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TV를 괜히 분해해서 고장나게 하는데 선수였으나 이제는 고치는 의사가 되려한다.
입시를 끝내고 사회의 축소판인 대학에 들어오면 누구나 처음에는 실망감을 맞볼 것이다. 자신의 보랏빛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이 실망감은 대학생활에서 활기를 빼앗아 버리고 만다. 대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학과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1학년 1학기 정도는 어영부영 지나가고 만다.
1학기를 그런 상태로 보내면 2학기 때에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전기대학을 낙방하고 후기대학에 입한 나의 경우, 대학생활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거의 한 학기를 허송세월만 했다. 이 상태가 계속 이어져 2학기에도 심적 방황을 끝맺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의 여러 모임에도 나가 보고 과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다. 특히 동문들의 도움으로 제 궤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대학이란 사회를 얼마 쯤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학은 스스로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얻으려고 노력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획득할 수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인 것인다. 또 대학은 단순한 암기력보다는 창의성을 중요시 하고 정확한 답만을 원하기보다는 올바른 과정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한편으로 대학 신입생을 괴롭히기도 한다. 암기능력만을 키워왔던 대답수의 신입생은 그런 창의성을 개발할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어려웠던 순간들을 그나마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은 스스로 선택한 학과에서 오래 전부터 소망했던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공학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라디오를 괜시리 부셔서 다시 조립해보기도 하고, TV의 브라운관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져서 뜯어보다가, 멀쩡한 텔레비전을 고장내기도 했다. 공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전자공학에 뜻을 둔 것은 고등학교를 입학한 직후였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을 거의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전자공학을 모르고 전자공학을 지원한 내가 무모하게조차 느껴진다. 하지만 전자공학을 배우고 싶다는 의욕만은 대단했다. 어느덧 고3이 되어 전공학과를 결정할 때에도 별 어려움없이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
평소에 원했던 학문을 하게 되니 무엇보다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어 좋았다. 사실 대학공부는 스스로 찾는 공부이지 타의에 의해 강요받으며 하는 공부는 아니다. '공부하라'고 염불을 외는 부모님의 말씀도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들을 수 있고, 대학은 자율성을 많이 보장한다. 그런데 자율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쉬운 예로 만약 수업을 듣기 싫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무어라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자율적인 학교생활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어떤 틀 속에서 일률적으로 이루어진 생활을, 즉 타율적인 삶을 살아온 내가 누리기에는 매우 힘든 생활이었다.
●― 날개를 얻으려고
공과대학에서의 하루는 다른 단과대학에서보다 힘든 나날이다. 우선 타단과대학보다 수업시간도 많고 공부해야 할 양도 많다. 배울 것은 많고 대학생활은 8학기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4학기를 마쳐가는 내가 대학생활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생각한 게 있다. 대학4년이 결코 전문지식을 완전하게 배우는 기간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기초와 쉬운 응용들을 한번씩 소개(?)하는 정도의 교육이라는 생각이다. 즉 우리의 대학은 이미 엘리트교육의 장(場)이 아니고 보편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특히 어떤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대학보다는 대학원에서 그 전문분야를 배우려고 시도하는 편이 나을 거 같다.
이미 대학교육의 목표는 '넓게 보편적으로'로 잡혀 있는 듯 싶다. 우리 전자공학과 역시 이러한 대학교육의 목표를 충실히 따라 가고 있다. 즉 기초에 충실하면서 전자공학의 대체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흐름을 파악하는 정도라고 해서 수박겉핥기식의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다.
전자공학의 분야는 매우 넓고 개개의 분야가 깊이가 있으면서 동시에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각 분야를 모두 깊숙하게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기 떄문이다.
전자공학과에서는 전자통신 전자재료 전자계산기 제어공학 등 모든 전자관련 분야를 강의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영역을 배우게 되므로 수동적인 공부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따라서 자기 스스로 찾아가며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이 때문에 다른 단과대학생보다는 대체로 자기시간이 없다.
공과대학은 학연이나 지연에 의하여 이득이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개인의 능력으로만 평가받기 때문이다. 내가 남보다 뒤진다면 당연히 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더욱 자신의 실력을 기르려고 애를 쓰고 있다. 특히 전자공학과 학생들은 그 학문의 발전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남들은 뛰고 있는데 나는 걷고 있다면 그 간격은 점차 더 벌어질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자공학 분야의 선진 두 나라는 역시 미국과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과 일본에 상당히 뒤져 있다. 하지만 전자공학에 대한 투자가 매우 빨리 늘어나고 이는 추세이고 국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 일본과 우리나라의 격차는 차츰 줄어들 것이다.
다른 공학분야에서는 이미 선진국을 능가하는 기술을 몇몇 보유하고 있지만 전자공학분야는 아직 그러한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 ·일과의 차이를 좁히고 그들을 따라 잡으려면 그들이 뛰어가면 우리는 날아가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지금 그 생각을 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날려면 날개가 있어야 하고, 그 날개는 우리의 땀이기 때문이다.
전자공학은 사람들에게 화려하게 보여지는 학문은 아니지만 이 땅의 모든 산업에 응용되어 질 수 있고, 응용된다면 더욱 높은 생산성, 높은 정밀도를 보장해 준다. 비록 현재는 모방의 단계지만 앞으로도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계속해서 베끼기만 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우리의 창의성을 발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으므로 전자공학도들은 그 날을 대비하고 있다.
●― 의료기의 개발에도
전자공학과에서 주로 배우는 내용은 수학과 물리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물론 책은 원서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어실력은 갖추어 놓아야 한다. 우리가 미국보다 전자공학의 후진국이기 때문에 우선 그들의 책을 이용, 공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당당히 그들을 누르고 전자공학의 최고 선진국으로 떠오르면 그때는 세계 각지의 대학에 우리 말로 된 책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좋은 일이다.
우리 과에서는 실험을 많이 한다. 사실 실험시간은 대학을 대학답게 한다. 예컨대 처음 대하는 회로를 본 뒤 그 회로를 기판에 꾸미고, 이곳 저곳에 필요한 데이터에 산출하기도 한다. 어쩌다 그 자료가 맞았을 때의 기쁨이란….
전자공학의 발달은 현대를 신석기시대라고 부르게 한다. 반도체의 주성분인 규소(Si)가 모래에서 추출되는 돌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왜 전자공학을…"하고 물으면 나는 "신석기시대의 장인이 되려고…"라고 우스개소리로 대답하곤 한다. 반도체를 이용하는 작업은 돌에 생명을 불어 넣는 창조주의 작업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반도체의 특성을 우리가 원하는대로, 즉 눈에 보이지 않고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전자들을 우리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 우주선을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한 기구를 만들려면 제어공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수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즉각 위치를 수정하는 일 등은 전자공학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은 전자공학이 의학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단층촬영기 초음파검사기 같은 기구들은 모두 전자공학이 탄생시킨 의료기구이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기계들을 전자공학도가 만든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자랑스런 일이다.
아무튼 전자공학의 미래는 매우 밝다. 여러 분야에 넓게 응용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자공학은 이제 국가산업의 대부분을 받치고 있다.
대학은 여러 지방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이 모이는 곳이므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결점을 보완케 해 준다. 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면 인생의 열매를 보장하는 곳이기도 한다.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는 오히려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된다.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가 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대학입시를 앞둔 후배들에게 시인 '롱펠로우'의 '인생의 찬송가' 중에서 끝부분을 들려주고 싶다.
"보다 추구하고 보다 성취하라. 그리고 땀흘려 노력하고 그 성과를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