이 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진단한 장사장은 국내의 대기업에서 국산 CNC개발을 해내기가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기술과 패기로 무장한 젊은 과학자가 나서야 국내 기계 공업의 30년 숙원인 CNC개발에 성공할 수 있다고 직감했다.

"CNC개발의 요체는 기계 플러스 전자입니다. 즉 CNC는 메카트로닉스 관련제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기계하면 블루칼라를 연상하는 잘못된 인식이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메카트로닉스의 발전을 막고 있지요."
 

CNC 는 기계+전자의 결합체다


「파낙」에 낸 도전장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터보테크는 기술의 힘으로 살아 남았다. 장사장이 처음 시장에 내놓은 상품은 CNC인덱스컨트롤러, 이 제품은 메카트로닉스의 선두주자 일본도 88년에야 성공했는데 연간 30억원의 수입대체효과가 기대되는 첨단제품이다.

역시 공작기계의 대명사격인 선반이나 밀링에 붙는 CNC컨트롤러가 가장 수요가 크다. 그도 이 황금시장에 곧 뛰어들 태세다. 계획대로 된다면 금년 말 정도면 선반 밀링용 CNC컨트롤러 가 개발될 것이라고 한다 . 또 6축로봇컨트롤러도 내년 상반기 개발을 목표로 세워놓고 연구를 추진중에 있다.

지난 해는 공작기계에 뛰어든 첫 해니 만큼 욕심내지 않고 연구개발에 치중했다고 장사장은 들려준다. 작년 매출액은 3개월간 1억3천만원, 그러나 올해는 20억원어치를 팔 작정이다.

현재 터보테크연구소에는 KAIST출신 9명을 포함해 11명이 포진해 있다. 회사의 총인원이 20명이니까 연구인력이 차지하는 비율이 50%가 넘는 셈이다. 앞으로도 그는 매출액의 15~20%는 연구개발비에 투자할 생각이다.

창업초기에 초라했던 사무실도 넓혔다. 4.5평→12평→32평→1백 평으로 커진 것이다. 자본금도 5천만원에서 4억원으로 증자되었다. 벤처캐피털이 터보테크의 앞날을 높이 산 것이다 . 2천5백평 규모의 조립 공장도 곧 세워진다. 충남 아산군 음봉면에 부지를 마련, 올 3월부터 토목공사에 들어간다.

그는 이제 이땅에도 모험 기업이 많이 생길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개척자적인 사명감을 가진 과학자 출신 사장이 더 나와서, 모험 기업의 촉매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AIST출신 후배들이 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만약 터보테크가 잘못된다면 후배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셈이에요."

그가 사업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후배의 눈'말고도 많다. 사실 우리 나라가 87년부터 기술적 쇼크상태에 놓여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한발짝 더 나아가려면 기술적 점프를 해야 하는데 벤처맨들이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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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윤기은 기자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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