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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의 상상의 세계


이 책의 원제는 ‘Imagined Worlds’(Harvard University Press, 1997)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의 세계 : 과학소설의 상상력을 통해 본 인류의 미래’(신중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0)라는 제목으로 최근 번역됐다. 원래 1995년 예루살렘의 히브루 대학에서 H. G. 웰스의 ‘타임머신’(Time machine) 출간 1백주년 기념강연 내용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20세기 과학고전으로 꼽기에는 출판 연도가 너무 가까울지 몰라도,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의 범위나 깊이 그리고 저자의 통찰력은 여느 과학고전에 비추어 전혀 뒤지지 않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과학소설 같은 상상력 통해 본 인류의 미래

상상의 세계’는 총 5개의 장(이야기들, 과학, 기술, 진화, 윤리)으로 구성된 2백쪽이 채 못되는 적은 분량의 책이다. 1장은 20세기 동안 등장했던 몇몇 대표적인 기술발전의 사례를 중심으로 기술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2장은 입자물리학, 우주과학, 관측 천문학, 생물학 등의 변천과정과 미래의 발전가능성을 통해 과학발전의 일반적 특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3장은 유전공학과 컴퓨터기술 등의 예시를 통해 미래 기술발전의 예측과 기술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4장에서는 셰익스피어가 기술했던 인간발달의 7단계에 비유해, 인류의 미래를 7단계의 시간 단위로 구분해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 5장에서는 과학기술과 윤리의 문제를 논하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이 특별히 과학소설 같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책 전체의 문제제기와 전개과정에서 웰스의 ‘타임머신’ 홀데인의 ‘다이달로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 많은 과학소설과 미래 예측서를 인용하는 점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다이슨은 “과학은 내 전공 분야다. 그러나 과학 소설은 나의 꿈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과학소설은 그에게 있어서 그 어떤 통계적 분석보다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더 많은 통찰을 제공해준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

비행기와 비행선의 비교를 통한 기술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그의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비행기와 비행선 중에서 왜 비행기 기술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비행기의 경우, 초창기 전세계의 열광적인 발명가는 각자의 독창성에 기초해 10만종 이상의 다양한 형태의 비행기를 개발했고, 이 중에서 약 1백종만 살아남아서 오늘날 비행기 기종의 기초를 형성했다. 즉 비행기는 다윈이 말하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의 과정을 밟았다. 반면에 비행선은 1920-30년대 당시 저물어가는 대영제국의 권위를 되살려보고자 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기술적 다양성과 안정성에 기초하지 않고 성급히 추진됐다. 더구나 탑승자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 대참사를 맞이함으로써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다이슨은 이를 ‘기술 문화’와 ‘정치 문화’의 갈등으로 그리고 있다.

교육에 대한 다이슨의 생각 또한 매우 독특하다. 1991년 미국 물리교사협회(AAPT)에서 수여하는 외르스테드 메달(Oersted Medal)을 수상하는 자리에서“학생들에게 물리학을 진정 흥미있고 창조적으로 학습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학교에서 물리를 결코 가르치지 말아야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는 기존 학교의 물리수업이 학생의 창조적 사고력을 오히려 말살하고 있으며, 수업은 마치 박물관의 박제와도 같이 죽어버린 과학을 취급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학교에서 물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덕분”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과학 성장의 원동력 톨스토이 스타일

다이슨에 의하면 과학에는 두종류의 혁명이 존재한다. ‘개념에 의한 혁명’은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의 혁명으로서, 쿤의‘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그려지고 있는 종류의 혁명이다. 한편‘도구에 의한 혁명’은 대중의 흥미를 잘 끌지는 못하지만 과학의 진보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에 의한 천문학의 혁명이나 X선 회절을 통한 크크릭-왓슨의 혁명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학의 역사에 있어서 ‘개념에 의한 혁명’은 그리 흔한 사건이 아니고 오히려 과학의 전분야에 걸쳐(특히 생물학이나 천문학에서) ‘도구에 의한 혁명’이 보다 흔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미래의 과학은 새로운 도구의 발명에 의해 이끌어진다 것이 다이슨의 예측이다. 현재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컴퓨터공학, 유전자과학, 신경과학 등이 도구에 의한 혁명의 예가 된다.

다이슨에 따르면, 과학의 성장을 가져오는 또다른 원동력은 과학의 스타일이다. 여기에는 ‘나폴레옹 스타일’과 ‘톨스토이 스타일’이 있다. 이는 나폴레옹이 보여준 엄격한 조직과 훈련 그리고 톨스토이가 보여준 혼돈과 자유를 각각 비유한 것이다. 예컨대, 대형 IBM 중앙 컴퓨터가 나폴레옹식에 해당한다면, 개인용 매킨토시 컴퓨터는 톨스토이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컴퓨터 혁명은 “노이만의 나폴레옹적 야망에서 벗어나 인터넷이라는 톨스토이적 무질서를 향해 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과학의 스타일을 가능한 톨스토이 스타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미생물학이나 신경생물학 등의 분야에서는 톨스토이적인 창조적 혼돈이 수용되고 있는 반면, 입자물리학과 우주과학은 나폴레옹적인 완고함 때문에 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말한다.

예술과 종교에 심취한 물리학자
 

예술과 종교에 심취한 물리학자


프리만 다이슨은 영국의 버크셔 지방에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대부터 캠브리지 대학 시절까지 수학에 몰두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됐다. 전쟁기간 중 영국공군의 폭격사령부에서 근무하기도 한 그는 1945년 대학으로 돌아와서 학사과정을 마쳤다. 1947년 영연방 장학금을 받아서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J. R. Oppenheimer)와 2년간 함께 연구했다. 그 후 영국으로 돌아와 버밍엄 대학의 연구원을 거쳐 1953년에 프린스턴 대학 고등연구소의 교수로 임명됐다. 그는 1957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1965년에 세명의 이론 물리학자 파인만, 슈윙거, 도모나가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세사람의 수상 업적은 1948-1949년에 걸쳐 독자적으로 양자전기역학을 새로이 공식화해 상대론과 부합하게 만든 것이었다. 다이슨은 이들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이론들의 관계를 증명함으로써 일반이론을 도출했다.

그 후 다이슨은 물리학, 우주학, 우주여행 등 많은 분야에 관여했다. 유인우주선을 건설해 화성에 보내는 오리온계획(Orion Project)에도 참여했으며, 태양계와 태양계 이외의 다른 행성을 개척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펼쳐왔다. 그는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그 중에는‘Disturbing Universe’(1979) ‘Weapons and Hope’(1984) ‘Origins of Life’(1985), ‘Infinitein All Directions’(1988) ‘From Eros to Gaia’(1993) 등이 있다.

​폭넓은 저술 활동과 다양한 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다이슨은 여러 단체로부터 상을 받았다. 1991년에는 훌륭한 과학교사의 자격으로 외르스트 메달(Oersted Medal)을, 1996년에는 예술적 업적이 뛰어난 과학자로서 루이스 토마스 상(Lewis Thomas Prize)을, 그리고 2000년에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그의 공헌을 인정받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템플턴상(Templeton Prize)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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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송진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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