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프랑스 작가 베르베르의 공상과학 소설 '개미'를 보면 사람들이 개미들의 언어를 터득해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생물학이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한다 해도 과연 인간과 개미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올까.
많은 공상과학 소설들이 그렇듯이 '개미' 가 보여주는 세상이 전혀 불가능하고 황당무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개미 못지 않게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는 꿀벌에게는 이미 가능한 일이다. 꿀벌은 춤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이 꿀벌의 춤언어(dance language)는 1973년 틴버겐, 로렌츠와 함께 로벨 생리학 및 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폰프리쉬 박사에 의해 처음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는 이른바 행태학(ethology)이라는 분야를 정립한 선구자 중 한명이다.
온몸이 화학공장
정탐벌(scout bee)은 꿀이 듬뿍 담긴 꽃을 발견하고 돌아온 뒤 꼬리춤(waggle dance)이라는 독특한 행동을 나타내 꿀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알려준다. 이때 꼬리춤을 추는 속도는 거리를 나타내고, 꼬리춤의 방향과 중력 방햑의 합성각도는 먹이가 있는 방향을 나타낸다. 이 정보는 꼬리춤에 너무나 명확하게 표현돼 있어서 사람도 그 춤을 보고 꿀의 출처를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이 최소한 벌의 언어를 알아듣는 단계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몇 년전 독일 학자들에 의해 벌도 인간이 보낸는 신호를 알아듣게 됐다. 조그만 로봇을 제작해 춤을 추게 만듦으로써 벌들이 미리 정해놓은 장소로 날아오게 하는데 성공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벌과 인간의 의사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젠 벌들도 인간이 그들의 언어를 터득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걸어올 일만 남은 셈이다.
개미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화학의 언어이다. 먹이를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개미를 발견하면 배를 땅에 깔고 눈높이를 최대한 낮춰 옆모습을 관찰해보라. 개미가 배의 끝부분을 땅에 끌며 걸어가는 것을 알수 있다. 이는 바로 먹이로부터 집까지 냄새길(chemical trail 또는 odor trail)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개미는 돌아오는 길목에서나 집에서 다른 일개미를 만나면 우선 자기가 물고 온 먹이를 시식하게 해준다. 먹이의 맛을 보고 자극을 받은 다른 일개미는 곧바로 냄새길을 따라 먹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개미가 냄새길을 그릴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일종의 페르몬(pheromone)이다. 개미가 만드는 페르몬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개미 몸 속에는 머리 끝에서 배 끝까지 온갖 크고 작은 화학공장들이 모여 있어, 마치 걸어다니는 공단을 보는 것 같다.
냄새길 페르몬(trail pheromone)은 대개 배 끝에 있는 외분비샘 중 하나에서 만들어진다. 이것이 정확히 어느 분비샘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몇몇 분비샘들을 따로 해부하고 이를 개미집 문으로부터 각각 다른 방향으로 길게 문지른다. 이때 개미들이 먹이를 찾아가게 놔두고 가는 방향을 보면 어느 것이 냄새길 페로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화학 사이렌 울려 적 물리친다
화학언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다. 일꾼 개미의 냄새길 페르몬은 독침샘에서 분비되며, 그 화학구조가 매우 복잡하다(methyl-4-methyl-pyrrole-2-carboxylate). 그런데 이 페르몬은 무척 민감하게 작용해서 1mg정도의 적은 양으로도 지구를 세바퀴나 돌만큼 긴 냄새길을 만들 수 있다. 또 휘발성이 대단히 강해 불필요한 행동을 줄일 수 있다. 먹이를 다 거뒤들인 후에도 오랫동안 냄새길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많은 일개미들이 아직도 먹이가 남아있는 줄 알고 헛걸을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먹이를 물고 돌아오는 개미들은 이미 한 쪽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한 냄새길 위에 페르몬을 더 뿌려 길을 유지한다. 그러다가 맨 나중에 먹이가 없어 빈 입으로 돌아오는 개미는 더 이상 페르몬을 뿌리지 않아 냄새길은 자연스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터나 집에 침입자가 나타났을 때 개미들은 '화학 경보'를 울린다. 필자가 파나마의 발로콜로라도섬에 있는 스미소니언 열대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시절에 관찰한 일이다. 중남미의 열대림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애즈텍 개미 중 몇 종들은 큰 나뭇가지에 어른키 만큼이나 길게 매달린 집을 짓고 산다. 이 개미는 어찌나 사나운지 그 나무 주변에서 잠시만 머뭇거려도 어느새 몇십마리나 되는 일개미들이 들러 붙어 온몸을 물어 뜯는다.
침입자(다른 종의 개미)를 발견한 애즈텍 개미가 즉시 경보 페로몬(alarm pheromone)을 분비해 퍼뜨리면 순식간에 동료 일개미들이 사건 현장으로 집결한다. 이렇게 모여든 일개미들은 침입자를 완전히 포위한 후 다리와 안테나를 겨냥해 공격을 시작한다. 그리 오래지 않아 침입자는 사극 영화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극형인 능지처참을 당한다. 세 쌍의 다리와 한 쌍의 안테나 모두가 팔방으로 찢기는 참사를 면치 못한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호주의 열대림에서 서식하는 베짜기 개미(weaver ants)의 화학 언어는 독일 뷔르즈버그 대학의 횔도블러 박사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윌슨 박사의 오랜 공동 연구에 의해 매우 자세하게 알려졌다. 베짜기 개미들은 한 가지에 달려있는 여러나뭇잎들을 힘을 모아 끌어당긴 후 애벌레로부터 분비된 명주실을 이용해 바느질하듯 잎들을 엮어 살 집을 만든다. 이처럼 미성년자들까지 동원한 조직적인 협동사회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고도로 발달한 화학언어다.
개미는 터의 경계를 표시하는 일, 그리고 먹이나 침입자를 발견한 곳을 알리는 일 모두를 불과 몇 가지의 간단한 화학단어들을 적절히 조합해 만들어 낸다. 이는 인간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쉬운 언어의 기본적인 구조를 갖춘 엄연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후각뿐 아니라 청각과 촉각도 개미의 의사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최근 20여년 간 활발한 연구로 상당히 많은 종의 개미들이 소리를 내서 의사를 전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흔히 소리를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곤충으로는 귀뚜라미나 베짱이를 생각할 수 있다. 개미는 이들과 달리 우리 귀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를 낸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우리 귀에 베짱이의 노래만 들리는 이유는 개미 노래 소리가 잘 안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안따라오면 입에 물어 끌고가
개미들 중 비교적 원시적인 종일수록 몸짓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이 개미들은 자신이 먹이을 발견한 곳으로 동료들을 동원할 때 한번에 한 명 밖에 데려가지 못한다. 일단 동료 일개미를 만나면 안테나로 몇번 건드린 다음 돌아서서 먼저 목적이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러면 동료 일개미는 앞서 가는 개미의 몸에 닿을 듯 바짝 붙어 뒤를 쫓는다.
때론 뒤따라 가던 개미가 앞서 가는 개미를 놓치기도 한다. 앞서가던 개미는 동료의 안테나가 자기 몸에 건드려지지 않으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동료를 찾는다. 동료가 잘 따라오지 않을 때는 입으로 물며 끌어당기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을 병렬주행(tandem running)이라 부르는데, 어떻게 이런 비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으로부터 냄새길을 놓아 한꺼번에 여러 동료들을 동원할 수 있는 대중 전달 수단이 진화될 수 있었는가는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