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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질에서 형편없는 한국의 과학관

인구 1천만명의 서울에 단 1개의 과학관 밖에 없고 그나마 규모나 전시물, 인원 등에서 외국과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3백50만명당 1개꼴

굳이 '과학입국'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과학관이나 박물관의 중요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인류가 지금까지 획득해온 지식을 한곳에 모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당장에 필요한 과학교육의 장으로서도 그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과학관이나 박물관 특히 과학관의 현황은 한마디로 매우 낙후돼 있다. 경제규모의 팽창이나 첨단기술의 개발추세와는 사뭇 동떨어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과학기술발전의 기초가 허약하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나라 과학관의 현주소를 가장 실감나게 알려주는 지표가 인구대비 과학관수.

현재 국내에는 과학기술처 소속으로 된 1개의 국립과학관과 직할시·도에 소속된 11개의 학생과학관이 있다. 약 3백50만명당 1개의 과학관이 있는 셈이다. 이같은 수치는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 엄청난 차이가 난다. 국립과학과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모두 5천5백개의 과학관이 있어 4만명당 1개꼴이다. 오스트리아는 4백30개로 2만명당 1개의 과학관이 있는 '과학관의 나라'임을 자랑하고 있다.

영국이나 이탈리아 일본의 경우도 3, 4백개의 과학관이 있어 15만∼40만명당 1개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인구 1천만명의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에는 단 1개소의 과학관 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과학관 실태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양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질적인 데에서도 우리나라의 과학관은 국제수준에 크게 뒤쳐지고 있다. 프랑스의 과학산업관이 약 5만평의 건평규모에 8백7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국립과학관은 4천9백여평에 불과 86명이 운명을 하고 있어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 영국의 런던과학박물관, 독일의 뮌헨과학기술박물관, 일본의 국립과학박물관 등은 모두 수만평규모의 공간에 수백명의 인력이 일하고 있다.

전시공간과 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시물이다. 대부분의 전시물들이 초·중·고교의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실제로 조작, 이해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기구들이거나 생물의 표본들이다. 즉, 교육보조자료적인 성격의 전시물들이 대부분이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 과학관의 거의 모두가 학생과학관인 점에서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과학관의 전시물 중에는 역사적으로 기념될만한 것들이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오래전에 유명한 과학자가 직접 사용했던 실험기구 같은 것이 전무한데, 이는 돈을 주고도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몇몇 과학적 유물들이 남아 있기는 하나 미래의 과학자들이 꿈꾸는 젊은 관람객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느끼게 해줄 전시물이 드물다는 얘기다.
 

왼쪽부터 국립과학관, 강원도학생과학관, 전북학생과학관


전시물의 교체도 안돼

또 진열된 전시물들은 자꾸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의 경우처럼 한번 설치해놓은 뒤 몇년이 가도 바뀌지 않으면 한차례 둘러본 관람객이 또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외 과학관 사이의 전시물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전시물이 도입, 진열돼야 하는데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

국립과학관의 김지문관장은 "해마다 전체전시물의 1할 정도는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는 몇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실정이다. 한해에 몇%가 교체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기껏해야 한두가지 주제를 새로 설치할까 말까 정도다. 지방의 학생과학관도 과학전에서 우수작품으로 뽑힌 몇가지 전시물을 특별순회전시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고 실태를 말하고 있다.

영국의 자연사박물관 같은 경우 풍부한 전시물을 일정한 기간마다 교체전시하고 있어 언제 들리더라도 새로운 전시물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죽을 때까지 보아도 모든 수장품을 다 관람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까지는 안되더라도 최소한 낡은 전시물을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나가는 것만큼은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바람직한 과학관·박물관은 단순히 전시만 할게 아니라 깊이있는 연구기능까지 수행해야 한다는게 상식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국내의 형편은 보잘 것이 없다. 학생과학관에서는 연구사가 몇명씩 있으나 대부분 학교에서 일시적으로 파견된 탓에 체계적인 연구를 할 여건이 못되며, 과학기술계의 고급인력이라기보다는 정규교과과정을 다루는 교사에 더 가까운 실정이다.

이는 전직교수나 과학자를 자원봉사자로 활용하는 외국과는 대조적이다. 또 주로 자연사박물관 등에서 최고수준의 과학자를 보유, 각종 연구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는 것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관에 소속돼 있는 연구직 종사자들 중 나름대로 독창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는 아마도 국립과학관에서 나비류를 집중수집, 연구하고 있는 이승모씨 정도일 것이라는 게 국립과학관 관계자의 솔직한 말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과학운영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예산의 뒷받침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과학관의 경우 연간 9∼10억의 예산중 60% 정도가 인건비로 충당되고, 나머지가 전시물의 관리, 수리 과학전개최 등 각종 사업비로 쓰여지고 있으므로 전시물의 질적·양적 확충이나 연구지원 등에는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또 지방의 학생과학관도 각 시·도교육위원회로부터 5천만원 내지 1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빠듯하게 꾸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라북도 학생과학관의 한 관계자는 "올림픽이 끝난 후 올림픽복권사업이 주택사업 체육진흥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보다도 과학진흥기금마련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기초과학의 진흥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만 막상 과학관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투자효과가 없는 부문에는 인색하다는 게 대부분의 과학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과학관이야말로 기초과학중의 기초가 아니냐는 것이다.

과학관에 대한 당국의 행정부재도 보이지 않는 문제점중의 하나다. 담당기관인 문교부의 과학교육국에서조차 각 학생과학관의 운영실태에 대해 현황파악이 안돼 있는 실정이다. 문교부 과학교육국에서는 "시·도교육위원회 소관이기 때문에 아는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과학관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 체계적으로 파악되고 있지 못한 실정. 국립과학관의 경우는 과학기술처 소속이기 때문에 역시 문교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국민들의 일생생활과 유리돼

우리나라의 과학관이 어떻게 국민생활속에 자리잡고 있는가는 관람인원현황을 보면 쉽게 드러난다.

서울 창경궁 옆에 위치한 국립과학관의 경우 87년 한해동안 입장한 관람객은 모두 35만1천15명인데, 이중 90%가 넘는 31만7천여명이 어린이와 청소년(주로 중·고교생)이었다. 일반인은 1할도 채 못되는 3만3천1백23명으로 하루평균 90명에 불과했다. 또 천체관람객의 50%가 단체입장객인 것으로 집계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관에는 초·중·고교생들이 주로 찾아오며 그것도 반강제적인 단체관람이거나 숙제룰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는 전혀 무관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지식을 보급하고' '국민생활의 과학화'을 촉진한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게 실상이다.

이처럼 과학관의 제반운영실태가 만족스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개선전망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과학관정책의 무성의가 단적으로 드러난 케이스로 종합과학관 건설을 들 수 있다.

당초 정부는 '과학기술문화의 전당'으로서 충남 대덕연구단지내에 종합과학관을 87년까지 건설하겠다고 공표했으나 예정일보다 1년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공사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선진각국의 과학관을 본따 5만평의 부지에 건평 6천5백여평 규모로 세워질 이 종합과학관은 83년에 계획이 확정돼 85년 착공, 지난해 개관할 예정이었다.

관계자들은 내년경 개관을 기대하고 있으나 매년 예산이 반영되지 못한 점을 감한하면 단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외부공사는 다체적으로 끝났다고 하나 다양한 전시물을 제대로 갖추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함께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종합과학관이 개관하게 되면 일단 국제적 수준의 과학관을 보유하게 되므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전시내용물을 알차게 갖추는 것은 물론, 자연사분야 등에 고급연구인력을 확보해 연구기능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종합과학관을 구심체로 해서 해양과학관 등 특성있는 과학관이 전국의 각 지역에 설립된다든지 기존 학생과학관의 시설 및 기능을 보강하고 과학관들끼리의 운영협력체제를 구축한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희망적인 기대감의 언저리에는 대덕연구단지내에 위치하는 종합과학관이 과연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도 깔려 있는게 사실이다. 대전지역이 국토의 중심부에 해당하고, 인근의 연구소들과의 유기적인 관련성들이 종합과학관의 입지적 장점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짐으로 해서 자칫 국민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채 단체관람객의 관광코스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과학관 이외에 철도 농업 산림 등 과학기술관련분야의 전시물을 모아 놓은 전문박물관들이 잇따라 설립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64년 한독의학박물관이 국내최초의 전문 박물관으로 문을 연 이래 지난해 농업박물관 및 산림박물관이 설립됐고 올들어서도 1월에 철도박물관이 개관됐다.

이들 과학기술전문박물관들은 현대과학기술의 물결에 밀려 차차 잊혀져가고 있는 과학기술문화유산을 한곳에 정리,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과학기술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과학문화를 창조케 한다는 점에서 커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속속 설립되는 기업박물관

이같은 과학기술전문박물관은 철도청이나 농협 등 공공기관의 성격을 띤 곳에서 만들기도 하나 그중에는 개인기업에서 일종의 '기업박물관' 성격으로 만든 것도 있다.

한독의학박물관은 지난 64년 약장 약탕관 약서 등 1천여점으로 개관, 현재는 6천7백여점의 각종 의료기 약기구 의료서적을 전시하고 있다. 또 태평양화학은 지난 79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태평양박물관을 개관, 삼국시대부터 사용해온 화장장신구, 화장품제조용구, 각종 화장품과 차(茶)에 관한 서적 등 2천5백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 럭키금성그룹은 내년초 개관목표로 경기도 이천에 역사관건립공사를 진행중이며, 포항제철은 철강기념관을, 전매공사는 담배전시관을 각각 구상중이다. 또 동서식품이 커피자료관 한국전력이 전력관, 조폐공사가 화폐박물관, 중앙우체국이 우정박물관이 등을 개관했거나 개관할 계획이어서 기업들의 박물관건립은 하나의 추세로 굳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국내업계가 참고로 하고 있는 기업박물관은 대개 일본의 것으로서, 일본은 지난 60년대부터 기업박물관, 기념관 건립붐이 일어 마쓰시타전기기념관 담배와 소금박물관 주조(酒造)박물관 방적(紡績)기념관 등 3백여개가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도 사진기 등이 전시돼 있는 코닥박물관이라든가 보석 박물관, 해사(海事)박물관 해시계 모래시계 등이 있는 바이엘시계박물관 등 각종의 박물관이 도처에 산재해있다.

아뭏든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자기영역의 전시품들을 모아 과학전문박물관을 만들고 있는 현상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국내의 과학관·박물관 사정에서 볼 때 매우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립과학관의 김지문관장은 우리나라 과학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학관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생겨나야 한다. 외국에는 국립, 공립, 사립 등 다양한 과학관이 세워져 있다. 일본 시즈오카에 있는 동해대학엘 갔더니 대학부설로 자연사, 해양, 인체 등으로 과학관·박물관이 설립돼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우리도 시설과학관이나 박물관이 속속 설립돼야 한다. 서울의 경우 최소한 구청단위로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김관장은 또 빈약한 예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회계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법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재의 일반회계제도에 의해 과학관의 일상적인 운영을 해나가되, 입장료수입이라든지 플라네타리움 시설이나 컴퓨터교육시설 등에서 경비를 조성해 이를 그 분야의 발전에 쓰여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경직된 예산용도로는 침체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국의 과학관문제는 한마디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과학관의 신설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똑같은 지적이다.

198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황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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