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가 이중나선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힌 주역은 왓슨과 크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같은 수훈을 이룬 뒤에는 여러 다른 과학자들의 끈질긴 연구성과가 있었다. 왓슨과 크릭은 이같은 연구를 '완벽하고도 최종적으로' 마무리 했다.
지금부터 42년 전인 1953년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 대전환을 가져온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다름 아닌 DNA의 3차원적 이중나선형 구조가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있던 제임스 왓슨(James D. Watson)과 프렌시스 크릭(Frencis H.Crick)에 의해 발표된 것이다.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발표된 지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뉴욕의 과학협회(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는 2년 전인 1993년 10월 14일부터 17일까지 세계 각국의 저명한 생명과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국제회의를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했다. 일리노이주 주지사 제임스 에드거(James Edgar)는 회의가 열리는 기간을 생의과학주간(Biomedical Science Appreciation Week)으로 선포했다.
군터 스텐(Gunter Stent)은 개회사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지 5백년이 지난 1953년에 생물학계에서는 이와 유사한 혁명이 왓슨과 크릭의 연구발표에 의해 시작됐다"고 극찬했다. 또한 왓슨이 소장으로 있던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는 3일간의 회의와 함께 성대한 자체행사를 열었다.
왓슨과 크릭 뒤의 숨은 공로자들
오늘날 우리는 DNA를 생각하면 으레 왓슨과 크릭 두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숨은 공로자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른 모든 과학적 진보가 그러했듯 왓슨과 크릭 이전 수세기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구성하는 유전물질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노력했다.
1800년대 후반에 독일의 생화학자 프레데리히 마이에셔(Frederich Miescher)가 처음으로 DNA를 연어의 정자에서 분리했다. 당시 몇몇 과학자들은 DNA가 유전물질이 아닐까하고 추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DNA가 네 가지 종류의 단순한 단량체(monomer)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이 복잡한 유전형질을 결정하는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뒤 1943년 들어서 미국 록펠러 인스티튜트(현 록펠러 대학)에 있던 오스왈드 에이버 리(Oswald T. Avery) 연구진은 스트랩토 코코스라는 박테리아의 정제 된 DNA가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처음으로 DNA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물질이라는 직접적인 제시를 했다. 1952년 알프레드 허시(Alfred D. Hershey)와 마샤 체이스(Martha Chase)는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여 이를 입증 했다.
왓슨과 크릭의 올바른 DNA구조 발견에 무엇보다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다음의 두 연구이다. 첫째, 1950년 어윈샤가프(Erwin Chargaff)는 여러가지 생물로부터 DNA를 추출해서 아데닌(adenine), 구아닌(guanine), 시토신(cytosine), 티민(thymine) 등 4가지 염기의 양을 측정했는데 아데닌은 티민과, 그리고 구아닌은 시토신과 항상 같은 양으로 존재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왓슨과 크릭에게 DNA가 상보적 이중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두번째는 당시 영국의 킹스대학에 있던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와 공동연구자 로잘린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에 의해 얻어진 DNA가닥의 X선 회절실험 결과다. 그들은 규칙적인 간격을 이루고 있는 DNA 결정에 X선을 쪼여줌으로써 얻어진 굴절되는 빛의 영상으로부터 DNA의 자세한 구조를 예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표한 1953년 4월 25일자의 '네이처'지에는 프랭클린과 윌킨스 등도 동시에 DNA의 구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왓슨과 크릭의 발견을 그토록 중요하고 독특하게 만들었을까? 시카고 DNA 국제회의 개회사를 담당했던 스텐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왓슨과 크릭의 발견에 있어서 위대한 점은 그 연구의 완벽성과 최종성에 있다". 그들은 샤가프의 염기가 쌍을 이룬다는 예측과 윌킨슨과 프랭클린 등의 X선으로부터 얻어진 구조적 결과를 이용하여 정확한 DNA모델을 제시했다.
만일 그들의 연구결과가 DNA의 전체적인 이해에 있지 않고 단편적인 것이었다면 그들의 연구도 단지 생물학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에피소드로 남아 있을 것이다.
DNA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개의 나선형 폴리뉴클레오티드 사슬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꼬여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각각의 사슬들은 디옥시리보오스라는 당과 인산이 계속 반복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슬내 각각의 당에는 아데닌이나 구아닌 같은 퓨린, 혹은 시토신이나 티민과 같은 피리미딘 염기들이 나선 안쪽을 향해 붙어 있으며 아데닌과 티민은 두개의 수소결합으로, 그리고 시토신과 구아닌은 세개의 수소결합으로 염기쌍을 이루며 안정화돼 있다. 이같은 염기쌍이 이루는 평면은 나선축에 대해 수직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여 있고 디옥시리보오스와 음전하를 띠는 인산은 나선의 바깥쪽을 향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나선들은 매 34Å의 거리마다 회전되는 반복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같은 두가닥의 DNA 나선 사이의 꼬인 형태는 두개의 패인 형태의 구조를 DNA표면에 형성시키고 있다. 유전자 조직에 관련되는 단백질은 대부분 메이저 그로브(major groove)에 붙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마이너 그로브(miner groove)에 조절단백이 붙는 경우도 발견되고 있다. DNA는 두개의 나선이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염기쌍을 이루고 있으므로 한가닥 나선의 염기서열을 알면 다른 나선의 염기서열도 알 수 있다.
DNA의 이중나선 모형은 오랫동안 궁금한 문제였던 유전물질의 복제 메커니즘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왓슨과 크릭은 이 메커니즘을 DNA의 구조를 발표한 지 한 달뒤에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그들은 각각의 DNA 나선들은 새로운 상보나선들을 합성하는데 있어서 주형으로 작용한다는 반보전가설을 제안했다.
이는 1957년 매튜 메셀슨(Mattew Meselson)과 프랭클린 스톨(Franklin Stahl)이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한 실험으로 입증하게 되었다. 이로써 유전정보가 어떻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주게 되었다.
이중나선 모형 규명으로 유전물질 복제 메커니즘 이해
어떤 유전자의 생산물질인 단백질들이 다른 유전자들을 조절한다는 조절 유전자 가설이 1961년 프랑수아 자콥(Francois Jacob)과 자크 모노드(Jacques Monod)라는 두명의 프랑스 과학자들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뒤 유전·생화학 연구에 커다란 진보가 있었다.
무엇보다 DNA에 내장되어 있는 유전정보가 어떻게 단백질로 바뀌어가는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유전정보의 세포 내에서의 흐름은 3가지 중요한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가설로 분자유전학이 중요한 정설로 받아들였다.
유전정보 흐름의 첫번째 과정은 DNA가 증식돼 가는 복제과정이고 두번째는 DNA에 잠재돼 있는 유전정보가 mRNA의 형태로 전달되는 과정인 전사과정이다. 최종적으로 mRNA에 들어있는 유전정보는 tRNA와 리보솜이라고 알려진 핵단백질의 복합체에 의해 특정아미노산 사슬로 이어지는 단백질로 변해가는 번역과정을 통해 유전정보의 흐름이 완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부호가 가지고 있는 아미노산에 대한 개개의 정보는 현재 MIT대 생물학과에 있는 고빈드 코라나(Gobind Khorana)가 1966년 밝혔다. 1962년에 하워드 테민(Haward Temin)은 예외적인 경우로 RNA에서 DNA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역전사과정을 RNA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중 발견했으나 전반적인 유전정보는 위에서 언급한 정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유전자클로닝 혹은 유전자재조합 기술이 도입됨으로써 유전자 연구활성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어느 특정 생물의 DNA를 제한 효소들을 이용하여 절단하고 독립적으로 복제가 가능한 벡터라 불리는 원형의 DNA 속에 삽입시킨 뒤 박테리아 숙주 속으로 집어넣고 증식시키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 한가지 생물로부터 얻어진 DNA조각을 분리해내고 원하는 만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DNA 염기서열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방법들이 1977년 알란 맥삼(Allan Maxam)과 월터 길버트(Walter Gilbert), 프레데릭 생거(Frederick Sänger)와 동료들에 의해 각각 개발됨으로써 유전자 연구는 본격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단순히 염색체를 세거나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고 교배 실험으로 유전자의 위치를 부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확하게 개개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결정하고 그들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어떤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인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분자생물학자들은 어떤 특정 유전자 부위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변화시킨 뒤 세포나 심지어는 생물체의 생식세포 속으로 집어넣어 개개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1984년 미국 시터스사에 있던 카리 뮬리스(Kary Mullis)와 연구원들에 의해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이라 불리는 시험관 내에서 유전자를 증폭시키는 방법이 개발됨으로써 분자생물학 연구를 더욱 다양하고 쉽게 만들어주었으며 의학분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유전정보의 근원인 DNA의 구조발견이 지난 42년 동안 생물학·의학 등의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이무도 없는 것같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기대는 어떠할까? 저명한 생물학자인 월터 버드머(Walter Bodmer)는 "인간 전체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것이 유전자 연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중나선 DNA의 미래
그로 인해 질병을 야기하는 유전자의 발견, 유전병 조기진단이 가능해질 것이다. 덧붙여 유전자치료법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현재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수용체 효소 신호전달단백질 전사인자들과 같은 중요한 유전자 산물들의 유전자 조절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는 일이다. "DNA구조의 발견 이후 현 시점에서 앞으로 20년간의 연구는 인간의 질병 퇴치가 첫번째 목적이 될 것"이라고 버드머 박사는 말하고 있다.
아마도 암 심장병 자가면역질환 그리고 퇴행성 질병이 예방가능하거나 치유되어 인간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이며 수명연장이라는 인간의 꿈이 실현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알았을 때 어떤 연령층과 누구에게 이를 적용시키고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하는 흥미로운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왓슨박사는 1968년부터 1993년까지 콜드 스프링 하버연구소의 소장으로 활약하면서 인간게놈 연구를 생명과학 연구분야 중에서는 최초로 중요과학분야 대열에 낄 수 있게 만든 장본인으로 활약했으며 현재 이 연구소 고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