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여름이 막 기세를 부리기 시작하려는 6월, 미국에서 우주생물학자 한사람이 한국을 찾아 왔다. 그는 ‘제럴드.A.소펜’(Gerald A.Soffen)박사였다.
그는 미국국무성의 주선으로 전해인 1976년 사상최초의 화성 착륙탐사선 바이킹(Viking) 1,2호가 화성표면에 연착륙하는데 성공하여 화성의 흙을 채집하여 여러가지를 실험한 결과를 한국에 홍보 하기 위하여 왔던 것이었다.
그는 바로 오랜 역사를 가진 ‘화성의 생명체’에 관한 논쟁에 대해, 이 바이킹 탐사선에 적재한 실험기구로 가부를 가려야할 실험의 총책임자였던 것이다.
바이킹 1, 2호의 화성탐사
미국은 1950년대 부터 60년대 후반까지 우주개발경쟁에 있어선 거의 전반적으로 소련에 뒤지고 또 뒤졌었다. 인공위성을 최초로 발사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달의 이면촬영, 유인우주선, 우주유영, 사람의 우주장기체류, 여성우주비행사, 금성에의 우주탐사선 연착륙 등등··· 그야말로 소련의 연 이은 기록수립에 대해 미국의 우주개발활동은 매달, 매년, 낯을 붉혀야만 했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앞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화성탐사분야 였다.
소련도 재빨리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지만, 어찌된 셈인지 화성을 향한 우주선만은 실패를 거듭하였다.
반면에 미국의 화성탐사계획은 성공을 하였으므로 자동적으로 이경쟁에서만은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특히 마리너(Mariner) 탐사선9호는 화성표면의 근접 사진을 자세하게 찍어왔고 탐사선을 착륙시키는데 필요로 하는 조사자료를 모두 제공해 왔음으로, 드디어 바이킹계획이 확정되어 1975년8월20일에 1호가, 그리고 9월9일엔 2호가 타이탄(Titan) IIIE 로킷에 의해 발사되었다.
10개월의 비행끝에 1호는 1976년 6월19일, 2호는 8월7일에 화성상공에 도달했다.
바이킹탐사선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탐사선이 화성에 도달하면 그일부가 분리하여 화성을 끼고 도는 궤도에 진입하는 오비터(Orbiter)와 또 연착륙 하기 위해 화성으로 내려가는 랜더(Lander)로 나눠지는것이다.
바이킹1호가 연착륙예정지인 크리세(Cryse)지역에 도달했을때 오비터는 지구로부터의 지령전파에 의해 그지역의 장경(長径) 1백10km, 단경(短径) 50km되는 크기의 사진촬영을 개시했다.
그러나 지휘본부인 미국의 JPL(Jet추진연구소)에서 연착륙지점을 결정하는 그룹의 주임 ‘토마스 영’(Thomas Young)박사는 그야말로 의자로부터 굴러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앞서 보냈던 마리너 9호가 보내온 사진엔 전혀 찍혀있지 않았던 돌덩어리가 너무나도 많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JPL에선 곧 연착륙지 변경을 할것인지에 대한 긴급 회의를 열었고, 다시 오비터에게 지령하여 수십장의 근접사진을 찍게 하였다. 그러던 차에 미국독립기념일인 7월4일 착륙예정일은 지나가고 말았고 결국은 예정지점서부터 9백km나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7월20일 연착륙 시켰다.
바이킹 2호는 9월3일에 유토피아(Utopia)평야에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
바이킹1호의 랜더가 사상 처음으로 보내온 화성표면사진이 JPL에서 발표되었을때 그곳의 강당에 모여있던 신문기자, TV·라디오등 보도관계자들은 일제히 두손을 높이 들며 환성을 올렸다.
화성의 하늘은 핑크색으로 보였다. 그것은 화성 대기중에 떠있는 아주 가는 모래알들에 의해 태양광선중의 긴 파장인 붉은빛이 많이 반사되기때문이었다.
랜더의 생명(生命)실험
소펜박사는 바이킹1, 2호의 랜더에 싣고간 생명 유무를 가려내는 세가지 실험장치의 책임자다.
그가 첫번째로 시도한것은 광합성(光合成) 실험이었다. 화성의 흙이나 모래를 삽으로 퍼서 실험용기에 집어 넣었다. 이것이 실험대상의 샘플(sample)이 된것이다.
다음은 그것을 담은 용기속에, 방사성 탄소14번을 포함한 가스와 일산화탄소가 혼합된 기체로 가득채웠다. 이어서 화성과 똑같은 기압으로 만든 다음, 태양광선과 거의 성질이 같은 캐논등(canonlamp)을 켰다. 며칠후에 그 용기속에 남아 있는 가스를 빼고 섭씨6백도로 가열하여 샘플속의 유기물을 기체화시켰다. 그리고 이 샘플이 가이거 카운터(放射能制定器)를 통과하게 하는 것이었다.
만일에 광합성작용을 하는 미생물이 그 샘플속에 있었다면, 그 체내에 탄소를 섭취하게 될것이므로, 기체속에서 탄소 14번이 검출되어 미생물의 존재가 확인 될것으로 기대하였는데 바이킹1, 2호의 실험 결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두번째의 실험장치는 신진대사(新陳代謝)를 측정해 보는 것이었다. 화성의 흙을 다시 퍼서 이 장치에 넣었다. 이 용기속의 샘플에 탄소14번을 포함하고 있는 배양액을 퍼부었다. 그리고 용기속을 화성의 대기로 충만시켜 배양을 해보는 검지(檢知) 방법이었다.
만일 흙속에 미생물이 있어서 배양액중의 영양소를 섭취한다면 배설물로서 방사능승탄산가스를 방출하기 때문에 가이거·카운터로써 용기내의 기체를 조사해보면 미생물이 있느냐 없느냐가 확인된다는 이치였는데 이 실험에서도 확실한 결과를 얻질 못했다.
세번째실험은 가스교환(交換)방법을 써보는 것이었다. 만일에 샘플속에 미생물이 있다면 호흡을 할것이므로 용기속의 기체의 화학조직이 시간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것을 조사하는 방법이었다.
화성의 흙 샘플에 배양액을 스며들게한 후 크립톤을 혼합시킨 화성대기를 용기에 가득 채워 배양하는 방법을 택하고 정기적으로 샘플을 꺼내 가스크로마토그래프(gaschromatograph)를 사용하여 화학조성의 변화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메탄과 가스가 증가하면 호흡을 하는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할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실험을 한 바이킹1호의 랜더에선 약간의 가스가 발생했기 때문에 모두들 흥분했었다. 그런데 같은 종류의 실험을 한 바이킹2호에선 그런 반응을 보여 주질 않았다.
소펜박사는 바이킹1호에서 일어난 결과는 단지 용기속에서의 화학반응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바이킹탐사선에 설치한 카메라로도 화성 땅위에 기어다니는 개미 한마리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온 소펜박사는 서울의 국립과학관에 학생들이 운집한 가운데에서 강단에 섰다. 그는 강연후 질문을 받았다. 학생들의 첫 질문은
“박사님은 화성에 생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Yes or No”라고 했다. 그때 통역자는 그의 대답을 “있는것 같기도 하고, 없는것 같기도 해요”라고 통역했다. “와하하”하고 웃는 학생들의 환성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그렇게 넓은 땅에 단 두지점을 골라 생물탐사실험을 한 것만 가지고 가부를 결정내릴 수는 없다. 지구에 내린 외계 탐사선이 사하라(Sahara)사막에서 실험한 결과 만으로는 지구상에 바다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수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2000년대의 탐사계획
미국은 NASA를 주축으로 1992년에 마르스 옵서버라는 화성관측위성을 보내기로 하였다. 이것은 주로 리모트 센싱 방법으로 화성의 지질학상의 특성을 조사하는데 주목적을 두었다.
뒤이어 2015년까지 세가지의 유인화성 탐사를 추진중이다. 이것을 스프린트·미션(Sprint Mission)이라 부른다. 이 계획에선 화물수송선을 먼저 보내 필요로 하는 자재를 화성에다 운반해 놓고, 다음엔 우주비행사가 직접 화성으로 간다. 왕복에 1년걸리며 화성에선 2주일동안 체재하면서 그간 못다 했던 행성에의여행이란 꿈을 사상 처음으로 실현시킨다. 화성에 만일 생물이 있다면, 영국의 작가 ‘죠지·웰즈’가 소설에서 화성인이 지구를 침략해 왔었다고한 가상을 뒤엎고, 진짜로 지구인이 먼저 UFO를 타고 화성을 침공(?)하는 것을 화성인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곳에 전초기지를 건설하고 2022년엔 본격적으로 화성기지를 운영하게 된다. (그림6)
이러한 문제는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아직 극복해야 할 문제로서 사람을 보낼려면 1천톤이 넘는 자재를 우선 운반해야 하며, 극한(-150℃) 조건에서 모든 기기가 제대로 작동이 될 수 있어야하고 우주비행사가 1년간 여행중 생명을 보장할 수가 있어야 된다.
이러한 문제해결의 첫 준비단계가 바로 1987년11월에 발표한 레이건대통령의 우주실험기지(Space Station)건설 발표였던 것이었다.