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어느 여성치고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기에 얽힌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봉숭아는 보통 4월에서 8월까지 꽃이 피는데, 늦된 녀석들은 9월에도 한참을 더 핀다. 봉숭아 꽃잎을 따서 곱게 찧고, 백반(명반석)을 조금 섞은 다음, 이를 손톱에 고르게 편다. 그런 다음 꽃잎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명주실로 잘 감는다. 이때 봉숭아물은 손톱에만 들지 않고 손톱 주변까지 퍼지기 마련인데, 성마른 사람들은 이것이 귀찮아서 도중에 그만두어버리기도 한다. 조심성이 많은 새침떼기들은 먼저 반창고나 스카치테이프로 손톱 주변을 붙이고 물을 들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손톱 주변까지 붉은 물이 드는 것은 쉬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손톱 주변에 들었던 물은 빨래를 하면서 금새 지워지고 손톱의 물만 남아 깨끗한 색을 얻을 수 있다.
봉숭아물 들이면 마취 안된다?
드물기는 하지만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는 도중이나 수술 후 환자가 깨어나기 전에 혈액순환 상태를 손톱의 색깔을 보고 확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속설이 생겨난 듯하다. 지금은 첨단장비를 써서 정밀하게 환자의 상태를 볼 수 있지만, 그래도 간단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에 요즘에도 손톱을 보는 일이 있다. 손톱을 손끝으로 눌렀다가 놓았을 때 재빨리 핏기가 돌면 혈액순환이 정상적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혈액이 신체의 말단부까지 잘 순환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만일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손톱 색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급히 수혈을 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마취하기 전에 손톱의 매니큐어를 지우도록 한다. 매니큐어를 지우는 간호사를 보면서 환자나 가족들이 왜 매니큐어를 지우는지 물었다. 간호사는 얼른 “마취가 안되니까요”하고 답해버렸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에게 무엇을 시킬 수는 있어도 알게 하기는 어렵다.” 깨우치기 어렵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을 백성에게 가르치려 하기보다 그저 목적대로 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간호사는 불필요한 설명보다는 수술을 잘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자의 말을 실천한 셈이다. 그런데 매니큐어는 아세톤으로 쉬 지워지지만, 봉숭아물은 무엇으로 지운단 말인가. 모르겠다. 그러니 백성들은 ‘봉숭아물을 들이면 마취가 안된다’고 생각할 밖에.
마귀를 쫓는 봉숭아
기실 봉숭아는 마취가 아닌 마귀와 관계된다. 예로부터 봉숭아는 몸에 침입하는 나쁜 병기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이었다. 중국에서는 봉숭아가 작물을 병충해로부터 막아준다고 생각해 수박밭이나 참외밭 곳곳에 봉숭아를 심었다고 한다. 평안도 지방에서 밭둑 가에 봉숭아를 심는 풍습도 이와 관계가 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침범하는 악귀나 병귀를 막으려는 뜻으로 울타리 밑에 봉숭아를 심었다. 장독대에 봉숭아뿐만 아니라 분꽃 등을 심은 것도 이 꽃들이 뱀이나 해충들을 막아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꽃의 붉은 색과 향기를 해충들이 피한다는 생각이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봉숭아물은 어린아이들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들였다고 한다. 최영전씨는 ‘한국의 민속식물’에서 봉숭아물 들이기가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 아이들의 병마를 막고자 하는 귀신을 쫓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썼다. 오늘날에는 여성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지만, 봉숭아물 들이기는 그 출발이 예뻐지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봉숭아물 들이기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치 않다. 다만 고려 후기 충선왕 때에 봉숭아물 들이기와 관련한 고사가 있고, 이 풍습을 ‘흰옷’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점을 보면, 이것이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설에 약간의 의문이 든다. 충선왕은 말년에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맑은 가야금 소리가 나 이를 따라가 보니, 앞을 못 보는 한 소녀가 피흘리는 손으로 가야금을 타고 있었다. 충선왕이 다가가 묻자, 그녀는 고국을 잊지 않으려고 봉숭아물을 들이고 있노라고 말했다. 벌써 고려시대에 봉숭아물 들이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 풍습이었던 셈이다.
염료는 꽃보다 잎에 많아
옛날 거북이를 닮은 산 아래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더위에도 늘 현숙한 자태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해마다 가을이 조금씩 피어날 무렵 봉숭아 잎사귀를 따다가 손톱을 물들였다. 그때마다 그녀는 울 가에서 봉숭아 잎을 찧고, 실을 가져와라, 소금을 넣어라, 네 것이 예쁘니 내 것이 예쁘니 동생들과 소란하던 유년의 풍경도 함께 물들였다. 그리고 어른이 돼서도 해마다 변함없이 물드는 그녀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왠일인지 한층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여인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봉숭아꽃이 아닌 잎으로만 봉숭아물을 들였다는 점이다. 흔히 봉숭아물은 꽃을 따서 들이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봉숭아물을 들이는 염료성분은 사실 꽃보다는 잎사귀에 많이 있다. 여인은 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푸른 잎사귀에서 붉은 빛이 나온다니 참으로 자연의 조화란 오묘한 것이다.
염료의 색은 그것을 뽑아내는 원식물과 다른 경우가 많다. 쪽빛처럼 진한 푸른빛이 초록색 잎을 가진 쪽이라는 식물에서 나오리라는 상상은 하기 어렵다. 봉숭아물을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으로 들이겠다고 흰 꽃이나 분홍 꽃으로 들여봐도 붉은 색이 나온다. 원래의 염료성분이 다른 것에 묻혀 있다가 성분을 분리함으로써 비로소 색이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원염료에 매염제가 결합해서 색이 달라지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해마다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염료임에도 불구하고 봉숭아 염료는 연구가 잘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봉숭아물은 착색이 잘 되지 않아 섬유에 들이게 되면 잘 바래 널리 이용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염료라서 애초에 연구대상에서 빠진 듯하다.
그리움이 더해진 붉은 빛
원리적으로 보면 봉숭아물은 잎이나 꽃에 있는 염료성분이 매염제 역할을 하는 백반이나 소금과 결합해 손톱에 착색되는 것이다. 매염제는
일반적으로 수용성 금속염류인 경우가 많은데, 봉숭아물을 들일 때 쓰는 백반은 알루미늄염을 함유하고 있고, 소금은 나트륨염을 가지고 있다. 염료는 일반적으로 섬유나 기타 물질에 잘 붙지 않기 때문에 금속염을 지닌 매염제에 결합시켜 착색시킨다. 여러번 물을 들이면 더욱 진해지고 고와지는 것도 염료가 표면에 골고루 퍼지고 많은 양이 착색되기 때문이다.
김재필교수(서울대 섬유고분자공학과)에 따르면, 염료는 보통 화학적으로 이중결합과 단일결합이 6-7개 반복적으로 연결된 공핵이중계가 있을 때 가시영역의 색상을 띤다고 한다. 원자나 분자들이 결합하면서 물질의 구조가 달라지고 전자분포가 조금씩 변해 색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염료물질 내부에서 원자와 분자들의 전자가 궤도를 바꾸면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기 때문에 색상이 난다.
그런데 거북산 아래의 여인이 물들였던 봉숭아물은 왜 어른이 되면서 더 진해졌던 것일까. 흔히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사라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제 치하 우리 선열들이 울 밑에서 피어나던 봉숭아의 붉음으로 애국의 단심을 되새기고 독립을 이루었던 것처럼, 사랑을 기다리는 그녀의 올곧은 마음이 봉숭아 빛에 더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