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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경 지도를 그린다!

브레인 & 머신 ➏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

“제 뇌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시상과 브로드만 영역 28번을 연결하는 48273번 신경회로, 해마와 섬엽을 연결하는 2982번 신경회로에 이상이 발견됐습니다. 요즘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환청이 들리지 않았나요?”

“네, 맞아요.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신경 연결성을 강화하는 유전자 치료를 받으면 나으실 수 있습니다.”


30년 뒤, 대학병원의 신경과에서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오갈 수도 있는 대화다. 앞으로는 사람의 유전자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것처럼 뇌의 여러 부분들을 서로 연결하는 신경회로망을 분석해서 뇌의 이상을 알아내는 날이 올 것이다. 2000년대 초 과학기술의 새 장을 연 ‘인간 게놈 지도(인간 유전자 지도)’가 탄생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첨단 의학 영상 기술과 컴퓨터의 힘을 빌려 뇌신경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 수 있는 인간 커넥톰 지도(인간 뇌신경 연결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뇌의 궁극적인 비밀을 열 수 있는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보자.




1800년대 말 독일의 신경학자인 코비니안 브로드만은 현미경과 수술용 매스만을 이용해 인간의 뇌에서 서로 다른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역 52개를 분류해 냈다. ‘브로드만 지도’라 부르는 이 뇌 지도는 1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널리 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복잡한 사고, 기억, 판단, 인식, 의식 등을 모두 설명하기엔 52개의 브로드만 영역은 턱없이 부족하다. 뇌과학자들은 사람의 복잡한 정신 세계가 어쩌면 뇌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연결성)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존 화이트 교수다. 1986년 화이트 교수는 ‘예쁜꼬마선충’이라는 1mm 크기 선충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 사이의 모든 연결성을 찾아 지도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신경세포의 수는 302개에 불과했지만 각 신경세포들의 연결쌍은 7000개가 넘었다. 연구팀은 이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 이름을 붙였고 20년 만에 작은 선충의 완전한 ‘커넥톰(뇌신경 연결 지도)’을 만들었다.


[인간의 뇌를 52개 영역으로 구분한 브로드만 지도. 각 영역은 세포 구조가 서로 다르다.]



사람의 뇌에는 예쁜꼬마선충보다 수십억 배나 많은 10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들이 있고,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인 ‘시냅스’는 100조 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13년 만에 완전 해독에 성공한 염기서열의 쌍이 총 30억 개였다. 현재 분석 기술로는 인간의 완전한 뇌신경 연결 지도를 알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연결성 정보를 저장하는 데 필요한 컴퓨터 용량만 수 페타바이트(1페타바이트는 1000조바이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뇌과학자와 뇌공학자들은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성 지도를 만드는 일과 뇌 영역들 사이의 연결성 지도를 만드는 일을 나눠서 함께 진행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임무는 계산 신경과학자들의 몫이 됐다. 이것으로 2010년 세계적인 뇌과학자와 뇌공학자들이 모여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라는 21세기 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인간의 뇌 지도를 밝히는 연구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뇌영상 기술의 놀라운 발전 덕분이다. 생체공학자들은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섬유 다발의 구조를 뇌를 해부하지 않고도 MRI(자기공명영상)만을 이용해서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확산텐서영상(DTI)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을 통해 MRI 기계에 30분 정도 누워있으면 개인의 뇌신경 회로도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뇌공학자들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한양대 생체공학과 이종민 교수팀은 2011년 이 기술을 이용해 인지장애 환자들이 정상인과 비교해 뇌 영역 사이의 연결성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1986년 존 화이트 교수가 커넥톰 지도를 만든 예쁜꼬마선충은 흙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으며 사는 다세포생물이다.]




뇌과학자들은 확산텐서영상을 통해 찾아낸 각각의 신경섬유 다발이 우리 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뇌의 두 부분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 연결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모른다면 쓸모없는 정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뇌파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했다. 하지만 최근 신경과학 분야에서 광유전학(optogenetics)이 발달하면서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광유전학 기술을 사용하면 빛을 이용해 특정한 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자극하고 이 때 반응하는 다른 신경세포들을 추적할 수 있다.

완전한 커넥톰 지도를 그리는 것은 앞으로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뇌와 뇌에 생기는 질병들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뇌의 이상을 특정한 뇌 영역이 아니라 뇌 신경회로망의 이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자폐증, 정신분열증, 파킨슨씨병과 같은 뇌질환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신경외과에서도 뇌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는 대신 신경섬유 다발을 끊어주는 수술 기법이 발전하고 있다. 먼 미래에는 우리 뇌의 잘못된 연결이나 끊어진 연결을 재생시킬 수 있는 유전자 치료나 줄기세포 치료 방법이 개발돼서 뇌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이우상 | 글 임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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