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확산되는 PC통신① 컴퓨터가 맺어준 친구 「엠팔」

PC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PC로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받는 PC통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학동아」는 PC통신에 관한 내용을 이번호와 다음호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호에는 PC동호인 모임인 「엠팔」에 대한 얘기를, 다음호에는 실제 PC통신의 개념과 사용법에 대해 실을 예정이다.

지난 5월24일 서울 이문동에 있는 어느 다세대 주택 마당에 십여명이 모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몇 사람은 컴퓨터 프린트 용지에 인쇄되어 있는 약도를 들고 기웃기웃하며 미리 와 있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반시간 정도 지나자 모인 사람의 숫자가 60여명을 넘게 되었고, 이들의 웅성거림에 놀란 이웃사람들은 혹시 무슨 농성이나 데모가 아닐까 하는 반쯤 기대가 서린 눈길로 창문을 통해 내다보고 있었다. 이 얘기는 지난 오월말에 문을 연 엠팔 BBS 개통식 날의 정경을 잠시 소개해본 것이다.

'엠팔'이란 한국데이타통신에서 제공하는 한글 전자사서함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우선 한글 전자사서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원래 사서함이라는 것은 남들이 보내오는 서신을 우체국에 있는 자신의 편지통으로 배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서함에 배달된 서신은 편지통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자신만이 꺼내어 볼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전자사서함이라는 것도 이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체국의 편지통 대신에 데이타통신 5층에 있는 대형 컴퓨터 기억장소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고, 열쇠 대신에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사용해서 편지통을 열어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편지를 보기 위해 데이타통신까지 가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퍼스널컴퓨터(PC)와 전화선을 이용해서 데이타통신의 컴퓨터에 연결을 하면 자기에게 배달된 편지가 PC화면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편지를 보는 것뿐 아니라 전자 사서함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다.

전자 사서함 친구

이렇게 서로 편자를 주고 받는 사람들은 서로를 엠팔(Empal)이라고 부른다.

엠팔이라는 이름은 펜팔(Penpal)로 부터 생겨나게 되었는데, Electronic Mail Pal 즉 '전자 사서함 친구'라는 뜻이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름보다는 죄수번호 같은 se00019로 소개를 해야 더 잘 알아듣는다.

지난번 여의도에서 엠팔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백명 정도가 참석을 했었는데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10%도 못되었다. "누구시지요?" "예! 저 박성현입니다." "박성현씨라구요?" "tg032 박성현입니다." "아! tg032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울산 다녀오신 얘기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저는 home34 아무갭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20년 만에 만나는 국민학교 동창생 같은지…

컴퓨터광(?)

이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엠팔 BBS이다. BBS라 하는 것은 영어로 Bulletin Board System, 즉 전자게시판 시스팀이다.

한글 전자사서함처럼 중앙에 용량이 조금 큰 PC를 하나 설치하고 이 안에 서로에게 알리는 공지사항이라든지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관한 정보등을 수록해 두고, 어떤 사람이 자기 PC를 가지고 전화선을 통해 이 PC에 연결을 하면 정보들을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팀이다. 대개의 BBS가 가지는 기능을 보면, 서로간에 편지를 보내는 전자우편 기능, 모두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공지사항―BB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컴퓨터광들이라서 그렇겠지만 공지사항들을 보면 중고PC를 판다든지 컴퓨터 관련된 전자음악 발표회가 있다든지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공개 소프트웨어를 받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공개소프트웨어 저장소, 컴퓨터를 이용해서 서로간에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화의 광장(chatting 이라고도 부른다) 기능등이 제공된다. 공개소프트웨어란 개발자가 무료로 제공하는 공짜 소프트웨어이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들은 돈을 받고 판매를 하지만 BBS를 통해 보급되는 소프트웨어들은 무료인데도 그 성능이 판매되는 소프트웨어에 버금가는 것들도 많이 있다.

땀과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

우리나라에 이러한 BBS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작년봄 연세대학에 다니던 한 학생이 자기집에 있는 PC에 BBS기능을 가지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집에 있는 전화선을 연결하여 밤10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서비스를 했던 것이 우리나라 BBS의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시작된 BBS는 현재 여러개로 늘어났다.

서울에 있는 BBS만 해도 엠팔 BBS 바이트네트 BBS 디바이러스클럽BBS 한울네트 샘BBS 등을 들 수 있고, 대구의 달구벌 네트, 청주의 충북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CBU 네트, 부산의 하이콤네트등이 널리 알려진 BBS들이다. 이것들 말고도 자기 PC와 전화선을 이용한 개인 BBS가 많이 있다.

이러한 BBS들은 대부분이 비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보니 개인의 희생과 봉사로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BBS는 땀과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엠팔 BBS가 설치된 장소는 이문동에 있는 한 회원의 집 지하실이다. 이 지하실에 조그맣게 방을 들이고, 필요한 집기들은 이웃에서 못쓰고 버리는 가구들을 얻어서 마련을 했다. 지금 PC가 올려져 있는 책상은 'tg032'회원의 사무실 아래 층에 있는 어느 이비인후과 의사선생께서 책상을 개비할 때, 버리는 것을 얻은 것이다.

가구 마련을 할 때 회원들마다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친척집을 다녀오다가 보았는데 개포동 우성아파트 몇동 앞에 낡기는 했지만 쓸만한 의자 서너개가 버려져있더라 그것을 가져다 쓰자…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다방을 하다가 폐업을 했는데 그곳에 있던 의자가 차고에 쌓여있더라…등등 별별 묘안이 백출했다.

더우기 BBS를 운영할 기계(PC)를 사는 돈은 회원들이 적게는 2만원으로 부터, 많이는 50만원에 이르기까지 성금을 모아서 조달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었던 것은 BBS기능을 하는 소프트웨어였다. 소프트웨어는 돈을 주고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글이 안되고 영문밖에 안되는 소프트웨어를 가져다가 무엇에 쓸 수 있을 것인지, 억지로 한글을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등등 격론을 벌인 끝에 BBS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로 하고 여섯 사람의 개발담당회원을 뽑았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기획한 날로부터 어림잡아 6개월만에 드디어 BBS가 개통을 하게된 것이었다. 그날 모였던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참 재미있다. 고등법원의 부장판사 고등학생 대학생 회사중역 대학교수 현직검사 공무원 회사원 과학기술연구소의 연구원 신문기자 등 온갖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였으며, 연령도 육십대에서 십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햇다.

케이크를 준비해온 빵집주인 아들, 돼지머리를 들고온 고사주장파(?) 등 그 자리에 모였던 모든사람들은 엠팔 BBS의 개통을 알리는 고천문이 낭독되자 지난 몇달간을 돌이켜 보았다. 저녁을 굶고 프로그램을 짜던 일들, 의자를 주으러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에 내리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던 일, 전화회선 설치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일찻집 표를 팔던 일들…
 

돼지머리와 막걸리와 컴퓨터의 기묘한 조화


민간BBS가 활발한 선진국
 

엠팔BBS가 설치된 장소는 어느 다세대주택 지하실


BBS개통이 무슨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생을 하고, 걱정을 나누며 6개월이라는 적지않은 세월을 지냈을까. 사실 BBS는 아무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PC를 통해서 편지를 주고받고, 공개 소프트웨어나 나누어 가지는 정도지 그게 뭐 그리 대단할 게 있을까.

하지만 BBS는 정보화사회 또는 다른 말로 정보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정보문화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로 미국 일본 프랑스를 꼽는데 이론이 없다. 이들 나라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프랑스는 정부가 주도하여 1982년부터 값싼 단말기를 무료로 나누어 주면서 정보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 결과 오늘날에는 무려 4백만대의 단말기가 보급되었고, 정보통신이 없이는 하루도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없게끔 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은 정부에서는 별로 한 것이 없다. 개인들의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진 BBS가 오늘날의 미국을 정보 통신의 선진국으로 바꾸어 놓은것이다. 1977년 CPM이라는 운영체제(OS)를 가지는 아주 작은 PC를 가지고 시카고에서 개설된 '크리스챤슨'씨의 BBS가 미국 BBS의 효시이다. 그 후 BBS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오늘날 미국 전체에 20만개 정도의 BBS가 운영될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BBS를 통해 정보통신에 흥미를 느낀 많은 사람들이 상업적인 정보서비스를 찾게 되어, 1979년 '컴퓨서브'가 문을 열고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다이얼로그'라든지 '소스'와 같은 데이터베이스 회사들이 많은 고객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미국정부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자 연방정부에서는 각 주에 정부 BBS를 개설토록 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인구 10만 정도의 작은 도시에서도 정부 BBS가 운영되어 시정에 관한 전자회의를 개최하고 시장에게 대한 건의사항 시청의 공지사항등이 BBS를 통해 활발히 전달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제 '전자 민주주의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민주정치가 중우정치로 떨어질 위험에 직면해 있던 현대사회에서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도 말이 많아서 우리가 '콜로라도의 약장사'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마이클 시머'씨는 자기 고향 동네인 콜로라도의 소도시에서 '시정책 BBS'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동네에서는 그 사람의 별명이 전자시장(electronic mayor)이라고 하며, 시정 전반에 대해 BBS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정보화 사회 추진전력은 프랑스와 미국을 적절히 혼합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우리나라의 통신공사와 같은 기관인 NTT를 중심으로 해서 종합정보통신망(ISDN)계획을 INS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PC통신을 위해서 NTT PC-Net을 운영하고 있다. 민간차원에서는 각 지역별로 BBS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현청이 자금을 지원하고, 민간인이 운영을 맡은 BBS가 대부분의 현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은 순수 민간차원의 BBS도 5천개나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정부주도의 사업들은 별무신통인데 반해서 민간이 추진하는 사업들은 회원들의 활발한 참여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미지의 인물과 컴퓨터로 대화하는 PC통신


다가오는 통신개방시대

정보통신이 활발한 다른 나라들의 추진사례를 조사하면서 내 머리 속에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발전한 나라들은 통신산업을 개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 자기 나라의 시장을 과감히 개방하고 있다. 헌데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부주도의 사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민간의 사업참여를 계속 막고 있다가 이제 와서는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밀려서 1992년에는 우리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축적된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외국 통신사업자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내 기업들 중에 약삭빠른 기업은 외국의 통신사업자들을 들쑤셔서 합작투자다 기술제휴다 하면서 이름만 국내기업이고 내막은 한국 대리점인 간판들은 우후죽순처럼 세울 것이다.
외국 통신사업자들은 우리나라에 자기들의 세계 네트워크 접속창구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사업을 계속해 나감으로써, 우리나라는 정보생성 가공 배포를 하지못하는 정보 식민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정보의 생성 가공 배포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외국의 업자를 끌어들여 우리 정보를 수집토록 하고 이 정보를 우리가 잘 사용하므로써 다른 분야의 발전을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는 궤변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논리에 따르면, 농사도 우리가 지을 필요가 없고(국제 시장의 곡물가격과 우리의 생산비를 비교하면 5배나 차이가 난다) 첨단산업 분야에 진출할 필요도 없다(기술개발비가 엄청나게 들므로). 우리는 단지 지금 경쟁력이 있는 가전제품이나 만들고, 관광산업이나 영위하면서 살아가야할지도 모른다.

결국 통신시장 개방은 밖으로부터 주어진 하나의 명제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할 일은 어떻게 이런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파도를 타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생각하는 정부차원의 거대한 사업들만으로는 이런 물결을 탈 수가 없다는 것이 우리보다 앞서간 다른 나라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결국 민초(民草)들에 의한 노력과 정부차원의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병행될 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BBS는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몇몇 동호인들이 모여서 편지를 주고받고, 파일을 나누어 가지는 일처럼 보이는 BBS들이 여럿 모이다 보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통신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 사람들이 결국은 정보서비스의 잠재 고객이 될 것이다.

민초(民草)들의 행진

정보화사회라는 것이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엄청난 투자와 긴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민초들에 의해서 준비되고 운영되는 많은 BBS가 있어서 아래서부터 기반을 다져가면서 정보화사회를 맞이해야 그것이 진정한 민초들을 위한 정보화사회가 될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불가피하게 사회구조의 변혁을 초래하게 되며, 하나의 기술은 스스로의 응용을 창출해가는 자체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세계사적 조류라고 생각한다. 정보통신의 발전을 통해 잃었던 이웃간의 유대가 생겨날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생기는 것이다. 신문 방송이 정치적인 여론을 만들어가고 이를 반영시켰던 것과 같이, 정보통신은 앞으로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러한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다.

그날 이문동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은 밤 10시가 다 되어사야 몇명씩 자리를 떴다. 휘경 전철역을 찾아 어두운 외대 뒷길을 걸어내려오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불안한 하드웨어가 걱정입니다…전원안정 장치라도 하나 사야하는데…" "이제 우리 앞에는 많은 벽과 언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산 봉우리가 없으면 산에 무슨 재미로 갑니까?"

그날 모두는 전화회선을 걱정하며, BBS의 빛나는 앞날을 빌면서 돼지머리와 막걸리를 차려 놓고 큰절을 올렸다. 첨단기술과 돼지머리…참 기묘한 조화속에서 개통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198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묵현상 책임연구원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정보·통신공학
  • 소프트웨어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