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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3천명 축제에 뛰어들다

벤츠, 포르셰의 본고장에서 열린 여름과학축제

 

개막식 현장. 이날 2만5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지난 9월 25일부터 1주일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주도인 슈투트가르트에서 과학축제가 열렸다. ‘과학적 여름’ (Wissenschaftssommer)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 여름과학축제는 올해로 벌써 5회를 맞이했다. 과학을 제대로 즐기는 법을 보여준 독일 과학축제 현장을 취재했다.

쑥덕쑥덕, 기술과 대화해 볼래요?

“슈투트가르트요? 세계 제일의 자동차도시죠.”

여름과학축제의 홍보 담당 매니저인 비르짓 슈패스는 슈투트가르트를 이렇게 소개했다. 스포츠카의 대명사 포르셰와 메르세데스-벤츠의 본사가 있는 도시, 자동차 부품 기술로 유명한 보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슈투트가르트다.

“혹시 시내 지도안내판 꼭대기에서 슈투트가르트 상징 문양 못 보셨어요?” 슈패스씨가 되물었다. 슈투트가르트를 상징하는 문양은 말인데 이는 포르셰의 브랜드 마크에서 따 왔다. 도시 속속들이 세계적인 자동차도시라는 자부심이 묻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혹시 슈투트가르트에서 여름과학축제가 열린 것이 자동차와 무슨 관계가 있진 않을까? 해답은 독일 정부가 올해를 ‘기술의 해’ 로 선정했다는 데 있다.

1999년 독일 정부는 독일 내 과학협회들과 공동으로 ‘대화하는 과학’ 재단을 설립했다. 대중과 과학에 대해 ‘대화’ 할 취지였다. 이를 위해 매년 한가지 주제를 정해 독일 전역에 걸쳐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이 중 여름과학축제는 대화하는 과학의 가장 큰 행사다. 개최지는 매년 바뀌는데 그 해의 주제에 가장 적합한 곳을 선정한다.

대화하는 과학이 문을 연 2000년은 ‘물리의 해’ 로 본에서 여름과학축제가 열렸다. 본은 독일 정부가 유럽 및 독일의 과학기술 중심도시로 추진 중인 곳이며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올해는 기술의 해로 정한 만큼 기계공학과 자동차공학 기술의 산지인 슈투트가르트가 축제지로 선정됐다.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도 슈투트가르트를 자동차도시, 기술도시로 만드는데 한 몫 한다. 올해로 개교 1백75주년을 맞이한 슈투트가르트공대는 기계공학과 자동차공학 등 공학 연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막스플랑크연구소와 함께 독일의 간판 연구소인 프라운호퍼연구소도 있다. 프라운호퍼연구소는 MP3의 핵심기술이 나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독일 전역에 50여개가 넘는 프라운호퍼연구소들 중 슈투트가르트 연구소는 생산기술과 자동화 분야 연구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다. 슈투트가르트는 기술을 매개로 대학과 연구소, 기업이 자연스럽게 융화돼 있는 도시인 것이다.

여 름과학축제는 도시의 이런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축제의 슬로건을 ‘모바일 드림’ (mobile dream)으로 내걸고 ‘움직임’ (mobility)과 ‘소통’ (communication)이라는 주제로 관중들을 맞이했다. 슈패스 씨는 “기술의 해라는 주제를 표현하면서도 슈투트가르트만의 특징을 제일 잘 살릴 수 있는 것이 자동차와 기계의 움직임일 것이다”며 “커뮤니케이션은 대중과 기술과의 소통, 대중과 과학자들과의 소통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토요일 밤 과학과의 데이트

“드라이(3), 츠바이(2), 아인(1), 와!” 함성과 함께 공이 ‘퉁’ 굴러 떨어지고,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고, 불꽃이 ‘퍽’ 하며 번쩍 튀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뻐꾸기가 ‘뻐꾹’ 울면서 우산이 쫙 펴졌다. 5분간 계속되던 현란한 ‘쇼’ 는 쌓여있던 수십 개의 페인트 통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쓰러지며 대미를 장식했다.

9월 25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슈투트가르트 시내 한복판에 설치된 대형 무대에서는 현란한 과학 도미노 쇼와 함께 1주일간의 축제를 알리는 개막식이 시작됐다. ‘판타지 머신’ (fantasy machine)이라는 이름을 가진 과학 도미노는 독일 각 지역의 초등학생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설계하고 제작한 40여개의 출품작을 하나로 이어 15m에 달하는 거대한 도미노로 재탄생 시킨 것.

운동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위치에너지를 다시 운동에너지로 딱딱 변환시켜 도미노를 완성시킨 것도 놀랍지만 테니스 공, 바람개비, 화약, 풍선 등 갖가지 생활 소품을 이용한 어린이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었다.

이 날 개막식에는 무려 2만5천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개막식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개막식은 오후 6시경 끝이 났지만 과학축제는 사실상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바로 ‘과학의 긴 밤’ (long night of science)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토요일 밤을 즐기는 색다른 ‘놀이’로 과학을 제안한 것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한 쪽에서는 무료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끝낸 50여곳의 지역 연구소 실험실들이 자정까지 개방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실험실 안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 한쪽에서는 주변의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막식장 주변에 일렬로 늘어선 흰 천막 안에는 38가지의 흥미로운 전시물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38가지 과학의 색깔
 

독일 베를린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3천km 일주에 성공한 수소연료전지자동차 ‘HYSUN 3000’.


“너무 귀엽다! 달걀 모양이네.”

지난 9월 7일 독일 베를린을 출발해 22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까지 장장 3천km에 이르는 유럽 일주에 성공해 화제가 된 ‘HYSUN 3000’ 이 달걀 모양의 주인공이었다. HYSUN 3000은 젊은 독일 엔지니어들이 만든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다. 그래서 이름도 수소(Hydrogen)의 앞머리와 태양을 따 ‘HYSUN’ 으로 지었다. 달걀 모양으로 디자인한 것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하기 위한 것. 3천km를 달리는데 수소연료를 불과 3kg밖에 쓰지 않았다.

“어, 기차가 진짜 떠서 가네!”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를 보여주는 레일 앞에도 관람객들로 만원이었다. 10cm 길이의 모형 기차에 액체질소를 넣자 기차는 자석 레일 위를 미끄러지면서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찰이 전혀 없는 전진 운동의 미래가 손에 잡힐 듯 했다.

“우와, 이거 진짜 걸려요?” 한 어린이가 전시물을 가리키며 궁금해 했다. 3m 높이의 휴대전화가 우뚝 서 있었다. 큰 휴대전화라는 뜻의 ‘막시 한디’ (Maxi Handy)는 축제를 위해 특별히 제작돼 실제로 작동했다. 이 때문에 이내 거대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보려는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헬스 기구처럼 생긴 장비도 있었다. 러닝머신 모양으로 생긴 기구는 젭터(Zeptor)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그 위에 올라서 있으면 진동이 전달돼 몸이 덜덜 떨리는데, 이 진동이 몸 전체의 신경계를 자극함으로써 신경계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용 기구였다.

“아! 아~! 도레미파솔라시도.” 자신의 목소리가 악기가 된다면 어떨까. 헤드셋을 착용하고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자신의 목소리가 컴퓨터 화면에 파장으로 표시되면서 마치 악기처럼 음을 만들어 낸다. 이는 ‘오라클’ (Auracle)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했다. 오라클은 사이버 공간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인원 제약이 없어 원하기만 한다면 전세계 접속자들과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도 있다.

마우스 휠이 필요 없는 마우스도 눈에 띄었다. 중력차를 이용해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이도록 고안돼 마우스를 위 아래로 적절히 기울이기만 하면 포인터가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전시물들 중에서 단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로봇이었다. 이미 개막식 무대 인사에 등장해 낯이 익은 로봇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바퀴달린 로봇 ‘아르마’ (Armar)가 컴퓨터 조작에 따라 관람객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과자가 담긴 쟁반을 나르는 등 척척 움직이자 연신 박수 세례가 이어졌다.

그 옆에는 두발 로봇 ‘요니’ (Johnnie)가 다음 쇼를 준비하고 있었다. 요니는 2003년 독일 하노버 박람회에서 세계적 관심을 모은 인공지능 로봇이다. 요니는 시각 인지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물을 인식하기 때문에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작이 가능하다. 1백80㎝의 훤칠한 키로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 인간과 닮았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 KAIST가 두발 로봇을 개발해 화제가 됐었다.(과학동아 10월호 참조)

천막 안의 전시물들이 움직임의 미래를 보여줬다면 천막 밖에는 움직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화를 신고 움직일 수 있어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물론 그냥 자전거와 운동화는 아니었다. 페달이 발판 모양으로 생긴 자전거, 바퀴는 매우 작고 안장은 낮은 대신 손잡이는 매우 높은 자전거, 밑바닥에 스프링 장치가 달려 통통 점프하면서 다닐 수 있는 운동화 등 상식을 뒤엎었지만 여전히 움직임의 역학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무선이동통신 기술인 블루투스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됐다. 길을 따라 30m 간격으로 6개의 부스를 설치하고 여기에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수신기를 설치해 체험자들이 PDA로 인근 지역의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로봇 아마르가 어린이에게 책을 건네주고 있다.


트럭은 과학을 싣고

“안경을 금속수세미로 닦아도 흠집하나 나지 않아요. 바로 나노기술 때문이죠.” 시내 한복판에 천막들이 대거 등장했다면 슈투트가르트공대 캠퍼스에는 과학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나타났다. 나노트럭, 바이오랩트럭, 사이언스트럭의 ‘트럭 3총사’ 가 그 주인공. 트럭들은 슈투트가르트공대가 준비한 야심작이었다. 14m 길이의 트럭 내부에 컴퓨터, 미니 시청각실, 위성과 연결된 인터넷 등을 갖춰 움직이는 전시관을 구현했다.

트럭 안내도 해당 분야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맡았다. 나노트럭 설명을 담당한 안드레아 프리벨 박사는 “현재 독일에서는 나노기술에 관한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며 “특히 메모리 기술이나 신소재 개발 등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바이오랩트럭에서는 DNA의 구조 등 생명공학 연구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선보였다. 요즘 독일 내에서는 유전자변형 식품이나 작물 등에 관한 논의가 가장 뜨겁다. 바이오랩트럭의 토블라스 파커 박사는 “독일의 환경단체들은 유전자변형에 대해 매우 거세게 반대한다. 따라서 독일 내에서 유전자 연구가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많은 연구자들이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 독일을 떠났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에서는 다소 침체된 생명공학 연구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순수 연구 목적에 한해서는 유전자변형 연구를 허용해 주는 등 생명공학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캠퍼스 한쪽에서는 가상현실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대학안팎의 여러 연구소들이 직접 개발한 가상현실이 전시됐고, 1시간 간격으로 가상현실에 대한 다양한 강연들이 진행됐다. “여기는 다임러크라이슬러 건물 내부입니다. 가상현실을 이용하면 가상공간에서 미리 건물을 설계해 내부 구조까지 둘러 본 후 가장 적합한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죠.” 안드레아 코페키 박사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가상현실은 자동차 구조 시험이나 온도 변화 시스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인간이 직접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그는 덧붙였다.

대중의 축제? 과학자들의 축제!
 

한 관람객이 머리에 기구를 쓰고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전시물들의 설명을 담당한 이들은 모두 박사과정에 있거나 박사급 과학자였다.


그렇다면 슈투트가르트의 여름과학축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뭘까? 흥미로운 전시물들? 과학을 실은 트럭 3총사? 아니면 가상현실?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과학자들이 직접 과학축제를 만들고 과학축제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슈투트가르트의 여름과학축제에서는 과학자를 만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시내 한복판에 마련된 천막 안의 전시물들 옆에서 관람객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이들은 모두 박사과정에 있거나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들이었다. 트럭에서도, 가상현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축제에 참여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번 여름과학축제의 행사 책임자가 바로 슈투트가르트공대 기계공학부 학장인 과학자라면 대답이 될 것이다. 홍보 담당 매니저 슈패스 씨는 “내 생각에 과학자들이 3천명 정도는 참여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실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행사 준비를 통틀어 가장 어려웠지만 행사 책임자가 과학자여서 과학자들을 설득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과학축제의 책임자 엔겔베르트 베스트캠퍼 교수는 “슈투트가르트는 대학과 연구소, 기업에 우수한 과학자들이 많은 엔지니어의 도시”라며 “전체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엔지니어인 점을 감안하면 과학축제를 과학자들이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축제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다”고 밝혔다.

국내에도 대한민국과학축전과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 등 과학축제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막상 과학축제에 가보면 전시물과 설명 패널만 덩그러니 있을 뿐 과학자로부터 전시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람객들에게 알아서 이해하라는 일방적이고 불친절한 ‘대화’ 방식인 셈이다. 진정한 과학과 대중의 만남을 꾀한다면 과학자들이 주체가 되는 과학축제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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