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짜증나는 소음.우리는 이들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하지만 최근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듣기 싫은 소음이 인간을 비롯한 자연에 '좋은 약'이 된다고 하는데….
누구나 한번쯤 옆집에서 일어나는 부부싸움이나 작은 망치질 소리에 밤잠을 설쳐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딴에는 배려를 한답시고 망치를 살살 두드리는 사람도 있지만, 망치 소리로 날밤을 새본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그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크게 틀어놓은 음악소리보다 왱왱거리는 모기소리가 더 ‘강적’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지리산 계곡에서 뉴스를 수신하기 위해 단파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지지직거리는 소음 너머로 조그맣게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날씨예보에 온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한마디. “도대체 이 세상은 왜 망할 놈의 소음들로 가득 차있는 거야!” 짜증없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몸상해가며 연구하는 엔지니어들의 영원한 숙제도 바로 이 ‘소음을 줄이는 문제’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과학자들이 새롭게 밝혀낸 사실에 따르면, 때로는 ‘듣기 싫은 소음이 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소음공명현상’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바닷가재가 살아남는 법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부터 한치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동물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는 감각기관이다. 바닷가재는 꼬리 끝에 털이 달린 감각세포가 존재하는데, 포식자의 접근을 알아채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바닷물의 움직임이 너무 작으면 세포는 반응하지 않지만, 일정한 값(역치값) 이상이 되면 0.2초 동안 1백mV의 신호를 뇌로 전달한다. 포식자가 다가오면서 만드는, 일정한 패턴을 가진 바닷물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감각세포는 뇌로 신호를 전달하게 되고, 뇌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방어태세를 하라는 신호를 다시 온몸으로 보낸다.
하지만 바닷가재를 잡아먹는 포식자 물고기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물고기는 바닷가재를 한입에 넣기 위해 물의 흐름을 만들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다. 따라서 포식자의 접근으로 인한 물의 움직임은 매우 미세한 흐름이 된다.
이것은 바닷가재의 감각세포가 더 민감해진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포식자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물고기들과 조류, 바람, 온도차 등으로 인해 바닷물은 쉴새없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감각세포의 역치값이 낮아 미세한 요동에도 반응한다면, 바닷가재들은 ‘신경쇠약 직전의 새우들’로 변해갈 것이다. 포식자 피하려다 ‘스트레스’로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닷가재 감각세포의 역치값은 적당히 높다. 그렇다면 바닷가재는 ‘물살의 요동’이라는 소음으로 가득 찬 바닷물 속에서 적당히 무딘 감각세포로 어떻게 포식자의 접근을 눈치챌 수 있을까.
바닷물 요동으로 포식자의 접근 감지
미국 미주리대 물리학자 프랭크 모스 교수는 바닷가재가 포식자의 접근을 감지하는데 있어 ‘바닷물의 요동’이 오히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가 물탱크에서 바닷가재를 키우며 했던 실험은 그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포식자 물고기는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때문에, 바닷물의 움직임이 없다면 바닷가재의 감각세포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접근하면서 만드는 물의 움직임이 감각세포의 역치값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닷물의 요동이 적당히 있으면, 다소 못미쳤던 포식자 신호가 역치값 위로 떠밀려 올라와 감각세포가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바닷물의 요동이 너무 작거나 크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적당한 소음이 있을 때 미약한 원신호가 더 잘 들리는 현상을 ‘소음공명’(Stochastic Resonance)이라고 부른다. 전달하려는 신호가 주변의 소음과 공명을 일으켜 증폭되기 때문에 이같은 이름이 붙게 됐다.
소음공명이 일어나는 원리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흙바닥에 W자로 두개의 구덩이를 판 후, 한쪽 구덩이 안에 구슬을 넣어보자. 구슬은 구덩이 안에서 왔다갔다 진동하고 있지만, 옆의 구덩이로 넘어갈 만큼 높은 위치에너지를 갖고 있진 못하는 상황이다. 이때 바람이 이리저리 불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진동하고 있는 구슬이 옆의 구덩이와 맞닿은 면의 맨꼭대기까지 왔을 때 강한 바람이 구슬을 살짝 밀어준다면 구슬은 옆구덩이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의 세기가 너무 약하거나 너무 세지 않고 적당하다면 구슬이 양쪽 구덩이를 오가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두개(또는 그 이상)의 안정된 모드와 두 모드 사이에 존재하는 역치값, 미약한 진동신호와 적당한 크기의 소음이‘소음공명현상’을 만드는 필수조건들이다.
빙하기의 원인
이 현상이 이론적으로 처음 도입된 것은 빙하기를 연구하는 기상학자들에 의해서였다. 북극에 존재하는 빙하들의 응결모양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구는 약 10만년을 주기로 빙하기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지구의 공전궤도가 10만년에 한번씩 흔들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혹시 이것이 빙하기가 발생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됐다. 그러나 지구공전궤도가 흔들리는 정도는 아주 미약해서 지구를 빙하기로 이르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계산이 나오면서 빙하기의 발생원인은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됐다.
1981년 이탈리아의 기상학자 로베르토 벤지와 그의 동료들은 빙하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태양으로부터 끊임없이 유입되는 에너지에 의해 지구의 기온은 쉴새없이 변화한다. 이런 기온의 변화는 큰 규모에서 보면 대기온도의 요동이라고 볼 수 있다. 벤지 박사는 10만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지구궤도의 흔들림으로 인한 대기온도의 기후변화가 대기온도의 요동으로 인해 증폭돼, 지구가 갑작스런 빙하기에 빠질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소음공명현상’이 처음 도입된 계기다.
이 이론이 제안되자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2년 후 프랑스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실험적으로 그 가능성이 증명되면서 ‘소음공명현상’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슈미트 트리거’(일정한 값 이상이 되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전기스위치)를 이용한 실험에서, 미약한 신호가 전기적인 소음에 의해 증폭돼 전달될 수 있음을 보였다. 1988년에는 미국 조지아공대의 맥나마라와 비센펠트가 링 레이저에서 소음공명현상을 재현함으로써, 소음공명현상은 비선형 시스템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임이 밝혀졌다.
‘소음공명현상이 주기적인 빙하기 도래의 결정적 원인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소음공명현상 자체는 그후 이론적으로 탄탄히 정립되고,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적으로 재현되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뇌기능에 필수적인 노이즈
소음공명현상이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생물체, 그중에서도 뉴런(신경세포)의 정보전달을 연구하는 신경과학분야다. 우리의 대뇌는 복잡한 연산과 논리적인 사고를 수행하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런의 수상돌기(흥분을 다른 것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작용을 하는, 신경세포가 갖는 돌기의 하나)와 세포막은 열진동에 의한 노이즈에서부터 신경화학물질의 마구잡이 분출현상,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스파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이즈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소음공해 속에서 뇌는 어떻게 복잡하고 정교한 사고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뇌의 정보처리과정을 이해하려는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뉴런이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있어 이런 소음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1996년 미국의 브루스 글룩만 박사와 그 동료들은 쥐의 뇌에서 단기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라는 부위의 조직을 떼어냈다. 이 조직에는 수많은 뉴런이 얽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데, 정보가 전달되면 여러 뉴런이 동시에 발화체(전기적 신호를 발생시켜) 정보를 주고받는 상태가 된다.
그들은 세포막에 전극을 꽂아 뉴런의 활동을 관찰해봤다. 외부자극이 없는 경우 동시에 발화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미약하나마 주기적인 외부자극을 주는 경우에도 세포는 발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약한 신호와 함께 실제 살아있는 뇌에서와 같은 노이즈를 주입할 경우, 세포는 동시에 발화하면서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노이즈가 미약한 신호를 증폭해 동시 발화를 촉발시킨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신경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주고받는지 아직 모르고 있지만, 복잡하게 활동하는 뉴런의 운동에서 노이즈가 어떤 형태로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고 믿고 있다. ‘머리 속을 맴도는 소음’이 정상적인 뇌기능에 필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치로도 씹는 느낌 지각한다
현재 소음공명현상에 관한 연구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기술적으로도 응용되고 있다. 스퀴드(SQUID, 초전도현상을 이용해 뇌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측정하는 장치)에서부터 우주왕복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소음을 통해 신호를 증폭하고 이를 정확히 전달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특히 소음공명의 의학적인 응용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인간의 신경세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역치값이 올라가 잘 발화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손이나 발의 움직임, 방향, 속도 등을 지각하는 뉴런의 수용체가 역치값이 올라감에 따라 둔해져 제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심할 경우 걷기가 힘들어지고 균형감각을 잃게 되기도 한다. 물리학자들과 의사들은 이런 증세로 고생하는 환자의 신경세포에 약간의 소음을 주입함으로써 미약한 신호에도 세포가 반응해 제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 의용생체공학과(biomedical engineering)의 제임스 콜린즈 교수는 올해로 35살의 젊은 물리학자다. 그는 소음공명현상에 관한 연구에 초창기부터 참여해 왔으며, 특히 생물학적인 시스템에서 소음공명현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 또 소음공명현상을 응용해 의치로도 음식물을 씹는 느낌을 지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즉 의치를 통해 잇몸의 신경이 느끼는 미약한 촉각에 약간의 전기적 소음을 주입해서 씹는 느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증폭한 것이다.
현재는 중풍이나 당뇨병 환자가 걷거나 지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그는 ‘소음공명현상에 관한 연구와 응용’으로 1999년 미국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뽑은 ‘세상을 바꾼 젊은 과학혁명가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시끄럽고 귀찮은 소음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들이 ‘적막’이라 부르는 순간에도 우리의 뇌 속에선 신경세포들의 지지직거림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지난 3백년 동안 과학자들은 이 세상에서 소음을 몰아내기 위해 싸워왔으며, 더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소음 속에서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소음공명현상은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시끄럽고 아무 쓸모도 없는 소음들로 가득 차있는 거야!”라고 푸념했던 우리들의 무릎을 치게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소음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그 덕분에 자연(인간을 포함해서)은 지금의 모습으로 정교하게 돌아가게 됐던 것이다. 세상은 늘 시끄럽지만 세상이 시끄러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